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공작가의 서자로 살아가는 법-7화 (7/176)

그거 성격 나쁜 거 맞거든

나는 발치에 떨어진 은수저를 조심스럽게 집어들었다.

이 이상의 추가 메시지가 나오지 않는 걸 보니 특수기능은 없는, 말 그대로 진짜 평범한 은수저 같다.

‘하지만 지금 내겐 이만한 물건도 없지.’

은수저는 고대부터 독을 감지해내는 데 사용해온 물건. 비소에 들은 황 성분에 반응해 은수저가 까맣게 변색되니까 말이다.

독을 감별해낼 수 있는 물건이 있으면 좋겠다 싶을 때 은수저를 보상으로 준다는 건···.

‘좋아, 이렇게 퍼주는 것 너무 좋다고.’

흐뭇한 마음으로 허리춤의 주머니를 열어보자 그 안의 광활한 공간이 눈을 사로잡았다.

여기다 그냥 은수저를 넣어놨다간 한참 찾아헤맬 것 같은데 싶어 고개를 갸웃거리는데.

[‘4차원 주머니’의 내부를 정리하십시오.]

[취향과 용도에 따라 파티션을 지정할 수 있습니다.]

···주머니도 파티션을 나눌 수 있어?

어쨌거나 나는 메시지의 도움을 받아가며 주머니 안의 공간을 대략 정리해놨다. 아이템 크기에 따라 구역을 몇 개로 나눴으며.

때에 따라서는 쓰레기통으로 쓸 구역까지 만들어놨다.

‘이 정도면 되겠지.’

주머니 입구에서 가장 가까운 쪽이자 작은 물건들을 넣어놓는 곳에 은수저를 넣어놨다. 이제야 좀 마음이 든든하구나.

그렇게 정리를 마치는데, 잊고 있던 사실이 떠올랐다.

“그러고 보니··· 새로운 도전과제가 떴겠네?”

도움말에 따르면 과제를 달성하고 나면 자동으로 다음 과제가 나타난다고 했다.

나는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도전과제 목록을 확인했다.

『-대량의 비소를 먹을 뻔했나요? (미달성)

-목 졸려 죽을 뻔했나요? (미달성)

-누군가를 연기로 속여넘겨 봤나요? (미달성)

-조작된 증거로 누군가를 곤란하게 만들었나요? (미달성)

-누군가를 협박해서 원하는 것을 얻어냈나요? (미달성)』

“···음.”

이 소설 진짜 왜 이러니.

누군가를 연기로 속여넘기는 거야 뭐 그렇다 치자.

하지만 증거를 조작하고, 협박해서 원하는 걸 얻어내는 건···.

‘본격 범죄 조장 소설 아냐?’

저 목록만 봐도 뒷맛이 찝찝하긴 하지만, 살아남으려면 죽이 되든 밥이 되든 다 해봐야겠지.

* * *

다음 날 아침. 여느 때처럼 훈련하러 연무장으로 향했다.

별관 입구를 향해 계단을 내려가자, 하인들이 깜짝 놀라 나를 힐긋거린다. ···형이 왜 여기서 나와? 같은 반응이다.

아무래도 세자르는 반유폐 상태였던 게 분명하다.

‘하지만 그거야 그거고.’

지금의 나는 예전의 세자르가 아니니 말이다.

별관 밖으로 나서자 공기가 제법 쌀쌀하다.

연무장으로 가자 벌써 꽤 많은 병사들이 훈련에 매진하는 중이었다.

“하압!”

“핫!”

“하나! 둘! 셋”

각종 기합소리로 시끄럽던 연무장은, 내가 들어선 순간 쥐 죽은 듯 조용해졌다.

나를 신기한 생물 보듯 쳐다보는 이들을 향해 쏘아붙였다.

“뭘 봐? 그냥 하던 대로들 해!”

그럼에도 호기심 어린 시선들은 여각하다.

나는 스트레칭으로 가볍게 몸을 풀어준 후, 연무장 안을 달리기 시작했다.

“후우, 후우!”

호흡에 유의하며 일정한 보폭으로 달린다.

세자르의 신체가 워낙 훌륭한 덕분인지, 두 바퀴를 내리 달렸는데도 땀 하나 흐르지 않았다.

‘진짜 마음에 드는 몸인걸.’

달리기 바퀴수를 늘려갈수록 나를 향한 시선은 점차 줄어들었지만, 일부는 여전히 신기하다는 듯한 반응이다.

그렇게 삼십 분 정도 내리 달린 후, 연무장 한쪽에 자리한 그룹에게로 걸어갔다.

무거운 돌을 들었다가 내려놓길 반복하는 것을 보니 웨이트 트레이닝을 하는 것 같은데.

‘하긴, 이 시대엔 제대로 된 운동기구가 없었으니.’

나 역시 그들 옆에 가 자리를 잡았다.

돌을 들었다 놓는 게 근력 훈련에는 도움이 되겠지만, 잘못했다간 크게 다칠 수도 있으니 맨손운동을 하는 편이 나을 것 같다.

“하나, 둘, 셋···.”

푸시업. 한손 푸시업. 플로업 딥스.

자세를 바꿔가며 상체운동을 몇 세트씩 해줬다.

“호오.”

“···도련님이 제법 하네.”

“호흡 하나 흐트러지지 않는데?”

나를 지켜보던 병사들이 수군거리는 소리가 들렸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트레이닝에만 집중했다.

‘다음은 하체운동.’

펜싱에선 특히 하체 근력이 중요하다. 이 시대의 검술 또한 마찬가지.

‘처음은 기본 스쿼트로 하고···.’

스플릿 스쿼트, 내로우 스쿼트, 와이드 스쿼트 등. 자세를 달리해 몇 세트씩 해주자 어느새 숨을 헐떡거리는 나 자신을 발견했다.

머릿속의 잡념들도 저 멀리 의식의 반대편으로 사라지고, 오롯이 느껴지는 건 육체의 고통뿐.

···하지만 아직 멈추기는 이르다. 이제부터가 시작일 뿐.

‘다음엔 런지.’

일어선 자세에서 한 발을 앞으로 내딛으며 몸을 낮췄다가 일어나는 동작의 반복.

쉼 없이 근력운동을 이어나가는데, 저 멀리에서 병사들의 감탄성이 들려왔다.

“히야, 쉬지도 않고 하네.”

“너 같았으면 진작에 쓰러졌다, 자식아.”

“도련님이 은근 독한데? 근성이 상당···.”

런지, 브릿지, 레그컬···.

쉼 없이 몇 세트를 하고 나자 속이 뒤집힐 것 같다.

호흡을 가라앉히며 배 속에서 올라오는 토기를 간신히 억눌렀다.

“헉, 헉, 헉.”

이렇게 토할 정도로 훈련하는 것도 오랜만이다. 몸은 힘들지만 기분은 날아갈 것 같구나.

바닥에 등을 대고 누워 하늘을 멍하니 올려다보는데.

“저기, 방금 하셨던 것들 말입니다.”

“···?”

“그건 무슨 동작입니까?”

고개를 돌리자 곰처럼 커다란 체구의 병사가 눈에 들어왔다. 흉터 때문인지 인상이 되게 무서워 보인다.

“자네는···.”

“‘얼룩이’라고 불러주십시오, 도련님.”

‘얼룩이’는 자신을 전장에서 구를대로 구른 용병이라 소개하며 나의 훈련법에 관심을 보였다.

“그런 건 처음 봅니다. 혹시 괜찮으시다면 지도해주실 수 있으신지···.”

얼룩이가 용기를 낸 덕분인지, 나를 둘러싼 채 지켜만 보고 있던 병사 대여섯 명도 슬금슬금 다가왔다.

보아하니 다들 체격이 상당한 것이, 몸을 만드는 데 관심이 있는 이들 같다.

“저희도 좀···.”

나는 픽 웃으며 몸을 일으켰다.

“좋아. 훈련은 다같이 해야 제 맛이지.”

나를 둘러싼 병사들이 신나서 환호하는 소리에, 구석에 자리만 차지하고 있던 몇 명이 혀를 찼다.

“나참, 어이가 없네. 사생아 도련님 따위와 훈련이라.”

“크크, 얼마나 갈지 두고 보자고.”

일부러 들으라는 듯 도발하는 태세였지만, 딱히 넘어갈 생각은 없었다.

나는 병사들 대여섯 명과 함께 상하체 맨몸운동을 했다.

자세가 틀렸을 때는 지적도 해주고.

“무릎은 좀 더 구부리고.”

“으으으···.”

“배에 힘도 더 주고.”

“도, 도련님 힘듭니다!”

힘들어할 때는 격려도 해주고.

“힘들어야 훈련이 되지, 안 그래?”

“죽을 것 같다고요!”

“안 죽으니 걱정 마.”

펜싱 훈련의 기본도 가르쳐주고.

“스텝은··· 이렇게.”

“오오, 엄청 빨라!”

“여기서··· 찌르기! 가 들어가는 거야.”

“와, 전광석화 같습니다.”

별것 아닌 것에 감탄하는 병사들과 화기애애하게 훈련을 이어나가는데.

“어? 바야르 경이네.”

바야르 경이 연무장에 들어섰다.

얻어맞은 곳이 퉁퉁 부은 탓인지 아예 딴 사람 같다. 온몸이 땀투성이인 나를 보더니 바야르가 몸을 움찔한다.

“안 오실 줄 알았는데 오셨군요. 역시 참스승답습니다, 바야르 경.”

“그, 그게···.”

나는 일부러 눈을 반달처럼 휘어가며 미소 지었다.

“그런 의미에서 또 한 번 대련을 부탁드려도 될까요?”

바야르는 대꾸하지 못한 채 이만 갈았다.

옆에서는 우리를 흥미진진한 눈빛으로 지켜보는 한 무리의 병사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바야르가 결국 입을 열었다.

“저녁 훈련은 기본 훈련으로 하지요.”

바야르는 묵묵히 가르쳤고.

“헌데 경, 이 부분은 이렇게 휘두르는 게 효율이 좋지 않을까요?”

나는 적당히 트집을 잡아가며 살살 골려주었으며.

“어이쿠, 이거 실례!”

“으악!”

“하하, 뭘 그리 놀라십니까 바야르 경. 어디까지나 연습용 검인데요.”

일부러 실수인 척 검도 휘둘렀다.

새파랗게 질린 바야르를 보며 너스레를 떨어주는 것은 덤이었으니.

“그러다 오줌이라도 싸시겠습니다.”

“···!”

주변을 둘러싼 병사들에게서 푸하하, 하고 웃음이 터져나왔다.

“제 실없는 농담에 기분이 상하신 건 아니겠지요?”

“···아닙니다.”

바야르는 온 얼굴이 불그락푸르락해졌지만 반박할 생각은 없어 보였다.

나는 아무것도 모른 척 짐짓 활짝 미소 지어 보였다.

“바야르 경, 혹시라도 제 스승을 그만두실 생각은 하지도 마십시오. 제게는 경의 가르침이 반드시 필요하거든요.”

비웃는 것이 명백한 말에, 병사들이 이쪽을 돌아보며 낄낄거렸다.

“···크으.”

바야르는 뭐라 대꾸조차 못하고 이만 바득 갈았다. 분해 죽으려 하는 놈을 보니 기억나는 게 있다.

독하게 훈련하기로 유명할 뿐 아니라, 받은 건 반드시 갚아준다는 철칙을 지닌 내게 언젠가 선배가 이렇게 말했었지.

‘야, 너 요즘 후배들 사이에서 뭐라고 불리는지 알아?’

‘뭔데요?’

‘독종 중의 독종.’

‘틀린 말은 아니네.’

‘네 재능은 뭐라고 하는지 아냐? 맘에 안 드는 인간을 집요하게 괴롭히는 거란다.’

그놈의 ‘진짜 재능’이 지금 발현되고 있구나.

‘요는 그거야. 너 성격 진짜 나쁘다고, 소문이 파다하다 지금.’

‘다들 진짜 너무하네. 내 성격이 어디가 어떻다고.’

그저 당한 걸 두 배로 갚아주자는 것뿐인데, 안 그래?

‘그거 성격 나쁜 거 맞거든?’

선배가 대꾸하는 소리가 들려오는 듯해, 나는 피식 웃어버렸다.

* * *

오늘의 트레이닝을 마친 뒤 나는 연무장 옆에 자리한 사냥터로 발걸음을 옮겼다.

사냥터로 향하는 목적은 단 하나.

‘디터를 보러 가야지.’

사냥터에 가까워질수록 향긋한 숲 냄새가 진동한다.

하늘 또한 구름 한 점 없이 쾌청한 것이 보기만 해도 가슴이 뻥 뚫리는 기분.

···지금 내가 다양한 암살 시도에 시달리는 중만 아니었어도, 참으로 아름다운 목가적 광경이라며 감탄했을 텐데.

발걸음을 빨리하자, 사냥터 초입에 자리한 작은 오두막이 보였다.

‘오두막에 없으면 어쩌지.’

그런 걱정과는 달리, 저쪽에서부터 누군가가 큰소리로 외쳤다.

“세자르 도련님!”

나를 향해 달려오는 모습이, 흡사 들소가 쿵쿵거리며 질주하는 것 같다.

180 후반에 육박하는 키에 엄청난 떡대의 청년. 마님들이 좋아할 만한 돌쇠풍의 서글서글한 외모까지···.

‘책에 묘사된 그대로의 디터로군.’

“어, 디터.”

어느새 내 앞에 선 디터가 함박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도련님! 너무 오랜만입니다. 이 허름한 곳엔 어쩐 일로···.”

“아, 혹시 방해가 됐으려나?”

“방해라니, 무슨 그런 말씀을!”

디터는 입이 찢어져라 미소를 지으며 나를 오두막 안으로 안내했다.

···기분 탓인가, 열심히 꼬리를 흔들어대는 대형견이 보이는 듯하다.

“도련님이 오실 줄 알았으면 진작 치워놓는 건데.”

“깨끗한데, 왜.”

오두막 안은 지나칠 정도로 단출했다. 한 사람이 간신히 잠만 잘 수 있게 만든 공간이다 보니, 가구라고는 허름한 나무침대 하나가 전부.

앉을 곳이 마땅하지 않은 것 같아 그냥 바닥에 주저앉자, 디터가 화들짝 놀란다.

“잠깐만요, 도련님! 잠시만 기다리십시오.”

“아니 이대로도 괜찮은데···.”

디터는 내 말을 듣지 않고 그대로 오두막 밖으로 나갔다.

순해빠져 보이지만, 저런 디터에겐 의외의 반전이 있다.

“도련님, 여기 앉으시죠!”

어느새 오두막 안으로 들어온 디터의 목소리가 들려 고개를 들자.

···어마어마하게 무거워 보이는 돌 탁자가 시야에 들어왔다.

“엇.”

디터가 한손으로 들고 온 돌 탁자를 가뿐하게 내 앞에 내려놓자.

쿵, 하며 바닥이 내려앉는 소리가 들렸다.

“···!”

순간, 등에 소름이 돋았다.

“이러다 다치면 어쩌려고···.”

“다치긴요, 도련님. 이 정도는 아무렇지도 않습니다.”

디터가 환하게 웃으며 어깨를 으쓱했다.

그래.

디터의 반전. 그것은-

“한손으로 들어도 될 정도인걸요.”

“···.”

얘가 어마무시하게 힘이 세다는 거다.

‘괴력의 소유자’.

그것이 훗날 디터가 정식으로 받게 되는 ‘이능자 칭호’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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