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공작가의 서자로 살아가는 법-93화 (93/176)

미끼를 던졌다

롯은 타고나길 육감이 좋은 편이었다.

그것은 어느 날의 운이나 사건뿐이 아니라 사람에게도 해당되는 것이었는데.

‘어째서일까.’

농농이와 나훔이 공작의 곁을 24시간 지키라는 명을 받은 이후로,

그녀 또한 그들의 임무에 동참했다.

나훔이 이 공작저에서 처음으로 막중한 임무를 맡은 만큼, 오빠가 실수하지 않을까 걱정이 되었던 것.

롯의 우려와는 달리 나훔은 얼굴 표정이 밝았다.

‘롯, 네가 걱정할 건 없다. 농농 님과 내가 며칠간 밤낮으로 지켜보았지만.’

이 근처에서 살기란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는 것.

‘그러니 너까지 무리할 필요 없다. 이곳은 나와 농농 님만으로도 충분하니. 무엇보다···.’

나훔은 살뜰하게 공작을 보살피는 아름다운 하녀를 가리켜 보였다.

‘저분이 우리만큼이나 각하를 잘 모시고 있으니 말이다.’

‘···.’

마리라는 하녀라고 했던가.

나훔은 그녀를 믿음직스러워했지만 롯은 이상하게 영 마음이 놓이지 않았다.

일은 확실히 빠릿빠릿하게 잘했지만, 뭔가 아주 어색한 느낌이···.

‘표정이 이상해.’

얼굴 근육이 없는 사람처럼 늘 무표정한 얼굴.

단지 그 이유였다.

뭔가 싸한 구석을 느낀 롯이 경계를 늦추지 않았던 것은.

그리고 그날 밤.

‘세자르 님께선 오늘이 고비라고 하셨어.’

어쩐지 불안한 예감이 들어 자리에서 일어났다.

“오빠, 나 잠깐 한 번 더 확인하러 다녀올게.”

[옹, 앙앙!]

제게 팔을 뻗는 농농이를 안고서 공작의 침실로 향했다.

롯의 예민한 청각은 침실 안 부스럭거리는 소리를 감지해냈다.

‘각하가 이 시간에 깨어계신가?’

그럼 함부로 들어가면 안 되지 않을까, 잠시 고민하는데.

[앙앙!]

농농이가 그녀의 소매를 붙들며 안을 가리켰다.

그 손짓을 롯은 곧바로 이해했다.

‘···안에서 살기가 느껴진다고?’

그러자 그녀 또한 느낄 수 있었다.

안쪽의 익숙한 인기척에서 희미한 살기가 느껴진다는 것을.

롯은 노크하지 않고 곧바로 문을 열었지만, 손잡이가 돌아가지 않았다.

문이 잠겨 있다는 사실에 당황한 순간.

[앙, 옹!]

농농이가 자신을 믿으라는 듯 단호한 눈빛을 보냈고.

“농농아, 왜···? 꺅!”

그대로 순간이동해 침실 안으로 들어섰다.

그 즉시 롯의 시야에 들어온 것은-

손에 암살자용 단검을 든 하녀였다.

“···!”

하녀와 공작이 잠든 침대 사이의 거리는 불과 몇 걸음.

둘의 눈이 마주친 순간!

하녀의 움직임이 빨라졌다.

“농농아!”

짧은 순간, 롯은 농농이에게 눈빛으로 사인을 보냈다.

자신이 붙잡아둘 동안 저 여인한테 달려가라고!

[앙!]

그 즉시 농농이가 롯의 품에서 뛰쳐나왔고.

롯은 ‘포박의 이능’을 행사했다.

그녀의 두 손에서 무형의 기운이 뻗어나가 하녀에게 직격했다.

“크윽!”

조금만, 조금만 더···!

한 걸음만 더 나아가면 목표물의 목에 단검을 박아넣을 수 있었는데,

하녀는 뭔가에 꽁꽁 묶인 듯 움직이지 않는 제 사지를 원망했다.

한편,

롯은 자신의 이능에 제한 시간이 있음을 알았다.

‘5초 정도였나?’

2초 정도 흘러갔으니 이제 남은 시간은 3초.

농농이가 최선을 다해 뛰었지만, 짧은 다리로 아장거리며 가니 속도가 느렸다.

2초,

1초···.

마침내 포박이 풀린 순간,

하녀가 빛의 속도로 움직였다.

롯도 달렸지만 역부족이었다.

“안 돼!”

마침내 침대 맡에 도달한 하녀가 단검을 위로 치켜든 순간!

탕!

세찬 격발음이 울렸고.

‘이건···!’

이능을 쓸 때와 유사한 기운이, 출렁하며 벽을 통과하고 날아왔다.

마침내 탄환의 형태로 뭉쳐든 그 기운은-

“컥!”

-하녀의 심장을 그대로 관통했다.

챙강!

그녀의 손아귀에서 단검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하녀의 몸 또한 쿵, 하며 무너져 내렸다.

“이게··· 어떻게 된 거야?”

대체 무슨 영문인지 모르겠는 롯이 바닥에 쓰러진 하녀에게 다가갔다.

그녀는 눈조차 감지 못한 채 즉사했다.

‘아까 날아온 그 총알은 뭐였지.’

총알이라기엔 폭발도, 특유의 탄약 냄새도 나지 않았다.

알 수 없는 힘의 파동이 느껴졌을 뿐.

롯이 천천히 일어나 공작의 상태를 확인하려는데, 바깥에서 당황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세, 세자르 도련님이!”

“도련님이 쓰러지셨다!”

···세자르 님이?

롯은 미친 듯 방을 뛰쳐나갔다.

* * *

내가 의식을 되찾은 것은 사흘이 꼬박 지난 뒤였다.

“몸은 좀 어떠십니까?”

총관이 걱정스러운 기색으로 물어왔지만, 나는 아무렇지 않았다.

“오히려 개운한걸.”

사흘간 꼬박 잠만 자고 일어난 듯 온몸이 상쾌했다.

그렇게 대답했음에도 총관은 기어이 주치의를 불러 나를 진찰하게 한 후에야 안심했으니.

“이제 얘기해봐, 카얀. 지난 사흘간 무슨 일이 있었지?”

내가 기억나는 건 여기까지다.

절체절명의 순간.

공작의 침실에서 비명이 들려왔고, 그 안의 상황을 예감한 순간 곧바로 권총을 들어 발사했다는 것.

···침실 하녀 마리를 향해 말이다.

‘MR이 그녀의 이니셜임을 왜 진작 눈치채지 못했을까.’

아마 내가 바바의 그림에 너무 집착하고 있었던지도 모른다.

가면을 쓴 것은 여자가 아닌 사내였으니, 무의식적으로 범인이 남자라고 단정지었던 것.

‘그럼 바바의 능력에도 허점이 있다는 걸까?’

그 순간.

총관이 의외의 말을 꺼냈다.

“하녀 마리, 아니··· 인두겁을 쓰고 그녀 행세를 한 사내가 각하를 살해하려 들었습니다.”

“뭐라고?”

“살기를 감추는 훈련을 받은 전문 암살자인지, 농농이나 나훔조차 그런 기색을 느끼지 못했다고 하더군요. 오래 있었던 하녀라고 무턱대고 믿은 제 잘못입니다.”

아니 그보다··· 인두겁을 쓰고 그녀의 행세를 했다고?

도저히 못 믿겠다는 내 눈빛에 총관은 한숨을 쉬며 말했다.

“저택 뒤편의 얼음창고 안쪽에서 동사한 시체가 발견되었습니다. 진짜 마리 말입니다.”

총관은 어두워진 얼굴로 사건의 자초지종을 털어놓았다.

-주치의 버논의 말로는 얼음창고에 있은 지 3주 정도 된 듯하다.

-살해한 뒤에 창고로 옮긴 것이 아니라, 약물로 가사 상태에 빠뜨린 뒤 얼음 창고에 가둬둔 것 같다. 직접적인 사인은 동사라는 것.

-최근 공작의 곁을 지키던 하녀는 사실은 남자였으며, 사람의 피부로 만든 탈을 뒤집어쓰고 그녀 행세를 했던 것.

이 일로 공작저가 완전히 뒤집어졌다고 한다.

사용인들의 입 단속을 시키고는 있지만, 워낙 충격적인 사건인 만큼 쉽지가 않다고.

‘오죽하면 그러겠나.’

총관은 하인들끼리 서로 얼굴을 찔러서 확인해볼 정도라고 덧붙였다.

“시체를 샅샅이 살펴보았지만 몸에 표식 같은 건 남아 있지 않았습니다, 다만···.”

그가 들고 온 상자를 열어 보였다.

안에 들은 것은 평범해 보이는 단검 한 자루.

“이게 그 암살자의 무기입니다.”

“···.”

나는 단검을 집어들어 살펴보았다. 특별한 흔적 같은 건 없는 듯한데···.

이걸 가져온 이유가 있겠지 싶어 옆을 돌아보니, 총관이 말을 이었다.

“평범한 강철이 아니라 오프러스 공국에서만 채굴되는 특별한 종류의 금속으로 만든 단검입니다.”

“오프러스 공국이라고?”

“그렇습니다. 물론 공국은 자국에서 생산한 병장기를 수출하는 만큼, 공국이 보낸 암살자라고 단정지을 수는 없겠지만···.”

총관이 말을 흐리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요컨대 심증은 가지만 물증이 없다, 이 말이지.

그러나 바보가 아닌 이상에야 상황은 명확하다.

‘팰러스를 지원하는 오프러스 공국에서 붙여준 암살자.’

그중 한 명이 어느새 저택 안으로 침투해 있었던 거다.

···그야말로 소름 끼치는 일이 아닐 수 없다.

“세자르 공자님, 이 일을 어찌해야···.”

“카얀.”

망설이는 총관을 보며 내가 말했다.

“이번 일은 내가 아버지께 제대로 말씀드리겠다.”

···이제는 결단을 내려야 할 타이밍이니까.

카얀의 얼굴에 걱정의 빛이 떠올랐다.

“각하께서는 예정대로 왕궁회의에 참석하시는 겁니까?”

지금껏 공작은 모든 외부행사를 피해왔지만 왕궁회의 참석은 또 다른 문제였다.

“가신 된 자로서 왕의 부름에 답하지 않을 수는 없는 것 아닌가?”

“그거야 맞는 말씀입니다만 아무래도 걱정이 되어···.”

“걱정?”

잠시 망설이던 카얀이 꽉 잠긴 목소리로 대답했다.

“···림 바야르가 탈옥했다고 합니다.”

“그래?”

역시나.

나도 모르게 회심의 미소가 지어졌다.

“네, 누군가가 손을 써서 뒷돈을 먹이고 계획적으로 빼돌린 것이 틀림없다고···.”

총관은 아주 조마조마해하며 말했지만.

오히려 나는 무척이나 만족스러웠으니.

“생각했던 대로군.”

“설마 이런 일이 있을 줄은··· 네?”

“팰러스 아니면 공작 부인. 둘 중 누군가는 바야르를 빼돌리려고 손을 쓸 줄 알았거든.”

내 말에 그걸 어찌 알았냐는 듯 눈이 커지는 총관.

하지만 그렇지 않은가.

‘절대적으로 인력이 부족한 그들에게 바야르는 감옥 안에서 썩기에는 여러모로 아까운 카드잖아?’

나는 얼떨떨해하는 총관을 보며 씩 웃어 보였다.

“걱정 마라, 카얀. 모든 건 다 예상했던 대로 흘러가는 중이니.”

카얀을 내보낸 직후, 나는 곧바로 공작의 집무실로 향했다.

* * *

드릴 말씀이 있다며 찾아온 세자르를 보며 공작은 한동안 입을 열 수 없었다.

입술을 달싹인 끝에 간신히 이런 말을 내뱉었으니.

“건강해 보여서 다행이구나.”

“감사합니다, 아버지.”

세자르는 그것을 대수롭지 않은 안부 인사로 받아들인 듯 씩 웃어 보였지만.

로건 드 레핀은 진심으로 안심한 터였다.

‘정말로··· 다행이군.’

사흘 전.

좀처럼 침착을 잃지 않는 총관 카얀이 헐레벌떡 달려와 이렇게 외쳤을 때.

‘가, 각하··· 세자르 공자님이 기절하셨습니다!’

로건 드 레핀은 얼마나 놀랐는지 모른다.

옷을 꿰어입고 허겁지겁 달려가자, 카얀의 말처럼 의식을 잃은 세자르가 있었다.

침대에 누운 청년의 얼굴은 새파랗게 질린 채였다.

‘세자르!’

그저 기절한 것일 뿐, 건강에는 아무런 이상이 없다는 주치의 버논의 말에 그나마 안심하긴 했지만.

지금도 눈을 감으면 세자르의 기절한 모습이 자꾸 떠오를 정도였다.

그의 아들이 깨어나지 않던 사흘간.

공작은 총관에게 사건의 자초지종을 조사하도록 지시했다.

그 진상은 놀라웠다.

‘마리가 범인이었다고?’

아니, 정확히 말하면 마리가 아니라 그녀의 탈을 뒤집어쓴 오프러스 공국의 전문 살수가 범인이었다.

그 뒤에 누가 있을지는 보지 않아도 뻔했다.

‘팰러스···.’

그래.

애초 제 핏줄이 아니었으니, 자신 또한 아비의 정은 없는 편에 가까웠다.

그럼에도.

‘이젠 아내뿐이 아니라 자식에게도 목숨이 노려지는 신세라니.’

그들 모자와 함께한 십여 년의 시간.

그것은 아무 의미 없었을 뿐더러, 팰러스 모자에게는 단순히 레핀 가문의 힘과 계승권을 얻기 위한 발판에 불과했다.

···그 사실을 이제야 깨닫다니 이 얼마나 우둔한가.

공작은 가슴속에 돌덩이가 내려앉은 기분으로 입을 열었다.

“그래, 무슨 일이냐.”

“아, 다름이 아니고··· 폐하께는 얘기드리셨습니까?”

오늘은 몇 달에 한 번씩 열리는 왕궁의 정기회의.

레핀과 노바스, 두 대귀족 가문을 비롯해 수도 가문들의 수장이 한 자리에 모이는 중요한 회의다.

여간한 일이 아니고서는 전원 참석하는 자리이지만.

“그래. 네가 조언했던 대로 건강상의 이유로 불참하겠다고 말씀드렸다. ···전령이 아니라 전서구로 말이다.”

표면적으로는 건강 악화를 이유로 들었지만, 최근 레핀 공작이 숱한 암살 시도에 시달리고 있음을 테오 2세가 모를 리 없었다.

“그럼 폐하 외에 그 사실을 아는 사람은 없겠군요.”

“물론이다.”

레핀 가문의 사용인들, 심지어는 총관 카얀마저도 공작이 회의에 참석한다고만 알고 있으니까.

그의 확답에 세자르가 슬며시 미소를 지었다.

“잘하셨습니다. 왜냐면···. 전 아버지가 오늘 회의에 참석한다고 온 동네에 소문을 낸 참이었거든요.”

“소문을 냈다고?”

“일부러 마차도 화려한 것으로 준비해놨습니다. 온 사방에 철판을 덧대어 만든, 눈에 안 띌 수가 없는 놈으로 말이죠.”

세자르는 몹시 즐겁다는 듯 말을 이었다.

“지금쯤 팰러스는 자신이 파둔 함정에 우리가 걸려들기를 기다리고 있겠지만.”

···함정이라고?

세자르의 입술이 호를 그리며 웃었다.

“함정을 파둔 것은 오히려 우리 쪽이니까요.”

공작의 눈이 커졌다가 이내 가늘어졌다.

그의 아들이 무슨 수를 꾸몄는지 뒤늦게 이해했기 때문에.

“···미끼를 던졌구나.”

공작의 주름진 입가에 희미한 미소가 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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