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생아 도련님이 되었다
『배신이 고통스러운 것은 그 행위 자체 때문이 아니다.
“형님, 어째서입니까?”
배신자란 대부분 신뢰하는 사람, 혹여는 가장 소중한 사람이기 때문에.
“어째서, 어째서······ 절 죽이시는 겁니까?”
입에서 피를 토하며 말하는 소년도 마찬가지였다.
레핀 공작가의 수치이자,
구제 불가능한 겁쟁이로 유명한 ‘사생아 도련님’ 세자르의 배에는 검이 깊숙이 꽂혀 있었다.
그 검의 자루를 쥔 것은 다름 아닌 그의 형 팰러스.』
스마트폰으로 웹소설을 읽다가 절로 혼잣말이 튀어나왔다.
“햐, 이 새끼 진짜 지독하네.”
세상에는 모든 걸 다 갖고도 남의 걸 빼앗지 못해 안달인 인간이 있다.
지금 이 소설, <왕도의 대가> 주인공 ‘팰러스’가 바로 그런 놈이다.
‘정통의 핏줄, 타고난 총명함과 발군의 검술 실력, 좌중을 압도하는 카리스마까지 갖춘 완벽한 청년.’
이렇듯 타고난 인재이자 금수저 중의 금수저인 그에게는 치명적인 결함이 있었으니, 더럽게 탐욕스럽다는 것.
‘왕이 되겠다.’
음모, 계략, 암살, 독살···.
나라를 꿀꺽하겠다는 목표를 위해 손에 피를 묻히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반면, 그런 팰러스의 배다른 동생 세자르는 정반대 성향의 인물이다.
얼마 안 되는 가진 것마저 다 주고, 더 주지 못하는 것이 안타까운··· 좋게 말하면 선인이고 나쁘게 말하면 호구 중의 호구.
학대와 방치에 시달리던 겁 많은 소년은, 내추럴본 호구답게 제 형에게 뼛속까지 이용당한 뒤 살해당하기에 이르니.
나는 혀를 차며 계속 읽어나갔다.
『“그거야 네가 우리 가문의 치부이기 때문 아니더냐. 그것을 왕인 내 손으로 없애는 것이 무슨 문제가 된단 말인가?”
세자르가 핏기 없는 얼굴로 간신히 입을 열었다.
“그건······ 형님의 명이었잖습니까.”
팰러스는 대답 대신 검을 쥔 손을 비틀었다. 검날이 한층 더 깊게 박혀 들어갔다.
세자르가 새된 비명을 질렀다.
“형님이! 형님이 내게 지시하셨던 일이잖-”
“그만.”
팰러스의 왼손에 들린 단검이 소년의 목을 갈랐다.
왈칵-
분수처럼 솟구치는 피가 눈앞을 가렸다.
생명의 불꽃이 빠르게 꺼져가는 가운데, 지난기억이 머릿속을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갔다.
‘형님은 나의 영웅, 믿음 그 자체였다.’
그를 위해 모든 것을 했고.
모든 오명을 뒤집어썼다.
‘그렇게 헌신한 대가가 고작 이것이었던가.’
시야는 이내 어두워졌고. 이윽고 완전히 암전되었다.
그렇게 세자르 레핀은, 영원한 죽음을 맞이했다.
(왕도의 대가 완결)』
어··· 잠깐만.
완결···이라고? 설마, 거짓말이지?
그리고 아래 이어지는 작가의 말.
[작가의 말
지금까지 <왕도의 대가>를 사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다음에 새로운 작품으로 찾아뵙도록 하겠습니다.]
“야 이 씨발···!”
나도 모르게 육성으로 욕이 튀어나온 순간, 옆방에서 시끄럽다며 퉁퉁 벽을 두드렸다.
‘이놈의 빌어먹을 고시원 방.’
스마트폰 화면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 화답하듯 벽을 쾅쾅 두드려줬다.
‘작가 새끼가 진짜··· 결말을 이딴 식으로 내?’
부아가 치밀어올라 스마트폰을 던지려던 손을 간신히 멈췄다.
겨우 소설 하나 급완결난 것 가지고 왜 이렇게 난리냐 할지 모르지만, 내게 이 소설은 의미가 다르다.
‘나의 하나뿐인 오아시스였으니까.’
최근 몇 년간 안 좋은 일들이 연달아 있었다.
코치의 잘못된 훈련 지시 때문에 심각한 발목 부상을 입었고.
그 때문에 국대 선발에서 탈락했으며.
재활을 해도 완치 가능성이 낮다는 판정을 받았다.
···선수 생명이 끊어진 거나 다름 없었다.
‘현우아, 너무 좌절하지 마라. 넌 워낙 감각이 좋은 데다 전략이 뛰어난 선수니까···.’
친한 선배가 나를 대학 펜싱팀의 코치로 영입해주려고 애썼지만, 내 쪽에서 사양했다.
모든 걸 다 정리하고 나와 이 고시원에 틀어박혔고.
아무런 의욕 없이 하루 하루를 의미없이 보냈다.
그런 무기력의 극치에서 나를 붙들어주던 유일한 즐거움이, 바로 이 이 소설 <왕도의 대가>였다.
‘나의 최애 소설을 이렇게 끝내버리다니!’
그간 얼마나 가슴 졸이며 읽었던가.
목구멍 끝까지 핵고구마를 처넣는 전개.
기껏 캐릭터에 정을 들이면 그다음 편에서 죽여버리기 일쑤고.
독자의 마음 따위는 1도 생각지 않는, 피 튀기는 발암투성이 이야기였으니.
독자들의 원성에도 작가는 ‘꼬우면 읽지 말던가’라고 대꾸했고.
거기에 열받은 독자들이 득달같이 달려들어 악플을 남기자 곧바로 댓글창을 닫아버린 것이 바로 이 <왕도의 대가> 작가 ‘역4서’다.
나 역시 몇 번이나 생각했는지 모른다.
이런 열 받는 소설 따위, 선작 해제해버리자고.
‘하지만··· 하지만···.’
다음 이야기가 너무나 궁금했다.
막장 오브 막장의 끝을 달리는 이 이야기가, 대체 어떻게 끝날지 알고 싶어서 100원을 결제하는 손을 멈출 수가 없었다.
‘아.’
이 허무한 결말과 같잖은 작가의 말까지 보고 나니, 깨달음이 찾아왔다.
‘세자르가 아닌, 내가 바로 호구였구나.’
나야말로 1++, 최상등급의 흑우였음을.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너무하지 않은가.
이렇게 찜찜하게, 그냥 세자르를 죽여버리고 완결이라고?
앞서 뿌린 수많은 떡밥들은?
세자르와 팰러스의 과거에 숨겨진, 출생의 비밀은?
‘이렇게 하나도 회수하지 않고 완결이라니···!’
통탄함. 허무함. 분노.
수많은 감정이 한데 뒤섞였기 때문일까.
평소답지 않게 살짝 꼭지가 돌아 작가에게 되도 않는 쪽지를 보내버린 것은.
『안녕하세요, 작가님. 저는 <왕도의 대가>를 무료연재 시절부터 꾸준히 따라온 독자이자 작가님의 팬입니다. 오늘 연재분을 보고 너무도 안타까운 마음에···』
장장 5천 자에 걸쳐 나의 분노, 괴로움, 안타까움, 불만 따위를 토로했다.
그렇게 휘갈겨 쓴 쪽지를 보내고 나니 곧바로 부끄러움이 물밀 듯 밀려들었다.
‘전송 취소, 전송 취소할 방법은 없나?’
그렇게 허둥지둥하는데, 스마트폰이 부르르 진동했다.
[‘역4서’님이 쪽지를 보내셨습니다.]
『안녕하십니까, 독자님. 진심 어린 충고의 쪽지 감사합니다. 사실 <왕도의 대가> 때문에 저 역시 고민이 많았는데···.』
자신 역시 독자들 반응을 보고 이야기가 전반적으로 고구마 한 가득이라는 걸 뒤늦게 깨달았지만.
독자들이 이입하기 어려운 사이코패스 주인공을 아예 교체하지 않고서는 흐름을 바꾸기가 어려울 것 같다고.
그래서 팰러스가 아닌 다른 캐릭터를 주인공으로 삼아 최대한 라이트하게 리메이크해볼까 생각 중이라는 내용이었다.
“호오, 라이트하게 고쳐보겠다 이거지?”
오늘날 웹소설 트렌드에 맞는 이야기로 만드려면 어떻게 해야 할지 독자로서의 조언을 요구해왔다.
그렇다면야 해줄 말은 차고 넘치지 뭐.
『일단은 좀 많이 퍼주세요. 초반에는 주인공한테 뭔가 특별한 능력이 있어야 합니다.』
『많이 퍼줘야 하는군요···.』
『아, 상태창은 어떠세요?』
『상태창은 제가 써본 적이 없긴 한데.』
작가의 반응이 영 시원치 않다. 나는 얼른 다음 의견을 내놓았다.
『작가님, 혹시 책빙의물은 어떠실까요? 평범한 독자가 소설 속에 들어가는···.』
책빙의물의 장점을 강조하기 위해, 나는 ‘내가 이 소설 속에 들어가면 이러저러한 식으로 상황을 해결해나갈 것이다’라는 첨언까지 곁들였다.
작가 ‘역4서’는 내 조언에 굉장히 깊은 인상을 받은 듯했다.
『독자님이 이 소설에 들어가신다고요···』
‘들어가신다고요’ 뒤에 붙은 말줄임표가 어쩐지 의미심장하게 느껴지긴 했지만, 그냥 넘겼다.
그렇게 작가와의 쪽지 대화를 마무리하고 평소처럼 잠자리에 들었다. 쿨쿨거리며 아주 꿀잠을 잤지.
하지만 그때의 그 의미심장한 느낌을, 넘기지 말았어야 했다.
왜냐.
작가에게 그런 진심 어린 조언을 해줬다는 죄로,
“기침하셨습니까, 세자르 도련님.”
호구도 보통 호구가 아닌, 1++급 흑우인 ‘세자르’가 될 줄은 꿈에도 몰랐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