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서 제일 좋은 지랄이란
무언가 할 말이라도 있나 싶어 물어봤지만.
“···왜?”
[옹, 옹옹, 으그으그.]
뭔 말인지 하나도 모르겠다.
난처한 얼굴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서 있으려니, 아까부터 날 지켜보던 정령 하나가 다가와 아이를 품에 안았다.
[아기야, 왜 그러느냐?]
[옹옹, 앙···.]
[호오, 그렇단 말이지.]
[앙, 으그으그···.]
[허어, 네 생각이 정 그렇다면.]
···저 둘은 말이 통하나 보네. 신기하다.
익숙하디익숙해 보이는 둘을 보며 발걸음을 마저 옮기려던 순간.
[잠깐만.]
“···?”
정령이 내게 다가오더니 아기 노움을 품에 안겨주었다.
영문을 모른 채 아이를 받아 안자, 정령이 설명한다.
[이 아이가 네가 무척 마음에 든 듯하구나.]
그것으로 시작된 정령의 말은 한참 동안 이어졌다.
아이가 어떻게 이곳에 오게 되었고, 얼마나 오랜 시간을 그들과 함께했는지.
아이가 어떤 음식을 좋아하며, 잠버릇은 어떻고, 하루 일과는 어떤지.
[이 좁은 곳에 갇혀 있기보단 넓은 세상에 나가는 편을 더 행복해할 아이다.]
이 얘기를 왜 나한테 하지, 라고 생각하며 듣고 있는데.
정령은 다음과 같은 질문으로 말을 마무리했다.
[그래서 이 아이를 맡아줄 수 있겠는가?]
“···뭐라고요?”
여간해선 놀라는 일이 없는 나이지만, 이번에는 진심으로 놀라고 말았다.
휘둥그레진 눈으로 아기 노움을 쳐다본 순간.
[까르륵!]
아기 노움이 웃음을 터뜨림과 동시에,
팡! 하고 금화가 쏟아져 나왔다.
* * *
눈을 떠보니 평평한 풀밭에 대자로 누워 있었다.
한순간 이 모든 것이 꿈이 아닐까 싶었지만.
[푸우우···.]
내 팔을 베고 누워 있던 아기 노움을 발견했다.
‘꿈이 아니었구나.’
아이를 잘 돌봐주기로 정령들과 이야기를 마쳤다.
돈 때문에 억지로 아이를 웃기는 것이 아닌, 조카를 대하듯 진심으로 돌보겠다고.
설정파일의 비고2에 적힌 ‘순간이동’ 능력으로 우리는 단숨에 동굴 바깥, 아니 말을 매어둔 산 정상으로 되돌아왔다.
“여긴 어디··· 어, 아까 거기잖아?”
디터와 발닉이 놀라서 사방을 두리번거리는 사이, 나는 품 안의 노움을 살펴보았다.
순간이동 능력을 쓴 게 제 딴엔 무리한 것인지, 어린 노움은 쌔근쌔근 잠들어 있었다.
“한 편의 꿈을 꾼 것 같군요, 주군.”
바닥부터 천장까지 온 사방이 휘황찬란하게 번쩍이던 금은보화의 동굴.
던전 ‘숲의 수호자’는 공략이 완료됨과 동시에 신기루처럼 사라진 터였다.
그 말에 동의하듯 고개만 끄덕이던 순간.
눈앞에서 연달아 메시지가 떴다.
[특수 도전과제 ‘아기 웃기기는 힘들어’ 달성! - 아기요정의 배꼽을 눌러보았습니다.]
[어린 노움에게 ‘보호자’로 선택받았습니다.]
[달성도가 ‘최상’을 기록해 보상이 상향 조정됩니다.]
보상이 상향 조정된다니, 처음 보는 메시지인데?
[보상으로 ‘아다만티움 검’을 수령합니다.]
그리고 곧바로,
눈앞에 새하얀 빛이 일었다가 사라졌다.
척 보기에도 고급스럽기 그지없는, 길쭉한 푸른색 상자가 놓여 있었다.
‘게임에 자주 등장하는 보물상자처럼 생겼네.’
멍하니 그것을 내려다보는데, 디터가 깜짝 놀라 소리쳤다.
“대체 이건···!”
아, 얘네들도 있었지.
다른 사람들 있는 데서 대뜸 보상을 줘버리면 어쩌자는 건가.
시스템이 상도덕이 없구만.
뭐라고 둘러댈지 잠시 고민하는데, 발닉이 제 스스로 그럴 듯한 추리를 해냈다.
“이건 그게 아닐까요? 던전의 마지막 관문 보상.”
“그건 금화 자루였잖아요.”
“그거야 그렇지만, 도련님은 그 어려운 시험을 기대 이상으로 해내셨잖아?”
발닉이 씩 웃으며 내 품에 안겨 잠든 노움을 가리켰다.
“그러니 그에 대한 추가 보상을 준 거다 이거지.”
“아, 그렇구나.”
···알아서 북치고 장구치고 하는 훌륭한 가신들 같으니라고.
나는 말없이 동조하듯 고개만 끄덕였다.
“얼른 열어보시지요!”
“네, 얼른요!”
발닉과 디터가 나를 재촉했다.
그럼 어디 열어볼까.
긴장되는 마음에 침을 꼴깍 삼키며 상자를 열자.
“···.”
엄청난 금은보화를 기대한 듯한 디터와 발닉의 입이 다물어졌다.
상자 속에 든 것은, 화려한 장식이나 보석조차 달려 있지 않은 평범한 검이었으니까.
‘하지만 이건 그냥 검이 아니지.’
메시지의 설명에 따르면 아다만티움으로 만들어진 검이라고 했다.
아다만티움은 판타지소설에 자주 나오는 마금속인데, 현존하는 금속 중 가장 단단하다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게 정말 아다만티움으로 된 게 맞다면···.’
나는 홀린 듯 손을 뻗어 상자 속의 검을 집어들었다.
전체 길이는 1미터 남짓할까.
검신이 가느다랗고 뾰족한, 찌르기 전용의 세검이다.
기분 탓일지도 모르겠지만, 검신 전체에서 은은한 푸른 빛이 뿜어져 나오는 듯하다.
나는 옆에 선 발닉을 돌아보며 말했다.
“발닉, 혹시 아다만티움이라고 들어봤나?”
“네에? 서, 설마··· 이 검이 아다만티움으로 만들어졌다는 겁니까?”
“아무래도 그런 것 같아.”
“아다만티움? 그게 뭔데요.”
눈이 튀어나올 듯 커진 발닉과는 달리, 디터는 그 이름을 처음 듣는 모양이었다.
“하긴 디터 자네는 모를 만도 하겠군. 아다만티움은 현존하는 금속 중 최강의 강도를 자랑하는 놈이지.”
“와, 엄청난데요.”
“강철도 자를 수 있다는 말이 있는 데다··· 고대 종족의 유물에서만 발견된다는 아주 희귀한 금속이니 말이지.”
온 대륙을 다니며 수많은 것을 보고 접한 용병답게, 그는 고대의 전설이나 신비의 유물에 해박한 지식을 자랑했다.
발닉이 흥분한 기세로 나를 돌아보았다.
“도련님, 이거 정말 엄청난데요. 이 얼룩이, 아니 발닉도 소문은 들어봤지만 실제로 보는 건 처음입니다.”
“그 정도로 귀한 건가?”
“그럼요. 오죽하면 ‘아다만티움을 갖는 자, 왕후장상이 되리라’라는 격언이 있을 정도입지요.”
왕후장상이라.
어쩐지 달콤하게 들리는 그 단어를 입안에서 가만히 음미하다가.
또 하나의 중요한 용건을 꺼냈다.
“그건 그거고, 정산은 분명히 해야지.”
“네?”
디터는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는 눈치였지만, ‘정산’이라는 단어에 발닉의 눈이 음흉하게 빛났다.
“아까부터 기다리고 있던 거 다 안다.”
“역시 도련님이십니다. 척하면 척-”
“그만.”
입이 찢어져라 웃는 발닉의 모습을 보니 살짝 소름이 돋는다.
4차원 주머니에서 금화 자루를 꺼내 바닥에 내려놓자 쿵 소리가 났다.
“와아···.”
두 사람의 입이 떡 벌어졌다.
이곳으로 와서 돈 한 푼 쥐어본 역사가 없는 나 역시, 입이 찢어져라 웃고픈 마음이었다.
‘이게 다 얼마냐.’
하지만 계산은 분명히 해야 하는 법.
자루 속 금화를 3등분하니 각자에게 50만 크로네씩 돌아간다.
그것을 자루에 담아 디터와 발닉에게 각각 쥐여주자 둘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이건 너무 많습니다, 주군.”
“이, 이 정도면 최고급 마차를 한 대 살 정도인데!”
···그렇게 많은 돈이었어?
아주 조금, 살짝 후회가 되긴 했지만 나는 내색하지 않았다.
어차피 제일 꿀보상이라 할 수 있는 ‘아다만티움 검’을 받은 데다가.
‘은행 금고 속에 5천만 크로네가 있잖아?’
나로선 전혀 손해보는 게 아니다.
물론 형식적 관계만을 따지자면 이들에게 단 한 푼도 주지 않아도 무방하지만···.
‘충성심을 돈으로 살 수 있는 기회가 있는데 놓칠 이유가 없지.’
향후 발견될 광맥이나, 투자하면 대박이 나는 사업 아이템, 몇 달 후에 발견될 고대 유물 등등.
소설 속 미래정보를 꿰고 있는 내가 아닌가.
돈 벌 기회야 차고 넘치지만,
뛰어난 인재 두 명을 확고히 ‘내 사람’으로 만들 기회는 흔치 않으니 말이다.
게다가 걸어다니는 ATM이나 다를 바 없는 데다 귀엽기까지 한,
아기 노움까지 우리 일행이 되었으니.
고대던전에서 얻은 게 너무 많다는 생각에 입가에 자꾸만 미소가 떠올랐다.
“세 명이 들어갔으니 3등분하는 게 당연한 게 아냐?”
“···하지만 그래도.”
“주군···.”
디터와 발닉의 말이 없어졌다.
대놓고 감동을 받은 듯한 이 리액션, 아주 좋다고.
“그럼 얼른 출발하자고.”
던전을 공략하느라 원래 계획보다 시간이 지체된 터다.
우리는 넘칠 정도로 휴식을 취한 말을 달리기 시작했고.
계획했던 것보다 훨씬 빨리 목적지에 도달했다.
* * *
위베른 시에 도착하자마자 나는 이곳에서 가장 비싸다는 호텔을 찾았다.
“여기가 맞나?”
과거 왕족이 살던 맨션을 개조해서 만든, 사회 최상류층만이 투숙한다는 곳이다.
시야 한가득 펼쳐진 장미 정원.
웅장미를 자랑하는 고급 호텔이 정원을 에워싸는 구조로 서 있다.
“거, 도, 도련님··· 여기는 하루 묵는 데만 돈이 어마어마하게 든다고 하는 곳인데···.”
“우리한테도 돈이 어마어마하게 있잖아? 근데 뭐가 문제야.”
“저, 주군께서는 몰라도 저희는 그냥 일반 여관에-”
“말 같지도 않은 소릴. 다 생각이 있으니까 가자는 거다.”
나 또한 돈을 허투루 쓰는 것은 싫어하며 계획적인 소비를 지향한다.
하지만.
‘쓸 때는 써야 하는 법.’
벌벌 떠는 디터와 발닉을 데리고 호텔 로비에 들어섰다.
줄 지어 선 대리석 기둥을 보니 호텔이 아니라 무슨 신전 같다.
눈부실 정도로 호화로운 내관에 디터와 발닉이 연신 사방을 두리번거렸다.
“어서 오십시오.”
널따란 복도 양옆에 도열해 있는 제복 차림의 사용인들.
여유로운 태도로 그들을 지나쳐 안쪽의 카운터 앞에 가 서자, 지배인이 벌떡 일어섰다.
“호텔 라플라만차입니다.”
새 손님을 반색하던 태도는, 던전에서 구르며 허름하다 못해 꾀죄죄해진 우리의 몰골을 본 순간 급변했다.
“···실례지만 저희 호텔은 손님들이 생각하시는 것보다 1박 비용이-
“제일 좋은 방으로 사흘 묵겠다. 얼마지?”
지배인은 당황을 감추지 못하는 기색으로 조심스레 대답했다.
“하루에 1만 크로네입니다만··· 이곳은 주로 귀족 분들이 이용하는 곳인지라.”
그러니까 즉.
너네는 좆도 없어 보이는 데다 평민 아니냐.
좋은 말로 할 때 알아서 나가라는 뜻을 아주 조심스레 전달하는 지배인에게.
“나도 귀족인데?”
나는 손 안의 물건을 내보였다.
···레핀 가의 인장을 본 지배인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이, 이것은 레핀 공작가의···.”
“왕국의 제1공작이신 로건 드 레핀 공작이 내 아버지이시다.”
“···!”
“사교계의 총아로 알려진 팰러스 드 레핀이 내 형님이시고.”
이만 하면 설명은 됐지, 라는 내 눈빛에 지배인의 안색이 창백해졌다.
저런 반응을 보니 내가 ‘레핀 공작의 하나뿐인 사생아’인 세자르인 것을 알아차린 모양이다.
‘그러고 보니 원작에서 종종 이런 언급이 나왔지.’
세자르는 공작가 밖에서도 은근 유명했다고.
다만, 좋은 쪽이 아니라 나쁜 쪽으로 말이다.
‘레핀 가문의 수치이자 구박데기.’
사교계에서 마른 안주감으로 삼는 화젯거리라 했다.
···하지만 앞으로는 상황이 많이 바뀔 거다.
지배인은 내 눈치를 살피며 연신 고개를 조아렸다.
“제가 몰라뵙고 몹쓸 말을··· 죄, 죄송합니다!”
“사장 나오라고 해.”
“···네?”
“지배인의 접객 태도가 몹시 마음에 안 드니, 정식으로 항의하겠다.”
내 말에 지배인의 얼굴에서 핏기가 싹 가셨다. 조금만 더 건드리면 무릎이라도 꿇을 기세인데 이거.
나는 피식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농담이야, 농담.”
“···.”
“제일 좋은 방에 묵겠다니까 왜 말이 없나. 설마 빈 방이 없어?”
“아니, 아닙니다. 과거 공작부부께서 묵으셨던 스위트룸이 마침 빈 참이라.”
방이 세 개나 있는 데다 거실과 식당이 딸린 귀빈 전용 객실이라 했다.
내 심기를 거스를까 봐 신경 쓰며 말하는 와중에도, 지배인은 내 초라한 행색을 연신 힐끗거렸다.
‘공작가의 위세만 믿고 들였다가 호텔비도 못 받아낼까 걱정이 되나 보지.’
나는 뒤에 선 디터와 발닉을 흘긋 돌아보았다.
이런 곳에 오는 게 처음이라 그런지,
아니면 저희들에게 쏟아지는 시선이 부담스러워서인지는 모르겠지만.
두 사람은 고개도 제대로 들지 못한 채 전전긍긍해하는 것이 아닌가.
그 모습을 보자 호승심 비슷한 무언가가 불쑥 올라왔다.
···그리고 마음먹었다.
“이봐, 지배인.”
외관만 보고 쉽사리 판단해버리는 이 빌어먹을 노인네 앞에서 지랄을 좀 떨어주기로.
‘지랄도 유분수지, 라는 말이 있긴 하지만.’
그게 꼭 나쁜 것만은 아니다.
상황에 따라서는 나와 남 모두에게 이득이 되는 ‘좋은 지랄’이라 알려진 것이 있으니,
그것이 무엇인고 하면.
“3일치 숙박비, 한 번에 선불로 결제하지.”
그렇게 말함과 동시에,
나는 품에 넣어뒀던 금화 자루를 꺼냈다.
“세는 건 직접 해, 알겠지?”
그리고는 거꾸로 뒤집어 카운터 위에 내용물을 쏟아버렸다.
챙그랑, 챙그랑.
돈 떨어지는 소리가 고막을 강타한다.
‘세상에서 제일 좋은 지랄이 뭐냐.’
···다름 아닌 돈지랄이다, 이거지.
눈앞에서 떨어져내리는 금화의 비에 입을 다물지 못하는 지배인을 보며,
나는 기분 좋게 웃어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