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공작가의 서자로 살아가는 법-13화 (13/176)

약골이 강자를 공략하는 법

공작의 귀가 소식은 금세 퍼져나갔다.

야유회 준비로 정신이 없던 공작가는 이 갑작스러운 소식에 더더욱 소란스러워졌으니.

‘각하가 돌아오신다고? 니힐로 축일에 오시는 거 아니었나?’

‘기별도 없이 이렇게 갑자기···.’

‘한바탕 난리가 나겠군.’

사용인들의 우려는 금세 사실로 드러났다.

전해듣기로는 공작부인이 집사장에게 잉크병을 집어던졌다나 어쨌다나.

뭐 그거야 내 알 바가 아니고.

“흠흠~.”

나는 흘러나오는 콧노래를 주체하지 못할 정도였으니.

관건은 과연 공작부인이 야유회를 예정대로 진행하느냐인데.

저녁 식사를 가져다주러 온 제이콥이 의문에 답을 주었다.

“야유회는 예정대로 진행한다 하십니다.”

젠장.

하지만 문제는 야유회뿐이 아니었다.

“그런데 제이콥, 집사장이 검도 쓸 줄 아나?”

“그건 갑자기 왜···.”

왜냐고 묻는다면.

이런 도전과제가 새로이 나타났기 때문이다.

-집사장 카를의 진검에 찔릴 뻔했나요? (미달성)

···결국 예정대로 진행된다는 야유회에서,

이유는 모르겠지만 집사장 카를과 검술 대련을 하게 될 것 같고 말이다.

‘카를의 검술 실력이 어느 정도인지는 모르겠지만, 신체로만 따지면 그쪽이 압도적이지.’

키가 큰 만큼 리치가 길 거고 체격이 좋으니 힘도 좋을 거다.

게다가 이 비겁한 자식은 고작해야 검술 대련 따위에서 ‘진검’을 쓰는 꼼수를 부릴 것 같으니···.

‘방법은 하나.’

이쪽에서 먼저 상대의 약점을 캐내 그것을 끈질기게 물고 늘어지는 것뿐이다.

내가 대답을 얼버무리자, 제이콥은 자신이 아는 것을 술술 털어놓았다.

“젊을 때부터 꾸준히 검을 잡았다고 들었습니다. 원래는 마님의 호위기사였다고 하더군요.”

이건 의외의 정보인걸.

나는 조심스레 미끼를 던졌다.

“신기하네. 근데 어쩌다 호위기사가 집사가 된 거야?”

“글쎄요. 정확한 건 모르겠지만 언젠가 결투에서 패배한 뒤 검을 놓으셨다 들었는데···.”

아주 좋은 정보다.

“아마 병사들이 더 잘 알 겁니다. 그때 그 사건이 꽤 유명했다고 하니까.”

“고마워, 제이콥.”

병사들에게 탐문해봐야겠군.

나는 그 길로 연무장으로 향했다.

“아, 카를 님이 ‘흑의 기사’와 결투하고 기사를 그만두셨단 이야기는 유명하죠.”

내 말을 듣자마자 얼룩이는 클클거리며 대답했다.

“흑의 기사?”

어디서 들어본 것도 같은데.

원작에 이런 내용이 나왔던가?

“거 있잖습니까, 왕실친위대.”

왕족을 호위하는 친위대의 정식 제복이 검은색이라 그런 별명이 붙었다고.

어느 병사가 얼룩이의 말을 받아 이어나갔다.

“운 나쁘게 친위대원 한 명과 시비가 붙어 결투했다더군요. 그리고 결과는···.”

‘흑의 기사’에 관한 이야기가 이어지던 중,

처음 보는 메시지가 떴다.

[히든캐릭터에 대한 단서를 얻었습니다.]

어라, 이건 뭐야?

얼떨결에 호감도 목록을 띄우자.

전에는 ??? ???로만 나와 있던 곳에 변화가 생겼다.

-‘흑의 기사’ ????(???점, 형태 ‘???’)

설마 여기 이 물음표투성이의 인물이 카를과 붙었던 그 신원 미상의 친위대원이라고?

이런 우연이 있나.

내심 혀를 차는데, 병사가 덧붙였다.

“근데 그 기사가 엄청 강했다더군요. 카를 님도 실력으로 따지면 나쁘지 않은 편인데, 상대가 너무 압도적이었다고 말입니다.”

“호오.”

“결국은 그때 입은 부상으로 기사의 길을 포기했다는···.”

“부상?”

아주 솔깃한 정보가 아닌가.

아무렇지 않은 척 되묻자, 병사는 자신이 아는 것을 순순히 털어놓았다.

“네. 왼쪽 발목을 심하게 다치셨다더군요.”

“허어.”

“안타까운 일이죠. 이게 발목이란 게 되게 섬세한 곳이라, 잘 치료하지 않으면 관절이 아예 망가지기 십상이란 말입니다.”

그 말에 다른 병사 하나가 맞장구를 쳤다.

“그래서 그런가? 지금도 자세히 보면 왼쪽 다리를 살짝 절더라고.”

“야, 너 집사장님이 그 얘기에 얼마나 민감한데···.”

발목 부상.

그게 검객에게 얼마나 치명적인 일인지는 다른 누구보다 내가 제일 잘 안다.

현생의 내가 선수 생활을 포기했던 것도 바로 그런 이유 때문이었으니까.

‘어떻게 공략해야 할지 알겠군.’

양 발의 균형 감각이야말로 검술에서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다.

두 발이 몸의 무게를 정확히 지탱하는 상태에서만 정확한 한 수가 나오는 법.

그러니 설령 집사장이 세자르보다 훨씬 더 강력한 육체를 지녔다 해도 약점만 집요하게 파고든다면···.

‘승리를 거머쥐는 것은 어렵지 않다.’

나는 저희들끼리 대화에 빠진 병사들을 놔두고 얼룩이를 연무장 한 구석으로 불러냈다.

“한 가지 부탁하고 싶은 게 있는데.”

“뭐든 말씀하시지요.”

“진검을 막아낼 만한 방어구가 있을까?”

“···?”

대체 그런 걸 왜 묻는지 모르겠다는 듯 영문을 몰라하는 얼룩이.

그러나 저러나 나는 내 할 말만 했다.

“가볍고 활동하기 편하며, 가능하다면 옷 속에 입어도 별로 티가 나지 않는 걸로 말이야.”

“···진검이라니, 갑자기 왜.”

내 진지한 눈빛을 본 얼룩이가 입을 다물었다. 그대로 무기 창고 안으로 사라지더니, 잠시 후 무언가를 들고 나왔다.

“버프코트라는 겁니다. 소가죽을 생선기름에 재워서 말린 건데 무게에 비해 방어력이 훌륭한 놈이지요.”

언뜻 보기에 가죽 재킷처럼 생겼다.

슬쩍 들어보니 별로 무겁지 않은 것이, 기껏해야 3킬로그램 정도일 듯하다.

“웬만한 검은 막아냅니다. 두께도 얇아서 옷 속에 입어도 티가 안 나고요.”

“괜찮은걸.”

물론 이 정도도 세자르의 몸에는 무리일지 모르겠지만···.

그거야 훈련하기 나름인 법.

“그럼 말이지.”

이 갑옷을 입은 나와 대련을 해달라는 말에 얼룩이는 시원하게 웃음을 터뜨렸다.

“이런 부탁이라면 언제든 환영이지요! 대신 제게도 그 뭡니까, 그 신통방통한 기술 좀 가르쳐 주시지요.”

보아하니 내가 선보인 현대 펜싱의 매력에 벌써 푹 빠진 모양이다.

‘그럼 어디 입어볼까.’

생각했던 대로 별로 무겁지 않았다.

신축성이 없어 불편할 수 있다는 말에 일부러 조끼 형태를 골라 입었고.

‘도검 정도는 거뜬히 막아낸다 이거지.’

이렇게 든든할 수가 없구나.

버프코트를 갖춰 입은 나는 얼룩이와 마주 보고 섰다.

“그럼 도련님, 한 수 배우겠습니다.”

“배우긴 내가 그대에게 배워야지.”

가볍게 농을 주고받은 뒤.

그와 눈이 마주친 순간.

“그럼··· 잘 부탁드리지요!”

챙강!

연습용 검 두 개가 허공에서 맞부딪쳤다.

‘강하다.’

얼룩이의 검은 빠르고 강렬했다.

상대의 빈틈을 공략하는 동시에, 그다음 수를 미리 내다보았다.

‘비록 정석적이고 우아한 검술과는 거리가 멀지만···.’

틀림없다.

목숨을 건 싸움판에서 수없이 살아남으며 발전시켜온, 오로지 실전을 위한 검술.

그렇기에 더욱 매섭고,

더욱 군더더기 없다.

“헉, 헉···.”

사방에서 집요하게 공격해오는 얼룩이의 검을 받아내다 보니,

세자르의 육체는 벌써부터 피로를 호소했다.

“도련님, 이만 할까요?”

“아니, 계속하지.”

나는 거칠게 숨을 몰아쉬며 고개를 저었다.

“절대 봐주지 말라고.”

그의 검을 힘겹게 받아내며 내뱉은 말에, 얼룩이가 클클 웃음을 터뜨렸다.

“봐드릴 생각은 없었는데요?”

챙강!

창!

점차 힘이 빠지는 내 검과 달리, 그의 검은 처음부터 지금까지 전혀 흔들림이 없다.

허리 부분을 깊게 파고드는 검을 받아낸 순간, 그 강력한 충격에 손목이 시큰해졌다.

‘윽.’

하지만 멈춰선 안 된다.

통증에 집중할 새도 없이 다음 수가 들어올 테니까!

반쯤 무아지경에 빠진 채 그의 검을 받아내느라 알지 못했다.

···연무장 구석에서 시작한 우리 두 사람의 대련을, 어느샌가 이곳의 모두가 둘러싸고 지켜보고 있다는 것을.

“뭐야, 도련님 실력이 상당한데? 얼룩이랑 비슷하게 붙고 있잖아.”

“얼룩이가 봐주는 건 아니고?”

“눈이 있으면 좀 봐라, 저게 어디 봐주는 거냐.”

“야, 힘만 좀 키우면 어마어마해지겠는걸.”

감탄과 환호, 기대에 찬 목소리들.

처음 이곳에 올 때만 해도 나를 동정할 가치도 없던 겁쟁이, 혹은 눈엣가시 정도로 여기던 이들이었지만.

“도련님! 무릎! 무릎으로 들어옵니다!”

“이야, 이거 은근히 손에 땀을 쥐게 하네.”

“얼룩아, 한 방 먹여봐라!”

어느샌가 나를 저희들의 일원으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그런 감상 때문일까.

“허억, 허억, 허억···.”

머리부터 발끝까지 땀이 흥건해진 채,

온몸의 세포들이 고통으로 비명을 지르는 가운데서도-

‘기분이 죽여주네.’

그 무엇보다도 강렬한 쾌감이 느껴졌다.

“흐으, 하아, 도련님. 이제 이만하시는 거 어떻습니까?”

얼룩이 또한 비슷한 감상인 듯했다.

땀을 비오듯 흘리면서도 얼굴에는 함박웃음을 짓고 있었으니까.

“그래··· 좀··· 쉬자.”

나는 그렇게 대답하자마자 연무장 바닥에 대자로 누워버렸다.

땀에 전 버프코트에서 고약한 냄새가 났지만 그런 것 따위 신경쓸 겨를이 없었다.

미친 듯이 뛰는 심장.

폭발할 것 같은 아드레날린.

이마의 맥박이 제멋대로 꿈틀거리는 가운데-

‘기분 좋네.’

뜨거운 얼굴 위로 불어오는 산들바람.

머리 위로 펼쳐진 새파란 하늘.

그 모든 게 지금 이 순간을 강렬할 정도로 아름다워 보이게 했다.

“저기, 자네···.”

“얼룩이라 부르시지요.”

“그래, 얼룩이.”

나는 피식 웃으며 하늘을 바라보며 말했다.

“내일 또 대련할 수 있을까?”

얼룩이가 파하하 웃음을 터뜨렸다.

“대환영이지요!”

그래.

버프코트를 입은 채 대련하는 데 좀 더 익숙해진다면···.

‘카를과의 대련에서 승리할 확률 또한 올라간다.’

그렇게 결론을 내리는데,

땅에 닿은 뒤통수 옆쪽으로 사박사박 발소리가 들려왔다.

“뭐야?”

고개를 돌려보니 아까 대련을 지켜보던 병사들인 것 같다.

“저, 도련님. 괜찮으시면···.”

“음?”

병사 하나가 쑥스러운 듯 머리를 긁적인다.

“저와도 대련해주실 수 있습니까요?”

“어, 그거야···.”

“저도! 저도 해보고 싶은데.”

그렇게 이틀간.

나는 버프코트를 입은 채 너댓 명의 병사들과 돌아가며 대련을 했다.

그리고 마침내 레핀 공작이 돌아왔다.

* * *

공작은 오자마자 나를 호출하지는 않았다.

사람들 눈도 있거니와, 그놈의 공작부인과 밀린 대화···라 쓰고 전쟁이라 읽는 것을 한바탕 치르는 중인 듯했다.

‘공작과 대화는 천천히 해도 된다.’

그리고 이틀 뒤, 대망의 야유회 날.

아침이 되자마자 제이콥이 나를 데리러 왔다.

“도련님, 야유회에 갈 채비는 마치셨습니까?”

어쨌거나 나름 만반의 준비를 해놓은 터였다.

몸 여기저기에 백반을 묻힌 것은 물론이고, 디터에게 빌린 사냥용 나이프도 안주머니에 슬쩍 숨겨놓았다.

나는 여유로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가자.”

제이콥을 따라 사냥터로 향하는 동안 가슴이 세차게 뛰었다.

긴장되어서냐고?

‘아예 긴장이 안 된다면 거짓말이지만.’

불안하고 두려워서 긴장되는 게 아니다.

이런 긴장감의 정체가 무엇인지 나는 잘 알고 있다.

‘시합에 출전하기 직전의 긴장감.’

곧 있으면 승리를 거머쥘 거라는 기분 좋은 압박감.

한 번 맛보면 다시는 잊을 수 없는,

그런 마약 같은 달콤한 긴장감이다.

‘기다려라, 카를.’

야유회가 곧 네 제삿날이 될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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