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97화
#197화
‘힘을 많이 썼지만……, 그래도 원하는 걸 얻어서 다행이다.’
부유성 위로 올라온 바체슬라프가 자신의 스킬 페이지를 살핀다.
히든 스킬을 얻었을 때를 상정하고 스킬 슬롯 한두 개를 비워뒀기에, 새로운 스킬을 이식하기 편했다.
띠링-.
[일출의 시간(히든)의 등록이 완료되었습니다.]
‘됐다.’
스킬 페이지를 확인한 바체슬라프가 입꼬리를 올린다. 이제 얻은 스킬을 이용해서 모든 사람을 발아래에 두면 끝이었다. 그가 목을 내밀고 아래를 내려다본다.
쾅쾅!
야나 이바노프와 기간티아 성주, 레기온 성주 등등이 싸우고 있었다.
‘벌써 정신을 차리고 반격에 들어가는 건가?’
바체슬라프가 눈매를 좁히며 전황을 살핀다.
그러자 별안간 이근희가 시야에 포착되었다.
‘역시 여기에 있었군…….’
과거에 자신을 도와주다가 배신했던 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나한테 좀 더 붙어 있었으면 위대한 계획을 빨리 실행할 수 있었을 텐데…….’
바체슬라프가 혀를 차면서 전황을 살피던 때였다.
그의 시선이 고대현의 옆에 있는 이하린에게서 멈춘다.
“저건…….”
이하린을 본 바체슬라프는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저건 자신이 잘 아는 부류의 것임을.
‘세컨드와 서드의 하위호환 버전이군. 그때 빼간 걸 따로 키우고 있던 건가? 성능이 기대보다 좋은 걸 보아하니, 따로 뭔가를 가르친 것 같은데…….’
생각을 하던 바체슬라프가 문득 정신을 차리고 다음 장소로 이동한다. 오랫동안 생각할 시간이 없기 때문이었다.
“무기는 준비됐나?”
그가 전천후를 부른다.
이에 성을 컨트롤하고 있던 전천후가 바체슬라프에게 무기를 건네준다.
띠링-.
[가이아 크래셔]
-공격 속도 +50%
-일반 공격 대미지 +50
-생명력 흡수 +20%
-잃은 체력비례 추가 대미지 부여.
-탄알 무한(착용자의 신경 지구력에 비례)
‘아주 좋은 무기야.’
성능을 살핀 바체슬라프가 입꼬리를 올린다.
이걸 이용해서 일출의 시간 스킬을 사용하면, 전 대륙을 깔끔하게 정리할 수 있을 터였다.
“이제 슬슬 불러 모을까요?”
“아니, 굳이 그럴 필요는 없어.”
따로 나눠서 스킬로 처리하기엔 너무 번거롭다.
인원이 너무 많아서 그렇게 할 시간도 없고 말이다.
따라서 모조리 없앤 다음, 다시 수감 등급을 재정립하면 되는 일이었다.
철컥-.
바체슬라프가 총구를 아래로 겨누고 지면을 관찰한다.
아직 야나가 아래에 있었다. 하지만 이렇게 다 묶어두는 기회가 얼마 없을 게 뻔하니 지금 사용하기로 했다.
기이이이잉-.
가이아 크래셔가 회전한다.
바체슬라프는 광역 즉사기, 일출의 시간을 작동시켰다.
다음 순간.
치직-.
시야가 옅은 갈색으로 변한다.
그리고 이어서 무수히 많은 빨간색 점들이 가득 채워졌다.
‘꽤나 힘이 드는군.’
빨간색 점이 늘어날수록 신경 부하가 늘어난다.
아직까지는 흡수의 타격보다 미미한 수준이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강해질 게 뻔했다.
‘야나도 아래에 있지만……, 어쩔 수 없다. 빠르게 처리해야지.’
바체슬라프가 늘어나는 빨간색 점들을 훑어본다.
각자의 머리를 중심으로 좁혀드는 빨간색 원은, 해골 모양으로 즉사 표시를 알리고 있었다.
이제 방아쇠를 당기면, 자동으로 빨간색 원이 만들어진 사람에게 헤드샷이 가해지고 게임이 끝나는 것이었다.
끼이이잉-.
그쯤, 대륙의 절반 정도가 빨간색 원으로 가득 찼다.
바체슬라프가 최대한 정신을 집중하고 있을 때였다.
‘누군가가 올라오고 있다.’
전천후의 시야에 고대현이 포착되었다.
‘내가 처리해야겠다.’
펄럭-.
그는 바체슬라프의 집중력이 흐트러지는 것을 막기 위해 직접 소환수를 타고 하강했다. 전천후가 와이번을 몰고 내려가자, 얼마 지나지 않아 고대현이 전천후의 앞에 도달한다.
‘빠르다.’
공중에서는 회피할 수 있는 한계가 정해져 있다. 전천후는 자신의 탐지계를 이용해서 최대한 고대현의 공격을 피하고자 했다.
스걱!
하지만, 곧장 감마 스트라이크를 사용하는 고대현에 의해 계획이 무산되었다.
“감지할 틈도 없다고?”
전천후는 고대현이 스킬을 사용하기 전.
그 신호를 감지해서 순간 무적기를 사용할 생각이었다.
그러나 고대현의 스킬 시전 속도가 너무 빠른 나머지, 전천후는 고대현의 스킬 사용을 허락하고 말았다.
“쳇!”
혀를 찬 전천후가 영혼화 스킬을 사용한 뒤, 감마 스트라이크의 지정 범위에서 벗어난다.
그런 사이, 고대현은 다시 툰드리스를 타고 위로 올라가고 있었다.
상대를 무시하고 그냥 직진하는 방법을 선택한 것이었다.
‘나를 무시해?’
성질이 난 전천후가 다시 고대현에게 접근한다.
탕탕!
그리고 뒤에서 그를 노리며 총알을 쐈다.
하지만 이것마저도 잘 먹히지 않았다.
스핏!
뒤를 돌아본 고대현이 자신의 검 손잡이에 손을 올린다.
그러자 전방에 거대한 무형의 참격이 스쳐 지나갔다.
스걱!!
‘이건 무슨 기술이지?’
심상 무기를 처음 보는 전천후가 고대현의 공격에 당한다. 예상보다 거대한 공격인지라, 인식을 해도 이를 피할 수 없었다.
“아, 안돼. 이대로 가면…….”
바체슬라프는 이미 흡수의 타격으로 보스몹을 처리하느라 많은 힘을 소모했다. 이대로 방해를 받는다면 계획은 틀어질 수밖에 없었다.
“멈춰!”
전천후가 고대현을 향해 소리칠 순간이었다.
기이잉-.
타앙-!!
하늘에서 포격 소리가 들려온다.
한 발이 아니라 무수히 많은 포격 소리가.
타타타타타탕!!!
거대한 소리를 들은 전천후가 속으로 안심한다.
‘됐어. 다행히도 고대현이 올라가기 전에 방아쇠를 당겼다!’
일출의 시간은 모든 대륙을 사정권에 둔다.
고대현이 바로 앞에서 검날 흘려내기를 사용하지 않는 이상 막는 것은 불가능했다.
‘이제 네 발악도 끝이다. 검날 흘려내기 하나로 히든 스킬이랑 가이아 크래셔의 조합을 막는 게 가능할 거라고 생각하는 건가?’
전천후가 실실 웃는다.
이제 자신의 뜻대로 새로운 대륙이 열리는 일만 남았다.
고대현이 저지하기 위해서 올라가긴 했지만 결국 실패하겠지.
전천후가 그렇게 생각할 찰나였다.
팅-!
“응?”
고대현이 앞에서 날아오는 붉은색 탄환을 튕겨내고.
이어서 전천후에게까지 오는 총알이 튕겨 나간다.
“어떻게 이 범위에서? 검날 흘려내기로 여기까지는 불가능할 텐데…….”
탄식하던 전천후가 고개를 올린다.
그의 시선이 멈춘 곳.
고대현이 2차 각성, 심상 무기를 이용해서 엄청난 범위의 검날 흘려내기를 시전하고 있었다.
티티티팅!!
대검을 휘두르면서 광범위 검날 흘려내기를 쓰던 고대현이 생각한다.
‘팔이 날아갈 것 같다.’
단순히 생각하는 거로는 실패할 확률이 높아서 직접 대검을 휘두른다.
지금 하는 동작은 풀 다이브 모드로 하는지라 소모가 컸다.
‘그래도, 덕분에 튕겨내는 각도가 꽤 좋아.’
일대의 모든 총알을 튕겨낸 고대현.
그가 다시 PC 모드로 전환한 뒤 위로 향했다.
* * *
“휴, 끝냈다.”
바체슬라프가 지면을 내려다보면서 깊은숨을 토해냈다.
전 대륙에 있는 사람을 대상으로 한만큼.
일출의 시간은 많은 체력을 필요로 했다.
‘이제 쉬어야겠어.’
더 했다간 그로기 상태에 빠질 위험이 있었다.
이에 바체슬라프가 발걸음을 옮길 때였다.
티티팅!!!
어디선가 튕겨온 총알이 성벽을 뚫고 내부를 파괴한다.
‘으음?’
일출의 시간을 튕겨냈다.
각도가 완벽하지 않아서 탄알에 맞지는 않았지만, 이 정도의 타이밍을 보일 수 있는 건 한 사람뿐이었다.
“고대현이군…….”
바체슬라프가 미간을 찌푸린 다음 시스템 창에게 명령한다.
“현재 살아남은 사람 수는?”
삑-.
[20명입니다.]
“스무 명이라……, 그 정도는 건졌다는 건가?”
일전의 공격으로 죽은 유저들은, 전부 바체슬라프의 권한 범위 안으로 들어왔다.
나머지 20명을 제외하면 전부 굴복시켰다고 볼 수 있었다.
‘검날 흘려내기의 범위가 그렇게 넓었나?’
바체슬라프가 자신의 무기를 꺼내면서 전천후를 찾는다.
“이봐! 어디로 간 거지?”
잠시 시간을 끌어줄 사람을 찾으려고 했는데.
어째서인지 전천후가 보이지 않는다.
‘설마, 벌써 당한 건가?’
그때였다.
“그 사람, 아까 보니까 저 아래에 있더라고요.”
“이놈! 정말이지 끈질기구나.”
바체슬라프가 이를 꽉 깨물면서 도끼를 든다.
공격보단 방어 태세였다.
이미 많은 힘을 소모한 그는, 고대현이 보기에도 약해 보였다.
‘나도 아까 올라오면서 힘을 많이 썼다. 이제 감마 스트라이크 위주로 가야겠어.’
고대현도 자세를 취하면서 전투 준비를 마쳤다.
휘이이-.
둘 사이에 바람이 분다.
타앗!
먼저 돌진한 쪽은 고대현이었다.
그가 마지막 전사를 사용하면서 이동 속도를 높이고 달린다.
띠링-.
[해당 영역은 관리자만이 출입가능합니다.]
터엉!!
그러나, 스킬 시전 범위에 닿기 직전.
고대현은 시스템 권한에 의해 밀려나게 되었다.
“젠장…….”
고대현이 계속해서 돌진으로 무형의 막을 뚫으려고 한다.
“하하, 얼추 접속은 했지만, 이것까지 뚫지는 못하는 모양이구나.”
긴장이 풀린 바체슬라프가 목소리를 높이며 웃는다.
이곳은 정해진 사람만이 들어올 수 있는 성역.
새로운 대륙의 지배자와 미리 달라붙어서 도와준 사람만이 들어올 수 있는 곳이었다.
끼기긱-.
그렇기에 다음 순간.
바체슬라프는 점점 안으로 밀고 들어오는 고대현을 보며 눈을 동그랗게 떴다.
“무, 무슨……, 단순 돌진으로 권한을 해제한다고?”
당황한 바체슬라프가 관리 시스템에게 명령한다.
“버, 범위를 확대한다. 당장 저 녀석을 밀어내버려!”
띠링-.
[명령을 수행합니다.]
바체슬라프가 명령하자, 이에 맞춰 관리자 한정 진입 범위가 넓어진다.
하지만 고대현을 완전히 밀쳐내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치지직-.
띠링-.
[특수 코드 사용자입니다.]
[상정하지 않은 오류(1)이 발생했습니다.]
“그게 무슨 소리…….”
특수 코드라는 말은 생소하다.
‘특수 코드? 저 녀석이?’
애초에 권한을 뚫고 접속한 것부터 심상치 않았다. 이에 바체슬라프가 기억을 되짚어본다. 그는 별안간 무언가를 떠올린 뒤, 말을 더듬었다.
“서, 설마 네 놈이 블랙 페이지?”
“저는 잘 모르겠는데……, 한때 누군가가 그렇게 불렀던 것 같긴 하더라고요.”
“이런 배신자가!!”
바체슬라프가 역정을 내면서 다가온다.
그에게 고대현은, 자신에게 붙었다가 막판에 뒤통수를 친 존재가 다름없었기에.
스르릉-.
그렇게 각자 칼을 겨누고.
‘온다.’
마지막 싸움이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