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공작가의 서자로 살아가는 법-53화 (53/176)

도련님은 언제나 생각이 있으시니까

두 번째 관문 ‘히드라의 경계’.

히드라는 본디 그리스로마 신화에 등장하는, 독사의 머리가 여러 개 달린 괴물이지만···.

‘여기 있는 히드라는 뱀이라기보단 드래곤처럼 생겼군.’

나는 눈앞에서 크르릉거리는 거대한 괴수를 주시했다.

키가 3미터에 달할 법한 거대한 체구.

아가리 옆으로 날카로운 이빨이 튀어 나왔으며 입을 벌리면 곧바로 브레스를 내뿜을 듯한 드래곤의 머리가···

두 개나 달려 있는 놈이다.

“골치 아픈 미션인데.”

2차 관문의 미션은 저 히드라를 전투 불능 상태로 만드는 것.

일단 디터가 히드라를 상대하긴 힘들어 보인다. 새로운 스킬이 생기긴 했지만, 쿨타임 때문에 당장 쓸 수 없으니까.

발닉 또한 내 생각에 동의하는 바였다.

“저렇게 지친 채로 놈을 상대하는 건 무리일 겁니다.”

히드라에 관해 아는 것을 말해보라고 하자, 앨빈이 입을 열었다.

“히드라의 가장 강력한 무기는 날카로운 독니예요. 신경을 마비시키는 독이고, 악력이 상당해 한 번 문 상대는 여간해서 놓는 법이 없다고 해요.”

“브레스는?”

“브레스는 내뿜지 않아요.”

그건 다행이네.

“굉장히 호전적인 괴수이지만, 전력 차이가 많이 나 보이는 상대는 곧바로 죽이지 않고 데리고 논다고 하네요.”

“흐음.”

“그리고 흔히들 히드라의 머리가 여러 개라고 하는데··· 그건 잘못된 표현이에요. 머리가 여러 개가 아니고 몸이 하나뿐인 거죠.”

앨빈은 히드라라는 괴수의 탄생설화를 설명해주었다.

“고대 전설에 따르면 날개 달린 어린 드래곤 두 마리가 명계에서 난동을 피웠는데, 이들을 벌주고자 신이 둘의 몸을 강제로 붙여놓았다 하더군요.”

샴 쌍둥이 같네.

그런 생각이 든 순간, 문득 잊고 있던 아이템 하나가 떠올랐다.

“앨빈, 그럼 말이지··· 저기 있는 히드라는 한 마리인가 두 마리인가?”

“네?”

“네 말대로라면 두 개의 인격, 두 개의 머리를 지녔는데 몸은 하나라는 거잖아. 그럼 저놈은 두 마리야 한 마리야?”

고민하던 앨빈이 입을 열었다.

“윤리학자 에우네게스토스의 지론에 따르면, 존재론적 관점에서 미루어볼 때-”

“요점만.”

“···두 마리가 아닐까요?”

그래.

나 역시 그렇게 생각한다.

‘그렇다면 이건 일 대 다의 싸움이 될 거고···.’

거기에 생각이 미치자 자연스레 잊고 있던 아이템 하나가 떠올랐다.

나는 나머지 셋을 돌아보며 말했다.

“이번은 나 혼자 나간다.”

“네?”

“안 됩니다, 주군. 혼자서 저놈을 상대하시는 건···.”

우려하는 눈빛으로 나를 만류하려던 앨빈과 디터의 말을 발닉이 잘랐다.

“도련님이 다 생각이 있으실 거다, 디터. 앨빈 님도 너무 걱정마시지요.”

나는 4차원 주머니에서 뭔가를 꺼내 장착한 뒤, 발닉에게서 자그마한 방패를 빌렸다.

2차 관문에서는 나 혼자 히드라를 상대하겠다는 뜻을 알리자.

『입장하십시오.』

눈앞의 투명한 벽이 열렸다.

내가 그 벽을 넘어 들어가자, 벽은 이내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갔다.

‘걱정 말라고.’

일행에게 눈짓을 보낸 후, 아주 조심스럽게 히드라에게 다가갔다.

한 걸음, 두 걸음···.

하지만 히드라는 곧바로 공격하지 않았다.

‘나를 무시하는군.’

어디 한 번 와보라는 듯 여유로운 눈빛으로 나를 주시하는 중.

마침내 서너 걸음을 더 뗀 순간-

크롸아아앙!

히드라가 아가리를 쩌억 벌리며 이빨을 드러냈다.

“읏.”

온몸의 털이 곤두서는 기분으로 방패를 들어올려 몸을 보호했지만.

크르르르.

히드라는 그르렁거리기만 할 뿐 물지 않았다.

‘뭐지.’

한 걸음 더 다가갔지만, 히드라는 아까처럼 도발만 할 뿐 공격해오지 않았다.

모처럼 나타난 재미있는 장난감을 가지고 놀기라도 하려는 듯.

‘상황이 내게 유리하게 흘러가는군.’

한손에 든 방패로 몸을 단단히 보호하며 나는 몇 걸음 더 다가갔고, 마침내 놈의 코앞에 섰다.

휘유우우.

히드라가 숨을 내쉴 때마다 거대한 콧구멍에서 세찬 바람이 쏟아져 나왔다.

‘역시 공격하지 않는다.’

파충류 특유의 번들거리는 피부와 닿기만 해도 피를 볼 듯한 날카로운 이빨.

하나만 있어도 끔찍하기 그지없는 뱀 대가리 두 개가 나를 양옆에서 둘러싸자 등에 소름이 쫙 돋았다.

노오란 눈이 희번득거리며 나를 관찰하던 순간.

크롸아아아!

한쪽 아가리가 쩍 벌어지며 날 향해 달려들었다!

‘모 아니면 도다.’

그런 생각으로 부웅! 주먹을 휘둘러-

“안 돼!”

“주군!”

“도련님!”

벽 너머 일행의 목소리가 높이 울리는 가운데,

퍼억! 하고 괴물의 한쪽 대가리를 쳤다.

맞은 쪽 대가리가 움찔하는가 싶더니-

“···.”

이내 혀를 빼물고 기절해버렸으며.

나머지 대가리가 크르르하며 덤벼들려던 순간-

“어딜!”

곧바로 퍽! 하고 주먹으로 쳤다.

이번에도 역시 대가리는 곧바로 기절해버렸다.

“···?”

“이, 이게 대체-”

“주군이! 주군이 저 괴물들을!”

경악한 일행이 저마다의 반응을 보였지만, 나는 괘념치 않았다.

그렇게 잠시 적막이 흐른 후.

···쿵!

거대한 히드라의 몸이 옆으로 쓰러졌다.

그의 몸 주변에서 먼지가 피어오르는 통에 기침이 절로 튀어나왔다.

콜록거리던 그 순간, 손에 낀 은색 반지가 스르르 하며 사라졌다.

[‘원펀링’을 총 3회 사용했습니다.]

[아이템을 자동으로 회수합니다.]

원펀링이라고 기억날지 모르겠다.

혼자서 다수를 상대할 때 상대를 기절시키는 아이템이 있지 않았나.

한두 달 전 덩치 놈을 한 방에 때려눕힐 때 썼던 물건으로, 잔여 사용횟수가 2회였는데 오늘 다 써버렸다.

알뜰하게 잘 썼네 라고 생각하는데.

[2차 관문을 무사히 통과했습니다.]

그런 문구가 나타남과 동시에 투명한 벽이 사라졌다.

“주군! 괜찮으십니까!”

“도련님, 대체 어떻게···.”

“세자르 님!”

세 명이 와다다 안으로 달려들어 왔다.

어디 다친 데는 없냐며 걱정하는 일행에게 고개를 저어 보였다.

“보다시피. 아까 손끝 하나 닿지 않은 거 다들 봤잖아?”

히드라가 나를 첫눈에 무시한 게 천만다행이었다.

발닉과 디터가 역시 우리 주인님, 하며 호들갑을 떠는데 앨빈의 의아한 시선이 내게 머물렀다.

“아까는 대체 어떻게 하신 건가요?”

“글쎄. 템빨이라고 해야 하나.”

“템··· 네?”

신경쓰지 마, 라고 고개를 젓는데 의외의 메시지가 나타났다.

[특수과제 ‘재활용은 언제나 옳다’ 달성! - 보상으로 받은 아이템을 재활용해 유의미한 성과를 냈습니다.]

···뭐야, 이런 걸로도 과제가 달성되는 거야?

‘특수과제는 약간 히든퀘스트에 가까운 느낌이네.’

전에도 보상을 재활용한 적이 있는데 지금에야 달성된 걸 보면, ‘재활용해서 유의미한 성과’를 내는 게 중요한 기준인가 보다.

4차원 주머니 속에 들어와 있을 보상에 나도 모르게 콧노래를 흥얼거리는데.

[세 번째 관문은 ‘다크엘프의 유희’입니다.]

[세 번째 전장에는 다 같이 이동하되, 한 명은 지휘를, 나머지는 전투를 담당합니다.]

다 같이 이동한다는 말에 우리는 서로의 얼굴을 돌아보며 전의를 다졌다.

* * *

다크엘프.

소수에 불과한 고대종족 가운데서도 인구가 극히 적다는 소수 종족이다.

앨빈의 설명에 따르면 평화를 사랑하는 일반 엘프와는 달리, 싸움을 좋아하고 무기 다루는 데 능하며 지루한 걸 견디지 못한다고 한다.

엘프처럼 뾰족한 귀에 보는 이를 현혹시키는 미모를 지녔지만, 피부가 검은색에 가까울 정도로 어둡다는 게 차이점이다.

“와···.”

“···!”

다크엘프를 처음 본 나머지 세 명은 입을 떡 벌린 채 감탄을 금치 못했다.

그리고 저 앞에 선 세 명의 다크엘프들은, 그러한 우리의 시선을 깨나 즐기는 눈치였다.

다만 나는 조금 다른 이유로 저들을 주시하는 중이었지만.

‘그런 다크엘프가 어째서 드워프의 보물상자를 지키는 역할을 하고 있을까.’

[뭘 그렇게 쳐다봐, 귀여운 오빠?]

내 눈길이 집요했던 걸까.

세 명의 다크엘프 중 유일한 여자 엘프가 내 시선에 까륵 웃으며 대꾸했다.

“아니, 그저 호기심에···.”

[아, 우리 다크엘프들이 어째서 이 짜리몽땅하고 못생긴 놈들의 보물창고에서 파수꾼 노릇이나 하고 있냐, 이거지?]

족집게네, 족집게야.

대답 없이 고개만 끄덕이자 여자 엘프가 킥킥거렸다.

[뭐, 별 대단한 이유는 아냐. 우리가 드워프 삼형제와 내기를 했는데 거기서 졌거든. 그게 다야. 약속을 이행하는 것뿐이지.]

그러자 나머지 둘도 재미있다는 듯 낄낄거린다.

엘프 세 명이 몸을 움직일 때마다 희미한 잔상이 남는 것을 보니, 확신할 수는 없지만 실체가 있는 육체가 아니라 영체에 불과한 게 아닐까 싶기도 한데.

나는 경계를 늦추지 않으며 말했다.

“세 번째 관문의 시험은 뭐지? 너희 세 명과 싸우는 건가?”

[에이 설마, 그냥 싸우기만 하면 재미없잖아?]

여자 엘프의 말에 고개를 갸웃하자, 키 큰 남자 엘프가 덧붙였다.

[막내의 말대로 우리는 내기를 좋아한다.]

가운데에 서 있던 또 다른 남자 엘프가 말했다.

[큰형 말이 맞아. 인간들아, 우리와 검, 바위, 종이 게임을 하자.]

세 번째 관문의 미션은 ‘검, 바위, 종이’ 게임으로 규칙은 간단했다.

검은 무조건 종이를 이긴다.

종이는 무조건 바위를 이긴다.

바위는 무조건 검을 이긴다.

이름만 다를 뿐 가위바위보 게임이다.

여기서 우리가 3판 2선승제로 이기면 ‘최후의 보루’를 최종 클리어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예외적인 규칙이 몇 개 있다고 둘째 엘프는 설명했다.

[첫째. 각 팀에서 한 명씩 검, 바위, 종이를 무작위로 담당하게 된다.]

무엇을 낼지 결정하면 3초 카운트다운이 시작되고.

양 팀의 출전자가 동시에 손을 들며 ‘가위!’ ‘바위!’ 하는 식으로 자신의 역할을 밝힌다는 거다.

[둘째. 앞서 냈던 것과 같은 패를 연속으로 낼 수 없으며, 셋째. 비기는 경우···.]

둘째 엘프가 씩 웃으며 말했다.

[그 두 명이서 검으로 승부를 벌인다.]

“···.”

이 게임의 맹점은 그거였다.

비기는 경우, 그 둘이서 검술 대결을 펼쳐야 하며 이 대결의 승부로 그 판의 승패가 결정난다는 것.

즉, 검술 대진의 가능성까지 고려해 전술을 짜야 한다는 것이다.

[누가 전술을 짤래? 한 명이 전술을 짜고 나머지 세 명이 참전해야 해.]

그 말에 일행의 눈이 내게로 향했다.

내가 앨빈을 돌아보자, 앨빈은 자신없다는 듯 입을 열었다.

“저는 이런 쪽은 자신 없어서···.”

잠시 고민하던 나는 내가 전술을 맡겠다고 했고.

그 말이 끝남과 동시에 투명한 벽이 나타나 일행과 나를 분리시켰다.

[5분간 전술을 짠 뒤 곧바로 1차전에 들어가겠다.]

엘프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 팀의 검, 종이, 바위가 무작위로 결정되었고, 그 결과는 내 눈에만 보였다.

‘···그렇단 말이지.’

5분을 꽉 채워가며 경우의 수를 전부 고려한 후에야 비로소 결정을 내렸다.

[어때, 다 됐어?]

“그래.”

그렇게 검, 바위, 종이 게임이 시작되었다.

* * *

[첫 번째 판, 시작!]

눈앞에 숫자가 뜨더니 카운트다운이 시작되었다.

3초.

2초.

1초.

···0초가 된 순간.

양팀의 출전자가 목소리를 높였다.

[종이!]

“검!”

엘프팀에서 나온 것은 막내 여자 엘프.

우리 쪽에서 나간 것은 발닉.

여자 엘프가 의외라는 듯 우리 쪽을 보더니, 등을 홱 돌리며 쌀쌀맞게 말했다.

[초심자의 행운이 따르나 보네. 그러나 요행이 오래가진 않을 거야.]

···요행이 아니거든.

가위 바위 보를 흔히 확률게임으로 생각하기 쉽지만, 나름의 전략이 존재한다.

‘필승 전략이라고 할 것까지는 아니지만.’

대부분의 초심자는 첫 판에 바위를 많이들 낸다고 한다. 그러나 이 게임을 오래도록 해온 다크엘프들이라면 그런 초심자들을 이기기 위해 종이를 낼 확률이 높을 터이고.

‘이들의 예상을 역으로 이용해 우리는 검을 낸다.’

저들이 종이를 내면 우리가 이길 거고.

저들이 검을 내면 비겨서 진검 승부로 들어가는데···.

‘우리 쪽 검은 발닉이니까.’

검술 실력만큼은 우리 중 최고라고 할 수 있다.

어쨌거나 여기까진 내 시나리오대로 잘 흘러갔고, 문제는 그다음이다.

‘이번이 곧 승부처나 다름없으니까.’

저들이 방금 전 종이를 냈으니 검 아니면 바위를 낼 수밖에 없고, 우리는 검을 냈으니 종이 아니면 바위를 낼 수밖에 없다.

우리가 종이를 낼 경우, 절반의 확률로 이기고 절반의 확률로 진다.

우리가 바위를 낼 경우, 절반의 확률로 이기고 절반의 확률로 비긴다.

그렇다면 역시 바위를 내야 하는데.

나는 우리 팀의 ‘바위’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앨빈을 내보내도 괜찮을까.’

잠시 고민했지만, 마음의 결정을 내렸다.

[두 번째 판, 시작!]

또다시 3초 카운트다운이 시작되었다.

3, 2, 1···.

0초에 이른 순간!

[바위!]

“바위!”

으아, 양쪽에서 아쉬움의 탄성이 터져 나왔다.

엘프 진영에서 나온 것은 첫 번째의 키 큰 남자 엘프였고.

[검을 겨뤄볼 수 있겠군.]

“···.”

우리 쪽의 앨빈은 긴장한 기색으로 입술을 깨물었지만, 물러서지는 않았다.

“바라는··· 바다.”

그렇게 두 사람의 검술 승부가 시작되었고.

잠시 후-

“저건 혹시 그때의···.”

발닉의 말에 나는 고개만 끄덕였다.

저 앞에 선 것은 더는 앨빈이 아니었으니까.

넓은 보폭으로 서서 왼손에 검을 들고 오른팔은 허공에서 둥글게 말고 선 저 모습은-

‘흑의 기사.’

···에드먼드 경이 되돌아온 것이 분명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