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정도면 충분합니까?
졸업식이 끝나고 아카데미의 본격적인 학기가 시작되었다.
외관은 방학 이전과 전혀 다를 바가 없었지만.
“요즘 학교 분위기가 완전 달라졌어.”
리암이 새삼스러운 표정으로 말했다.
“달라지다니?”
내가 책상 위의 서류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 대꾸하자 리암이 흥분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아니, 팰러스단 말이야. 분명 한 학기 전까지만 하더라도 이 학교를 주름잡는 최대의 학생 단체였는데···.”
그의 말로는 신학기 가입자 수가 팍 줄어들었다고 한다.
“반면 우리 우애단은 가입희망자가 넘쳐나고 있고요.”
어느새 들어온 앨빈이 맞장구를 쳤다.
나는 놀랍다는 듯 반응했지만, 사실은 이미 예상한 바이기도 했다.
‘그럴 수밖에.’
바보가 아니고서야 눈이 있다면 지금 수도의 정세가 급변하고 있음을 애들이라고 모르지 않을 테니 말이다.
한편.
지금 우리가 있는 곳은 기숙사 북관 1층에서 가장 큰 방으로, 지난번 검술대회 우승 부상으로 받은 덕분에 ‘우애단’의 전용 모임실이 되었다.
“앨빈, 리암.”
“응?”
“네?”
“가입희망자가 많다며. 그중에 제일 쓸 만한 놈들 좀 따로 골라놔봐.”
“네.”
앨빈은 그대로 즉답했지만, 리암은 왜? 라고 물었다.
나는 어깨를 으쓱했다.
“왜긴 왜야, 나중에 일 좀 시켜먹으려고 그러지.”
“···.”
내 계획엔 무엇보다도 많은 인재가 필요하다.
단지 검술이나 무술에 능한 자뿐이 아니라, 행정, 군사, 예술 등 각 분야의 전문가가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
‘그런 미래의 전문가가 제일 많이 모여 있는 곳이 바로 이 아카데미가 아닌가.’
그들이 날 위해 열심히 일하는 미래를 그리며 잠시 흐뭇해하다가.
“너희 둘, 혹시 이번 주말에 같이 공작가에 갈 수 있나?”
내가 툭 던진 말에 두 사람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당황하는 반응에 나는 한쪽 입꼬리를 끌어올리며 웃었다.
“친구 집에 놀러간다고 생각하고 말이야.”
“아, 네.”
“···레핀 공작가에 가는 걸 그냥 친구 집에 놀러가는 거라고 생각하라고?”
처음 가는 것도 아니었기에 그냥 수긍한 앨빈과 달리, 리암은 어쩐지 잔뜩 들뜬 기세였지만.
“뭐, 네가 원한다면 가주지.”
결국은 같이 가기로 했다.
···물론 이 둘에게만 그런 제안을 한 건 아니다.
‘카렌, 디터, 발닉, 농농이, 롯과 그 형제들.’
내 사람이라고 부를 만한 이들을 전부 데리고 갈 생각이었으니까.
* * *
그주 주말.
나는 일부러 고급 마차 세 대씩 빌렸다.
고급도 그냥 고급이 아닌, 천장부터 바퀴까지 기품이 줄줄 흘러넘치는 최고급 마차였다.
입학식 때 마차를 대여했던 그 가게를 이번에도 이용했는데, 주인장은 내 얼굴을 기억하는지 아주 반가워했다.
‘아, 오랜만에 오셨군요! 이번에도 그 렌트를 하실 작정이십니까?’
그러면서 이후 다른 손님들에게도 렌트 서비스를 열심히 전파하고 있다며 신나하는 주인장.
내 덕에 새로운 사업을 벌일 수 있었으니 깎아주겠다고 한 덕분에 꽤 합리적인 가격에 마차를 빌릴 수 있었다.
“세, 세자르 님, 정말 이걸 타고 가도···.”
물론 그런 마차를 처음 타본 몇몇은 매우 불안해했지만.
“내가 다 알아서 하는 거니 신경 쓰지 마라, 앨빈.”
앨빈뿐이 아니었다.
“와, 이거 진짜 금이잖아? 여기 박힌 보석도 진품이고··· 엄청난데? 안쪽 좌석의 가죽도···.”
카렌도 마차를 보자마자 그 외관을 요모조모 뜯어보며 감탄을 아끼지 않았고.
“헉, 너, 너 이거 입학식 때 타고 온 그거 맞지? 역시 세자르 네가 맞았구나. 내가 어쩌다 이런 마차를 다 타보고···.”
당황한 나머지 ‘내가 어쩌다’의 용법조차 틀려버린 리암 또한 떡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했다.
“저, 저희는 그냥 마부석에 앉아서 갈 테니···.”
쭈뼛거리며 마차 안으로 들어가지 않으려는 롯과 삼형제를 간신히 뜯어말려야 했다.
“허, 뭘 이 정도 갖고 그러십니까, 여러분.”
물론 고기도 먹어본 놈이 잘 먹는다고, 발닉은 아주 자연스럽게 마차에 올라타며 이렇게 말했지만.
“앞으로 도련님과 함께라면 언제든 더 놀라운 경험을 하게 되실 겁니다.”
“그럼요.”
[앙! 앙앙!]
발닉, 디터, 농농이.
말하자면 나의 첫 멤버라고 할 수 있는 이들은 여유롭기 그지없었으니.
그리고 이들은 공작저에 가서 무엇을 하게 될지 내게 미리 전해들은 터였다.
‘절반은 긴장했고, 절반은 여유롭다 이건가.’
어쨌거나.
비싼 만큼 상대적으로 편안한 승차감을 자랑하는 마차 안에서,
나는 창 밖 풍경을 응시하며 생각에 잠겼다.
‘랜덤 스킬 스크롤의 결과.’
지난번 귀가길에 스크롤을 찢어보지 않았던가.
그때 찢었던 스크롤의 결과는 무려···.
나는 감개무량한 기분으로 스킬리스트를 다시 확인해보았다.
‘그림자 보법의 숙련도가 레벨 5에 달했네.’
덕분에 지속시간이 많이 길어졌으며 쿨타임 또한 짧아졌다.
그리고 두 번째 스킬이 바로···.
『2. ‘그림자 방패’ (숙련도 lv. 0, 패시브)
- 설명 : 사용자의 신체에 치명적인 위협이 가해질 경우, 그림자 형태의 방패를 자동으로 생성한다.
- 지속시간 : 5초
- 쿨타임 : 5시간』
그림자 방패.
이 스킬을 받은 순간, 솔직히 말하면 조금 실망했던 게 사실이다.
‘뭔가 더 대단한 스킬이 나왔으면 했는데.’
그림자로 된 분신을 쓴다든가, 대신 타격을 받아줄 더미를 만든다든가 말이다.
하지만 설명을 자세히 읽어보니 생각 외로 괜찮은, 아니 어떻게 보면···.
‘사기급 스킬이 될 수 있겠는데?’
-라는 생각이 들었으니까.
이 스킬의 가장 큰 장점은 ‘패시브’라는 데 있다.
‘사용자의 신체에 치명적 위협이 가해질 경우 자동으로 방패가 생성된다니.’
특히 나처럼 언제 어디서 암살당할지 모르는 사람에게는 이보다 더 좋을 수가 없다.
만의 하나 결투를 하게 되거나, 전장에 나가게 된다면 이 이상의 사기 스킬도 없지 않을까?
‘그 누구도 내게 상처 입힐 수 없다.’
숙련도를 최대한 올린다면 방패를 좀 더 자주 사용할 수 있을 거다.
이거야말로 절대 방어에 가까운 스킬이 아닐까, 하고 생각에 잠겨 있는데.
‘물론 방패의 방어력이 얼마나 될지는 테스트를 해봐야겠지만.’
“근데 세자르.”
카렌의 목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그녀는 답지 않게 걱정스러운 기색으로 질문을 던졌다.
“헬리오스 가문은 어떻게 되는 거야?”
“음···.”
얼마 전.
내가 전면에 나서서 고발을 감행한 ‘불법 노예 사업장 운영’ 사건은 곧바로 재판에 회부되었고.
‘사업장 운영에 직접 가담한 인물들뿐 아니라, 그것을 뒤에서 지시하고 최종 승인을 내린 헬리오스 백작 또한 유죄에 처한다.’
헬리오스 백작은 노예 사업에만 손댄 것이 아니었다.
다양한 형태의 밀무역.
그 사이에서 이문을 받아챙긴 것은 물론이고, 수많은 범죄 길드와 선이 닿아 있었다.
‘물론 그런 가문이 헬리오스뿐은 아니겠지만.’
테오 2세는 이때를 기회로 삼아 귀족들의 부패를 뿌리뽑기로 마음먹은 듯했다.
“유죄 판결을 받아서 벌금형에 처해졌을 뿐 아니라···.”
“정말로 작위도 회수되는 거야?”
카렌은 본인이 말하고도 믿지 못하는 눈치였다.
그도 그럴 것이 이번 판결은 초강수나 다름없었으니까.
“그래도 역풍이 불지는 않으리라고 판단하신 거겠지.”
테오 2세가 판단한 대로, 귀족 사회의 여론은 이미 헬리오스 가문으로부터 등을 돌린 후였다.
···그리고 새로운 강자라 할 수 있는, 레핀 가문의 눈치를 보기 시작했으니.
그렇게 이러저러한 담소를 나누다 보니.
“다 왔다.”
마차가 어느덧 공작저에 도착했다.
* * *
레핀 공작의 집무실.
로건 드 레핀 공작은 책상 앞에 앉아 한 장의 편지를 내려다보는 중이었다.
『약속대로 다섯 명의 이능자 가신을 데리고 가겠습니다.』
세자르가 보낸 편지의 내용은 이 단 한 줄의 문구가 전부였다.
약속을 지킴으로써 그가 받게 될 것들- 가령 적자의 자격을 인정받는다든지 하는 것들은 공작의 선에서 알아서 하라는 듯.
‘이능자 다섯 명을 가신으로 거두었습니다.’
얼마 전 세자르가 그런 이야기를 했을 때 그는 이렇게 대꾸했기 때문이다.
‘그들이 정말 이능자가 맞는지, 어떤 이능을 가졌는지 내 앞에서 선보일 수 있겠느냐?’
세자르를 믿지 않았다기보단 자신이 낸 과제를 완수하는 게 가능하리라고 믿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능자를 가려내는 것부터 쉽지 않은 일일 뿐더러, 기껏해야 서자인 소년이 가신을 거둘 수 있으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으니까.
“···하지만 그 아이는 매번 내 예상을 뛰어넘었지 않았던가.”
그 말에 세자르는 자신 있게 대답했다. 이번 주말, 그들을 데리고 공작저를 방문하겠다고.
‘각하의 눈앞에서 그들의 이능을 펼쳐 보여드리지요.’
공작은 반신반의하면서도 내심 어떤 이들을 데려왔을지 기대하던 중이었다.
그때 문에서 노크 소리가 났다.
“각하, 세자르 님이 일행을 데리고 오셨는데요.”
“들라고 해라.”
열린 문 뒤로 세자르가 꽤 많은 사람들을 데리고 나타났다.
공작의 손짓에 하인이 나가고 문이 닫혔다.
어색한 침묵이 찾아오려는 순간, 세자르가 곧바로 입을 열었다.
“공작 각하, 전에 말씀드렸던 대로 이능자 가신을 다섯 명 거두었습니다.”
“그래.”
“이 자리에서 그들의 능력을 보여드리고자 합니다.”
그 말에 세자르의 가신들은 살짝 긴장한 기색이었다.
공작은 그들의 면면을 잠시 살펴보았다.
소녀 두 명에 아기 하나가 섞인 기묘한 조합이구나, 라고 생각하는데.
세자르가 그를 창가로 이끌었다.
“저자는 디터라고 합니다.”
창 밖에서는 디터라 불린 우람한 덩치의 사내가 홀로 마차 앞에 서 있었다.
“디터라 하면···.”
“네, 전에 이 공작저에서 사냥터지기로 일하다 제 전속이 된 자이지요.”
세자르가 창 밖에 선 디터와 눈을 마주치더니, 손으로 신호를 보냈다.
“디터의 이능은 괴력.”
“괴력···이라고?”
“잘 보시지요.”
신호를 보내기 무섭게 디터는 10인승의 대형마차 앞으로 다가서더니···.
흐엇차, 하는 기합조차 없이 그것을 두 팔로 가볍게 들어올렸다.
“···!”
공작의 눈이 휘둥그레졌지만, 세자르는 놀라고 있을 여유조차 주지 않았다.
“다음은 앨빈 차례.”
전에도 공작저에 온 적 있는 소년이 나서더니 방 한가운데에 가부좌를 틀고 앉았다.
그리고 그다음 순간.
“···누가 나를 불렀는가?”
눈빛만으로도 사람을 벨 수 있을 듯한 날카로운 기세로 변모한 소년, 아니-
‘어느 영웅’의 모습을 보며 공작은 저도 모르게 입을 벌렸다.
“저게 어떻게 된···.”
“앨빈에겐 영혼 접신 능력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때, 앨빈 아니 ‘흑의 기사’가 레핀 공작 앞에 다가와 섰다.
“로건 공, 오랜만이구려. 로지스 성벽 전투에서 함께 싸웠을 때만 해도 나나 그대나 젊은이들이었는데.”
그 익숙한 목소리, 추억을 불러일으키는 눈빛에 레핀 공작은 저도 모르게 외쳤다.
“그대는 설마··· 에드문드 세비어 경?”
세자르는 고개를 끄덕였다.
‘흑의 기사’는 레핀 공작과 잠시 과거의 추억을 이야기하다가 사라져버렸다.
“···신기루 같구나.”
“앨빈의 접신 능력에는 시간적 한계가 있습니다. 그리고 각하, 잠시 실례해도 될까요?”
“실례라니?”
세자르가 어두운 피부의 미녀를 가리키며 말했다.
“저기 있는 제 가신의 능력을 보여드리려면 각하가 몸소 체험해보시는 수밖에는 없어서.”
“상관없다.”
“잠시··· 움직이지 못하시게 될 겁니다.”
너무 놀라지 마시지요, 라고 세자르가 덧붙인 말에 공작이 의문을 표하기도 전.
세자르의 신호를 받은 롯이 곧바로 ‘포박의 이능’을 펼쳤고.
“···!”
무심코 손을 들어올리려던 공작은 사지를 전혀 움직일 수 없음을 깨달았다. 제 온몸이 보이지 않는 밧줄에 묶이기라도 한 듯.
입조차 벌릴 수가 없는데, 세자르가 안심시키듯 말했다.
“앞으로 10초 정도 남았습니다.”
“···.”
공작의 머릿속은 온통 혼란으로 가득했다. 이능자를 전에도 한두 번 본 기억은 있었지만, 이렇게 강력한 능력을 지닌 자들은 많지 않았으니까.
마침내 포박의 주술이 저절로 풀렸고.
“죄, 죄송합니다 각하.”
롯이라 불린 아가씨가 몹시 미안해하며 뒤로 물러났다.
약간의 피로감을 느끼며 공작이 안락의자에 앉자, 이번에는 흉터투성이 얼굴의 사내가 앞으로 나섰다.
“그다음은 발닉입니다.”
그의 얼굴을 알아본 공작이 되물었다.
“이자는 우리 사병대 출신이 아니었나? 헌데 이능이 있다고?”
“그게 설명하기가 좀 복잡한데···.”
세자르가 창 밖을 가리켰다. 그가 가리킨 곳에는 하늘을 날고 있는 전서구 한 마리가 있었다.
“저 새를 잠시 봐주시지요, 각하.”
“···새?”
세자르가 손짓을 보내자, 발닉이 갑자기 바닥에 대자로 드러누워버렸다.
흡사 기절한 듯한 모습에 공작이 당황한 것도 잠시, 세자르는 다시 창 밖을 가리켰다.
“저 새가 지금부터 하트 모양으로 날 겁니다.”
“···.”
그 말대로였다.
멀쩡히 날던 새가 하트 모양으로 날더니.
“발닉, 이리 와!”
창문을 열고 세자르가 외친 말에 이쪽으로 날아오질 않나.
“아니, 다시 저기로 나가.”
다시 또 밖으로 날아갔다가.
“돌아와.”
돌아오라는 한 마디에 창문 안으로 들어왔다.
이게 대체 어찌 된 영문인가 싶어 공작이 세자르를 돌아보자, 그제야 설명해주었다.
“발닉은 동물에 빙의해 그 육체를 조종하는 능력이 있습니다.”
세상에 그런 능력이 있단 말인가.
공작이 경탄을 금치 못하는데, 세자르가 마지막 인물을 소개했다.
“이쪽은 카렌입니다. 그녀의 능력은-”
“카렌 돌로레스라고 합니다, 각하.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평소 궁금했던 것을 한 가지 질문해도 될까요?”
“그러게나.”
이제야 좀 사람다운 대화를 나누나 싶어 공작이 긴장을 푼 순간,
붉은 머리 아가씨가 미소 띤 얼굴로 훅 치고 들어왔다.
“각하께서는 세자르를 친아들처럼 많이 아끼고 계신가요?”
“아끼다니, 내가 무슨···.”
“예, 아니오 둘 중 하나로 대답해주세요.”
그것 참 당돌한 처자구나.
공작은 속으로 혀를 차며 대충 둘러댔다.
“굳이 말하자면 아니오, 겠지.”
그 말에 카렌의 한쪽 입꼬리가 스륵 올라갔다.
“각하, 거짓말 하고 계시네요?”
“···?”
이게 무슨 말인가 싶어 옆을 돌아보자, 세자르가 헛기침하며 말했다.
“아, 그게. 카렌의 이능은 ‘참과 거짓을 가려내는 자’입니다.”
“···.”
“저도 카렌이 이런 질문을 할 줄은 예상 못 해서···.”
공작은 고개를 숙인 채 세자르와 눈을 마주치길 피했다.
그러는 동안 세자르는 다른 이들을 밖으로 내보냈다.
‘각하가 부끄러워하고 계신 것 같은데?’ ‘카렌 넌 제발 분위기 파악 좀 해라.’ ‘뭐 어때서, 원래 부자 관계는 그런 거라니까?’ 같은 대화가 들려오긴 했지만.
공작은 안락의자에 앉은 채 침묵을 지켰다.
소란이 가라앉은 뒤, 단둘이 남은 상황에서 세자르가 입을 열었다.
“각하, 이 정도면 충분하겠습니까?”
고개를 들자 어느새 훌쩍 커버린 그가 정면으로 눈을 마주쳐왔다.
“적자의 자격을 갖추는 데는 이 정도면 충분하냐는 얘기입니다.”
세자르에게 여태껏 단 한 번도 보여주지 않았던 생경한 얼굴로,
공작이 입을 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