소설리스트

공작가의 서자로 살아가는 법-100화 (100/176)

작전 개시

그럼에도 리암은 아직 우려가 가시지 않은 얼굴이었다.

“하지만 레핀 가문의 사병대를 타 가문의 영지에 들이는 게 과연-”

“폐하한테 얘기해놓을 테니 걱정 마.”

“···너 폐하랑 되게 절친인 것처럼 얘기한다?”

오랜 친구보다 더한 사이거든.

사실 걔 내 사촌동생이야, 라고 말할 수는 없고.

나는 대충 무시하며 다음 화제로 넘어갔다.

“문제는 가야르 요새에 주둔 중인 병력이 얼마나 되느냐인데.”

소문에 따르면 타릭은 가문에서 내놓다시피 한 문제아라고 들었다.

수배령이 내린 죄인을 데려온 막내아들을 가문 차원에서 얼마나 지원해줄지 미지수이기는 하지만.

리암이 말을 받았다.

“문제는 지금 벡카드 가문과 왕실의 관계가 미묘하다는 거지.”

내가 걱정하는 지점도 바로 그거다.

벡카드 가문과 (혈연 관계인) 헬리오스 가문은 무척 가까운 사이.

헬리오스 가문이 이미 왕실에 등을 돌린 상황에서, 벡카드 가문 또한 그러지 않으리란 보장이 없다.

···만약 이번 사건을 계기로 삼아 작정하고 왕실에 반기를 들려 한다면?

“그렇다면 정찰을 할 필요가 있을 것 같은데.”

여태껏 침묵을 지키던 발닉이 손을 들었다.

“정찰이라면 이 몸에게 맡겨주시지요.”

거참 든든하네.

나는 미소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 * *

회의가 끝나자마자 발닉은 소수의 인원을 데리고 출발했다.

내가 이렇게 당부한 탓이었다.

‘팰러스 일행이 움직이기 전에 작전에 돌입해야 하니 서둘러라.’

물론 팰러스가 부상당한 터라 지금 당장 움직이진 못하겠지만, 위험 부담은 줄이는 게 좋으니 말이다.

그로부터 정확히 사흘 뒤에 돌아온 발닉은 대뜸 이렇게 말했다.

“생각 외로 주둔 병력은 많지 않더군요.”

그는 요새 근처 마을의 여관에 투숙하며 사흘간 정찰을 계속했다고 했다.

“모기, 비둘기, 생쥐 따위에 빙의해서 말이지요.”

“이제는 포유류에도 빙의할 수 있게 된 건가?”

“그럼요, 오히려 못 하는 동물을 찾기가 어려운걸요. 이 발닉 전용 빙의 동물을 모아놓은 축사가 있을 정도입니다, 모르셨지요?”

그렇게 껄껄거리던 발닉이 이런 결론을 내렸다.

“주둔 병력은 많이 잡아도 200명 내외로 보입니다.”

그렇다면 벡카드 가문은 아직 왕실에 반기를 들기로 한 것은 아닌 듯하다.

‘하긴, 고작해야 일주일 남짓 사이에 그런 중대한 결정을 내릴 확률은 미미하겠지.’

그보다는 혼란에 빠져 있을 가능성이 높다.

어쨌거나 그 정도 병력을 격퇴하기 위해서라면.

‘벡카드 가문의 눈에 띄지 않고 부대를 움직일 수도 있겠군.’

보고는 그것이 끝이 아니었다.

곤충 따위의 작은 생물에 빙의한 채 요새 안을 분주히 돌아다닌 덕분에 발닉은 병사들이 자리를 지키는 곳이 어디인지, 몇 명씩 얼마마다 교대를 하는지.

심지어는.

“팰러스가 숨어 있는 것으로 추정되는 곳의 위치도 대략 알아냈습니다.”

나는 내심 감탄했다.

‘하나를 요구하면 열을 알아오는 부하라니, 정말로 훌륭하군.’

그 상세한 보고 덕분에 우리는 구체적인 작전을 좀 더 효율적으로 짤 수 있었고.

‘가야르 요새 공략작전’에 참여할 인원을 고르기 시작했다.

“농농이와 바바는 이번 작전에서 빠진다.”

“역시나 현명한 판단이십니다, 주인님.”

[옹, 앙옹앙? 바뿌바뿌···.]

“날 물로 보냐고 하시는데요···.”

농농이가 불만의 말을 쏟아냈지만 변동 사항은 없었다.

“리암과 카렌은 요새 바깥에서 사병대를 지휘해줘.”

두 사람이 고개를 끄덕였다.

나를 포함한 나머지 여덟 명이 요새 안으로 진입하되, 각자 다른 역할을 맡았다.

“제가 앞장서겠습니다.”

아무리 내부 비밀통로를 이용하는 기습 작전이라 해도, 누군가는 맨앞에서 돌격하는 가장 위험한 역할을 맡아야 한다.

디터가 그 역할을 맡겠다고 자처하자, 3형제도 질세라 나섰다.

“저희 또한 디터 경과 함께하겠습니다!”

“놈들의 머리를 꿰뚫어버리겠습니다!”

“적에게 죽음을!”

···흥분하기는.

“좋아. 디터와 3형제가 앞장서고, 그들의 비호를 받으며 롯과 발닉, 앨빈은 성문을 여는 데 집중해라.”

“그럼 도련님은?”

그 말에 옆을 돌아보자, 우만은 마음의 준비를 마친 듯 날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우만과 둘이서 팰러스와 타릭을 상대하러 간다.”

“···!”

우만의 ‘벽을 넘나드는’ 이능만큼 주요 요인을 처리하는 데 적격인 능력도 없다.

그리고 어제, 우만은 나를 따로 찾아와 이런 말을 한 터였다.

‘지금껏 말하지 못했지만, 내 이능에는 부가 능력이 하나 있다.’

‘부가 능력?’

‘누군가와 접촉한 상태에서 이능을 발휘하면.’

우만의 눈이 나를 똑바로 향했다.

‘···그와 같이 벽을 통과할 수 있다.’

‘!’

그 말을 들은 순간.

나는 작전의 최종 지점이 무엇이 될지 어렵지 않게 짐작했다.

팰러스가 지내는 방으로 숨어들어···.

“내 손으로 직접, 놈의 목숨을 끝장낼 거다.”

내 말에 가신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건 너무 위험합니다! 굳이 그런 위험을 감수하시지 않아도-”

“디터. 너무 걱정하지 마라.”

나는 얼마 전 공작의 암살자를 처리하는 데 쓴 바 있는 권총을 꺼내 보였다.

“너희도 알겠지만, 여차하는 경우에는 이걸로 얼마든 적을 제압할 수 있을 뿐더러···.”

그럼에도 여전히 걱정을 지우지 못하는 가신들의 얼굴을 돌아보았다.

“남들은 알지 못하는, 나만의 방어 수단이 있으니 말이다.”

패시브 방어스킬인 ‘그림자 방패’와 단거리 순간이동 스킬인 ‘그림자 보법’.

이 두 가지까지 갖춘 지금의 나는 무적이나 다를 바 없다.

거기에 우만이 거들었다.

“세자르 님이 손 끝 하나 다치지 않도록, 제 목숨을 다해 지키겠습니다.”

···얘가 웬일이래.

제법 각오를 담은 목소리에 나머지 이들이 조금이나마 안심한 듯했다.

그렇게 나는 가신들을 돌려보냈고.

‘모든 것이 시기적절하게 돌아가는군.’

지난번에 도전과제 세 개를 한꺼번에 달성한 덕분에 새로 갱신된 목록을 확인해보았다.

-국왕이 내준 미션을 성공적으로 완수했나요?

-요새 아래의 비밀 통로를 발견했나요?

-숙적의 죽음을 두 눈으로 목격했나요?

-반란의 조짐을 파악했나요?

-국왕의 비밀을 알아냈나요?

아마도 맨 위의 ‘국왕이 내준 미션’은 이번 작전을 가리키는 표현이 아닐까 싶고.

요새 아래의 비밀 통로 발견. 이건 그야말로 힌트를 떠먹여주는 과제가 아닐 수 없다.

‘숙적의 죽음’은 아마도 팰러스나 타릭의 죽음을 말하는 걸 테고···

반란의 조짐이야 헬리오스파를 중심으로 한 귀족들 분위기를 잘 살펴보면 알겠지만.

국왕의 비밀이라니.

‘천리이라는 이능 외에도 뭔가가 더 있다는 건가?’

그게 뭔지는 전혀 감이 오지 않았지만, 책상에 앉아 편지지와 깃펜을 꺼냈다.

“폐하께 편지를 드려야겠군.”

* * *

에스닐 왕성.

테오 2세가 모처럼의 휴식을 맞이해 모후 안느와 대화를 나누던 중,

전서구 한 마리가 날아와 창문을 두드렸다.

“폐하, 저기 창문에···.”

안느의 말에 국왕의 얼굴에 미소가 떠올랐다.

“기다리던 소식이 왔나 보군요.”

테오 2세는 익숙한 손놀림으로 전서구를 맞이했다.

새의 발에 묶여 있던 쪽지를 읽는 소년의 얼굴이 점차 밝아졌다.

“무슨 소식인지 여쭈어도 될까요?”

안느의 말에 국왕이 어머니를 돌아보았다.

“얼마 전 제가 드렸던 얘기, 기억나십니까?”

기억나다마다.

레핀 가문의 장자 팰러스가 호적에서 제외되었을 뿐 아니라.

이제는 수배령이 떨어진 죄인이 되었다는 충격적 소식은 온 나라를 뒤흔들었으니까.

“팰러스의 소식입니까?”

안느의 말에 국왕이 미소를 지었다.

“세자르 공이 또 공적을 세울 것 같습니다.”

“어머.”

“죄인의 행방을 알아냈다는군요. 지금 현재 벡카드 가문의 영지에 자리한 가야르 요새에 숨어 있답니다.”

소년의 시선이 서신 한가운데에 적힌 구절로 향했다.

“세자르 공에겐 타 가문의 영지에 합법적으로 진입할 명분이 필요한 것이지요.”

벡카드 가문의 이름이 나오자 안느의 얼굴이 굳었다.

“폐하, 그렇다면···.”

“그간 수도 귀족들이 잠잠했습니다. 하지만.”

국왕은 깃펜을 들어 서신을 작성하기 시작했다.

“벡카드 가문이 이런 식으로 나온다면, 앞으로 왕실을 향한 반론이 더욱 거세질 가능성이 높습니다.”

“우리도 슬슬 대비를 해야 할 것 같군요.”

안느의 말에 테오 2세가 고개를 끄덕였다.

‘세자르 레핀에게 수배자 소탕 임무를 맡기노라’라는 문장으로 시작된 서신은 이렇게 마무리되었다.

[···하여 레핀 가문의 적자, 세자르에게 죄인을 체포하고 불가피한 경우 사살해도 된다는 왕실의 허가를 내린다.]

서신을 돌돌 말아 전서구에 묶어 보내는데, 안느의 목소리가 국왕의 귓전을 때렸다.

“헌데 폐하, 그간 많이 자라셨군요.”

그 말대로였다.

얼마 전만 해도 어린애 태를 벗지 못하던 테오 2세였지만.

몇 달 사이 부쩍 자라 이제는 제법 소년 같은 느낌이 났다.

“그런가요? 하긴 요즘 키가 꽤 큰 것 같긴 했습니다.”

키와 몸뿐이 아니었다.

원래도 귀여운 얼굴이었지만, 이제는 이목구비가 뚜렷해진 덕분인지 정말로 빼어난 미모가 눈에 띄었다.

허나 거울 속의 자신을 바라보는 국왕의 표정은 그리 좋지 않았다.

“···너무 빨리 자라지 않으면 좋으련만.”

테오 2세의 미간에 주름이 파였다.

그 걱정스러운 얼굴에 안느는 저도 모르게 다가가 자식의 손을 붙잡았다.

“폐하, 너무 심려치 마시지요.”

“어머니, 제가 앞으로 얼마나 더 버틸 수 있을까요?”

아직 작고 앙증맞은 이 손으로 한 나라의 국사를 책임지고 있다니.

안느는 가슴이 미어지는 기분이었지만.

“앞으로 얼마나 더··· 모든 것을 감추고 지낼 수 있을까요.”

“···.”

혼잣말하듯 중얼거리는 목소리에 아무 대답도 해줄 수가 없었다.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점점 더 감추기 어려운 것이 사실이니까.

안느는 아직 저보다 훨씬 작은 아이를 품에 꼭 감싸안았다.

* * *

가야르 요새의 조리실.

대형 요새의 취사를 책임지는 공간치고는 협소하기 짝이 없는 곳이었다.

커다란 냄비 안을 휘휘 젓던 취사병 하나가 불쑥 불만 섞인 말을 뱉었다.

“젠장, 이놈의 요새를 언제까지 지키고 있어야 하는 건지.”

백여 년 전만 해도 전략적 요지로 꼽혔던 가야르 요새였지만, 해로드 왕조의 집권 이후 동부지대는 단 한 번도 적의 침략에 놓인 적이 없었다.

때문에 이 요새 또한 늘 비어 있었으나 최근에 상황이 달라졌다.

“그놈의 망나니 막내 도련님이 뭔지-”

“쉿, 조용하게. 그런 얘기가 윗분들 귀에 들어가기라도 하면 어쩌려고! ”

개중 최고참이 입조심을 시켰지만, 불만은 쉬이 사그라들지 않았다.

‘타릭 벡카드, 가문의 골칫덩이 망나니 막내 도련님.’

그런 그가 갑자기 가문 소유의 요새에 틀어박혔다.

가주와 무슨 말이 오간 건지 ‘막내 도련님을 지켜라’는 명을 받은 병력과 물자가 이 요새로 공급되었지만, 어디까지나 최소한의 수준이었다.

“아니 그래도 이백 명의 인원에 이 정도 물자가 말이 됩니까?”

“그래요, 이런 꿀꿀이 죽만 먹는 것도 하루 이틀이지.”

“지금이 전시도 아닌데 왜 이런 고생을 사서 해야 하는지···.”

문제는 물자가 턱없이 부족하다는 것이었다.

때문에 병사들에게 나가는 음식이라고는 돌 같은 빵과 희멀건 죽이 전부라, 요새 내부의 불만이 나날이 높아져가는 상황.

문제의 원인인 타릭 공자를 향한 불만 또한 목 끝까지 차올라 있었다.

“예끼, 이 사람들아. 불만도 적당히···.”

거기까지 말한 순간.

어쩐지 등 뒤에서 싸한 기운이 느껴졌다.

“다들 투항하면 목숨만은 살려주겠다.”

지옥의 사자가 내는 듯, 성대를 긁는 듯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고참 병사가 뒤를 돌아본 순간-

쿵!

거대한 나무 몽둥이가 병사를 후려쳤다. 그의 몸이 바닥으로 고꾸라졌다.

“···안 죽은 것 맞겠지?”

“나름 힘을 조절했습니다.”

돌연 나타난 거구 사내의 모습에 취사병들의 눈이 동그래졌다.

사내의 바로 옆에 네모난 바닥 문이 열려 있었지만, 그들 눈에는 그조차 띄지 않았다.

“누, 누구냐?”

“나?”

거구의 사내가 씨익 웃었다.

···무척 불길한 웃음이었다.

“손님이다.”

또다시 그의 몽둥이가 부웅- 하고 허공을 갈랐고.

그렇게 몇 차례 둔탁한 충격음이 울린 후.

“나오시죠, 주군.”

거구의 사내 뒤로 검은 머리 청년과 그 가신들이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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