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상이 너무 좋다
세자르와 발닉, 앨빈이 검은손 길드의 손님으로 변장한 채 2층으로 올라갔을 그때.
카렌과 디터, 롯은 벽돌 건물 근처에 매복해 있었다.
“신호가 나는 대로 1층에도 폭탄을 터뜨리고 들어가요.”
카렌의 지시에 나머지 둘이 고개를 끄덕였다. 잔뜩 당긴 고무줄처럼 팽팽한 긴장감이 가득한 가운데, 롯이 나직하게 말했다.
“저, 카렌 님.”
“응.”
어느새 꽤 친해진 덕분에 카렌은 롯에게 말을 놨지만, 롯은 계속 존칭을 고집하는 터였다.
“죽여도 되나요?”
디터는 소리없이 당황했지만, 카렌은 즉답했다.
“네 가족을 죽이고 고문해서 이곳으로 끌고 온 인간들이라며. 마음대로 해.”
“고맙습니다.”
“애초 고마워할 일도 아니지만.”
카렌은 롯을 보지 않으며 툭 던지듯 말했다.
“···나한테 일일히 허락을 구할 필요도 없다고.”
그럼에도 롯은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그때.
쿠구구구궁!
콰아아앙!
2층에서 지축을 뒤흔드는 듯한 진동과 함께 요란한 소리가 들려왔다.
“시작할게요.”
카렌은 반쯤 열린 1층 창문 사이로 섬광탄을 던져넣었고.
세 명이 눈을 꼭 감고 귀를 막은 그때.
쿠과과광!
2층에서 났던 것과 동일한 폭발음과 섬광이 일었다.
“으아아악!”
“이, 이게 무슨··· 크아아악···.”
1층을 지키고 있던 용병 십여 명에게서 비명이 터져 나왔다.
신음과 괴성, 바닥에 토사물을 게워내는 소리가 가득한 가운데.
쾅!
디터가 문을 박차고 들어갔다.
“뭐, 뭐야?”
반쯤 눈이 멀어버린 용병들이 당황한 사이.
디터가 휘두른 모래주머니에 머리를 맞은 두세 명이 순식간에 기절했고.
휙! 휘익!
카렌이 던진 표창에 맞은 이들이 우수수 쓰러졌다.
“···!”
“마비독을 묻힌 거라.”
놀란 디터에게 카렌이 설명까지 해주던 여유를 부리던 순간.
“웬 놈들이냐!”
방 안쪽에 있어 섬광탄에 당하지 않은 나머지 용병들 대여섯 명이 검을 휘두르며 달려나왔다.
디터가 카렌을 제 뒤로 감추며 나섰다.
“피하십시오!”
하지만 그 순간.
스르릉!
보이지도 않을 만큼 재빠른 검이 두 사람을 제치고 앞으로 달려나갔다.
“크악!”
“으악···.”
뱀처럼 춤추는 검이 허공에 은색 궤적을 남겼다.
공중에서 찰랑거리는 롯의 긴 머리 주변으로 유혈이 낭자하게 튀었다.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동료들의 목숨을 끝장내는 광경에 용병 하나가 용감하게 앞으로 나섰지만.
“어린 계집애가 감히-”
그 말을 미처 끝내기도 전, 롯의 검이 그의 목을 꿰뚫었다.
용병은 눈조차 감지 못한 채 그대로 쓰러졌고.
이후 롯은 전의를 상실한 나머지 네 명을 순식간에 해치웠다.
“···.”
멍하니 입을 벌린 디터를 보며 카렌이 장난스럽게 말했다.
“설마 활약할 기회를 놓쳤다고 분해하는 건 아니죠, 디터?”
“아, 아닙니다.”
어느새 1층을 순식간에 정리한 롯이 뒤돌아보자, 카렌이 고개를 끄덕였다.
“2층으로 가죠.”
* * *
섬광탄은 본디 20세기부터 쓰이기 시작한 물건이다.
살상을 최소화하고 적을 제압할 필요가 있을 때, 주로는 인질 구출 작전에 동원되는 장비.
‘헌데 이게 도전과제의 보상으로 나올 줄이야.’
보상을 받은 순간 직감했다.
···롯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 이 아이템을 아주 유용하게 활용할 수 있겠다고 말이지.
그리하여 우리는 사전에 철저하게 대비했다.
‘오늘 같은 날씨에 꽤 두껍게 차려입으셨군요.’
망토 안에 무기와 장비를 숨긴 것은 물론이고, 섬광탄이 터질 때 눈과 귀를 가릴 것도 준비해왔다.
‘이 폭발음은 신호이기도 하지.’
건물 밖에서 대기하던 카렌 일행 역시 섬광탄을 터뜨려 1층 인원을 끝장낼 거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신속함과 주도면밀함.
‘본부에 연락을 취하지 못하도록 한 명도 남김 없이 잡아야 한다.’
나는 바닥에 반쯤 엎어져 속엣것을 게워내는 노예 상인을 지켜보았다.
‘폭음에 귀가 노출되면 반고리관에도 영향이 갈 수 있지.’
일시적으로 어지럼증이 생기고, 갑작스럽게 구토를 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으아아악···.”
“우욱···.”
용병들이 신음하며 어둠 속에서 허우적대는 가운데.
“발닉은 병사들을 포박하고.”
“넵.”
“앨빈은 여기 이 친구들 쇠사슬 좀 풀어줘.”
“네!”
발닉과 앨빈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며 내 지시에 따랐다.
특히 카디움 부족민들은 두 손의 수갑과 다리의 쇠사슬이 풀리자 어쩔 줄 몰라했다.
“아, 감사합니다!”
“드디어 자유를···.”
그때껏 차분하게 있던 카디움 족 사내 하나가 입을 열었다.
“아까 우리의 여동생 얘기를 하지 않았습니까? 당신은 누구-”
“나?”
내게 쏠리는 카디움 부족민들의 시선을 느끼며 입을 열었다.
“나는 세자르라고 한다. 당신들의 여동생 롯 카디움의 주군이고.”
“···!”
웅성거리는 부족민들.
특히 롯의 오빠로 추정되는 세 명의 청년은 결연한 표정이었다.
“그녀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여기 왔다.”
나는 어느새 눈빛이 달라진 부족민들을 돌아보며 말을 맺었다.
“···당신들을 구출하기 위해.”
잠시 정적이 찾아온 그 순간.
벌컥, 하고 문이 열렸다.
“1층은 정리 완료.”
···카렌이었다.
“아, 대기 중이던 부대에도 신호 보냈으니 염려 마.”
레핀의 사병대를 말하는 거다.
“훌륭해.”
그렇게 말하는 순간, 카렌의 등 뒤로 디터와 롯이 나타났다.
“롯!”
“오빠!”
“롯, 우리 막내···.”
“오빠들···.”
피골이 상접한 오빠들의 모습에 롯이 참았던 눈물을 터뜨리는데.
“어디 너희들 뜻대로 될 것 같으냐!”
뒤늦게 정신을 차린 노예 상인이 마지막 발악을 했다.
“지금 이곳을 점거하는 건 문제도 아니지만 이 내 뒤엔 헬리오스 가문이 있다!”
“그것 참 놀라운 사실이네.”
심드렁하게 말하자 상인은 더욱 흥분했다.
“너, 너희는 잠자는 사자의 코털을 건드린 셈이야! 수도에서 제일 가는 가문의 귀중한 재산을 건드리고도-”
“내 뒤엔 레핀 가문이 있는데.”
“···!”
“더 할 말 있나?”
노인은 그 말을 못 믿겠다는 듯 두 눈을 크게 뜨더니, 힘겹게 창가로 다가가 창 밖을 내다보았다.
“저건···.”
어느새 이 건물을 완벽하게 포위한 레핀 사병대를 보고 그의 입이 떡 벌어졌다.
충격을 금치 못하는 노인에게 다가가 그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그러니까 말인데, 우리 둘이서 오붓하게 대화나 나눠볼까?”
“···무슨.”
“한 가지, 부탁하고 싶은 게 있거든.”
헬리오스 놈들이 자르기 전에 그들의 ‘꼬리’를 잡아야 하니까 말이다.
* * *
노예 사업장은 금세 정리되었다.
‘여러모로 일을 신속하게 진행하길 잘했군.’
해로드청년회에서 내가 이 안건을 맡기로 한 것이 불과 며칠 전의 일이다.
나름 국왕에게 충성하는 부류라고는 하나, 사람 일이란 게 그렇듯 정보는 늘 새어나가기 마련이지만···.
‘그 정보가 헬리오스 가문 실무자에게 전해져 노예상인에게로 흘러들어 가기까지는 시간이 걸릴 터이니.’
덕분에 모든 일이 불협화음 없이 진행되었고, 우리 쪽은 단 한 명의 사상자도 없는 채로 작전이 종료되었다.
게다가 노예 상인과도 얘기가 잘되었는데.
‘저, 정말 헬리오스 측 담당자와 연결시켜드리면 살려주실 겁니까?’
‘그럼. 적어도 사지는 멀쩡하게 살려줄게.’
‘그, 그렇다면···.’
노예 상인은 자신과 그가 어떤 식으로 비밀스러운 거래를 이어왔는지 설명해주었으며.
···이틀 뒤, 어느 으슥한 장소에서 만나기로 했음을 알려주었다.
‘아주 좋아.’
‘그럼 이제 제게도 보증서를···.’
‘일이 성공적으로 끝나면 그때 써주지. ···혹시라도 네가 중간에 맘이 바뀌면 곤란하잖아?’
한편.
카디움 부족을 비롯해 창고에 붙잡혀 있던 노예들은 탈수 증세에 시달리던 몇몇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건강한 채로 풀려났다.
그들이 자유를 되찾아 기뻐하는 모습을 보며 디터가 눈시울을 붉혔다.
“정말 감동적인 장면입니다.”
“감동은 무슨, 크흠···.”
발닉은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계속 코를 훌쩍였고.
카렌은 어이없다는 듯 한숨을 쉬었지만, 자꾸만 올라가는 입꼬리를 감추지 못했다.
나는 그 모든 광경을 말없이 지켜보았다.
‘어찌 보면 도박에 가까운 결정이었지만···.’
계획한 일이 뜻대로 흘러가고, 그것을 무사히 완수해내는 데서 오는 기쁨은 상당했다.
형언할 수 없는 만족감과 뿌듯함이 가득한 가운데.
“저··· 세자르 님.”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 돌아보니, 롯이 제 오빠들을 데리고 와 있었다.
“이쪽은 저희 오빠들이에요. 세자르 님께 제대로 인사를 드리고 싶다고 해서.”
롯의 옆에 서 있던 세 명의 청년이 차례로 꾸벅 숙이며 인사했다.
“나만이라고 합니다. 저희 롯이 신세를 많이 졌다면서요?”
롯과 두 살 차이 난다는 막내오빠 나만. 셋 중에 키가 제일 작고 활달해 보인다.
승마술이 뛰어나다는 롯의 설명을 듣자, 기마 부대 육성을 맡겨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저는 나훔입니다.”
롯보다 다섯 살이 많다는 둘째오빠 나훔.
나훔은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카디움 병사들을 통솔하는 역할을 했단다.
‘부대 통솔이라, 아주 좋지.’
고개를 끄덕이는데 마지막에 선 건장한 남자가 내 앞에 와 섰다.
“롯의 큰오빠이자 카디움 부족의 후계자 나답입니다.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말하자면 차기 부족장이다 이 말인가.
올해 서른 살이라는 그는 세 명 중 가장 무뚝뚝해 보였다.
롯이 내게 다가오더니 ‘나답 오빠는 여러 번의 유격전을 승리로 이끌었어요’라고 속삭였다.
‘게릴라전 전문가라니, 아주 쓸 만한 인재인걸.’
굴러 들어온 호박이나 다를 바 없는 인재 세 명. 이들을 어떻게 적재적소에 배치하면 좋을까를 고민하는데.
“우리를 가신으로 써주시겠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나답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자, 그가 덧붙였다.
“그 또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롯과 그녀의 오빠들 세 명이 내 앞에 갑자기 무릎을 꿇었다.
‘드디어···!’
나는 속으로 쾌재를 불렀지만, 겉으로는 내색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왜 갑자기.”
나답이 그들을 대표하여 입을 열었다.
“우리 부족의 이름, 카디움은 ‘자유로운 자’라는 의미를 지녔습니다. 그런 만큼 우리 부족은 역사상 단 한 번도 누군가를 강제로 주인으로 삼은 적이 없음을 긍지로 삼고 있지요. 그러나.”
나답이 고개를 들어 나와 눈을 마주쳤다.
“우리 카디움인은 단 한 명의 주군을 택해 그를 평생토록 모십니다.”
“···.”
“그리고 우리 남매들은 세자르 님을 우리의 주군으로 모시고 싶습니다.”
그 목소리에 담긴 진심이 전해졌기 때문일까.
아니면 저들의 눈동자에서 피어오르는 열기 때문일까.
나도 모르게 손을 들어 나답의 어깨에 올려놓았고.
“나, 레핀 가문의 세자르는 카디움 부족의 나답을 나의 가신으로 임명하느니.”
그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린 뒤, 다음 사람에게로 손을 옮겼다.
“카디움 부족의 나훔을,”
“카디움 부족의 나만을,”
마지막으로 롯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렸다.
“카디움 부족의 롯을 나의 가신으로 임명하느니. 그리고 이 서약은···.”
나는 일전에 보았던 기사 서임문의 문구를 떠올리며 말을 이었다.
“양측 중 하나가 목숨을 잃을 때까지 평생토록 유효할 터이니라.”
어쩐지 가슴이 벅차오르는 채로 그 말을 마친 순간.
이제는 익숙한 메시지가 눈앞에 떴다.
[도전과제 ‘이능자 수집가’ 달성! - 또 다른 이능자를 가신으로 두는 데 성공했습니다.]
[이능자 ‘롯’ 외에도 그의 형제들을 가신으로 거두었습니다.]
[달성도가 ‘최상’을 기록해 보상이 상향 조정됩니다.]
보상이 상향 조정되다니, 대체 뭐가 나오려고···?
[보상으로 ‘랜덤 스킬 스크롤’을 수령합니다.]
랜덤 스킬 스크롤이라면···.
찢으면 아무 이능 스킬이나 랜덤으로 주는 건가?
‘운이 좋군.’
기대감에 가슴이 두근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