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냥감이 미끼를 물었다
우만에게 검술로 승부를 보자고 달려드는 이는 지극히 드물었다.
특히 아카데미 학생들은 아예 엄두도 내지 않았는데, 이는 우만이 입학 직후 워낙 압도적인 실력을 보여줘서였기 때문이다.
‘우만 님의 검술은 다른 분들과 느낌이 달라.’
언젠가 어느 학생이 말했던 것처럼, 우만의 검술은 일반적인 귀족 학생들과 스타일이 상당히 달랐다.
얼마나 근사하게 상대를 제압하는지.
검을 얼마나 재빠르고 화려하게 놀리는지.
보는 이의 가슴을 얼마나 뛰게 하는지에 중점을 둔 귀족들의 검술이 지극히 ‘장식적’이라면.
‘방어야말로 최선의 공격 수단.’
우만의 검술은 안전을 최우선으로 하는 실전용 검술에 가까웠다.
불필요한 움직임은 최소화하여 체력을 아끼고,
상대가 제 풀에 지쳐 나가떨어질 때를 기다렸다가 허점을 찾아-
‘한 방에 승리를 쟁취한다!’
혹자는 이를 가리켜 ‘극상의 효율을 추구하는 검술’이라 평했다.
그에 반해 세자르의 검술은 장식적인 것을 넘어서서 기예에 가까운 움직임.
···이처럼 완전히 다른 스타일의 두 사람이 대련을 펼친다는 것에 모두가 흥분한 상황이었다.
이는 라페스 자작 역시 예외가 아니었으니.
“우만 군과 세자르 님의 검술 대련이라니, 이것 참 기대가 되는군요!”
그는 곧바로 하인들에게 연무장 정리를 지시했다.
* * *
한편,
기대되는 것은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딱히 검을 부딪히는 게 기대된다기보다는···.
‘우만과 접점을 어떻게 만들까 고민했더니 공작 부인이 이렇게 멍석을 깔아줄 줄이야.’
우만은 이 자리에 온 이후로 노골적으로 나를 피했던 터였다.
그 와중에 공작 부인이 내 검술 실력에 딴지를 거는 것이 아닌가.
‘그래봤자 우만 군에게는 비할 바가 못 되지요.’
···이거다!
나는 공작 부인이 던진 미끼를 놓치지 않았다.
그 말에 반발하는 척하다 적당한 타이밍에 이런 말을 던진 것.
‘이 자리에서 저와 우만 선배가 대련을 선보이는 건 어떻겠습니까?’
우만이 그걸 받아들이든 아니든,
그리고 저 대련에서 이기든 지든 상관없었다.
내 목적은 단 하나뿐.
‘우만에게 여동생에 관한 이야기를 흘리는 것.’
그리하여 놈의 멘탈을 뒤흔들고,
종국에는 단둘이 대화를 나눌 자리를 만드는 거였으니까.
모든 게 계획대로 되었다는 생각에 콧노래를 흥얼거리는데,
하인 하나가 응접실로 들어와 알렸다.
“연무장으로 모시겠습니다.”
응접실에 있던 인원이 모두 연무장으로 이동했다.
당사자들을 제외하고는 다들 잔뜩 신이 난 기색이었다.
“저 두 분의 대련을 직접 보다니 행운도 이런 행운이···.”
“어떡해, 벌써부터 막 두근거려!”
“과연 누가 이길까? 자네는 어느 쪽에 걸겠나?”
가장자리에 놓인 의자에 다들 착석을 마친 가운데,
나와 우만이 연무장 한가운데에 섰다.
“선배와 검을 겨뤄볼 수 있다니 영광이군요.”
“···.”
우만은 미간을 잔뜩 구긴 채 대꾸하지 않았다.
표정이 몹시 복잡한 것이, 내가 아까 던진 말을 고민하는 기색이 역력하다.
‘이거 의외로 쉽게 이길 수도 있겠는데.’
반대편에 자리를 잡고 서는데, 리아나 레핀이 우만에게 검을 가져다주러 오는 것이 보였다.
그다음에는 내게 와서 검을 건네주었다.
“세자르. 열심히 하거라. 아, 그리고···.”
큰 목소리로 격려의 말을 건네더니 몸을 붙이며 내 귓가에 속삭였다.
“너와 우만에게 준 검은 둘 다 진검이야.”
“···.”
대답 없이 빤히 그녀를 내려다보자 리아나의 얼굴에 교활한 미소가 번졌다.
“여기서 저 세상으로 가고 싶지 않으면 조심하는 게 좋을걸.”
그 말을 끝으로 그녀가 휙 가버렸다.
···이것 봐라. 어쩐지 내가 하는 대로 순순히 놔둔다 싶었더니 이런 수작을 부린다 이거지.
보아하니 우만은 그런 말을 못 들은 기색이었다.
‘진검이라는 사실을 내게만 알려줘서 멘탈을 흔들 생각이로군.’
시도 자체는 나쁘지 않다만, 내게는 별다른 효과가 없을 거다. 일단 예전에 집사장 카를과 대련할 때 한 번 겪어보기도 했고.
‘이럴 때 쓸 만한 아이템도 있지.’
4차원 주머니에 들어 있던 물건을 슬쩍 꺼내 가슴 주머니에 집어넣었다.
그것이 뭐냐 하면.
『‘응급처치용 손수건’(즉효성, 잔여 사용횟수 5회)
- 설명 : 손수건을 환부에 가져다대면 피가 즉시 멎고 상처가 아문다.
- 비고 : 상처가 난 순간부터 10초 안에 지혈을 해야만 효과가 발생한다.』
‘이 정도 보험이 있으면 해볼 만하지 않겠어?’
* * *
우만은 연무장 맞은편에서 대련을 준비하는 검은 머리 청년을 조용히 지켜보았다.
‘한창 성장할 나이라서 그런가.’
아카데미에 처음 왔을 때만 해도 앳된 티가 나던 소년은 어느새 날카로운 눈빛을 지닌 청년이 되어 있었다.
그를 볼 때마다 묘한 기시감이 느껴졌다.
‘배다른 형제라도 형제는 형제라는 건가.’
물론 외모는 어디 하나 닮은 구석이 없다.
그러나 최근의 세자르를 볼 때마다 팰러스가 내뿜는 기묘한 카리스마가 느껴지는 듯했다.
그래서일까.
처음만 해도 대수롭지 않게 여기던 팰러스는 제 동생을 점차 경계했으며.
‘우만, 내가 없을 때를 노려 놈이 뭔가를 획책하려 들지도 모른다.’
자신이 부재할 때도 절대 방심해서는 안 된다고 몇 번이나 으름장을 놓을 정도였다.
···그 방심의 대가가 이것이란 말인가.
‘선배의 여동생에 관해 단둘이 대화를 나눠보는 것 어떨까요?’
형제가 없다고 알려진 자신에게, 사실은 ‘여동생’이 있다는 것을 놈은 어떻게 알아냈을까.
‘팰러스 님 외에는 아무도 모르는 사실인데.’
그의 가문은 족보조차 제대로 남아 있지 않으니, 기록을 뒤져 여동생의 존재를 알아내는 것도 불가능했다.
그렇다면 저 정보가 누군가를 통해 새어나갔다는 것뿐인데.
‘···설마 팰러스 님이?’
온갖 생각으로 머릿속이 복잡하던 가운데,
심판을 맡은 라페스 자작이 외쳤다.
“준비··· 시작!”
소리가 나기 무섭게 세자르가 먼저 덤벼들었다.
챙! 챙캉!
“흐읏.”
평소라면 가볍게 쳐낼 법한 검격이었지만,
지금 우만은 집중력이 상당히 흐트러진 상태였다.
‘하필이면 대련 직전에 그런 얘길 들어서.’
영원히 꽁꽁 감추어두기로 결심한 비밀이자 자신의 ‘아킬레스 건’이,
전혀 예상치 못했던 이의 입에서 튀어나왔기 때문일까.
‘···.’
챙! 챙캉!
우만은 언젠가부터 막아내는 데만 급급하게 되었다.
반면 세자르의 공격은 화려하기 그지없었다.
뒤로 물러서는가 하면 또다시 불쑥 들어왔고.
부웅! 휘이잉!
은빛의 검신이 허공을 찢으며 상대의 몸 구석구석을 노렸다.
그렇게 1분 정도 세자르의 공세가 계속되었을까.
‘이쯤이면 상당히 지쳤겠지.’
그러나 상대는 전혀 지친 기색이 아니었다. 오히려···.
“아카데미에서 검으로는 우만 선배를 따라갈 자가 없다고 하더니, 과연 소문대로군요.”
숨 한 번 몰아쉬지 않고 저런 말을 건넬 정도로 여유로운 것이 아닌가.
우만은 살짝 당황했지만.
‘이제는 공격해야 할 때.’
더는 이렇게 방어 위주로 나가서는 안 되는 시점임을 깨달았다.
부웅!
뾰족한 검 끝이 세자르의 허점을 노리고 쏜살같이 날았다.
아무런 예고 동작 없이, 아무 낌새 없이 들어가는 그의 검을 가리켜 사람들은 ‘벌처럼 쏘는 검’이라고 평하곤 했다.
하지만.
챙! 챙캉!
세자르는 기다렸다는 듯 그 공격을 받아냈고.
“역시 듣던 대로 매섭군요.”
그렇게 말하며 되레 제 쪽에서 폭포수 같은 공격을 해왔다.
상황이 이쯤 되자 우만은 살짝 조급해졌다.
‘세자르의 실력이 이 정도였던가?’
검술대회가 겨우 얼마 전이 아니었던가.
그 사이에 놈의 실력은 일취월장해 있었다. 그때의 기억만 가지고 방심해 있던 자신이 부끄러울 정도로.
‘아니다, 곧 지칠 거다.’
우만은 이내 고개를 저으며 잡념을 몰아냈다.
저렇게 몸을 움직이는 데 지치지 않을 리가···.
챙! 챙! 챙캉챙!
그런 믿음과는 달리, 몇 번의 합을 더 겨룬 후에도 세자르는 지치지 않았다.
오히려 언제부턴가는 방어에만 골몰했던 우만 자신이 지치기 시작했고.
“후우, 후아···.”
처음으로 그가 거친 숨을 내뱉은 순간을 기점으로.
‘···저건?’
세자르의 발이 기묘하게 움직였다.
지면이 아니라 마치 그 위의 허공을 밟듯, 무게가 없이 움직이는 듯했다.
우만은 자신의 눈이 이상해졌나 싶어 두 눈을 껌벅거렸지만.
‘저 걸음걸이는 마치···.’
스르륵거리며 움직이는 그림자 같았다.
최소한의 소음도, 존재감도 없이-
세자르의 두 발은 이 세상의 중력 법칙을 무시하며 제게 다가왔고.
‘아니, 시간 법칙마저 무시한 듯하다.’
1초가 아닌, 0.1초의 단위로 시간이 흘러가는 듯한 감각.
난생 처음 보는 움직임에 얼이 빠져 집중이 흐트러진 찰나.
‘흐억!’
그림자 같던 존재가 어마어마한 집중력을 발하며 달려들었다.
뇌가 일으킨 일종의 착시 현상일까.
뾰족한 검 끝이 시야를 가득 채울 정도로 거대해진 순간!
‘···!’
그 압도감에 밀려 저도 모르게 두 눈을 질끈 감아버렸다.
확!
검 끝이 목덜미를 재빠르게 스치고 지나갔다.
금속 감촉은 잠시뿐, 허공을 가르며 일으킨 바람의 잔상이 아직도 피부에 남아 있는 기분이다.
“으읏.”
어쩐지 뜨거운 기분이 들어 목덜미를 더듬거리자.
손바닥에 벌건 피가 묻어났다.
‘이런.’
상처 부위를 손 끝으로 더듬거리자 쓰라린 통증이 느껴졌다.
스쳐지나간 줄 알았는데 의외로 상처가 깊게 난 듯하다.
“···피가!”
누군가 외친 것을 시작으로.
“어머, 피가 나요!”
“멈춰, 대련을 멈추시오!”
“이게 대체 어떻게 된 일인가!”
구경꾼들 사이에서 소란이 일었다.
제일 근처에 앉아 있던 라페스 자작이 황급히 나섰다.
“대련을 중단하시오!”
다들 황망한 나머지 안절부절하고 있는데.
여전히 당황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고개를 든 우만의 눈에,
세자르가 달려오는 것이 보였다.
“이것으로 지혈하시죠.”
흰 손수건을 꺼내 제 목에 가져다대려는 그의 팔을 우만이 가볍게 밀쳐냈지만.
세자르는 미간을 좁히며 우만의 팔을 되레 밀어냈다.
“상처 치료하는데 피아 식별이 있습니까?”
어쩐지 위압감이 느껴지는 목소리 때문일까.
우만은 그 기세에 눌려 저도 모르게 고분고분해졌고.
세자르가 손수건으로 목덜미의 상처를 지혈하도록 놔두었다.
그렇게 몇 초 정도 지났을까.
세자르가 손수건을 떼며 말했다.
“피가 멎은 것 같군요.”
벌써 멎었다고? 그럴 리가 없을 텐데.
하지만 우만은 더는 통증이 느껴지지 않음을 깨달았다.
의아해하며 목을 더듬거리자, 피가 멎은 것으로 모자라 상처가 아예 깨끗이 사라졌다.
‘어떻게 이런 일이.’
아까는 분명 피가 흥건히 흘렀는데.
그 기억이 거짓이 아님을 보장하듯, 제 셔츠깃 끝이 피로 빨갛게 물들어 있었다.
“이게 대체···.”
그것에 제대로 의문을 표하기도 전.
“우만 선배, 이번 내기는 제가 이긴 것 같습니다만.”
세자르가 붉게 물든 손수건을 뒤집어 그 뒷면을 눈앞에 들이밀었다.
『오늘 밤 자정, 내가 묵는 방으로 혼자 찾아오도록.』
그 문구를 본 우만이 이를 갈았다.
“···네놈의 같잖은 수작에 넘어갈 줄 아나?”
“내가 어떻게 그 정보를 얻었는지 궁금하지 않은가 봅니다.”
우만은 뭔가 할 말이 있기라도 한 듯 입술을 달싹거렸지만.
“초대에 응하는 건 선배의 자유입니다.”
세자르가 씩 웃으며 그렇게 말하더니,
그대로 일어나 뒤돌아서 가버렸다.
* * *
그날 밤 자정.
나는 우만을 기다리는 중이었다.
‘그림자 보법을 보고 깜짝 놀란 것 같았는데.’
그간 보법을 많이 수련해 체화가 된 탓일까.
몸이 어느 정도의 집중 상태에 이르면 이능을 쓴다는 느낌 없이도 자연스럽게 보법을 구사하게 된다.
‘덕분에 생각 외로 쉽게 이길 수 있었지.’
한편,
라페스 자작은 우리 우애단에게 가장 훌륭한 손님방을 여러 개 배정해준 터였다.
···이제 관건은 단 하나.
‘과연 우만이 제 시간에 이곳으로 올까?’
여동생을 언급한 순간, 우만은 귀신이라도 본 것처럼 화들짝 놀랐다.
‘그걸 보니 여동생이 있는 배신자는 우만이 확실할 듯한데.’
우만이 어째서 팰러스를 배신하려고 결심하는지 알 수 없으며.
배신하겠다는 마음을 먹는 것이 지금이 아닌, 먼 미래의 일일 수도 있다.
그러니 무턱대고 우만을 포섭하려 하기보다는···.
‘일단 놈에게 여동생에 관한 단서를 캐내는 동시에, 혼란스러운 정보를 흘려서-’
사분오열.
팰러스의 수하들이 서로를 의심하고 더는 믿지 못하게 만드는 것.
그것이 내 당면 과제였다.
톡, 톡, 톡.
나는 테이블을 손등으로 신경질적으로 두드렸다.
‘설마, 벽을 넘어오는 건 아니겠지?’
원작의 우만은 그 어떤 벽이든 자유자재로 넘나들며 팰러스의 정적들을 남몰래 처리했던 인물이다.
그 사실을 떠올리자 우만이 내 목을 따버리겠다고 작정하고 오면 어떡하지 싶기도 하다.
‘그렇다 해도 이 무효화의 목걸이가 사전에 감지해 막아주겠지만.’
긴장하며 기다리던 중.
똑똑.
기다렸던 노크 소리가 들렸다.
“들어오시죠.”
문이 열렸다.
···그 뒤에 서 있는 것은 잔뜩 경계한 표정의 우만.
나는 환호하고 싶은 것을 꾹 참았다.
‘빙고!’
사냥감이 미끼를 물고 제 발로 덫에 들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