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공작가의 서자로 살아가는 법-56화 (56/176)

왕이 아닌 자가 왕이 되는 법

나는 자신의 귀를 믿지 못하겠다는 표정의 공작을 말없이 마주 보았다.

‘아까 고대 유물을 보여줬더니 자기 눈을 못 믿겠는 얼굴을 하더니만.’

고대 유물에 관해서라면, 그 핵심 공로를 전부 공작에게 돌릴 생각이다.

유물의 발굴과 보존 작업은 대규모 인력을 필요로 하는 프로젝트이니만큼 지금 내 선에서는 할 수도 없을 뿐더러.

‘가장 핵심적인 보상은 이미 빼먹었으니까.’

발닉이 먹은 개화환과, 목에 걸어 셔츠 안에 감추고 있는 ‘이능 무효화 목걸이’가 바로 그것.

그 외의 남은 유물들은 들이는 노고에 비해서는 결과물이 아쉬운 계륵이나 마찬가지다.

하지만 레핀 공작의 손으로 넘어가면 상황이 좀 달라진다.

‘원작에서 이 유물이 알레스 교단의 입지를 제한하는 역할을 했던가.’

정치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건수다, 이 말이다.

그러니 공작에게 이 정도 큰 건을 맨입으로 넘긴다는 건 ‘내가 당신을 그만큼 신뢰하고 있소’를 보여줌과 동시에-

‘나를 향한 공작의 신뢰 역시 강화할 기회가 될 테니까.’

이러저러한 계산이 전부 들어간 접근이라는 얘기다.

어쨌거나 지금 공작은 내 ‘특별한 능력’에 몹시 관심을 보이고 있다.

“네가 이능자···라는 얘기냐?”

이능자가 맞긴 맞지.

“그게 아니었더라면, 과거의 제가 과연 이렇게 변할 수 있었을까요?”

질문에 질문으로 답하자, 공작의 입가가 미묘하게 일그러졌다.

“재미있구나. 그렇다면 어디 그 능력으로 나의 미래도 보았느냐?”

이런 질문이 나올 줄 알았다.

나는 여유롭게 고개를 저었다.

“미래란 원한다고 해서 아무 때나 보이는 게 아닙니다. 다만···.”

몸을 뒤로 젖혀 등받이에 기대 앉으며 말을 이었다.

“각하의 미래에 관해 이런 질문은 드릴 수 있을 것 같군요.”

공작이 미간을 좁혔다.

“질문이라고?”

“각하, 아니 아버지.”

“···.”

‘세자르’의 몸으로 처음 내뱉은 ‘아버지’라는 단어에 공작의 눈이 커졌다.

“가까운 미래에 말입니다. 저의 형이자 아버지의 장남인 팰러스가···.”

나는 원작을 읽으며 늘 ‘레핀 공작이 팰러스를 어떻게 여기냐’가 궁금했다.

단 하나뿐인 후계자와 공작의 사이가 좋지 않다는 게 이해가 잘 안 되었고, 팰러스의 출생에 비밀이 있다는 것을 보면···.

‘아무래도 레핀 공작의 친자가 아닐 것 같았으니 말이지.’

공작의 두 눈을 정면으로 마주 보며 말했다.

“이 나라의 왕이 되려고 한다면 믿으시겠습니까?”

레핀 공작의 입이 살짝 벌어졌다.

* * *

세자르가 나간 뒤.

공작은 책상 앞에 앉아 생각에 잠겨 있었다.

방금 전, 자신에게 거래를 제안하던 소년의 목소리가 귓가에 계속 맴돌았다.

‘고대 유물에 관한 권리를 각하께 온전히 넘기겠습니다. 물론, 이것을 처음 발견한 것 역시 각하의 공이 되는 거고요.’

고대 유물이라니.

그 귀중한 권한을 내게 온전히 넘겨준다고?

공작은 지나칠 정도로 달콤한 제안을 덥썩 받아들이기보다는 경계하는 성격이었고.

그 대가가 무엇이냐고 묻자 세자르는 이렇게 답했다.

‘대가라니요, 각하를 향한 제 진심을 그리 여기시다니 섭섭합니다.’

‘말장난은 그 정도 하지.’

‘말장난이 아니라 농담 반, 진담 반이라고 봐주시면 좋겠군요.’

여유롭다 못해 능글맞을 정도로 대꾸하는 소년을 보며 공작은 내심 혀를 찼지만.

‘아카데미로 가기 전 저와 약속하신 것 기억나십니까?’

다섯 명의 이능자를 거두면 적자로 인정해준다는 약속 말인가.

‘물론이다.’

···지금의 세자르라면 무리 없이 가능하겠군, 이라고 생각하는데, 소년의 말이 이어졌다.

‘언젠가 제가 이 레핀 가문의 적자가 되면··· 그 사실을 이 나라의 모두가 알도록 화려한 연회를 열어주십시오.’

‘···연회? 그게 전부인가?’

‘아니요.’

세자르가 씩 웃으며 덧붙였다.

‘언젠가 제가 각하의 힘을 필요로 할 때, 반드시 나서주시겠다고 약조해주시면 좋겠군요.’

언뜻 듣기에는 별 것 아닌 대가처럼 들리지만.

자신이 무얼 하든 간에 정말로 필요할 때 한 번만 도와달라는 것은-

“···백지수표를 달라는 말과 무엇이 다른가.”

공작은 세자르가 대체 무엇을 계획하는지 알 수 없었다. 그럼에도 그는 그렇게 해주마, 하고 세자르에게 약조했다.

세자르에게서 지난날의 그녀를 엿보았다든가.

이 무한한 발전 가능성을 지닌 청년의 미래를 지지하고 싶다든가 하는 식의 낭만적인 이유는 아니었다.

공작의 시선이 책상 위로 향했다.

그의 밀정이 보내온 보고서였다.

『-팰러스 레핀은 견문을 넓히기 위한 여행이라는 명목으로 오프러스 공국의 명문가에서 지내고 있음.

-그러나 여행은 구실일 뿐이고, 진짜 목적은 힐 오프러스 대공과의 은밀한 만남일 가능성이 높음. (후략)』

오프러스 공국과의 친분이라.

어느 정도 예상했던 바였기에 그다지 놀랍지는 않았다.

다음 장은 자신의 아내에 관한 것이었다.

리아나 레핀이 ‘레핀’이라는 성을 갖기 이전, 베일에 싸여 있던 과거를 조사한 내용 말이다.

『-오프러스 공국 정보 길드에 따르면 (리아나 레핀과 마찬가지로) ‘백금발’에 ‘푸른눈’을 지닌 뛰어난 미모의 여인이 어느 하급 귀족과 혼인했었다고 함.

-이 여인은 훗날 ‘독거미’라는 별명으로 유명해졌는데, 결혼하면 늘 1년 안에 남편이 사망했기 때문.

-그녀는 이후로 세 번 더 결혼했고, 마지막 남편이 불의의 사고로 죽은 후에는 자취를 감추었다고 함.』

결혼을 통해 자신의 신분을 상승시키지만 그 남편은 어쩐지 연달아 죽고 마는 비운의 여인이라···.

시사하는 바가 큰 보고서였다.

그 두 개의 보고서를 다 읽고 나자, 아까 세자르가 했던 말이 또다시 떠올랐다.

‘팰러스가 이 나라의 왕이 되려고 한다면 믿으시겠습니까?’

소년의 말을 곧이 곧대로 믿는 것은 아니다.

다만 지금껏 자신이 보아온 수많은 증거들이, 소년의 그 허무맹랑한 말에 최소한의 신빙성을 제공했으니까.

‘왕이 아닌 자가 왕이 되는 데는 두 가지 방법이 있지.’

첫째, 모반을 일으키거나.

둘째, 자신보다 왕위 계승에 우선 순위를 지닌 자들이 모두 죽거나.

첫 번째 방법은 시간이 덜 걸리지만 너무 위험하며 두 번째 방법은 합법적이지만 실현 가능성이 낮다.

하지만 이 두 가지 방법의 장단점을 보완한 방법 또한 존재한다.

‘자신보다 우선 순위에 있는 자들을 암살하는 것.’

특히나 지금의 국왕처럼 후계자가 없으며 나이도 어리고 지지 기반도 약한 경우라면 말할 것도 없다.

현 국왕이 계승 순위 1위라면, 2위는 소년 왕의 당숙뻘인 자신이다.

그리고 3위가 팰러스다.

팰러스가 진정으로 왕이 되고자 한다면, 그 앞에 있는 자신은···.

‘그에게는 방해물일 뿐.’

게다가 레핀 공작에게는 한 가지 히든카드가 있었다. 그 히든카드란 다름 아닌 세자르의 존재.

‘세자르를 적자로 들이면 그 또한 왕위 계승 4순위가 된다.’

그래서 공작은 세자르와의 약속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그 사실이 알려지는 즉시 아내와 팰러스의 공격이 들어올 테니.

사실 그로서는 누가 자신의 뒤를 잇든 상관없었다.

팰러스나 세자르나 자신에게는 남이나 다름 없는 존재이니까.

다만 그의 목을 평생토록 죄어온 가문에 대한 의무가, 이 야망 가득한 청년들과 자신의 운명을 한데 묶어버렸을 뿐.

하지만 기왕 묶인 거라면.

“···내 안전을 보장해줄 쪽이 낫지 않겠는가.”

로건 드 레핀 공작은 그런 결론을 내렸다.

그의 아내와 팰러스의 목줄을 쥘 수 있는 고급 정보들을 언젠가 세자르에게 알려줘야겠다고 마음먹었다.

* * *

공작과 대화를 마친 나는 곧바로 방으로 돌아갔다. 마침 방을 정리하러 온 제이콥에게 단도직입적으로 질문했다.

“제이콥, 혹시 내가 없는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나? 그러고 보니 마님도 보이지 않고 말이야.”

“그것이···.”

잠시 머뭇거리던 제이콥은 공작부인이 공작저에서 나갔다고 대답했다.

“공작부인이?”

“네. 정확히 말하자면··· 각하께서 마님을 내보내신 것에 가깝겠지만요.”

그리고 그 배경에는 내가 보낸 편지가 있었다.

···공작의 만성 비소 중독을 암시하는 구절을 담은, 그 단 한 통의 편지 말이다.

“이 공작저가 얼마나 발칵 뒤집어졌는지 도련님은 상상도 못 하실 겁니다.”

제이콥은 그때의 기억을 떠올리며 부르르 떨었다.

공작이 조리부를 비롯한 모든 사용인들을 탈탈 털었고, 그 결과 공작의 식사에 주기적으로 소량의 비소를 첨가한 이를 찾아냈다.

‘···진짜였단 말이야.’

내심 깜짝 놀랐지만 충격적인 것은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범인은 온갖 잔혹한 고문을 받은 끝에 자신의 배후가 공작부인이라고 밝혔다.

“···뭐?”

“엄청나지요. 저희 사용인들도 완전 뒤집어졌습니다.”

제이콥이 괜히 목소리를 낮추었다.

하지만 공작부인은 혐의를 완강하게 부인했다.

‘증거가 대체 어딨나요? 증거라고는 당신을 죽이려 했던 범인의 자백, 그것도 고문 끝에 털어놓은 한마디에 불과한데···.’

공작부인 리아나는 도리어 공작이 자신을 이 저택에서 내보내려고 이 모든 일을 꾸민 게 아니냐며 적반하장으로 나왔고.

공작은 그녀를 아예 궁지에 몰 만한 실질적 증거를 찾았지만 아무것도 나오지 않았다.

관계가 아예 파탄으로 치달은 두 사람은 결국 공식적인 별거에 들어갔다.

‘이 나라는 법적으로 이혼을 허용하지 않으니 말이지.’

“하지만 말이 별거이지, 둘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벌써 사교계에 소문이 파다하다고 하더군요.”

들려오는 소문에 따르면 공작부인은 어느 권력자를 벌써부터 매혹하여 그의 저택에서 지내고 있다고.

‘팰러스 입장에선 방학 시작하자마자 이웃 국가인 오프러스 공국으로 향한 게 다행이라 하겠군.’

제이콥의 설명을 들으며 생각에 잠겨 있는데.

익숙한 메시지가 떴다.

[도전과제 ‘아빠가 위험해요!’ 달성! - 레핀 공작에 대한 독살 위협을 저지했습니다.]

[보상 ‘매혹의 향수’를 받았습니다.]

···그전에 ‘재활용’ 과제를 달성하고 나서는 ‘응급처치용 손수건’을 받았는데.

향수니 손수건이니 꼭 매너남 2종 세트 같은 느낌이지만, 곧 있을 왕궁연회에서 요긴하게 쓰이지 않을까 싶다.

그러나 내가 받은 보상은 이것뿐이 아니었다.

발닉에게 개화환을 먹여 이능을 발현시킨 그날.

[도전과제 ‘이능자 매니지먼트’ 달성! - 누군가를 인위적으로 각성시켰습니다.]

[도전과제 ‘고대 유물 날먹’ 달성! - 고대 유물을 손에 넣었습니다.]

이 두 가지가 달성되는 바람에 특수과제 ‘일석이조’ 또한 달성되었고.

『‘영혼의 서’(가격 : ????)

- 설명 : 빙의 능력을 효과적으로 단련하게 해주는 ‘영혼 빙의자’ 전용 스킬북.

- 비고 : 일반인들에게는 그 내용이 보이지 않음.』

···영혼 빙의자 전용 스킬북을 받았다는 것.

이 책을 받자마자 나는 앨빈을 이 ‘전용 스킬북’의 사용자로 등록했지만, 아직 제대로 살펴보지 못한 터였다.

‘어디 내용을 한 번 살펴볼까.’

펼쳐져 있는 새하얀 종이 위에 손을 올리자 부웅- 하는 진동음과 함께 글자가 나타났다.

<영혼의 서>의 목차를 살펴보았다.

1. 이 책의 사용 방법

2. 영혼 빙의의 기원과 역사

3. 역사 속의 유명한 샤먼들

4. 빙의의 이론과 실제

5. (1번 슬롯) ‘흑의 기사’ 에드먼드 세비어 경

6. (2번 슬롯) 비어 있음

7. (3번 슬롯) 비어 있음

8. 미접신 영혼 목록

슬롯은 총 세 개가 있었고 전부 다 찰 경우, 기존의 것을 지우고 새로운 영혼에 접신할 수 있는 모양이었다.

미접신 영혼 목록은 뭐지, 하고 8장을 펼쳐보자.

『이능자 ‘영혼 빙의자’의 미접신 영혼 목록

- 설명 : 친밀도가 50 이상이 되면 접신이 가능해집니다.

- 후보 목록

1. ‘불세출의 역관’ 하라라 (친밀도 20점)

이대륙 출신의 상인으로 시작해, 위대한 대왕 구스타프의 전속 통역관이 된 언어 천재.

대륙 내 모든 언어에 통달했을 뿐 아니라, 소통 능력이 뛰어나 수많은 협상을 성공적으로 이끌었다고 알려짐.

2. ‘금속의 마에스트로’ 유리겔 (친밀도 15점)

드워프라는 고대종족에게 대장장이 수업을 받았다는 소문이 돌 정도로 뛰어난 실력의 대장장이. ‘영웅들의 시대’에 이름을 날린 수많은 무기를 만든 위인으로도 유명하다.』

어느 정도 예측한 바이기는 했지만, 그것을 두 눈으로 확인하고 나니 더더욱 실감이 났다.

‘이 이능이 얼마나 어마어마한 잠재력을 지녔는지.’

지금이야 흑의 기사 단 한 명의 영혼에만 빙의할 수 있다고 하지만, 아니 그것만으로도 이미 엄청난 능력인데···

또 다른 역사 속 위인의 영혼에 빙의할 수 있게 된다면?

“···대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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