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줄을 해도 배부른 삶이 낫다
카렌은 상황 정리를 하겠다며 나더러 30분 정도 나갔다 오라고 요청했고.
‘그래.’
‘제발! 제발! 저랑 렌 님만 두고 나가지 마십시오! 도련님, 공자님, 나리, 각하! 제 목숨이든 뭐든 다 드릴 테니-’
‘필요없다.’
내 발치에 매달리는 대머리 사내를 무시하고 나갔다가 30분 후에 돌아오자.
“자, 세자르. 이젠 네가 하려던 얘기 해도 돼.”
얼마나 맞은 건지 대머리 사내의 얼굴이 퉁퉁 부어 있었다. 멍게를 연상시키는 그의 모습에 등 뒤로 소름이 오싹 돋았지만.
‘카렌이랑 척지면 안 되겠네.’
나는 아무렇지 않은 척하며 대머리 사내 앞에 앉았다.
“일단 복채는 선불로 주지.”
“···역시 나리는, 아니 각하는 고매한 인품을 지니신 분-”
“쓸데없는 말은 그 정도 하고.”
은화 하나를 받아든 사내의 얼굴이 대번에 밝아졌다. 연신 헤실거리는 그를 향해 질문을 던졌다.
“네 이름이 뭐지?”
“이 근방에선 ‘북녘의 점술가 바르바로아’로 알려져 있지만···.”
그 말에 카렌이 코웃음쳤다.
“허세하고는.”
“···주변에선 절 ‘바바’라고 부르지요.”
갓난아기 때 거리에 버려진 탓에 진짜 이름도, 정확한 나이도 모른단다.
구걸로 연명하는 ‘거리의 아이’로 전전하다 어느 검은손 길드원의 손에 이끌려 길드로 들어왔고.
“그때부터 제법 사람 구실을 하기 시작했습죠, 헤헤.”
“사람 구실은 개뿔···.”
카렌이 치가 떨린다는 듯 이를 갈았지만, 그때마다 바바는 내 눈치를 살피며 혀를 놀렸다.
‘카렌이 내 가신인걸 벌써 파악한 건가.’
눈치만큼은 수준급이라 생각하며 말을 이었다.
“좋아. 네가 얼굴을 드러냈으니 나 역시 자기 소개를 하지.”
원래는 놈의 실력을 확인한 뒤 정식으로 가신으로 들일 생각이었지만, 생각이 조금 바뀌었다.
카렌과의 악연도 그렇고, 호감도 창의 정보를 보니 영 신뢰할 수 없는 인간인 것 같거든.
‘이런 인간에겐 제어 장치가 필요하지.’
그 점을 되새기며 천천히 후드를 벗었다.
얼굴 절반을 가린 머플러를 풀어내자 바바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서, 설마 나리는···!”
“쉿. 말하지 말게.”
그러자.
바바는 물고기처럼 뻐끔거리며 입 모양으로 ‘세자르 공자님!’이라고 외쳤다.
“나를 아나?”
“그, 그럼요 모를 리가! 여기 있는 뒷골목 주민 중에 나리를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겁니다요!”
바바는 몰라 봬서 죄송하다며 내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았지만, 나는 일어나 앉으라고 명했다.
“···.”
사내는 ‘무려 공자님’과 마주 앉는 것이 몹시 불편해 보였지만.
나는 테이블에 놓인 한 벌의 카드를 톡톡 두드렸다.
“여기 주민들이나 나나 다를 것 없네. 나 역시 자네에게 점을 보러 온 것이니.”
“그러면···.”
바바가 떨리는 손을 추스르며 카드를 섞으려는데.
“하지만.”
나는 사내와 두 눈을 마주쳤다.
···아까부터 느꼈는데, 사나운 곰 같은 외모에 어울리지 않게 유난히 영롱하게 반짝이는 눈이다.
“그냥 평범한 타로를 보러 온 게 아니야.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겠나?”
“무,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도통-”
“시치미 떼기는.”
이미 호감도 창으로 확인을 마친 터다.
나는 좀 더 강하게 밀어붙이기로 했다.
“난 자네에게 좀 더 특별한 힘, 아니··· ‘이능’이 있다는 걸 알고 있어.”
“···!”
바바의 눈에서 일순 초점이 사라졌다.
카드를 정리하던 손이 벌벌 떨린다.
“겁낼 것 없어. 요는 이거야.”
“무슨···.”
“자네의 장사 밑천을 까서 내게 보여준다면, 그리고 그것이 내 기대 이상이라면.”
나는 주머니에서 금화 하나를 꺼내 보였다.
“···!”
금화를 그의 코앞까지 가져갔다가.
점술가가 홀린 듯 그것을 붙잡으려던 순간, 도로 가져와버렸다.
“ 나 역시 섭섭지 않을 정도, 아니 자네가 평생 들어본 적 없는 규모의 제안을 하도록 하지. 어떤가?”
바바는 잇자국이 나 있는 금화를 황홀한 기색으로 응시했다.
“기회는 손님과 같아서 눈앞에 있을 때 잡으라는 말이 있지요.”
대머리 사내가 누런 이를 드러내며 씩 웃었다.
“아낌없이 보여드리지요, 나리. 무엇이 궁금하십니까?”
* * *
사내는 다 닳아빠진 타로카드 대신 종이를 한 장 꺼냈다.
언뜻 보기에 아무 특별할 게 없는, 그냥 종이였다.
“이게 무슨 마법의 종이라도 되는 건가?”
“네? 아, 이건 그냥 종이입니다요. 다만···.”
바바가 나를 마주 보았다.
“나리의 미래에 궁금한 것을 질문해주신다면, 그 해답이 이 종이 위에 나타날 것입니다.”
호, 그것 참 신기하네.
나는 턱을 쓸다가 입을 열었다.
“좋아. 질문하지. 내 아버지인 레핀 공작을···.”
애초 내가 이자를 찾은 이유가 이거였으니까.
“누가 언제 어디서 죽이려 시도할까?”
질문은 최대한 구체적으로, 육하원칙을 담아서.
‘레핀 공작’이라는 이름에 바바의 얼굴이 잠시 창백해졌지만.
“그럼··· 대답을 구해보겠습니다.”
바바가 고개를 숙였다.
양손을 기도하듯 맞잡고 눈을 감는다.
미간까지 찌푸려가며 집중하더니-
‘이건 역시.’
이제는 척하면 척이다.
이능을 쓸 때 느껴지는 강력한 힘의 기운이 맞은편에 앉은 나에게도 느껴질 정도다.
“답을··· 보여라!”
번쩍, 하고 바바가 두 눈을 뜬 순간.
테이블 위 흰 종이에 스르륵 하고 그림이 나타났다.
물감이 번져가듯 천천히 완성된 그림은···.
“이건 뭐야.”
나는 미간을 찌푸린 채 그림을 자세히 들여다보았다.
침실 안이 배경.
창밖에는 반달이 빛나는 밤하늘이 보인다.
우측 하단에는 잠든 채 침대에 누운 남자의 모습이.
정중앙에는 가면을 쓴 자가 칼을 등 뒤에 숨기고 있다.
‘···이자가 범인이라는 의미인가.’
몸에는 MR이라는 이니셜이 적혀 있다.
“그래서, 바바. 이 그림이 의미하는 바가 뭐지?”
어느 정도 짐작은 되지만 놈의 해석을 듣고 싶었다.
바바는 자신만만한 목소리로 말했다.
“일단 여기에 누운 이가 공작 각하이시겠고 여기 칼을 든 자가 각하를 죽이려는 것 같군요.”
그거야 나도 알겠지만.
잠자코 놈의 말을 경청했다.
“언제 어디서 사건이 일어날까라고 여쭈셨죠. 장소는 각하의 침실이 될 것 같고, 언제라 물으신다면···.”
바바가 내 눈치를 살피며 말을 이었다.
“여기 보십시오. 하늘에 반달이 떠 있지요? 그것도 왼쪽으로 꽉 찬 반달.”
“그래서?”
“보름달이 떴던 게 사흘 전이니···.”
바바가 마른 입술을 핥으며 결론을 내렸다.
“사건이 일어나는 건 지금으로부터 약 사흘 뒤의 일.”
···생각보다 머리가 제법 돌아가는 녀석인 듯하다.
의외라는 눈으로 마주 보자, 바바가 머리를 긁적이며 말한다.
“흐흐, 저처럼 거리 출신의 고아들은 하늘의 신호를 읽는 데 익숙하지요.”
“···그렇군.”
“그리고 범인의 단서라 할 만한 건 가면과 MR이라는 이니셜 정도인데 누군가 떠오르는 자가 없으십니까?”
가면과 이니셜 MR.
‘M과 R이라고?’
적어도 내가 아는 자 중에는 그런 이니셜을 지닌 자가 없다.
가만히 생각에 잠겨 있다가 그림에 손을 뻗었다.
“이건 내가 보관해도 되겠나?”
“그럼요!”
“그림값은 이 금화로 치르지.”
“황··· 황송합니다요!”
원작에서는 미래를 점치는 이능이 어떤 식으로 작동하는지 자세히 묘사된 적이 없다.
‘헌데 이 정도일 줄은 몰랐는걸.’
신탁이나 예언처럼 아리까리한 예언의 형태일 줄 알았더니 그림의 형태로 묘사되다니.
말 그대로 사기급에 가까운 어마어마한 이능이다.
내 눈으로 직접 보고 나니 한층 더 탐이 났지만···.
“나쁘진 않군.”
나는 내색하지 않으며 말을 던졌다.
“그, 그렇습니까.”
“그래. 기대했던 만큼 구체적이거나 하진 않지만···.”
초조해하는 바바에게 여유롭게 말했다.
“답답한 상황에선 지푸라기라도 있는 게 없는 것보단 낫잖아, 안 그런가?”
“그럼요, 백 번 옳은 말씀이십니다요!”
벌써 새 주인을 만난 듯 꼬리를 마구 흔들어대는 바바의 모습에.
“하, 혀에 기름칠을 해놨나···.”
카렌은 어이없어하며 혀를 찼지만.
나는 금화 하나를 더 꺼내어 내 앞 탁자에 내려놓았다. 바바의 눈이 탐욕으로 빛나는 것을 보며 말문을 열었다.
“나는 결론을 내렸네.”
“어떠한···.”
“자네를 고용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는.”
“오!”
기뻐서 방방 뛸 준비를 하는 바바에게, 제지하듯 손을 들어 보였다.
“하지만 한 가지 문제가 있어.”
“문제라니요?”
“난 자네를 믿을 수가 없거든.”
“그, 어, 어째서···.”
금세 나라 잃은 표정으로 변한 바바의 눈동자가 카렌에게 향했다.
“호, 혹시 렌 님에게 무슨 얘기라도 들으신 겁니까? 제, 제가··· 아니, 그건 한참 철없을 때의 일이라-”
“···지난달에도 철이 없었나 보지?”
“쩝.”
내가 가볍게 탁자를 치자, 바바가 퍼뜩 놀라며 내게 신경을 집중했다.
“믿을 수 없는 자를 고용할 때 내가 쓰는 방법이 있는데.”
“뭐든 말씀하시지요.”
“목줄.”
“?”
나는 내 목을 가리켜 보이며 말을 이었다.
“쓸 만한 목줄을 채우는 조건이라면, 자네를 믿고 고용할 수도 있을 것 같은데.”
“···.”
바바는 말이 없어졌다.
내가 말하는 목줄이 구체적으로 뭔지 감이 오지 않는 거겠지.
하지만 그걸 굳이 얘기해줄 생각은 없었다.
···어디까지나 패를 쥐고 있는 것은 내 쪽이어야 하니까.
“어떤가. 목줄 없이 자유로이 돌아다니지만 배고픈 떠돌이 개가 될 건가, 아니면···.”
나는 금화주머니를 딸랑거리며 말했다.
“부족함 없이 먹이를 주는 모범적인 주인 아래서 충견이 될 건가.”
구체적인 고용 조건도, 급여도 제시하지 않았다.
그러나 바바처럼 떠돌이 생활을 오래했던 자들에게 정기적으로 주어지는 급여란 꿈 같은 것.
예상했던 대로 그의 고민은 오래가지 않았다.
“옛말에 이런 것이 있지요.”
바바가 활짝 웃으며 말했다.
“줄에 묶인 개보다 제아무리 배가 고파도 떠돌이 개가 낫다.”
“···.”
저렇게 나올 줄은 몰랐는데.
내가 살짝 긴장한 순간.
“하지만.”
바바의 목소리가 바뀌었다.
“그건 떠돌이 개의 생활이 얼마나 비참한지 겪어본 적 없는 놈들이 하는 헛소리입니다요.”
“···.”
“주린 배를 채울 물조차 구하기 쉽지 않은 경험을 해본 저 같은 놈들은, 저 말이 틀렸다는 걸 잘 알지요. 그러니.”
사내가 돌연 자리에서 일어났다.
위압감마저 주는 거대한 체구가 내 앞에서 무릎을 꿇었다.
“주인으로 모시겠습니다, 나리. 저를 꼭 배부른 개로 만들어주시지요.”
“좋아. 이제 자리에서 일어나라.”
나는 그의 얼굴을 보며 씩 웃었다.
“아, 네게 목줄을 채우겠다는 내 조건은 잊지 않았겠지?”
“물론입지요, 그런데 목줄이란 대체···.”
“곧 알게 될 거다.”
내 의미심장한 미소를 본 카렌이 휴, 한숨을 내쉬었다.
“세자르, 넌 가끔 보면 진짜 악마처럼 웃는 거 알아?”
···내가 뭘.
사실 나는 우만에게 장착시켰던 ‘제어의 팔찌’를 떠올리던 중이었다.
‘우만이 이쪽으로 오는 대로 그것을 거두어 들여야겠군.’
바바처럼 믿을 수 없는 놈들에게 채우기로는 안성맞춤이 아닌가.
* * *
바바를 공작저로 데려온 후 사흘간 나는 저택 안팎을 이 잡듯 뒤졌다.
가면을 쓰고 활동하는 단체가 있는지.
MR이라는 이니셜을 지닌 사내가 있을지.
하지만 찾을 수 없었다.
‘바바 자식이 그림을 잘못 해석한 거 아냐?
카렌은 그런 가능성을 제시했지만, 그건 아닐 것 같았다.
척 보기에도 그 그림은 너무도 명확했으니까.
···명확하지만 내가 뭔가를 놓치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그게 대체 뭘까.’
그리고 대망의 사흘째 날.
나는 왕궁에 들러 테오 2세를 알현하고 해로드청년회 회의에 참석했다.
물론 디터를 제외한 모든 가신들은 공작의 주변에 두어 그를 밤낮으로 지키도록 했다.
“···다행히 지금까지는 별 일이 없었지만.”
그렇게 바쁜 왕궁 일정을 마친 후 공작저로 돌아가는 마차 안.
무심코 내뱉은 혼잣말에 디터가 대꾸했다.
“괜찮을 겁니다, 주군. 새로운 친구 덕분에 주군께서 미리 방비를 하셨으니, 그에 따라 미래도 바뀌는 것이 아닐까요.”
디터의 말이 맞으면 좋겠지만.
어쩐지 내 안 어딘가에서는 그걸로 끝이 아닐 것 같다는 막연한 불안감이 들었다.
“그래, 그렇겠지.”
애써 대꾸하고는 차창 밖을 내다봤다.
바바의 그림에서 봤던 반달이 어둠에 잠긴 마을을 비춘다.
‘가면과 MR이라는 이니셜.’
공작이 누운 침대 머리맡에 다가가는 인영···.
그 순간, 이런 생각이 들었다.
‘공작의 침대에 자유로이 오갈 수 있는 것이 누구지?’
얼마 전 들었던 낯선 이름 하나가 떠올랐고.
불현듯 깨달음이 머릿속을 강타했다.
···왜 그 생각을 못했던 걸까.
“디터! 아니 마부! 속도를 올려라!”
“왜, 왜 그러십니까 주군?”
마부는 미친 듯이 채찍질해 말을 달렸고.
5분도 채 되지 않아 마차가 저택 본관 앞에 당도했다.
“내리자!”
“주군···.”
나는 불길한 예감을 억누르며 건물 안으로 미친 사람처럼 뛰어들어갔다.
사용인들이 깜짝 놀라 내 이름을 불렀지만, 뒤돌아볼 새도 없었다.
‘한시라도 빨리!’
하지만.
계단을 오르리가 무섭게, 공작이 있는 침실 쪽에서 비명이 들렸다.
“안 돼!”
이게 무슨, 당황한 사용인들이 웅성웅성하는 가운데.
나는 번개 같은 속도로 가슴 속의 권총을 꺼냈다.
[절대 빗나가지 않는 호신용 권총]
[사용하시려면 목표대상을 설정해주세요.]
···예감은 그저 예감일 뿐, 내 예감이 틀릴지도 모른다.
하지만.
1초의 망설임이 공작의 죽음을 야기할지 모른다.
[목표대상 설정 완료 : ‘공작의 침실 하녀 마리’]
[장애물이 있어도 상관없으니 권총을 발사해주세요.]
나는 망설임 없이,
탕!
공작의 침실을 향해 방아쇠를 당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