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공작가의 서자로 살아가는 법-19화 (19/176)

고대 던전을 공략하는 법

야트막한 산 정상에 오르자 허허벌판이 우리를 맞이했다.

기대감에 가득 찬 나와는 달리, 디터와 얼룩이는 어딘가 불안해 보였다.

“주군, 여기가 정말 고대 던전이 있다는 곳 맞습니까?”

“맞다니까.”

“하지만 도련님, 그런 걸 저희 세 명이서 어떻게 공략합니까.”

“어떻게라니?”

“수많은 제후들이 대부대를 이끌고도 성공하지 못했다는 게 던전 공략인데···.”

얼룩이는 두려움을 감추지 못하며 고대 던전에 관한 전설을 몇 가지 늘어놓았다.

식인 괴물이 산다드니.

오크나 트롤처럼 몇 백 년 전에 사라진 맹수들이 튀어나온다느니.

“어느 던전엔 드래곤이 있다 하더군요.”

던전에 들어온 인간을 드래곤이 머리부터 한 번에 삼켰다든가, 어디엔 바실리스크가 숨어 있어 출입자를 돌로 만들어버린다든가···.

얼룩이의 이야기에 환상의 괴수들이 하나둘 등장함에 따라 디터의 얼굴은 점점 더 창백해졌지만.

“잡설은 그 정도 하고.”

나는 4차원 주머니에서 초대장을 꺼냈다.

겉보기엔 그저 평범한 편지에 불과하지만, 봉투 안쪽에서 푸른 빛이 일렁거린다.

“이제 들어가보자고.”

봉투를 뜯자, 푸른 빛이 안쪽에서 왈칵 흘러나왔다.

저 둘이 그걸 보고 기겁한 순간.

쿠구구궁—

바닥이 진동하며 어디선가 목소리가 들려왔다.

[고대 던전 ‘숲의 수호자’의 초대장을 지닌 자들이여.]

위압적이고도 신령하게 들리는 목소리에, 디터와 얼룩이는 다리에 힘이 풀린 듯 바닥에 주저앉아 버렸다.

“주군, 주군! 이건 대체···.”

“흐아악, 목소리가! 목소리가 들린다!”

···덩치는 산만 한 사내들이 저러는 모습을 보니 어쩐지 기분이 착잡해지는 가운데.

쿠구구 소리를 내며 진동하던 지면이 쩍 갈라지더니, 그 틈새로 기이한 동굴 하나가 솟아올랐다.

“···어떻게 이런 일이.”

디터의 눈이 화등잔만 해졌고, 얼룩이는 숫제 바닥에 무릎을 꿇은 채 신께 기도를 올리는 중이었다.

이 비현실적인 광경에 아무렇지 않은 것은 나 혼자뿐.

“디터, 얼룩이. 들어가보자.”

“흑, 도, 도련님, 저건 악마의 소행입니다, 악마가···.”

“하지만 주군, 저건-”

“날 믿는다고 하지 않았나?”

나는 두 사람을 돌아보았다.

“아까 자네들 입으로 그랬지. 나를 믿는다고 말이야.”

“···.”

“···.”

“그 말이 진심이라면, 자네들은 절대 위험할 일이 없어.”

나는 얼룩이와 눈을 맞추며 말을 이었다.

“자네가 그랬던가? 제후들이 대부대를 끌고 갔는데도 공략하지 못한 곳을, 어떻게 우리 세 명이 공략하느냐고.”

나는 두 사람에게 무언가를 가리켜 보였다.

그것은 다름 아닌 동굴 옆에 세워진 팻말의 일종.

[고대 던전 ‘숲의 수호자’

입장 인원 : 3명

경고 : 아무것도 만지지 마시오.]

“제후들이 성공하지 못한 이유는 바로 그거야. 경고를 어기고 대부대를 끌고 들어갔기 때문이지.”

그들이 경고에 따르지 않은 이유도, 말하자면 얼룩이가 위에서 서술한 바로 그 이유 때문이다.

던전에 관한 온갖 무시무시한 전설을 듣고 겁을 집어먹었기 때문.

‘강심장이라 불리던 팰러스 역시 예외는 아니었지.’

백여 명에 이르는 대부대를 끌고 왔으니까.

겁에 질려 있던 디터와 얼룩이는 나의 설명에 차츰 평정을 되찾았다.

꿀 먹은 벙어리가 되어버린 두 사람에게 마지막 당부의 말을 남겼다.

“그리고 제일 중요한 주의사항. 동굴 안에 들어가면 눈이 돌아갈 정도로 어마어마한 금은보화가 있을 거다.”

“···부자로 만들어주신다는 게 혹시 그 얘기-”

“아니.”

금세 탐욕스럽게 눈을 빛내는 얼룩이의 말을 잘랐다.

“절대, 그중 단 하나라도 만져서는 안 돼.”

“걱정마십시오, 주군.”

디터가 순수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넌 안 그래도 그럴 것 같았고 얼룩이는···.

“쳇.”

몹시 아쉬워하는 십 년 차 용병을 보자 어쩐지 웃음이 나왔다.

“던전만 공략하면 남 부럽지 않은 부자가 될 테니, 욕심은 잠깐만 넣어두라고.”

나는 두 사람과 함께 동굴 입구 앞에 섰다.

총 세 가지의 관문이 존재한다는 고대 던전 안으로,

다 같이 들어갔다.

* * *

던전 내부는 내가 상상했던 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왜 그, 아라비안나이트에 나오는 열려라 참깨 동굴 있지 않은가.

바닥에는 눈부시게 번쩍이는 금은보화가 돌덩이마냥 떨어져 있고.

벽과 천장에는 형형색색의 보석들이 박혀 있는···.

“얼룩이.”

“넵!”

“만지지 마. 만지면 우리 다 죽어.”

“···네.”

저도 모르게 홀린 듯 보석을 만져보려던 얼룩이가 뒤늦게 정신을 차렸다.

휴우, 십년 감수했네.

그나마 디터는 금은보화에는 관심이 없길 다행이다. 얘는 뭐랄까··· 근사한 풍경을 감상하는 분위기다.

“무척 신비하고 아름다운 곳이군요, 주군.”

“뭐, 고대던전이 신비하지 않으면 어디가 신비하겠어.”

이국적이고도 환상적인 풍경에 감탄하며 걷는 두 사람과 달리, 나는 몹시 긴장한 채였다.

‘여기서 수많은 사람들이 학살당했었으니까.’

앞서 언급했듯, 원작의 팰러스는 대부대를 이끌고 이곳으로 왔다.

경고문을 무시하고 백여 명 중 오십 명을 먼저 안으로 들여보내는데.

이 선발대는 정말로 끔찍한 최후를 맞이한다.

[3명이 남을 때까지 서로 싸우고 죽이시오.

경고 : 10분 안에 3명이 남지 않으면 숲의 징벌이 시작됩니다.]

그 기이한 지령을 무시했던 병사들은,

동굴 바닥에서 솟아오른 나무뿌리에 몸이 꿰뚫려 즉사했고.

나머지 병사들을 이끌고 직접 들어온 팰러스 또한 이 같은 경고 지령을 듣지만,

눈 하나 깜빡하지 않은 채 측근에게 이렇게 명령한다.

‘너와 나, 그리고 저놈을 제외하고 다 죽여라.’

대량학살이 가능한 이능자였던 그의 측근은 팰러스의 명령을 그대로 이행한다.

그리고 여기서 말한 ‘저놈’이 바로···.

‘여기 있는 디터다, 이 말이지.’

원작에서도 디터는 이 고대던전을 공략하는 데 어마어마한 역할을 해내고 그 공으로 백작위를 받는다.

“···어쩐지 공기가 싸늘한 느낌이군요.”

디터의 말에 나는 뒤늦게 상념에서 깨어났다.

고개를 들고 보니 어느새 첫 번째 관문에 다다른 터.

나는 디터와 얼룩이를 돌아보며 말했다.

“자, 주목. 우린 무사히 던전에 입장해 첫 번째 관문을 눈앞에 두고 있어.”

“던전 입장이 이렇게 간단하단 말입니까?”

얼룩이의 말에 어깨를 으쓱했다.

“간단히는 아니지. 경고문을 그대로 잘 지켰고, 무엇보다 욕심부리지 않는 데 성공했잖아?”

“그거야 어렵지 않은 일이죠.”

밝게 웃는 디터와는 달리 한숨을 푸욱 내쉬는 얼룩이.

“저것만 해도 평생 벌 돈을 한 번에-”

“부자되게 해줄 테니 좀만 참아. ···여긴 숲의 정령들이 관리하는 던전인 만큼, 탐욕스러운 인간을 싫어하니까.”

“허어, 사람에게서 탐욕을 빼면 뭐 남는 게 있다고···.”

나는 혀를 끌끌 차는 얼룩이를 무시하며 설명을 이어나갔다.

“고대 던전 ‘숲의 수호자’에 존재하는 관문은 총 세 개.”

각 관문에는 반드시 한 명씩 들어가 시험을 치러야 하는데, 응시자가 관문을 통과하지 못하면 다 같이 강제 퇴장당한다.

나는 첫 번째 관문 앞에 붙은 경고문을 읽어보았다.

[첫 번째 시험 ‘자기 희생의 딜레마’

셋 중 가장 강한 사람 한 명만 들어가시오.]

경고문의 의미를 곰곰이 생각해보는데, 얼룩이가 고개를 갸웃한다.

“복잡하게 생각할 게 있을까요? 그냥 제가 들어가면···.”

“잠깐만 고민해보자.”

팰러스 역시 이 지점에서 많은 고민을 했다.

‘가장 강한 사람’이라는 것이 검술 실력이 가장 뛰어난 이를 말하는 건지, 힘이 제일 센 사람을 말하는 건지 헷갈렸으니까.

하지만 결국 그는 ‘괴력의 이능자’ 디터를 들여보내기로 결정했고, 결과적으로는 옳은 선택이었지.

나는 결정을 내린 뒤 디터를 돌아보았다.

“이번엔 네가 나설 차례야, 디터.”

“저 혼자··· 말입니까?”

“그래. 내가 말했잖아. 여기는 너와 얼룩이 없이는 공략이 불가능한 곳이라고.”

원작에 나온 공략법을 읽어서 알고 있는 나만이 가질 수 있는 확신이긴 하지만.

“하지만··· 저 같은 놈이 어찌.”

“디터.”

나는 불안에 젖은 디터에게 확신을 담아 말해주었다.

“넌 할 수 있다. 아니, 해낼 거다. 넌 그저 내 말을 따르기만 하면 돼.”

“···네, 주군.”

“그러니 잡생각은 집어치우고.”

나는 디터의 귓가에 ‘1차 관문의 공략법’을 속삭여주었다.

“알겠지?”

디터는 아까보다 한결 생각이 정리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나와 얼룩이가 지켜보는 가운데, 디터 혼자서 첫 번째 관문 앞으로 다가서자.

거대한 나무문이 쩌억 하고 열렸다.

“그럼 다녀오겠습니다.”

디터가 그 안으로 들어간 순간 문은 저절로 닫혔고.

부우우- 하는 진동음과 함께 투명한 화면처럼 바뀌었다.

“도련님, 이건 대체···.”

“디터의 모습을 비춰주는 마법거울의 일종이지.”

디터의 움직임이 패스트모션처럼 재생된다.

추측이긴 하지만 저 안은 이곳보다 시간의 흐름이 훨씬 느린 게 아닐까.

‘여기서의 1분이 저기서는 한 시간이 될 수도 있는 거지.’

그렇게 나와 얼룩이가 지켜보는 가운데-

디터의 시험이 시작되었다.

* * *

문 안에 들어서자마자 디터는 주위 온도가 훅 올라간 것을 깨달았다.

머리 바로 위에서 내리쬐는 듯한 태양빛.

그 아래 끝없이 펼쳐진 사막 한가운데에 거대한 나무 한 그루가 서 있었다.

‘저게··· 내게 주어진 시험인가.’

피부에 남은 한 톨의 물기마저 빨아들이는 듯한 건조한 더위 속에서,

디터는 나무 앞으로 다가갔다.

하늘에 닿을 듯 높이 솟아오른 나무는 두세 명이 감싸안아도 모자랄 정도의 두께를 자랑했다.

“나뭇잎이 다 떨어졌네.”

벌거숭이 나무 옆에는 앞서 보았던 팻말이 하나 세워져 있다.

[나무 아래 깔린 생명체를 구해주시오.]

주군의 말대로 복잡하게 생각할 것 없는, 단순한 시험이다.

온 힘을 다해 나무를 들어올리는 게 전부인 시험.

‘단순무식한 내게는 안성맞춤이 아닌가.’

그렇게 생각하자 디터는 자신감이 생겼다.

힘쓰는 거라면 누구에게도 지지 않을 자신이 있으니까.

디터는 나무 밑동을 붙들었다. 두 팔로 껴안듯 붙잡은 뒤, 힘껏 들어올리면-

“끄으윽-”

···나무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디터는 거칠게 숨을 몰아쉬며 다시 한 번 도전했다.

“흐으, 여엉차···.”

절로 신음이 나올 정도로 힘을 주자, 나무가 아주 살짝 움직였다.

‘되, 될 것 같은데···.’

디터는 좀 더 힘을 주었다.

눈알이 터질 것 같은 기분으로 무릎에 힘을 주며 나무를 서서히, 아주 서서히 들어올렸다.

“끄아아악!”

비명이 터져나옴과 동시에,

나무가 들렸다.

“으아아아···.”

손톱만큼, 아주 조금씩 나무가 들어올려졌고.

그 아래서 무언가 꿈틀거리며 나왔다.

‘조금만, 조금만 더···.’

나무 아래 깔린 생명체를 구하는 것이 시험이니, 이 녀석이 무사히 빠져나올 때까지만 들고 있으면···이라고 생각한 순간.

디터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쉬이익.”

나무 아래서 나온 것은, 뱀이었다.

쉬익 쉬익, 쉬이잇-.

기다란 뱀이 스르륵 움직이며 디터에게 다가왔다.

‘어, 어떡하지?’

움찔한 탓에 나무를 놓칠 뻔했다. 디터는 간신히 정신을 부여잡으며 두 손에 힘을 주었다.

그 사이 뱀은 디터의 몸을 타고 올라온 터였다.

“쉬이익···.”

뱀의 동그란 대가리가 쩌억 벌려지더니 디터를 향해 다가온다.

그 안에 자리한 날카로운 이빨을 보며 디터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태였으니.

‘나무를 떨어뜨리면 뱀이 깔려 죽고,

나무를 붙들고 있으면 내가 뱀에 물려 죽을 것 같고···.’

집중이 흐트러지려던 그 순간, 세자르가 귓가에 속삭였던 말이 되살아났다.

‘눈앞의 것에 현혹되지 마라.’

‘생각도 하지 말고, 고민도 할 필요 없어. 네가 할 일은 그저 팻말의 안내에 따르는 것뿐.’

그래.

나는 생각할 필요가 없다.

디터는 마음의 결정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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