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공작가의 서자로 살아가는 법-15화 (15/176)

공작가 서자는 프로 사기꾼

의기양양하던 집사장이 무릎을 꿇은 것을 보니 기분이 묘했다.

‘준비를 철저하게 하긴 했지만, 이렇게 계획대로 딱딱 들어맞을 줄은···.’

승리를 이끌어낼 수 있었던 첫 번째 이유는,

내 허세가 제대로 먹혔다는 것.

집사장은 지금의 세자르를 ‘너 죽고 나 살자’ 하며 진검 앞에라도 목을 들이댈 만한 위인으로 생각하고 있지만···.

나로서도 진검에 찔리고 싶은 마음은 요만큼도 없었다.

‘만의 경우를 대비해 버프코트도 옷 속에 입고 왔으니까.’

하지만 카를 또한 날 다치게 할 생각이 없었다.

그보다는 사정상 불가능했다고 봐야겠지.

공작이 보는 앞에서 자신의 칼에 세자르가 찔려 피를 흘리는 것이야말로 집사장에게는 최악의 사태가 아니겠나.

그럼에도 굳이 진검을 쓰는 모험을 했던 것은.

‘세자르가 겁쟁이처럼 오줌을 지리는 모습을 공작에게 보여주고 싶은 거지.’

대련 경험이라고는 돌팔이 검객을 이긴 것이 전부인 열네 살짜리 소년에게 겁을 줘 전의를 상실시키는 것.

헌데 도리어 내 쪽에서 이렇게 나올 줄은 몰랐겠지.

그리고 두 번째 이유는.

‘제아무리 강자라도 약점은 있기 마련.’

그의 강점이 피지컬이라면, 나의 강점은 정보력이다.

도전과제 덕분에 놈이 준비한 꼼수를 진작에 파악했으며, 얼룩이 덕분에 그의 발목 부상 사실을 알아냈으니까.

그리고 승부에서의 정보란, 의외로 승패를 판가름하는 결정타가 되기도 한다.

게임에서처럼 실력대로만 승부가 결정된다면 올림픽을 왜 개최하겠는가.

매순간 다양한 변수가 작용하여 예상외의 이변이 일어나는 것이 바로 스포츠의 세계다.

‘하물며 목숨 걸고 싸우는 실전은 말할 것도 없지.’

바닥에 주저앉은 거구의 노인을 말없이 내려다보는데,

카를이 두 손을 번쩍 들었다.

“하, 항복! 기권하겠습니다.”

얼굴이 새파랗게 질린 것이 금방이라도 토할 기세다.

“거기까지.”

공작이 손을 들어 제지의 뜻을 알리자마자 나는 유유히 검을 거두어들였다.

“카를은 이만 들어가 휴식을 취하도록.”

공작의 허가가 떨어지자마자 카를은 힘겹게 자리에서 일어났고, 힘 센 하인들 몇 명의 부축을 받으며 저택 안으로 사라졌다.

나는 그 뒷모습에서 눈을 떼고는 공작과 공작부인이 앉은 탁자로 되돌아왔다.

“···.”

황망한 눈빛으로 아무 말도 하지 못하는 공작부인과 달리.

“훌륭하군, 세자르.”

공작은 눈에 이채를 띠고 나를 돌아보았다.

“송구스럽습니다.”

가볍게 고개를 숙이며 응수하는데, 식사 준비가 다 되었다며 하인들이 음식을 날라왔다.

탁자의 맨 끝으로 가 앉으려 하는데, 공작이 나를 부르더니 자신의 옆자리를 가리켰다.

“여기 앉도록.”

···옆에 앉으라고?

잠시 착각한 게 아닌가 싶었지만.

공작부인이 몹시 당황스러운 얼굴을 한 것 보니 맞나 보다.

‘앉으라니 앉아줘야지.’

나는 여유로운 태도로 공작의 옆자리에 앉았다. 그런 내게 공작이 말을 걸려는 순간, 공작부인이 선수를 쳤다.

“로건, 생각보다 일찍 도착해서 놀랐습니다.”

“왜, 내가 내 집에 돌아온다는데 뭐 문제라도 있소?”

공작의 목소리가 뾰족했지만, 공작부인은 아랑곳하지 않으며 곱게 미소 지었다.

“문제라니요, 그저 미리 채비를 해놓으려고 했을 뿐이지요.”

다만, 공작에게는 그녀의 미인계가 더는 통하지 않는다는 게 문제인 듯했지만.

“하, 내가 없는 틈을 타서 당신이 무언가를 획책하려 했던 건 아니고?”

얼음장처럼 차가운 얼굴로 속을 후벼파는 공작의 말에, 공작부인의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날 어찌 보고 그리 모진 말을···.”

아, 꼬시다.

내가 책 속에 있는 것만 아니라면 팝콘각이라며 낄낄거렸을 텐데 그러지 못하는 게 아쉽구나.

그러자 두 사람은 목소리를 낮춰 부부간의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당신은 늘···.”

“그러는 당신이야말로···.”

표정을 보니 그리 유쾌한 대화가 오가는 것 같진 않다.

둘의 대화가 전형적인 부부 싸움처럼 흘러가거나 말거나, 나는 눈앞에 펼쳐진 산해진미를 감상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훌륭한걸.’

송아지 고기로 만든 미트볼.

치즈와 올리브, 닭고기가 듬뿍 들어간 호밀빵 샌드위치.

으깬 감자에 각종 야채를 섞어넣은 샐러드와 바삭하게 구운 전병까지.

간만에 맛본 ‘진짜 고기’의 맛은 그야말로 황홀 그 자체였다.

입안에 들어온 순간 육즙이 터져 나오며 입천장을 자극하는 미트볼의 맛이란···.

‘행복 그 자체.’

거기에 호밀빵 샌드위치는 풍미가 가득하고, 샐러드는 신선하기 그지없으며 전병 또한···.

그냥 말을 말자. 지금은 입 닥치고 먹어야 하는 타이밍.

쩝쩝 우적우적 소리를 내가며 걸신 들린 사람처럼 음식을 먹어치우는 나를,

“···.”

공작부인은 표독스러운 눈초리로 이따금 주시했다.

공작 앞이라 아무 말도 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니 웃음이 나올 것만 같다.

반면 공작은 흥분한 태도로 계속 말을 걸어왔다.

“석 달 만에 사람이 완전히 달라졌구나.”

그간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냐, 저래 봬도 집사장이 상당한 실력자인데 이긴 것이 놀랍다든가···.

공작의 태도가 손바닥 뒤집듯 싹 달라졌네, 라고 생각한 순간.

반가운 메시지가 떴다.

『로건 드 레핀, 레핀 공작 (호감도 10점)

- 특성 : 무관심, 검술덕후, 실리주의자, 거래매니아

- 비고 : 본인만큼 무예에 뛰어난 아들을 언제나 원했음. 공작부인과 팰러스 모두와 사이가 좋지 않다.』

역시나 이번에도 중요한 정보가 한가득이다.

공작이 정계에 있던 인물이라 무예가 뛰어난 줄은 몰랐는데, ‘검술덕후’라는 설명을 보니···.

‘나를 대하는 태도가 급변한 게 이해가 되는군.’

게다가 공작부인과 사이가 좋지 않은 것은 알았지만, 팰러스와도 사이가 나쁜 줄은 몰랐다.

‘그래서 원작의 팰러스가 어떻게든 독립된 기반을 마련하려고 했던 건가.’

아버지인 레핀 공작의 지지를 얻기 어렵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라든가 말이지.

어쨌거나 공작은 앞으로 세자르에게 단기적인 지원을 해줄 수 있는 몇 안 되는 인물이다.

제대로 된 세력을 이루기 전까지는 공작을 잘 공략할 필요가 있으니···.

“과찬의 말씀이십니다, 각하.”

나는 공작의 말에 영업용 미소를 지으며 적당히 맞장구를 쳐주었다.

그렇게 식사가 어느 정도 마무리되었을 무렵.

‘어?’

공작부인이 바야르와 눈빛을 주고받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조심스레 주변을 살피던 바야르가 준비해둔 천자루를 꺼내들었다.

···아무래도 저 안에 뱀이 들어 있나 본데.

‘미친.’

아무리 날 죽이고 싶어도 그렇지, 공작과 본인이 있는 자리에서 뱀을 풀어놔?

심지어 내가 공작의 바로 옆에 앉았는데 말이다.

‘아, 혹시 계획이 틀어진 건가.’

원래 내 자리는 기다란 식탁의 말석이었다. ···상석에 앉은 공작 부부와는 거리가 꽤 되는.

내 옆에 뱀을 풀어놓고 돌을 던지면, 독사가 십중팔구 내게 달려들 거라고 계산했을 거다.

‘하지만 공작이 옆자리에 앉으라고 하는 바람에 상황이 급변했지.’

그래서 바야르는 내 발 밑 대신, 나무 그루터기 아래에 뱀을 풀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나는 그루터기 아래서 자유롭게 풀밭을 활보하기 시작한 뱀을 흘긋거렸다.

‘일이 생각보다 내게 유리하게 흘러가는걸.’

뱀은 쉭쉭거리며 식탁을 향해 천천히 다가왔다.

“···.”

나는 포크질을 잠시 멈춘 채 발 밑의 소리에 온 신경을 집중했다.

숲속에서 들려오는 청량한 새 소리를 제외하고는 공작 부부의 날선 대화가 소음의 전부.

쉬익쉬익.

뱀 비늘이 스르륵거리며 풀밭을 스치는 소리가 이어진다.

내 쪽으로 다가오나 싶던 소리는 이내 멀어졌고···.

‘어디로 간 거지?’

그 소리는 이내 일상의 다른 소음과 섞여들었다. 멀어진 뱀의 존재에 사뭇 긴장한 순간.

“마님, 디저트를 가져왔···.”

접시를 들고 온 하녀가 공작부인을 내려다보더니.

“꺄악!”

비명을 지르며 접시를 떨어뜨렸다.

챙그랑!

접시 깨지는 소리에 깜짝 놀란 공작부인이 도끼눈을 떴다.

“이게 무슨 망발이냐!”

그녀가 발끈하며 벌떡 일어난 순간.

바닥에 주저앉아버린 하녀가 벌벌 떨며 공작부인의 스커트를 가리켰다.

“마, 마님 스커트에···.”

“스커트? 그게 무슨···.”

그러고는 이내 꼴깍 기절해버리는 것 아닌가.

황망한 눈빛으로 그 모습을 지켜보던 공작부인이 무심코 제 스커트를 내려다본 순간.

“꺄아악! 배, 뱀이!”

주름을 넣어 풍성하게 부푼 스커트에 달라붙은 뱀을 뒤늦게 발견하고는,

마찬가지로 새된 비명을 질렀다.

“마, 마님! 진정하십시오!”

“꺄아앗!”

“누가, 누가 좀···.”

그야말로 아비규환이었다.

하인 두 명이 달려와 기절한 하녀를 업어들고 가는 사이, 다른 몇 명이 공작부인을 둘러싸고 섰지만···.

“저건 독사야!”

누군가 그 뱀이 ‘독사’라고 말해버린 탓에, 제일 용감한 하인들조차도 쉽사리 접근하지 못했다.

탁자 맞은편에 앉은 공작이 얼어붙은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카를···은.”

공작부인은 저의 충실한 노복을 습관처럼 찾았지만, 제일 믿음직스러운 집사장은 저택으로 들어간 후였으니.

그 와중에도 뱀, 아니 세모꼴의 대가리를 지닌 독사는 그녀의 스커트를 천천히 타고 올라왔다.

“아, 안 돼···.”

공작부인이 금방이라도 실신하려는 가운데.

나는 바닥에 떨어져 있던 카를의 검을 주워 그녀에게 겨눴다.

그녀의 얼굴이 새파래졌다.

“세, 세자르 네가 드디어 본색을···.”

소음에 자극받은 뱀이 주둥이를 쩍 벌리고 그녀에게 달려들려던 절체절명의 순간-

“움직이지 마요!”

내 검은 그녀의 스커트를 훑고 지나가 그대로 뱀을 쳐냈고.

바닥으로 떨어진 뱀의 몸뚱이를 콰직! 하고 두동강냈다.

“···.”

뱀은 몸을 꿈틀하더니 이내 축 늘어졌다.

더는 움직이지 않는 뱀에게서 눈을 떼지 못하던 공작부인이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괜찮으십니까, 부인?”

금방이라도 눈물을 쏟아낼 것 같은 아름다운 얼굴이 나를 향했다.

감사할 수도, 그렇다고 원망할 수도 없는 묘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더니.

···그대로 기절해버렸다.

“마님! 마님!”

“마님이 실신하셨다!”

아까보다 더한 아비규환이 벌어졌다.

당황에 빠진 사용인들은 갈피를 잡지 못한 채 여기저기 뛰어다녔고.

침착을 잃은 지 오래인 공작은 의원을 부르라고 소리를 고래고래 질렀으며.

사건의 원흉이자 처음부터 끝까지 지켜만 보던 바야르는.

“아··· 으아아.”

괴상한 비명을 지르며 바닥에 주저앉아 버렸다.

‘이 혼란을 틈타서 얼른···.’

나는 두동강 난 독사의 시체에 다가갔다. 주둥이를 슬그머니 벌리자.

‘빙고.’

뱀의 입천장에 붙은 민달팽이를 슬쩍 떼어내 주머니 안에 집어넣었다.

이 민달팽이의 정체가 뭐냐고?

때는 이틀 전 밤.

나는 열쇠를 복사하는 도전과제를 무사히 달성해냈는데.

[도전과제 ‘나는야 손재주가 좋아’ 달성! - 열쇠를 복사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보상으로 ‘뱀이 몹시 좋아하는 먹이인 민달팽이’를 수령했습니다.]

그 보상으로 시기적절하게 주어진 것이 바로 ‘민달팽이’였던 것.

뱀이 좋아하는 먹이, 라는 설명을 보자마자 이것이 야유회에서 써먹을 수 있는 아이템임을 직감했다.

민달팽이를 주머니에 담아와 적절한 타이밍을 살피던 나는.

‘민달팽이를 이쯤에 이렇게···.’

공작부인의 곁을 지날 때 그녀의 스커트에 슬그머니 붙여뒀다, 이 말 되겠다.

‘증거는 완벽하게 인멸했고.’

완전범죄를 마친 나는 누구의 시선도 받지 않으며 유유히 내 방으로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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