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공작가의 서자로 살아가는 법-24화 (24/176)

최종 목표를 재정비하다

사용인이 안내해준 ‘최고급 객실’ 안에 들어선 순간.

“우와아아아.”

“으어어어.”

디터와 발닉은 입을 다물 줄 몰랐다.

특히나 발닉은 눈알이 튀어나오고 턱이 빠질 지경이었으니.

“이, 이것 좀 보십시오! 온 사방에 금칠을···.”

“저건, 저건! 테이블 테두리에 다이아몬드를 박아넣은···.”

“사방에서 돈 냄새가 나는 듯하지 않습니까!”

발닉은 지고의 행복을 느끼는 중인 듯했다. 시대를 잘못 타고난 자본주의의 첨병 같은 느낌이네.

하지만 딱히 발닉의 탓은 아니었다.

굳이 따지자면, 물욕이 없는 디터조차도 사방을 두리번거리게 할 정도로 사치스럽고 화려한 실내장식 때문이겠지.

‘방이랑 거실, 식당이 딸렸다는 얘기는 들었지만.’

우리가 투숙한 객실은 ‘객실’이라 부르기에는 뭐한 곳이었다.

본관 왼편에 자리한 별관 1층을 통째로 쓰는 형태였으니까.

“으하하하! 깃털 침대다!”

발닉은 어느새 제 방에 들어가 기둥 침대에 누워 사지를 휘적댔고.

“주, 주군! 물컵이··· 물컵이 금으로 돼 있는데요? 아니, 아니다. 혹시 장식품인가? 역시 그렇겠지, 아무리 귀족이라도 이런 걸로 물을 마실 리가···.”

디터는 협탁에 놓인 컵의 용도를 헷갈려하는 중이었다.

그렇게 ‘돈 냄새’가 주는 마력에 취해 30여 분을 보낸 뒤.

아까보다 조금 더 침착을 되찾은 우리 셋은 식당에 모인 참이었다.

···사용인들이 이곳까지 가져다준, 온갖 진수성찬을 마주한 채.

“노움, 나와봐.”

나는 4차원 주머니 안의 광활한 공간에서 뛰어놀던 노움 역시 불러냈다.

‘주머니에 아이를 넣으시겠다고요?’

이곳을 향해 출발하기 직전.

디터와 발닉은 내 말에 기함했지만,

이내 주머니 안에 무한히 펼쳐진 공간을 보고는 입을 다물었다.

‘공작각하께서 친히 주신 가문의 보물 중 하나다.’

시기적절하게 공작의 이름을 팔아먹은 덕분에 두 사람은 4차원 주머니에 별다른 호기심을 품지는 않은 듯하다.

주머니 안에서 노움이 아장아장 걸어나왔다.

[옹, 앙, 으그.]

노움은 처음 본 풍경에 눈을 동그랗게 뜨더니 내게 다가와 얼굴을 부볐다. 보드라운 살결과 머리카락에서 우유 냄새가 났다.

‘애교 부리기는.’

그 모습에 디터는 심장 폭행을 당한 사람처럼 가슴께를 부여잡았다.

“헉, 너무 귀여워. 농농아, 나도, 나한테도 애교 좀···.”

“···농농이가 뭐야?”

“제가 아기한테 붙여준 이름인데요.”

언제 지 맘대로 이름을 붙였대.

그래도 그 이름이 제법 잘 어울리는 듯해 우리는 아기 노움을 ‘농농이’라 부르기로 합의했다.

발닉은 손주를 바라보듯 허허롭게 웃었다.

“호, 그놈 참 귀엽군요.”

나는 아기 노움의 앞에도 물과 간단한 먹거리를 놔주었다.

노움은 활짝 미소 짓더니 복스럽게 음식을 먹었다.

‘지금 굳이 얠 웃길 필요는 없겠지.’

던전 안에서 받은 금화만으로도 차고 넘치는 양이라, 억지로 아이를 웃길 생각이 없었으나.

[까르륵! 까르륵!]

어린 노움은 새로운 곳에 온 것만으로도 좋은지, 마냥 까륵거리며 웃었다.

“으악, 귀여워! 농농아, 사랑해!”

“그, 금화가!”

디터와 발닉은 벌써 이 어린 노움에게 푹 빠진 모습이었다.

그러나 저러나.

나는 진수성찬 쪽에 푹 빠져 있었다.

“헌데 주군, 이렇게 써도 괜찮을까요.”

“으그··· 왜··· 뭐가··· 냠냠.”

“도련님, 다 드시고 얘기하시지요.”

간만에 맛본 진귀한 음식들.

특히 은혜롭기 그지없는 동물성 단백질의 향연에 정신을 못 차리는 나를,

나머지 두 사람이 흐뭇한 눈길로 지켜보았다.

어느 정도 배가 부르고 나자 멀어졌던 의식이 되돌아왔다. 나는 입가에 묻은 기름을 닦아내며 뒤늦게 무게를 잡으며 말했다.

“디터, 걱정할 것 없어.”

“하지만···.”

“나 역시 물 쓰듯 할 생각은 없다.”

물 쓰듯 쓰기는커녕, ‘이 지독한 놈’이라고 혀를 내두를 정도로 빈틈없이 쓸 생각이다.

“하지만 오늘처럼 특별한 날엔 제대로 써줘야지.”

“그럼 그럼요, 사람이 쓸 줄도 알아야 하는 거지요!”

그래.

이렇게 부하들의 사기를 진작시키는 것 또한 중요하니까.

“언젠가 제 스승님이 말씀하시길, 때로는 줄을 잘 서는 게 인생사의 전부라고 하시더군요. 그 말을 들을 때만 해도 코웃음을 쳤는데···.”

너털웃음을 터뜨리는 발닉은 진심으로 기뻐 보였다.

“제가 이렇게 줄을 잘 설 줄 누가 알았겠습니까! 그 연무장에서 도련님의 진가를 알아보지 못했더라면 어쩔 뻔했는지···.”

“아부 그만해라, 더 나오는 것도 없으니.”

그렇게 기분 좋은 식사를 마치고는 두 사람에게 농농이를 잠깐 맡겼다.

“나는 잠시 은행에 다녀오도록 하지.”

* * *

호텔 바로 옆에 자리한 은행을 찾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이곳 담당자 역시 내 남루한 차림을 보고는 시큰둥했지만.

“오, 오천만 크로네요···?”

내가 가져온 세 개의 금고 열쇠.

그리고 그중 하나의 금고에서 나온 5천만 크로네를 계좌에 예치하겠다고 하자,

담당자의 눈이 휘둥그레지다 못해 눈알이 빠질 지경이 되었다.

“귀, 귀빈으로 모시겠습니다!”

10퍼센트의 이율로 거금을 예치하기로 얘기를 마치자 나는 어느새 라크로 은행의 최대 VVIP가 돼 있었다.

거기에 은행이 내 신분과 지위를 보장한다는 ‘신분패’의 일종까지 선물로 받았으니.

곧바로 호텔의 내 방으로 돌아온 나는 나머지 금고 두 개에 들어 있던 물건들을 살펴보았다.

‘손바닥만 한 나무함과 편지봉투라.’

봉투 속에 든 카드에는 사교클럽 ‘피닉스’의 정기모임에 초청한다는 메시지가 적혀 있었다.

“사교클럽 초대장?”

···꼭 도전과제 보상 같은 느낌이네.

이런 건 왜 주는 건지 모르겠지만 일단 잘 보관해두고.

나무함을 열자, 진주구슬 같은 것이 비단 위에 놓여 있다.

‘이게 뭐지?’

정체를 알 수 없는 아이템의 등장에 고개를 갸웃한 순간.

『‘풍근환豊筋丸’(가격 : 250000크로네)

- 설명 : 먹는 순간 근육량이 대폭 늘어나는 신비의 영약. 물 없이 씹어서 삼키시오.

- 비고 : 복용자의 체질을 ‘강골’로 바꿔주는 부대효과가 있음.』

···풍근환이라니.

모 게임의 모 아이템을 떠올리게 하는 네이밍이다.

이름이야 어쨌든 간에 아주 훌륭한 보상이 아닌가.

지금 이 세자르의 육체에 가장 필요한 것은 근육인데, 워낙 근육이 붙기 쉽지 않은 체질이라 힘들었거든.

‘이런 건 바로 먹어줘야지.’

신나서 풍근환을 입에 털어넣은 것까지는 좋았는데.

“···웩.”

상상을 초월하는 맛에 그대로 토해낼 뻔했다.

무슨 맛이냐 굳이 캐묻는다면 염소 똥과 칡뿌리, 한약을 한데 버무린 맛이라고 할까.

구역질을 해가며 억지로 씹어넘겼다.

그렇게 마지막 한 입까지 목 뒤로 넘긴 순간.

[‘풍근환’의 효과는 대단했다!]

[근육량이 대폭 증가합니다.]

곧바로 상태창을 확인하자, 그 말이 맞았다.

『세자르 레핀 (14세, 남, 169cm, 55kg)』

특성 : 선량, 학대받음, 트라우마, 강골(*근육이 잘 붙는 체질)

보유 재산 : 50,470,000크로네(*그중 50,000,000크로네를 라크로 은행 수도지점에 예치 중)

체중 ■■■□□|□□□□□ (표준이하)

근육량 ■■■■■|■□□□□ (표준)

체지방 ■■□□□|□□□□□ (표준이하)』

나는 잠시 눈을 의심했다.

그 이유는 첫째.

“근육량이··· 세 칸이나 늘었잖아?”

늘어난 근육 덕분인지, 몸무게도 52kg에서 55kg로 부쩍 늘었다.

게다가 기존의 특성 중 ‘겁쟁이’가 사라지고 ‘강골’이 추가됐다.

즉, 이 몸의 체질을 완전히 바꿔줬다는 거다.

‘엄청난걸.’

그리고 두 번째는.

“···저게 다 몇 자리야.”

無로 뜨던 ‘보유 재산’에 어마어마한 금액에 찍혀 있다는 것.

사실 마음 같아서는 당장에 집부터 사고 싶지만, 아카데미 생도의 사저 구입은 금지돼 있다.

‘모두 기숙사 생활을 해야 한댔지.’

따지고 보면 그만큼 돈을 아낄 수 있는 셈이니, 5천만 크로네라는 거금을 망설임 없이 은행에 맡긴 거다.

무엇보다 그 돈이 없어도 생활비는 충분하니까.

‘공작이 소정의 용돈을 보내주기로 했을 뿐더러.’

은행 이자로만 한 달에 40만 크로네가 나오고, 여기에 농농이가 만들어내는 금화도 있으니까.

‘연금 느낌이라고 보면 되겠군.’

물론 여유도 있겠다, 돈을 위해서 농농이를 굳이 웃길 생각은 없다.

이자와 용돈만으로도 생활비를 충당 가능함은 물론이고, 농농이를 봐줄 사용인도 고용할 수 있을 테니까.

···예상치 않은 선물을 너무 많이 받은 탓인지 현실 감각이 사라지는 기분이네.

“이제 좀 쉬자.”

깃털침대에 눕자 얼마나 푹신한지 천국이 따로 없다.

대자로 누워 천장을 올려다보는데, 선잠이 깬 농농이가 내 쪽으로 기어왔다.

[웅, 앙···.]

“이리 와.”

내 팔을 벤 농농이는 다시금 잠에 빠져들었다.

아기 노움의 체온이 피부로 고스란히 전달되는 가운데, 지난 시간을 돌이켜보았다.

‘김현우가 세자르가 된 지 이제 꼭 한 달이 된 건가.’

처음만 해도 상황은 절망적이었다.

가진 것 하나 없는 사생아 도련님.

하루가 머다 하고 암살 시도에 시달리는, 언제 죽을지 알 수 없던 날의 연속.

그때의 내 목표는 단순한 생존이었다.

공작부인의, 팰러스의 눈이 닿는 곳을 벗어나 살아남는 것.

‘하지만 한 달 만에 많은 것이 달라졌다.’

움직일 때마다 통증을 호소하던 고장난 육체가 아닌, 발전 가능성이 무궁무진한 육체를 얻었으며.

그 빌어먹을 공작저를 탈출하는 데 성공했고.

인재 두 명을 가신으로 거두었다.

0에 불과했던 소지금이 여덟 자리 숫자로 뛰어올랐음은 물론이다.

그때와는 많은 것이 달라진 만큼, 목표 역시 달라졌다.

“일단은··· 놈의 싹부터 잘라내야겠지.”

미리 선수치는 놈이 임자라는 말처럼,

팰러스의 수족을 내 편으로 영입하거나, 사전에 잘라내거나 하는 식으로 말이다.

‘더불어 그놈의 가식적인 본모습도 밝혀주고.’

내게는 미래 지식과 시스템이 있지 않은가.

아무것도 없는 탓에 당하고만 살던 과거를, 더는 답습하지 않겠다.

‘그렇게 서서히 영향력을 넓여나가,

최종에는 팰러스 이상의 강자가 되는 거야말로 내 진짜 목표.’

현생에서 이루지 못한 것, 아니 그 이상의 것을 이룰 수 있다는 강렬한 예감이 든다.

가슴이 벅차오르고 심장이 두근거리는데, 의외의 메시지가 떴다.

[‘세자르’의 목표가 재정비되었습니다.]

[그에 맞춰 도전과제가 변경됩니다.]

상황에 따라 과제가 변경된다니 사용자 친화적인 UI인걸.

『도전과제 목록

-세자르에 대한 사람들의 고정관념을 바꿨나요? (미달성)

-사사건건 방해하는 학우에게 쓴맛을 보여주었나요? (미달성)

-새로운 친구를 사귀었나요? (미달성)

-사교클럽 ‘피닉스’에서 주요인물을 만나보았나요? (미달성)

-검술수업 중에 목숨을 잃을 뻔했나요 (미달성)?』

“···.”

자객의 습격에 관련된 게 사라진 건 다행인데.

‘검술수업 중에 목숨을 잃을 뻔하다니, 이게 훨씬 위험한 거 아냐?’

어째서 수업 중에 그런 지경에 이르게 되는지는 모르겠지만.

자나 깨나 불조심, 아니 목숨 조심이 최고다.

그다음으로 눈에 띄는 것은 이것.

-사교클럽 ‘피닉스’에서 주요인물을 만나보았나요? (미달성)

사교클럽 초대장을 왜 주나 했더니, 여기에 쓰라는 얘기였구나.

누가 이런 걸 안배한 건지 의문이 들기는 하지만,

<왕도의 대가>에 나오는 수많은 조연 중 누구를 만날지 상당히 기대된다.

-세자르를 대한 사람들의 고정관념을 바꿨나요?

나는 입학 후에 펼쳐질 상황을 대충 머릿속에 그려보았다.

뭐 하나 빠짐없는 완벽한 총아로 불리는 장남 팰러스와는 달리,

가문의 수치라 불리는 사생아 세자르가 부끄러움도 없이 아카데미에 입학했다?

이 얼마나 재미난 소문거리가 될까.

하지만 나 역시 기대되는 건 마찬가지였다.

처음과는 달리 지금은 어느 정도 자신감이 생긴 데다, 그러한 고정관념을 역이용하여-

‘그 알량한 선입견을 산산히 부숴줄 생각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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