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물찾기 좋아해요?
그로부터 일주일 뒤.
리암과 카렌은 진작에 각자의 본가로 떠났고,
나는 기다렸던 보상을 받았다.
[도전과제 ‘이능자 찾기’ 달성! - 이능자를 찾아내는 데 성공했습니다.]
이게 왜 안 뜨나 했는데 이제야 나왔네.
그렇게 해서 받은 것은 바로.
[보상 ‘맞춤형 철퇴’를 수령했습니다.]
『‘맞춤형 철퇴’(가격 : ???크로네)
- 설명 : 최초의 사용자를 인식해 그의 손에 꼭 맞게 무게와 굵기, 효력이 조정되는 철퇴.
- 비고 : 사용자의 힘이 셀수록 어마어마한 효과를 낼 수 있음.』
사용자의 힘이 셀수록 효과가 커지는 철퇴라니.
그것만 봐도 누구한테 줘야할지 감이 오지 않는가.
게다가 이 철퇴라면 맹수들의 머리통을 박살 내기 딱 좋아 보인다.
‘그때 쓰면 되겠군.’
이젠 도전과제의 보상마저 나더러 얼른 떠나라고 재촉하는 듯하다.
우애단 녀석들과 작별인사를 하고 기숙사에 돌아온 직후,
여느 때처럼 검술 수련에 매진하던 디터를 붙잡고 철퇴를 건넸다.
“주군, 이건 대체···.”
끝에 달린 쇠뭉치가 워낙 거대한 탓에 무시무시한 분위기를 자아내지만, 보석으로 장식된 손잡이만 봐도 고급품임이 한눈에 드러나는 물건이다.
어안이 벙벙한 기색의 디터를 보며 씩 웃었다.
“선물이야, 선물.”
“뭐 이런 걸 다 주시고.”
“아니, 네가 쓰면 좋을 것 같아서 말이다.”
“···.”
철퇴를 받아든 디터가 말을 잇지 못했다.
‘별 것 아닌 거에 너무 감동하네.’
애초 디터에게 준 것도 놈을 다 부려먹기 위해서인데 말이다.
몇 차례나 고맙다고 말하는 디터를 보며 아주 살짝 양심의 가책이 느껴지긴 했지만···.
‘누이 좋고 매부 좋고, 좋은 게 좋은 거지 뭐.’
유물을 발견하면 디터나 나나 다 좋은 거 아니겠는가.
그럼 다음으로는···.
기숙사에 남은 몇 안 되는 학생 중 하나인 앨빈을 찾아가 제안했다.
“앨빈, 보물찾기에 관심 있나?”
대답을 들을 필요도 없었다.
그 한마디를 하자마자 앨빈의 눈이 호기심으로 반짝거렸으니까.
“보··· 보물찾기라고요!”
* * *
결과적으로 앨빈을 영입한 것은 잘한 일이었다.
왜냐.
‘얘만큼 고대역사나 설화에 빠삭한 인물도 없거든.’
아카데미생들이 앨빈을 ‘안경 병신’이라고 깔 본 가장 큰 이유 중의 하나는 온종일 도서관에서 고서만 찾아보는 책벌레이기 때문이란다.
덕분에 또래 사이에서는 물론이고 웬만한 교수들보다도 고대역사에 대한 지식이 해박하다고.
‘헌데 고대 유물이라니, 어떤 걸 얘기하시는 건데요?’
나는 원작의 내용을 떠올리며 앨빈에게 간단하게 설명해줬다.
원작에선 이 부분이 이렇게 나온다.
『훗날 ‘미증유未曾有의 전장’이라는 이름으로 널리 알려진 유적을 처음 발견한 것은 어느 상인이었다.
말을 타고 산을 건너던 상인은 길을 잃고 어둠 속을 헤매다 절벽에서 떨어지고 말았고. 구사일생으로 목숨을 건지고 보니 숲이 아닌 허허벌판에 자신이 있음을 깨달았다.
‘여기에 뭔가 있다.’
상인 특유의 날카로운 직감 때문이었을까.
주변을 샅샅이 훑어본 그는 두껍게 내려앉아 돌처럼 굳어버린 희뿌연 먼지들을 걷어냈고, 그 아래서 희귀한 무구들을 수없이 발견했다.
이것이 고대의 물건들임을 깨달은 그는 전문가들을 데려와 본격적인 발굴에 착수했고, 그 결과 ‘최초의 인간’과 ‘고대 종족’ 사이에 벌어진 전투 현장임을 밝혀냈다.』
아마 이 상인이 이 유물 발굴을 계기로 엄청난 거상이 된 걸로 기억한다.
다만 이 고대 유물이 ‘회수되지 않은 떡밥’으로 독자들 사이에 기억되는 이유는 따로 있다.
‘그래서 그 보물상자 안에는 뭐가 들어 있었는데?’
유물들 사이에 있던 보물상자 안에 뭐가 들었는지.
전투에 얽힌 수수께끼가 대체 무엇이며 이 현장이 어떻게 고스란히 보존됐는지도 설명되지 않았으니까.
후반부에서는 이 유물의 비밀을 알려줄 ‘열쇠’라며 사파이어 반지를 등장시켜놓고는 써먹지도 않았다.
‘그놈의 밸붕을 걱정하면서 말이지.’
독자들의 항의가 빗발쳤지만 작가는 언제나처럼 깨끗이 무시했고 말이다.
그리고 마침내 대망의 출발일.
따그닥 따그닥. 따그닥 따그닥.
나는 달리는 말 위에서 간만의 시원한 공기를 만끽했다.
새하얀 명마가 갈기를 휘날리며 달리는 가운데, 주변 풍경이 쏜살같이 지나간다.
“기분 좋네.”
그에 대꾸라도 하듯 말이 히이잉! 하고 울었다.
언뜻 거칠게 달리는 듯하나, 주인과 한몸이 되어 달리는 듯한 명마의 승차감은 어디 비할 데가 없다.
얼굴을 가르고 지나가는 기분 좋은 바람.
허파 깊숙한 곳까지 들어오는 숲의 향기에 심장이 기분 좋게 박동한다.
“이른 아침부터 말을 달리니 참으로 상쾌합니다, 주군.”
“간만에 야영도 즐길 생각을 하니 신나는군요, 클클.”
최근 좋은 말을 새로 뽑은 디터와 발닉도 평소 이상으로 유쾌해 보였으니.
유일한 문제라 하면···.
“으아아악!”
“그··· 앨빈 님, 괜찮으신가요?”
“흐윽, 괘, 괜찮습니으아아악!”
말을 탈 줄 모르는지라 디터의 등 뒤에 매미처럼 붙어 있는 앨빈 정도라고 할까.
앨빈은 말이 다그닥거릴 때마다 안타까울 정도로 비명을 질러댔다.
‘돌아가면 승마부터 배우게 해야겠군.’
설마 앨빈이 말을 못 탈 줄은 상상도 못 했다.
아무리 평민의 손에서 자랐다고 해도 어느 정도 기본 소양은 교육받지 않았을까 했는데, 소년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아예 갓난아기 때부터 농가에서 컸단다.
‘어릴 땐 제가 어디 다리 밑에서 주워온 신세인 줄만 알았어요. 그러다 여섯 살 때 처음 조부를 만나뵙고 그게 아닌 걸 알게 되었죠.’
소년으로서도 ‘흑의 기사’를 본 건 그때와 임종 때, 단 두 번이 전부란다.
불쌍하기로는 얘도 세자르 못지 않은 게, 자신의 뿌리조차 모른 채 천덕꾸러기 같은 어린 시절을 보냈다는 것 아닌가.
그나마 글자를 빨리 깨우친 덕분에 어릴 때부터 신전 일을 도왔고, 거기 있는 수많은 책을 읽으며 힘든 시간을 버텼다 한다.
‘에드먼드 경, 거 너무한 것 아닙니까.’
아무리 그래도 본인 손자인데 너무 무심하지 않았나 싶다. 게다가 기껏 임종할 때 불러놓고서 하는 말이라곤 ‘나 대신 편지 써라’가 다였으니···.
나도 모르게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렇게 사랑을 못 받고 자란 것치곤 앨빈도 참 잘 자랐다 싶다.
“우욱, 자, 잠깐! 토할 것 같···.”
···조금 모자란 면이 있는 것 같긴 하지만 말이다.
앨빈이 말 위에서 속엣것을 게워내기 직전, 디터는 다행히 말을 멈췄고.
“거, 앨빈 님이 많이 힘드신 듯한데 좀 쉬었다 갈까요.”
“그러지.”
우리는 울창한 숲의 초입에서 잠시 쉬어가기로 했다.
* * *
타닥, 타닥.
뜨끈한 열기를 뿜어내는 모닥불을 모두가 둘러싸고 앉은 가운데.
불 위에서 토끼 고기가 보기 좋게 익어갔다.
갓 잡아 신선해서 그런지 고기 익는 냄새가 유독 식욕을 자극한다.
“와··· 정말 꿈만 같아요.”
그리고 앨빈은 말에서 내린 순간부터 지금까지 감탄사를 연발하는 참이었다.
“소설 속에나 나올 법한 걸 제가 실제로 하고 있다니.”
“소설 속에 나오다니?”
“야영을 나오는 것도 그렇고요. 이 모닥불 하며, 야외에서 사냥해 잡은 고기를 구워먹는 거며.”
앨빈의 눈이 모닥불 위에서 익어가는 고기에 향했다.
“전 그 작은 농가를 평생 벗어나지 못할 줄 알았거든요. 아카데미까지 온 것만 해도 천운이라고 생각했는데···.”
소년은 그다음 말을 삼켰다.
그에게는 이 모든 것이 모험소설 속에나 나오는 내용처럼 여겨지나 보다.
뭐, 나도 처음엔 그랬으니까.
‘지금 봐도 발닉의 불 피우는 솜씨나, 디터의 사냥 솜씨는 일류 중의 일류이기도 하고.’
앨빈의 그러한 감탄은, 발닉이 손수 향신료를 쳐서 구운 고기를 한 입 뜯어먹었을 때 절정에 달했다.
“우왓, 이, 이건··· 입에서 살살 녹아요! 발닉 경은 대체···.”
발닉은 껄껄 웃었고, 디터도 기분이 좋은지 말없이 미소만 지었다.
나 역시 피식 웃으며 한마디했다.
“앨빈, 다 없어지기 전에 얼른 먹는 게 좋을걸.”
그렇게 기분 좋게 식사를 마무리한 뒤.
우리는 지도를 놓고서 머리를 맞댄 채 앞으로의 여정을 궁리했다.
“지도만 보면 몇 시간 정도 더 가면 될 것 같군요.”
“그럼 다시 출발하지.”
그 말을 끝으로 우리 일행은 다시 말을 달렸다.
앨빈도 속을 든든히 채운 덕분인지, 혹은 어느 정도 적응이 된 덕분인지는 모르겠지만 꽤 괜찮아 보였다.
* * *
그렇게 반나절 정도 말없이 말을 달렸을 무렵.
지도에 표시된 바로 그 지점에 도착했음을 직감했다.
울창한 수목이 시야를 가릴 정도였던 방금 전과는 달리, 바닥의 흙 색깔부터가 다르다.
헐벗은 나무 몇 그루만이 외로이 서 있는 가운데, 저 앞에 끊어진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저기가 바로 문제의 절벽, 그리고 그 아래에는···.
‘미증유의 전장.’
원작에서도 전부 다 밝혀지지 않은 수수께끼.
그것을 눈앞에 두자 심장이 기대감으로 두근거렸다.
“여기서 멈추자.”
히이잉! 고삐를 쥐고 말을 멈춰세웠다.
나무가 없어서인지 유독 날카로운 바람이 뺨을 스치고 지나갔다.
내 뒤로 따라오던 디터와 발닉, 앨빈이 말을 세우는 동안, 나는 저 아래 펼쳐진 절벽을 내려다보았다.
‘까마득할 정도까지는 아니군.’
유적이 발견된 것은 이름 없는 상인이 이 절벽에서 우연히 떨어진 덕분이었다.
그 상태로 용케 살아남았다 했더니, 역시나 그리 높지 않아 보인다.
근처 나무에 말을 묶은 뒤 절벽 근처로 돌아왔다. 어느샌가 옆에 선 발닉이 두꺼운 강철 갈고리를 꺼냈다.
“이걸 여기 걸고서 내려가지요.”
“준비 잘해왔네.”
발닉은 철저하게 준비해온 모양이었다.
사람 수에 맞춰 갈고리 하나씩을 꺼내 절벽의 지면에 단단히 박았고, 거기에 튼튼한 밧줄을 동여맸다.
“자, 이제 이걸 이렇게 몸에 두르고 천천히 내려가면···.”
발닉을 따라 밧줄을 몸에 묶기 시작한 나와 디터와는 달리.
“어, 그, 설마··· 지금 절벽을 내려가겠다는 얘기는 아니죠?”
“앨빈 님, 괜찮습니다. 눈 딱 감고-”
“안 괜찮다고요! 저, 저는 높은 데를 싫어해서··· 으아아앗!”
고소공포증이 있는 사람들의 특징.
자신이 높은 곳을 무서워하는 게 아니라 단지 ‘싫어하는’ 것뿐이라고 극구 강조한다.
어쨌거나 앨빈은 발닉에 의해 강제로 묶였고, 우는 소리를 내며 밧줄에 매달렸다.
“제가 먼저 가겠습니다.”
발닉이 첫 번째, 그다음이 디터, 그다음이···.
“세자르 님이 먼저-”
“내가 마지막으로 가겠다.”
해석하자면 니 놈이 내려갈 때까지 나도 안 가겠다, 라는 내 말에 앨빈은 한숨을 푹 내쉬며 내려갔다.
그 짧은 시간 동안 온갖 비명과 애원을 선보였는데, 바닥에 내려오고 나니 뒤늦게 부끄러웠는지 갑자기 입을 다물었다.
앨빈 놈까지 무사히 잘 내려간 걸 보고 나 역시 밧줄을 타고 내려왔고.
“오···.”
눈앞에 펼쳐진 풍경에 나도 모르게 감탄사가 흘러나왔다.
‘야트막한 절벽 아래에 이런 광경이 숨어 있으리라고는 상상도 못 했는걸.’
나무는 단 한 그루도 없다.
덕분에 탁 트인 시야에서 눈에 띄는 것은 온통 회색 모래, 아니 재로 뒤덮인 풍경.
왜 이런 곳에 재가루가 있는 것일까.
주변을 둘러보자 평원에 가까운 곳이지만 규모가 의외로 작았다.
‘거기다 고대의 물건들은 대체 어디 있는 거야.’
아님 이 먼지처럼 보이는 회색 모래를 파내면 뭔가 나오는 걸까.
“발닉, 삽 좀 줄래?”
“여깄습니다.”
현장전문가답게 발닉은 그럴싸한 발굴 도구까지 챙겨온 터였다. 우리는 각자 삽을 하나씩 들고 근처 모래를 파헤치기 시작했다.
푸욱, 푸욱.
푹, 푸욱.
그렇게 한 시간 정도 들쑤시고 나자, ‘고대의 물건’으로 추정되는 것들이 한두 가지씩 나오기 시작했다.
“도, 도련님! 여기 검이 하나 나왔는데요.”
“이쪽에서도 투구가 나왔습니다.”
“어, 정말요? 어디어디!”
유물의 수는 상당했지만, 오랜 시간 비바람을 맞은 탓인지 보존 상태가 좋지 않았다.
고고학적 가치는 있을지 몰라도 실질적 가치가 얼마나 되려나.
그런 의문이 생겨난 순간, 오른손에서 희미한 진동이 느껴졌다.
진동의 근원지는 다름 아닌 사파이어 반지.
‘···!’
이 반지야말로 유적의 입장권이자, 원작에서 밝혀지지 않은 수수께끼를 밝혀줄 열쇠이기 때문일까.
나는 반지의 진동이 더욱 커지는 곳을 찾으며 움직였다.
“이쪽으로 가보자.”
툭툭.
발 끝으로 조심스레 건드려가며 이동하는데, 유난히 지면이 부드러운 것이 느껴졌다.
사파이어 반지의 진동 또한 유난히 강해졌다.
‘여기에 뭔가가 숨겨져 있는 걸까.’
그때, 앨빈이 신이 난 기색으로 이쪽으로 달려왔다.
“섣불리 움직이지 말고 조심···.”
그렇게 말하기가 무섭게 앨빈이 비명을 질렀고.
“으아아아악!”
그와 동시에 푸욱!
소년의 발 아래가 꺼져들었다.
“야!”
“앨빈 님!”
그러게 설치지 좀 말랬더니.
앨빈의 몸은 이미 잿빛 모래 아래로 꺼져버린 터였고···.
“구멍이··· 나 있는데요?”
“···.”
발닉의 말처럼 앨빈이 빠진 곳에는 거대한 구멍이 생겨나 있었다.
‘꼭 싱크홀처럼 생겼군.’
시커멓게 어두운 구멍 아래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님! 세자르 님! 이리로 내려오세요!”
“어, 앨빈 님 목소리입니다!”
“다행히 안 다치셨나 본데요.”
앨빈의 목소리는 멀쩡하다 못해 잔뜩 흥분한 기색이었다.
“여기! 여기에 지하도시가 있어요!”
···지하도시라고?
그 순간.
스치듯 읽고 지나갔던 원작의 한 구절이 불현듯 떠올랐다.
『학자들은 고대유물의 주인을 두고 의견이 분분했지만, 대다수는 비슷한 결론을 내렸다.
···역사상 가장 뛰어난 대장장이 종족인 ‘드워프’의 지하도시에서 나온 유물일 가능성이 가장 높다는 결론을 말이다.』
아무래도 드워프의 지하도시를 발견한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