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공작가의 서자로 살아가는 법-71화 (71/176)

고난이도의 암살 의뢰

해로드청년회의 정기회의가 끝난 후.

나는 왕궁에서 제공하는 마차를 타고 기숙사로 돌아갔다.

회의장에서 오갔던 대화들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동부 국경지대의 불법 노예 사업장.’

이곳을 일망타진하는 게 어째서 헬리오스 가문을 약화시킬 기회가 되느냐면.

“···헬리오스 가문에서 운영하는 곳이니 말이지.”

지금 이 시점에는 전혀 알려지지 않은 사실이다.

‘원작의 흐름에서는 몇 주 뒤에 발생하는 사건이니까.’

몇 달 전.

검술대회에서 처음 롯을 봤을 때, 그녀의 풀네임인 ‘롯 카디움’을 듣고 이런 생각을 했다.

‘어디서 많이 들어본 이름인데.’

카디움, 카디움.

그 이름을 어디서 들어봤을까 고민했는데 바로 얼마 전에야 기억 났다.

‘카디움 부족!’

카디움 부족은 에스닐 왕국 동부 국경지대에 정착해지내던 이민족으로,

헬리오스 가문의 토벌대에게 점령당하며.

‘나중에는 헬리오스 가에서 운영하던 불법 노예 사업장에서 시체로 발견되는 이들이지.’

헬리오스 가문은 대대로 동부지대를 개척하기 위해 수없이 토벌전을 벌여왔다.

겉으로는 왕국을 향한 충성심 때문이라고 포장했지만, 진짜 이유는 따로 있었으니.

‘토벌전으로 생겨나는 전쟁 포로들을 노예로 팔아치우기 위해.’

노예제가 불법인 것은 에스닐을 비롯한 대륙 중앙의 몇몇 나라뿐이다.

이곳을 제외한 다른 나라들에서는 노예를 자유로이 매매할 수 있으며, 아주 큰돈이 오가는 사업이었다.

‘큰돈이 오가면 반드시 정보가 새어나가기 마련이지.’

헬리오스 가문이 택한 방식은 꼬리 자르기였다.

이 사업을 담당한 하급 관리를 모든 일의 원흉으로 몰았으며, 당시 최강의 권력자 자리에 올랐던 팰러스가 이 사건을 무마했다.

물론 창고 안의 노예들도 남김없이 죽여버렸다.

‘그게 바로 지금으로부터 2주 뒤, 성 로드님 축일 다음 날에 일어나는 일이지.’

그렇게 흔적을 없앤 덕분에 완전범죄로 끝났지만.

나는 그렇게 놔둘 생각이 없다.

그 전에 그들을 구출하고 모든 일이 헬리오스 가문의 소행임을 고발해야 한다···고 다짐하는데.

어느새 어둑어둑해진 창 밖 풍경이 시선을 사로잡았다.

나는 회중시계를 꺼내 확인했다.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됐나.’

지난번 도전과제 목록에 ‘암살자에게 공격당할 뻔했나요?’가 나온 이후.

나는 혹시 모를 급습에 대비하고 있다.

‘일단은 기숙사 건물 근처의 경호를 강화해달라고 요청했고.’

오늘처럼 늦은 시각에 외출하고 돌아올 때는 반드시 디터를 대동한다.

한편 발닉은 좀 다른 식으로 호위하기로 했는데.

“발닉도 마차 소리가 들리는 대로 바로 나와볼 겁니다.”

그때껏 없는 사람처럼 한 마디도 하지 않던 디터가 입을 열었다.

“그래. 너무 시간이 늦어졌군.”

저런 도전과제가 나온 이후로, 나는 신경이 꽤 곤두서 있었다.

언제 어디서 습격을 받을지 모른다고 생각하면 당연한 일이기는 하지만···.

‘농농이 말로는 전에도 암살자가 찾아왔었다고 하지 않았나.’

아무래도 그에 관해 자세히 물어봐야겠다고 마음먹는데,

일정한 속도로 달리던 마차가 서서히 느려졌다.

“도착했습니다.”

마부의 목소리와 함께, 기숙사 건물 앞에서 멈춰섰다.

* * *

다그닥 다그닥.

덜컹 덜컹.

해로드 왕가의 문양으로 장식된 화려한 마차가 요란한 소리를 내며 다가왔다.

‘저 마차가 분명하군.’

길드 소속의 전문 암살자들은 계획대로 건물 그림자 속에 몸을 숨겼다.

끼익.

마차가 멈춰 섰고, 이내 문이 열렸다.

···그의 목표물인 검은 머리 청년, 그리고 덩치 큰 사내가 그 안에서 내렸다.

‘호위가 있었군.’

일이 까다로워지겠다고 생각하며 우두머리는 나머지들에게 수신호를 했다.

내가 청년을 맡을 테니, 너희 셋이 호위를 맡으라는 신호에 수하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청년의 목소리가 들렸다.

“고맙소.”

“고맙긴요. 조심해서 들어가십시요!”

쾌활하게 외친 마부는 그 즉시 마차를 출발시켰다.

건물 앞 가로등 아래서 검은 머리 청년의 그림자가 길게 졌다. 청년이 그대로 건물을 향해 몸을 돌린 순간.

스륵.

암살자들은 소리 없이 움직임에 나섰다.

‘목표물까지 단 세 걸음.’

인기척을 지운 채 대상의 등 뒤로 다가갔다.

훈련받은 암살자답게 조금의 발 소리도 내지 않으며,

셋.

둘.

하나.

‘지금이다.’

그대로 비수를 들어 그의 목을 노리려던 순간-

‘···어?’

청년의 몸이 눈앞에서 스륵, 하고 사라져버리더니.

다시 세 발자국 떨어진 곳에서 나타났다.

그 사실에 암살자 우두머리가 잠시 당황한 순간.

퍽! 퍼어억!

둔한 타격음이 들렸고.

“크악!”

“으악.”

“껙.”

단말마 같은 비명이 들렸다.

···어쩐지 익숙한 목소리에 암살자 우두머리가 자신의 본분을 잊고 그쪽을 황급히 돌아본 순간.

스르릉!

소름 끼치는 금속음이 울리더니 목덜미에 서늘한 감각이 느껴졌다.

‘···.’

암살자는 침을 꿀꺽 삼키며 천천히 옆으로 돌아섰다.

목에 와닿은 날카로운 금속의 감촉이 그의 피부를 점점 압박함을 느끼며, 그는 두 손을 들어 보였다.

···그의 목에 검을 들이댄 것은, 다름 아닌 검은 머리 청년이었다.

“누가 보냈나?”

암살자는 놀라서 대답조차 할 수 없었다.

‘어떻게 알아차린 거지?’

그때.

그의 발치에서 쉬잇 쉬잇 하는 소리가 났다.

어쩐지 등골에 소름이 쫙 돋는 것을 느끼며 아래를 내려다보자.

희미한 가로등 불빛 아래서 기다란 형체가 어렴풋이 드러났다.

“···뱀?”

쉬이이익. 쉬이이익.

척 보기에도 맹독을 지닌 듯 보이는 뱀 한 마리가 그의 발 근처를 휘감았다.

“으아아아앗!”

저도 모르게 펄쩍 뛴 순간, 목에 닿아 있던 칼 끝이 그의 살을 찌르고 들었다.

“아악!”

“···함부로 움직이지 않는 게 좋을 텐데.”

날카로운 통증에 암살자는 뒤늦게 침착을 되찾았다.

“그렇게 날뛰면 독사에게 물릴 수도 있다.”

“···!”

암살자는 눈동자만 굴려 사태를 파악했다.

‘부하들은?’

나름 뛰어난 실력을 자랑하는 그의 수하들은 기절한 채 바닥에 널브러져 있었다.

암살자는 그것이 호위인 덩치 큰 사내의 소행임을 직감적으로 알아차렸다.

‘어떻게 이런···.’

다른 건 몰라도 기척을 숨기는 것만큼은 타의추종을 불허한다고 자신했다.

자신뿐 아니라 수하 세 명 역시 전문적인 훈련을 받은 전문가였으며.

‘난이도 C급에 불과한 의뢰이지 않았나.’

암살 대상은 고작해야 열다섯 살짜리 귀족 소년.

공작가 자제라고는 하나 서자이어서 그런지, 호위로 붙은 인물도 귀족가의 하인 한 명과 어디서 굴러먹은지 알 수 없는 용병 하나가 전부였다.

사실 난이도만 보면 D급이지만 고위 귀족이 대상인지라 한 단계를 올린 거라고 들었다.

‘가볍게 한 탕 뛰고 오자고.’

그런데 지금 이 상황은 대체 어떻게 된 일인지.

암살자의 이마에 식은 땀이 흘렀다.

긴장감이 최고조에 이른 채로 대치하고 있던 중.

건물 현관이 벌컥 열리더니 아기를 안은 청년 하나가 뛰어나왔다.

“괜찮으세요?”

[앙, 앙앙?]

이 와중에 웬 아기인가 싶어 암살자가 황당해하는데.

그의 발 주변을 휘감었던 뱀이 스르르 몸을 풀고 저쪽으로 멀어졌다.

“휴우···.”

잠시 안도의 한숨을 내쉰 순간, 여전히 그의 목에서 칼을 떼지 않던 청년이 말했다.

“난 괜찮다. 그나저나 이놈들을 어떻게 처리할지 고민이군.”

[앙, 앙앙?]

“일단은 디터, 네가 직접 묶어라.”

아기를 안고 온 청년이 밧줄을 건네자, 디터라 불린 덩치 큰 사내가 암살자에게 다가왔다.

“좀 세게 묶을 수도 있는데, 너무 아프면 말씀하세요.”

“···?”

그 친절한 말투에 혼란을 느낀 것도 잠시.

덩치 큰 사내는 그의 두 팔과 두 다리를 밧줄로 꽁꽁 묶었다.

···어찌나 세게 묶었는지 밧줄이 살을 파고들 정도였다.

“아, 아파!”

“제가 힘 조절을 잘 못해서···.”

덩치 큰 청년이 머쓱해하더니 이내 기절해 있는 나머지 세 명을 묶었다.

밧줄에 묶인 암살자의 귀에 검은 머리 청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여긴 어디 고문할 곳도 마땅치가 않은데···.”

‘고문’이라는 단어에 암살자의 눈이 튀어나올 듯 커졌다.

[앙, 오옹옹!]

“아, 정말요? 오, 그렇다면···.”

아기를 안은 청년이 검은 머리 청년에게 뭔가를 속삭였다.

검은 머리 청년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렇다면 농농이, 네게 맡기지.”

[앙!]

밧줄에 묶인 채 바닥에 주저앉아 있는 암살자에게 아기가 아장거리며 다가왔다.

‘대체 왜?’

아기가 위험한 사람에게 다가가도록 놔두는 주변인들의 반응이 이해되지 않았지만,

암살자는 이것이야말로 자신의 마지막 기회임을 깨달았다.

‘어린아이를 이용하는 건 내키지 않지만···.’

상황이 상황이니 어쩔 수 없다.

그는 아장거리며 다가오는 아기에게서 눈을 떼지 않았다.

‘가까이 오면 붙잡아서···.’

인질로 삼아야겠다고 생각한 순간.

아기가 다가와 그의 옷자락을 붙들었다.

[까르륵!]

몹시 귀여운 웃음에 잠시 정신이 팔린 순간-

“으아아악—”

···눈앞이 핑 돌며 시공간이 뒤집혀버렸다.

* * *

농농이와 암살자가 갑자기 사라져버린 순간.

나도 모르게 눈을 크게 떴다.

“지금 이게 어떻게 된···.”

아까 전.

나는 마차에서 내렸을 때 바닥에 있던 뱀 한 마리를 발견했다.

‘발닉!’

발닉은 내가 귀가할 시간에 맞춰 동물 빙의 능력을 사용하겠다고 얘기한 터였다.

‘어두운 야외만큼 암살자가 활약하기 좋은 곳도 없습니다.’

제아무리 검술이 뛰어나봤자, 기척을 지우는 훈련을 전문적으로 받은 이들을 상대하기란 어렵다는 거다.

‘하지만 암살자들의 전투 실력 자체가 뛰어난 건 아닙니다. 그러니···.’

그들의 기척만 파악할 수 있다면 의외로 쉬운 싸움이 될 수도 있다는 얘기.

‘저는 뱀에 빙의해 있겠습니다.’

구체적인 전말은 이랬다.

창 밖만 지켜보던 앨빈이 내가 탄 마차를 발견하고 신호를 주는 즉시,

발닉은 기숙사 현관 앞에 풀어놓은 뱀에 빙의했고.

···암살자들의 몸에서 나오는 열을 감지하여 그들의 기척을 파악했다.

‘쉬이익···.’

발닉이 보낸 신호를 보자마자 나는 그림자 보법을 실행했고.

암살자의 공격을 무사히 피할 수 있었다.

‘문제는 놈들이 누구에게 사주를 받았는지 불게 해야 하는데.’

기숙사 안에선 그럴 만한 장소가 마땅치 않으니 말이다.

그런 고민을 하는데, 농농이가 나서는 것이 아닌가.

‘세자르 님, 아이다페올트 왕자님이 본인이 적당히 처리하겠다고 하시는데요?’

농농이는 앨빈의 손바닥에 뭔가를 써서 의사 표현을 했고.

앨빈은 그것을 해석해 내게 들려준 참이었다.

‘예전에 찾아왔던 암살자들처럼 처리한 뒤에 자초지종을 들려주시겠다고···.’

그제야 나는 농농이가 암살자에게 접근하는것을 허락했던 거다.

그런데···.

‘농농이가 암살자와 함께 없어졌다.’

순간이동 능력을 쓴 건가?

그렇다면 대체 어디로···라고 의문을 품은 순간, 놀란 디터의 비명이 들렸다.

“농농이! 우리 농농이 어디 간 겁니까!”

디터가 애를 잃어버린 부모처럼 절규하려는 순간.

파앗! 하고 눈부신 빛이 일었다.

“···?”

두 눈을 껌벅이며 다시 고개를 들자.

그곳에는 다친 곳 하나 없이 말짱해 보이는 농농이가 서 있었다.

[앙! 아앙!]

“농농아!”

디터가 두 팔을 벌려 달려갔지만, 농농이는 디터에게 안기는 대신-

[앙, 옹옹옹!]

바닥에 널브러져 있는 세 명의 암살자에게 다가갔고.

아까처럼 파앗! 하는 빛을 일으키며 사라졌다가.

[옹옹!]

또다시 우리 눈앞에 나타났다.

“이게 대체 어떻게 된 거지?”

농농이는 내 물음에 대답하는 대신.

한 곳에 모여서 있는 우리 세 명에게 다가왔다.

[옹옹···.]

디터에게 안긴 채로 나와 앨빈을 붙들더니.

[옹!]

···그대로 순간이동 능력을 사용했다.

다음 순간 눈을 뜨자 시야에 나타난 것은-

“앙앙, 앙앙!”

“까륵, 까르륵!”

한가운데에 자리한 산더미 같은 금화. 그 위에 서 있는 거대한 나무 정령과···.

그 주변을 둘러싼 수많은 아기들, 아니 노움들이었다.

“여기··· 혹시 던전인가요?”

그렇게 질문한 앨빈은 차마 입을 다물지 못했다.

나는 대답 대신 고개만 끄덕였다.

그 말대로, 이곳은 농농이를 처음 만났던 곳.

다름 아닌 던전이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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