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공작가의 서자로 살아가는 법-44화 (44/176)

숨겨진 이능이 발현되다

4강전은 무던하게 이길 수 있었다.

윈저 가문의 세 명은 듣던 대로 지치지 않는 체력을 자랑했지만.

‘아무리 체력이 좋아도 허점을 노출하면 그것으로 끝.’

셋 모두가 리암보다 훨씬 더 정석적인 검법을 구사하는 터라 내게는 더 유리해기도 했다. 리암이 한 명을 이겼고, 내가 나머지 두 명의 허를 찌르며 경기는 비교적 싱겁게 마무리되었으며.

그리하여 우리가 결승에서 맞이하게 될 상대는-

‘예상했던 대로 팰러스단이다.’

팰러스단 또한 4강전에서 승리를 거둬 결승전에 올라왔다.

그것도 그냥 무난한 승리가 아니라 완전무결한 압승을 거뒀으며.

‘지난 8강과 마찬가지로 선봉인 사울 혼자서 상대 팀 세 명을 모조리 박살냈지.’

이번 경기에서 중견이나 대장의 실력을 볼 수 있을까 싶었지만, 헛된 기대로 돌아갔다.

우리 팀은 선수 전원의 실력이 노출된 것과 달리(앨빈은 나서지 않았지만 싸울 수 없는 선수이니 논외로 하고), 저쪽은 단 한 명만이 노출된 만큼 양 팀의 정보량부터가 차이 나는 상황이다.

‘유일하게 믿는 구석이라 하면 쾌유환 정도가 되겠지만.’

단 한 번만 쓸 수 있는 비장의 무기이니만큼, 최대한 버틸 만큼 버틴 뒤 써먹어야 한다.

그렇게 다소 불안한 상황에서 우애단 대 팰러스단의 결승전이 시작되었다.

“결승시합 1회전, 리암 페킹튼 대 사울 톨!”

와아아아!

고막을 때리는 듯한 함성 속에서 두 선수가 경기장 한가운데에 섰다.

맨 앞에 자리한 선수석에 앉은 덕분에 두 명의 얼굴 표정까지 전부 보인다.

카렌이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리암이 엄청 긴장한 것 같은데···.”

실력 차이가 압도적인 상대이니만큼 긴장이 될 수밖에.

얼마 전,

우리는 출전 차례를 두고 열심히 머리를 굴렸다.

리암이 선봉, 내가 중견, 앨빈이 대장을 맡기로 했는데, 앨빈까지 차례가 돌아가지 않게 하기 위한 궁여지책이나 다름 없었다.

1회전 상대를 리암이 이겨주고 내가 2회전과 3회전 상대를 이기는 게 베스트이지만···.

나는 리암에게 이기라고 주문하지 않았다.

‘최대한 버텨라.’

안 그래도 긴장한 놈에게 반드시 이기라는 말은 독이 될 테니.

나는 무거운 발걸음으로 나서던 리암의 뒷모습을 떠올리며 경기에 집중했다.

“준비···.”

심판이 ‘시작!’ 하고 외치자마자 사울의 검이 부웅! 하고 허공을 갈랐다. 그 사나운 기세에서부터 리암이 밀리는 것이 보인다.

“엄청나네.”

카렌의 말마따나 사울이란 선수는 엄청난, 아니 압도적인 느낌이었다.

스피드 자체는 무난하지만 키가 큰 덕분에 리치가 길다.

핵심은 돌처럼 단단해 보이는 몸에서 뿜어내는 강력한 파워.

“사울! 사울 톨!”

“압살해라!”

“봐주지 마라!”

사울의 앞선 경기들을 보고 벌써 팬이 된 사람들이 환호성을 보냈다.

‘시원시원하고 호쾌한 검은 사람들의 마음을 쉽게 끌기 마련이지.’

챙! 챙강!

그 힘이 얼마나 센지 두 개의 검이 부딪칠 때마다 공중에서 불꽃이 튀는 듯하다.

캉! 챙캉!

힘만 따지자면 리암도 어디서 밀리는 편이 아닌데도, 사울의 검격을 막아낼 때마다 리암이 이를 악물었다.

‘검이 부러질 것 같군.’

비록 리치와 파워면에서는 불리하지만, 리암에게도 유리한 점은 있다.

‘경험!’

우리는 앞서 사울의 경기를 몇 차례나 본 터였다.

그것을 토대로 놈의 약점과 습관 따위를 철저하게 분석했고, 그에 대비하여 집중 훈련을 했다.

게다가 리암은 어릴 적부터 수많은 검객들의 검술을 보며 자라온 터, 몸에 배인 경험치부터가 다르다.

‘이는 결국 전투본능의 차이로 이어지지.’

무의식 중에도 전투에 집중할 수 있느냐, 없느냐의 차이 말이다.

그 덕분일까.

1회전은 사울의 승리로 금세 끝날 것으로 보였지만, 경기는 어느새 1분을 넘어 2분에 달하고 있었다.

생각보다 쉽게 승패가 갈리지 않자,

일방적으로 사울을 응원하던 관중석 분위기 역시 바뀌었다.

“어, 생각보다 꽤 하는데?”

“의외로 둘이 호각을 다투잖아.”

“리암! 리암도 힘내라!”

허억, 허억.

리암은 숨을 거칠게 몰아쉬었지만 두 다리는 굳건해 보였다.

흔들림 없는 검은 차분하게 사울의 것을 하나 하나 받아쳐냈다.

리암의 공격이 시간이 흐를수록 더욱 단단하고 정교해지는 것과는 달리.

“흐으, 하아!”

힘이 넘치는 호쾌한 검으로 상대를 밀어붙이던 사울은 상당히 힘이 빠진 모양새였다.

챙! 챙강!

아까와는 달리 날카로움도, 정교함도 없다.

‘리암이 허를 찌르고 들어갈 수도 있겠는데.’

부웅!

리암의 검이 순식간에 방향을 바꿔 그의 옆구리를 노리고 들어갔다.

공격이 먹히는 건가- 싶은 순간.

“어딜 감히!”

사울이 남은 힘을 끌어모아 그의 검을 받아쳐냈다.

생각 외로 강력한 반격에 리암의 자세가 무너진 틈을 노려-

“으아아!”

사울이 전력을 다해 검을 부딪쳐왔고-

챙캉! 팽그르르!

리암의 검은 그의 손을 떠나 허공으로 붕 날아갔다.

“···.”

리암은 제 손을 떠나는 검을 허무한 얼굴로 응시했다.

검을 부딪친 충격 때문인지, 그는 통증으로 일그러진 얼굴을 한 채 제 손목을 붙잡고 있었다.

“1회전 종료! 사울 톨 승리!”

온몸이 땀에 흠뻑 젖은 채 들어오는 리암의 어깨를 툭 쳐주었다.

“고생했다. 나머지는 내게 맡겨.”

리암만큼이나 지친 사울을 상대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을 테니.

예상했던 대로 2회전은 꽤 싱겁게 끝났다.

“2회전 종료! 레핀 가문의 세자르 승리!”

사울을 체력이 온전한 상태로 상대해야 했다면 나 역시 승패를 점칠 수 없었겠지만.

‘리암이 놈의 체력을 고갈시킨 덕분이다.’

두 다리로 멀쩡히 서는 것조차 힘들어하는 사울을 이기는 것은 그렇게 어렵지 않았으니 말이다.

문제는 그다음인데.

팰러스단의 중견선수에 대해 아는 게 전혀 없다는 거다.

‘사울과 마찬가지로 롯은 원작에 거의 등장하지 않았으니까 말이지.’

그렇게 생각하니 더욱 긴장이 된다. 심장이 제멋대로 쿵쿵거리는 가운데, 심판이 다음 선수를 호명했다.

“롯 카디움!”

그 목소리에 누군가가 경기장 한가운데로 걸어나왔다.

생각 외로 크지 않은 키에 호리호리한 체격.

하나로 묶은 갈색 생머리가 허리까지 내려오는···.

‘롯 카디움’의 모습을 본 순간, 나도 모르게 눈을 크게 떴다.

‘롯이··· 여자였어?’

* * *

팰러스단 대 우애단의 결승전.

타릭과 우만은 관중석의 맨 앞에 자리한 채였다.

그들의 시야에 롯과 세자르의 대결이 들어왔다.

두 개의 검이 현란하게 움직였다.

챙! 챙강! 챙캉!

허공에서 수없이 부딪칠 때마다 날카로운 금속성이 귀를 때린다.

언뜻 무질서하게 움직이는 듯하지만, 둘의 검술은 무척이나 정교했다. 검을 아는 입장에서는 미리 짜놓고서 합을 주고받는 것처럼 보일 정도로 빈틈이 없다.

타릭은 저도 모르게 감탄하며 중얼거렸다.

“와, 저거 보여? 둘이 거의 비등비등하다고.”

반면 우만은 심기가 불편한 얼굴로 아무 대꾸도 하지 않았다.

결승전에 임하기 직전, 브렉은 팰러스단의 완전한 승리를 점쳤다.

‘사울 혼자서 셋을 다 박살낼 테니 롯이나 내 차례까지 올 것도 없을 거다.’

실제로 앞선 경기들에서 사울은 기대 이상의 기량을 보여주었다.

상대 선수 세 명을 혼자서 다 이기는 것은 물론이요, 특유의 화려하고도 호쾌한 검술로 팰러스단의 인기를 한층 더 높이기까지 했지만···.

‘설마 그 사울이 질 줄은 몰랐는걸.’

리암 페킹튼의 실력을 너무 얕잡아 봤던 것이 패인이었다.

페킹튼 가문은 대대로 뛰어난 기사와 검객을 배출해내기로 유명했지만, 리암의 존재는 불세출의 천재 소리를 듣는 형들에게 가려져 있었으니까.

리암이 있는 힘을 다해 상대의 기력을 뺀 덕분에 세자르 놈이 사울을 이긴 것까지는 그렇다 쳐도···.

“우만, 말해봐.”

“뭘.”

“너도 세자르 놈이 설마 저 ‘롯’과 대등하게 싸울 줄은 예상 못했지 않냐?”

우만은 대답 대신 입술을 깨물며 타릭을 노려보았다.

그 험악한 눈빛이 꼭 ‘더는 건드리지 마라’고 경고하는 듯했지만, 그럼에도 타릭은 실실 쪼개며 말했다.

“롯은 우리의 히든카드인데 말이지.”

“···.”

“심지어 그 히든카드가 패배했다는 걸 알면 과연 팰러스 님이-”

“타릭.”

우만이 짓씹듯 내뱉은 목소리에 타릭이 입을 다물었다.

“···롯은 지지 않는다. 만의 하나 진다면 그건 그녀의 효용 가치가 사라진다는 의미이겠지.”

“흐흐, 그럼 내가 데려가도 돼? 롯은 꽤 재미 있는 실험체가-”

“안 돼.”

타릭의 광기 어린 눈동자를 보며 우만은 못 박듯 말했다.

롯의 손 끝 하나라도 건드리면 네 놈이 자는 중에 숨을 끊어버리겠다고.

“쳇, 아쉽네.”

‘벽을 통과하는 자’ 우만의 협박이 진심임을 아는 타릭이 금세 마음을 접었다.

두 사람의 시선이 다시 경기에 향한 순간, 심판의 목소리가 울려퍼졌다.

“시간 종료! 양 선수 모두 휴식을 취한다!”

타릭이 눈을 크게 떴다.

“세자르 놈이··· 롯을 3분이나 막아냈다고?”

* * *

허억, 허억.

선수대기석을 향해 힘겹게 두 발을 뗐다.

온몸이 물에 젖은 솜처럼 무거운 가운데, 롯의 검에 찔린 곳들이 얼얼하게 아팠다.

그럼에도 나는 빈틈을 내보이지 않았다.

급소를 노출하지도, 검을 놓치지도 않았다.

누가 보기에도 내가 수세에 몰리고 있음이 명백한 상황에서도 계속 버텼다.

‘조금만 더.’

어떻게든 롯을 이긴 후, 다음 경기에 임하기 직전 쾌유환을 먹고 브렉을 상대한다.

그게 내 계획이었는데.

“허억, 허억, 대체 왜···.”

심판의 지시에 따라 대기석으로 향하면서도 이해가 되지 않았다.

타임아웃 규정이 있었다는 건 금시초문이었으니까.

‘세자르 군, 그게 말일세.’

심판의 설명은 이랬다.

한 선수당 최대 3분까지 경기장에 설 수 있으며, 제한시간이 지난 뒤에는 반드시 3분간 휴식을 취해야 하는 ‘선수 보호 규정’의 일종이라고 말이다.

‘검술대회가 일종의 데스매치 형식이니 그런 규정을 안배해놓은 거로군.’

그 휴식시간 동안에는 다음 선수들이 나와 경기를 치르며, 만일 남은 선수가 없다면 경기가 3분간 중단되었다가 재개된다고 덧붙였다.

‘물론 대부분은 3분 이내에 승패가 결정되는 만큼, 실제로 적용된 사례가 드물긴 하네만.’

심장이 금세라도 폭발할 것처럼 뛰어대는 가운데 대기석 앞에 가 서자, 카렌이 조심스레 말했다.

“세자르, 고생했어.”

옆을 돌아보자, 앨빈이 기백을 다지듯 두 주먹을 불끈 쥐었다.

“나가서 최대한 버텨볼게요.”

가급적 앨빈을 경기에 내보낼 생각은 없었지만 일이 이렇게 되어버렸다.

‘어쩌면 이 상황 자체는 우리에게 더 유리할지도.’

앨빈이 브렉의 체력을 조금이라도 깎아준다면, 내가 롯을 어떻게든 이기고 나서 브렉을 상대할 때 도움이 될 수 있으니.

하지만 나는 이렇게 말했다.

“앨빈, 절대 무리하지는 마라.”

“뭐, 제가 무리해봤자 금세 경기가 끝나겠지만···.”

앨빈이 멋쩍게 웃으며 말했다.

“조금이라도 상대의 힘을 빼볼게요.”

비장한 얼굴로 경기장으로 나아가는 그의 뒷모습을 눈에 담으며, 주머니에 넣어뒀던 ‘비장의 무기’를 꺼냈다.

‘쾌유환!’

효과가 나타나려면 최소 1분이 있어야 하는 만큼, 나는 쾌유환을 얼른 입안에 털어넣었다.

우웩.

이전의 풍근환 때 느꼈던 염소 똥과 한약의 미각적 콜라보레이션이 입안을 가득 채웠다.

구토감을 억누르며 간신히 씹어삼키는데, 카렌이 미간을 찡그리며 중얼거렸다.

“으엑, 이게 무슨 냄새야.”

모른척하며 눈앞의 경기에만 집중하자, 심판이 다음 경기의 시작을 알렸다.

“앨빈 밀 대 브렉 헬리오스!”

브렉 헬리오스.

아무리 봐도 최악의 네이밍이라고 생각하는, ‘팰러스의 트라이던트’로 불리는 세 명의 정예 중 하나이자,

원작에서도 유력 가문으로 등장하는 ‘헬리오스 백작가’의 장남.

“꺄악, 브렉 님이다!”

“브렉! 브렉!”

“헬리오스! 헬리오스!”

그의 명성을 보여주듯 관중석의 환호가 돌연 커졌다.

처녀들이 선망하는 이상형의 외모를 지닌 브렉 헬리오스 앞에서 우리의 앨빈은 조금 주눅 든 모습이었다.

“앨빈, 힘내!”

그를 응원하는 카렌의 목소리가 군중의 함성에 묻힌 순간.

심판의 구호와 함께 브렉의 검이 부웅! 하고 허공을 갈랐다.

“흐앗!”

깜짝 놀란 앨빈이 재빨리 몸을 빼며 검을 피했다.

제 검을 피할 줄 몰랐는지 브렉이 곧이어 공격을 이어왔지만, 앨빈은 또다시 그의 공격을 피해냈다.

···공격을 읽는 게 아니라 본능으로 피하는 것이었다.

‘내가 생각했던 대로야.’

안경 소년과 며칠간 훈련하며 느낀 건데, 신체 능력이 생각 외로 나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훌륭했다.

늘 구부정한 자세로 다녀서 몰랐지만 키도 무척 컸고, 겉보기완 달리 체격이 좋은 데다 근육이 잘 붙는 체질이었다.

마른 멸치 같은 몸을 힘겹게 키우는 내 입장에선 ‘왜 이런 훌륭한 하드웨어를 썩히고 있지’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하지만 처음의 두 번은 요행이었다.

“이 거지 같은 자식이!”

브렉이 분노를 실어 날린 공격이 명중한 것을 시작으로.

앨빈은 속절없이 얻어맞기 시작했다.

부웅, 하고 날아온 검 끝이 소년의 명치를 찔렀다.

크억, 하고 고꾸라지는 앨빈의 몸을 브렉의 검이 사정없이 때렸다.

“어딜 감히 내 검을 피해!”

옆구리, 복부, 허벅지···.

급소가 훤히 드러나 있는 데도 브렉은 상대를 끝장내지 않았다.

오히려 급소가 아닌 부분만 공격하며 앨빈에게 고통을 주는 걸 즐기는 모습이었다.

“우욱··· 제발···.”

“크크, 그러게 처음부터 고분고분하게 굴었으면 얼마나 좋아.”

퍽! 푸욱!

앨빈의 비명이 커질수록 브렉의 웃음소리도 커졌다.

보는 것만으로도 잔인한 장면에 관중석에서 야유가 터져 나왔다.

“너무 심하다!”

“경기 종료시켜라!”

그러나 심판은 경기를 종료시키지 않았다.

브렉이 규정에 어긋나지 않는 선에서 아주 교묘하게 상대를 괴롭히고 있었기 때문.

유일하게 경기를 끝내는 방법은 앨빈이 쓰러지거나 기절하는 것뿐인데···.

“앨빈! 그냥 무릎을 꿇어!”

보다 못한 카렌이 벌떡 일어나 외쳤지만.

앨빈은 흔들리는 무릎을 지탱해가며 간신히 서 있었다.

독기를 가득 품은 두 눈은 ‘절대 무릎만을 꿇지 않겠다’라고 말하는 듯했다.

경기 시작 전 ‘제가 맞는 거 하나는 이골이 났거든요’이라며 씩 웃던 앨빈의 얼굴이 떠올랐다.

“···빌어먹을.”

어느새 쾌유환이 제 효과를 낸 것인지 지쳤던 몸에 활기가 돌아왔지만, 브렉은 경기를 끝낼 생각이 없어 보였다.

“너 같은 버러지들에겐! 이렇게 교훈을 보여줘야···.”

그의 검에 온몸을 두들겨 맞는 앨빈을 보며 나는 두 주먹을 세게 그러쥐었다.

손톱이 손바닥 살을 파고들 정도로 주먹을 세게 쥔 바로 그 순간.

금방이라도 기절할 듯한 앨빈의 두 눈에서, 기이한 안광이 번뜩였다.

그의 전신 주변으로 알 수 없는 무언가가 일렁인다. 소년에게서 느껴지는 알 수 없는 이 기묘한 기운은···.

‘이건 설마.’

어째선지 앨빈의 주사위 결과가 3이었다는 것이 갑자기 떠올랐다.

“어, 일어난다!”

누군가의 외침처럼,

앨빈이 아주 서서히 몸을 일으켰다.

···아까와는 완전히 달라진 눈빛으로.

‘이 느낌은··· 얼마 전 그림자 보법을 완성했을 때의 그 느낌이잖아.’

대기석을 뛰쳐나가려던 나는 그만 제자리에 우뚝 멈춰서고 말았다.

아무래도 앨빈이 각성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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