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공작가의 서자로 살아가는 법-30화 (30/176)

승부의 세계에는 승리 아니면 패배뿐

부우웅!

보리스의 검이 무서운 기세로 허공을 갈랐다.

첫 합은 살짝 흘려보낸 뒤.

창! 챙강!

두 번째 합은 정면으로 맞붙었다.

‘생각보다 힘이 엄청난걸.’

공작저에서 집사장 카를과 싸울 때가 기억난다.

그때와 비슷한, 아니 그 이상으로 강한 힘이라고 생각한 순간-

“흐아아앗!”

보리스가 기합을 내지르며 찔러 들어왔다.

‘기술 자체는 정교하지 않군.’

어딜 어떻게 막아야 할지 그대로 눈에 보이는 수.

그러나···.

‘흐읍.’

생각 외로 강력한 힘에, 손목에 지이잉 하고 통증이 전해진다.

물론 보리스 또한 놀란 것은 마찬가지인 듯했지만.

“뭐, 뭐야! 이걸 막아내다니···.”

대련을 지켜보는 학생들 사이에서도 웅성거림이 커졌다.

“세, 세자르가 보리스의 검을 막아냈다고?”

“아무도 정면으로 받아낸 적이 없는데···.”

“이 정도 되면 보리스를 기절시킨 게 우연이 아닌 거 아냐?”

의혹과 기대감이 한데 섞인 눈빛과 수군거림.

보리스는 콧김을 내뿜더니 검을 고쳐 쥐었다.

“어, 어쩌다 보니 막아낸 것 가지고 의기양양하긴!”

“···.”

“앞으론 봐주지 않겠다!”

부우웅!

힘이 잔뜩 실린 그의 검을 나는 그대로 흘려보냈다.

그러는 동시에 발로 지면을 세차게 박차고 나아가.

‘하앗!’

플레쉬(찌르기)!

온 무게를 실어 내지른 날카로운 공격은-

“···크윽.”

보리스의 두터운 옆구리를 그대로 파고들었지만.

“이 정도로··· 내가 포기할 것 같아?”

놈은 입가를 일그러뜨리며 씩 웃더니 다시 검을 꼬나들었다.

그와 동시에 날렵하게 들어오는 검을 나는 막아내야 했고.

‘어떻게 된 거지.’

분명 공격은 명중했다. 하지만···.

‘카렌의 말로는 맷집이 황소 같다고 했나.’

보리스의 공격을 받아내는 사이 사이,

나는 그의 몸 여기저기를 수없이 찔렀다.

허리, 옆구리, 겨드랑이···.

급소는 아니지만 약한 공격만으로도 상당한 치명타를 줄 수 있는 부분을 맞아도.

“크으, 어림없지!”

보리스는 통증을 못 느끼는 기계마냥 검을 휘둘러댔으니.

체력도 줄어들지를 않는지, 2분 중반에 가까워진 상황에도 놈은 지치기는커녕 팔팔하게 날아다녔다.

‘체력과 근성도 어마어마한 놈이군.’

아무리 리포스트 기술로 반격해도 소용이 없으니.

···이건 어느 모로 보나 내 계산을 벗어난 상황이었다.

‘최악의 경우 시간만 끌다가 무승부로 끝날 수도 있다.’

호흡은 점점 거칠어지고 다리는 무거워진다.

체력이 떨어질수록 공격의 정확도 또한 저하되기 마련.

‘그러기 전에 한시라도 빨리 급소를 노려야 한다.’

후우우.

나는 호흡을 고르며 자세를 재정비했다.

허리와 다리를 낮춰 무게 중심을 안정시키고.

부웅!

축 처진 검 끝에 다시금 힘을 실었다.

“하하, 꼴에 마지막 발악을 해보려고···.”

나의 지친 모습에 보리스가 잠시 방심한 틈을 타-

‘섣불리 공격하지 못하도록 페인트 어택에 나선다.’

부웅!

놈의 미간을 향해 검을 곧게 내뻗었다.

“···!”

미간을 노리고 들어오는 공격에 보리스가 헛것이라도 본 듯 화들짝 놀라는 순간.

‘페인트가 먹혔으니.’

왼손은 뒤로 쭉 뻗고 발을 한 발 더 내디디며,

검을 쥔 손을 1미터 가량 내뻗었다.

‘런지(돌진)!’

부우웅!

훤히 드러난 놈의 목을 노린다!

푸욱!

검 끝이 곧바로 목을 찌르고 들어갔다.

“커어억!”

목젖 바로 위를 압박하자 보리스가 구토할 것처럼 신음했다.

승부가 갈린 그 찰나의 순간, 숨죽여 지켜보던 이들 사이에서 경악의 신음이 터져 나왔다.

“바, 방금 어떻게 된 거야?”

“···맙소사.”

“세, 세자르가 보리스를···!”

그럼에도 보리스는 패배를 시인하지 않았고, 나 역시 그의 목을 압박하는 검에 더더욱 힘을 주었다.

“그, 그만, 거기까지!”

당황한 교관이 대련 종료 구호를 외치고 나서야 검을 뗐다.

보리스 놈이 바닥에 무너져 내렸다.

“우욱···.”

그대로 근처 나무로 달려가서 속엣것을 게워냈지만.

나는 그 모습을 보고 조소할 기력조차 없었다.

“허억, 허억···.”

입에서 단내가 날 정도로 움직였기 때문일까.

목 끝까지 숨이 차고 심장이 폭주한 증기기관차처럼 뛰어댄다.

온몸이 무겁다 못해 두 발로 일어서지 못할 정도이지만···.

‘그래도 일어서야 해.’

다섯 명을 다 이겨야만 한다.

여기서 이대로 무너졌다간 지금까지의 승리가 헛수고로 돌아갈 테니까.

‘생각해보면 현생에도 그랬지.’

뒤돌아볼 수도, 물러설 수도 없는 듯 살아왔다.

지금 이 순간도 마찬가지다.

‘내게 물러설 곳은 없으니까.’

등을 보이는 순간.

저들은 언제 날 두려워했냐는 듯 사정없이 달려들어 물어뜯을 거다.

그것이야말로-

‘아무것도 가지지 못한 자가 이빨을 드러냈을 때 세상이 보이는 반응이니까.’

흐읏, 신음하며 힘겹게 자리에서 일어났다.

검을 들고서 또다시 대련 장소로 발을 옮기려 하는 순간.

“세자르 군.”

“···.”

“이제 그 정도면 자네의 실력은 충분히 입증해 보인 것 같은데.”

교관은 진심으로 나를 걱정하는 기색이었다.

“이제 들어가는 게 어떤가? 내 재량하에 다음 대련은 무승부로 처리해줄 테니-”

“아닙니다. 싸울 겁니다.”

승부의 세계에 무승부란 없다.

동전의 앞면과 뒷면이 있듯, 흑과 백이 있듯.

승리 아니면 패배가 있을 뿐.

‘그리고 패배자에게 세상은 잔인하기 그지없지.’

저 멀찍이 앉은 바야르 놈의 시선을 느끼며 나는 대답했다.

···언제라도 빈틈이 보이면 상대를 물어뜯을 준비가 돼 있는 하이에나 같은 눈빛을.

“하지만 괜찮다면··· 5분만 휴식을 취해도 될까요?”

교관이 고개를 돌려 리암의 표정을 살폈다.

리암은 뭔가 깊은 인상을 받은 얼굴이었는데, 교관이 양해를 구하자 멍하니 고개를 끄덕였다.

“네, 괜찮습니다.”

그렇게 얻어낸 5분간.

나는 최선을 다해 호흡을 다스리며 휴식을 취했다.

어느 정도 컨디션을 회복했다 생각한 순간,

교관이 시합 재개를 알렸다.

“6회전, 세자르 대 리암 페킹튼!”

무거운 다리를 이끌고 대련장 한가운데에 서자.

거짓말처럼 기운이 되돌아온다.

‘놈을 이기고 말겠다.’

다른 무엇도 아닌, 상대를 이기겠다는 호승심만이-

지금 나를 움직이는 유일한 원동력.

검을 들어 정중앙을 겨눈다.

주변의 모든 것이 포커스를 벗어난 풍경처럼 흐릿한 가운데.

리암과 그의 검만이 내 시야를 가득 채운다.

“···시작!”

부웅!

심판이 구호를 외치자마자 허공으로 날아든 두 개의 검은.

챙! 챙강!

충돌하며 강렬한 금속음을 일으켰다.

‘과연 녹록지 않은 상대로군.’

얽히기가 무섭게 떨어졌던 리암의 검이 다시금 빈틈을 노리며 접근했다.

챙!

그것을 쳐내자마자 또 다른 빈틈을 사정없이 파고든다.

‘과연, 검술 명가의 자제다 이건가.’

카렌은 그렇게 말했다.

수많은 추종자 중 ‘팰러스의 정예’라 할 수 있는 인물은 3학년이나 4학년 같은 상급생이 대부분.

‘그중에 이능자도 있다고 들었어.’

나머지 하급생들은 대부분이 똘마니 1, 2 같은 어중이 떠중이이지만···.

리암 페킹튼만은 조금 다르다고 말이다.

‘페킹튼 가문이 대대로 기사단장을 배출해낸 건 알지? 리암은 후계자는 아니지만, 수도 기사단 입단 시험도 통과할 수 있을 만큼 실력자로 평가받고 있어.’

장난감을 갖고 놀 시절부터 검을 쥐고 자란 이답게, 리암의 검은 날카롭고도 정확했다.

‘···쉽지 않겠는걸.’

앞서 보리스와의 대련으로 체력을 예상보다 훨씬 소모한 터였다.

몸은 물 먹은 솜처럼 무거워지는 가운데.

어느덧 내 검은 리암의 검을 막아내는 데 급급하기 시작했다.

‘시간을 끌어선 내 쪽이 불리하다.’

이번 대련의 승패를 가르는 기준은 세 가지.

하나. 검을 놓치거나.

둘. 전의를 상실하거나.

셋. 급소를 노출할 때.

그렇다면···

전략을 바꿔야겠다.

‘사냥꾼이 맹수를 사냥하듯.’

내가 던져놓은 먹음직스러운 미끼에 달려든 그 순간,

놈의 명줄을 노리기로.

* * *

리암은 이해할 수 없었다.

첫째, 상대가 힘이 다 빠지다 못해 기진맥진한데도 빈틈을 찾을 수가 없으며.

‘찌르고 들어가자마자 다 막혀버리는군.’

둘째, 그래 봤자 질 것이 뻔한 이번 판을 어째서 포기하지 않느냐는,

아니 포기는커녕···.

‘호흡이 거칠고 몸이 무거워 보이지만.’

리암은 자신의 움직임을 빠짐 없이 쫓아오는 세자르의 눈동자와 마주했다.

···그 눈빛에 담긴 전의만큼은, 아까 보리스를 상대할 때 이상으로 불타오르고 있는 것이 아닌가.

‘이해가 되지 않는다.’

눈앞의 승부가 아닌, 세자르에 대한 의문이 머릿속을 가득 채웠기 때문일까.

리암은 저도 모르게 그 궁금증을 입 밖에 내었다.

“어째서냐?”

“···뭐?”

또다시 들어간 그의 매서운 공격을, 아무렇잖게 받아낸 세자르가 미간을 좁혔다.

“어째서 그렇게까지 하는 거지? 그래봤자 대련일 뿐인데···.”

“하.”

세자르는 어이없다는 듯 웃으며 리암의 공격을 흘려보냈다.

“어째서냐면···.”

부드럽게 맞받아치는 동시에, 여유롭게 빈틈을 노리던 그가 말했다.

“너 같은 놈들. 너희 같은 승냥이 떼에 맞서 내가 내 힘을 증명할 방법이···.”

챙! 챙강!

순간 가까워져온 그의 검을 뒤늦게 쳐냈다.

“···이것뿐이기 때문이지.”

어느새 목을 내줄 뻔했다.

그 사실을 깨닫자 리암은 이마에 식은땀이 났다.

저놈과 합을 겨룰 때마다 자신은 서서히 지쳐갔지만.

‘외려 저놈은 독기를 품은 듯 더 단단해지지 않는가.’

처음만 해도 허점투성이이던 지친 몸짓은,

시간을 흐를수록 빈틈이 사라졌으며.

힘이 빠졌나 싶던 검은 이내 힘 있게 촤르륵 찔러 들어온다.

날카로운 듯하면 유연하고,

부드럽게 휘어지는 듯하면 번개처럼 찌르고 들어온다.

‘마치 살아 있는 뱀과 싸우는 기분이 아닌가.’

그에 반해 리암 자신의 검은 정석 중의 정석.

하루 일과를 따르듯 기본과 법도에 충실하다.

기본을 변형한 변칙적 수는 배제하고,

무엇 하나 의문을 품지 않은 채 숨 쉬듯이 익힌 검술은-

‘도통 감을 잡을 수가 없군.’

이런 규격 외의 상대 앞에서는 어찌할 바를 몰랐다.

부웅!

세자르의 검이 또다시 눈앞을 가득 채웠다.

챙, 챙강!

간신히 막아냈지만 점점 식은땀이 난다.

‘왼쪽인가? 오른쪽인가?’

‘다음 수는 어디로 들어오는 거지?’

변칙적인 플레이.

비정형화된 전술 때문일까.

누가 봐도 리암 자신이 유리한 상황인데도,

시간이 흐를수록 조급함은 더해지고 불안감이 늘어난다.

가히 ‘검객’이라 칭할 정도는 아니지만,

소년들 사이에서는 누구 하나 대적할 자가 없다고 하는 리암조차-

이 정체불명의 기술들을 구사하는 세자르 앞에서는 속수무책이었다.

또다시 들어온 예리한 공격을 힘겹게 받아낸 순간.

부우웅!

세자르가 섣부른 공격을 시도했다.

···자신의 가슴팍을 상대에게 그대로 드러내며.

‘드디어!’

지칠 대로 지친 놈이 드디어 허점을 노출했다.

리암은 그 틈을 놓치지 않고 곧바로 공세에 나섰다.

‘드디어, 승리는 내 것이다.’

“하앗!”

확신에 가득 찬 채 힘을 가득 실어 내지르기를 한 순간!

스르륵, 세자르의 몸이 유연하게 빠짐과 동시에.

플레시(찌르기)!

뒤로 물러섰던 검이 혜성처럼 그의 목 옆부분을 노리고 들어왔다.

···찰나의 순간이었다.

“···어?”

어느새 허공을 좇는 제 검이 눈에 들어오는 가운데,

리암은 옆 목에 와 닿은 금속의 냉기를 느꼈다.

천천히 고개를 돌리자.

“···!”

미미하게 떨리는 검이 제 목을 찌르고 있다.

그 검신 끝에 자리한 세자르의 얼굴이, 그의 눈빛이 보였다.

···죽음 앞에서도 상대를 끝장낼 생각밖에는 없는 맹수처럼,

형형하기 그지없는 눈빛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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