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87화
#187화
모든 대륙이 개인전을 하지 않는다.
보통 서로 동맹을 맺는 대륙이 있고.
한국 같은 경우에는 인도 대륙과 함께 동맹을 맺고 중국을 견제하는 구조였다.
한국 대륙이 포킹 가능한 병력 일부를 파견시키는 대신, 인도 측에서 1천만 정도의 병력을 지원받는 것이었다.
‘여기로 온 인원은 500만 명 정도네.’
다만, 한국 대륙의 수비 범위가 넓기에.
레기온의 방어 범위로 온 병력은 500만 명이었다.
나머지는 전부 기간티아가 담당하는 범위로 갔다.
500만이면 현재 레기온 성 병력의 절반 가까이 되는데.
‘이번에 파견된 인원도 중간 이하급 성이 온 거였지.’
현지에서는 그리 크지 않은 규모라고 한다.
엄청난 인구 규모 차이가 나는 것이었다.
“올해는 분위기가 좀 다르군요.”
그때였다.
하늘에서 목소리가 들려온다.
펄럭-.
인도 측 작전 대장, 안드라 누이를 태운 와이번이 다가오고 있었다.
“뭐, 적도 그렇고. 한국 대륙도 좀 바뀌었으니까요.”
“쩝……, 그냥 계속 유지만 해도 될 텐데 왜 싸우는지 모르겠군요. 어차피 1, 2위 나눈다고 해서 큰 차이는 안 날 텐데.”
머리를 긁적이는 안드라 누이의 말에, 레기온 성주가 기간티아 성주의 모습을 떠올린다.
“제가 미덥지 않았나 봐요.”
“의심에서 비롯된 분열이라는 거군요.”
“복합적으로 작용한 것 같아요. 이참에 1위 성으로 올라가려는 마음도 있었겠죠.”
기간티아 성주는 레기온 성이 적과 내통했다고 주장하고 있었다. 이번에 그런 주장이 나름 설득력을 가져서 사람들이 잘 선동됐달까.
레기온 성주가 자신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을 떠올리고 있자니, 안드라 누이가 지상의 병력들을 통제하면서 말을 잇는다.
“듣자 하니, 건강한 사람은 아닌 것 같습니다.”
“건강이요?”
레기온 성주가 고개를 갸웃거리자, 안드라 누이가 손가락으로 자신의 머리를 가리킨다.
“정신이 건강하지 못하다는 의미입니다. 의구심 때문에 아군을 칠 정도면, 생각보다 불안감과 걱정이 많고 내부부터 곪아있는 사람일 확률이 높겠군요.”
“그래요?”
그런 사람을 잘 안다는 듯한 말투였다.
“네, 걱정 때문에 일을 그르치는 사람. 꽤 많이 봐서 잘 알고 있거든요. 흠…….”
말을 하던 안드라 누이가 문득 말을 멈춘다.
안드라 누이의 시선은 레이저 폭격이 떨어지는 곳에 고정되어 있었다.
“저쪽 풍경이 저번 라그나로크 때랑은 다른 것 같은데…….”
“다른 것 같다고요?”
“네. 생존 인원이 더 많은 느낌입니다.”
안드라 누이는 먼 시야를 볼 수 있는 스킬이 있다.
그가 관찰한 사실을 말한다.
“뭔가 큰 구덩이가 있고, 적들이 그곳에서 숨어서 생존했다가 다시 나오는 것 같군요.”
“구덩이?”
고개를 갸웃거리던 레기온 성주의 뇌리에.
문득 회의에서 봤던 구조가 스쳐 지나간다.
‘맞닿는 부분이 둥글게 파여 있었지.’
대륙과 대륙이 맞붙는 접경지.
적 대륙은 그곳에 미리 땅을 파뒀다.
아무래도 모든 대륙이 합쳐졌을 때.
둥근 부분에 바닷물이 갇혀 거대한 호수를 만들어지게 할 계획이었던 것 같다.
“대미지를 견디기 위해 인공 호수까지 만들다니……. 확실히, 이번에는 더 각 잡고 들어오네요.”
이번 라그나로크는 변수가 많다.
당장 북부의 일도 어떻게 돌아가는지 모르니 말이다.
‘빨리 끝내야지.’
레기온 성주는 최대한 빨리 일반 라인 방어전을 끝내기로 했다.
그녀가 온페리스를 타고 직접 적들의 위로 향한다.
‘다시 표창 폭격을 해줘야겠네.’
레기온 성주의 명령에 따라, 온페리스의 날개가 펄럭일 때였다.
-E4 라인에서 교신입니다.
방어 라인 중 하나에서 긴급 연락이 들어왔다.
온페리스에게 폭격을 맡긴 레기온 성주는 들어온 연락의 내용을 확인했다.
“뭐……?”
별안간 레기온 성주의 눈이 동그랗게 커진다.
평소 철통같은 방어를 담당하던 E4 라인.
그곳이 붕괴 위기라는 소식이 들려왔다.
‘뭔가가 벌어지고 있다.’
레기온 성주가 일선을 안드라 누이에게 맡기고 E4로 향한다.
그렇게 도착한 E4 라인은 이미 적들에게 초토화 되어 있었다.
* * *
라그나로크의 전투 소식 현황은 모두가 관심을 가지는 내용 중 하나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이 전투에 참여 중인지라, 라그나로크가 끝나고 나서 보는 게 일반적이었고.
이런 전투 소식 현황을 실시간으로 전해 들으면서 즐기는 이는, 미성년자와 은퇴한 사람들뿐이었다.
[이번 라그나로크는 상황 보고 진로 결정해야겠다.]
- 바뀌는 게 많아서 정확하게 못 정하겠네.
└ 나도 ㅇㅇ.
이번 라그나로크 이후에 판도가 바뀔 것 같기에.
특히 본 대륙으로 갈 준비를 하는 학생들은 이번 전투를 주시하는 중이었다. 그래야 앞으로 지망할 성을 고를 수 있으니 말이다.
[사냥조 성과는 레기온이 더 좋던데 라그나로크 방어전은 어떨까?]
- 기간티아도 나름 방어 노하우 있던데 방어전은 우세하려나?
└ 기간티아는 집중력 많이 필요한 전략 써서 후반으로 갈수록 피로도 때문에 약해질걸?
└ 처음부터 스킬 퍼붓는 레기온보다 기간티아가 피로도 심하다고? 제대로 안 알아봤네.
└ 대규모 마법 스킬보다는 하나하나 공들여서 저격하는 게 더 힘들어.
└ 응 아니야~.
댓글로 각자의 의견을 교환하면서 건전한 토론을 나눈다.
대부분의 주제는, 둘 중 어떤 진영의 성이 더 좋은 성과를 거둘까에 대한 것이었다.
그러던 중.
[야야 중간 현황 떴다!]
- ㄱㄱㄱㄱㄱㄱㄱㄱㄱㄱㄱㄱ
└ 뭐야, 벌써 떴음?
└ ㅇㅇ
라그나로크의 중간 진행 현황이 대략적으로 나왔다.
두 성의 방어율 대결은, 기간티아의 승이었다.
레기온 성의 E4 라인이 무너지면서, 자동적으로 방어 면적 비율도 내려간 것이었다.
[어, 뭐야? 왜 레기온성이 밀림?]
- 방어 메타가 낡은 건가?
└ 적들이 레기온성 기준으로 공격 준비해서 그런 것 같은데.
└ 이제 레기온성도 낡은 건가…….
레기온 성은 강한 스킬로 적을 단번에 없애는 스타일.
기간티아는 하나하나 정밀한 타겟팅을 통해 섬멸하는 스타일이었다.
그간 적 대륙이 레기온 성의 방식을 뚫기 위해 노력해왔기에.
상대적으로 기간티아가 더 앞서 나가는 것으로 보였다.
[흠, 나중에 기간티아 성 고려해봐야겠네.]
- 앞으로 원딜 메타 될 듯 ㅇㅇ.
└ 갈 실력은 되고?
└ ㅗ
이제 막 라그나로크의 중반을 지나는 중이었지만.
여론은 하나둘씩 기간티아로 기우는 중이었다.
* * *
챙챙-!!
북부 접경지.
툰드라 테라의 윗 지방에서.
고대현은 한창 적과 교전하고 있었다.
세컨드와 서드의 방어력.
신경 지구력이 예상보다 높아서 전투 시간이 꽤 길었다.
티잉-!!
검날 흘려내기를 시전한 고대현이 할버드를 튕겨낸다.
빠른 공격이긴 하지만, 고대현의 검날 흘려내기를 파훼하기엔 부족했다.
“윽! 역시 안 뚫리네.”
미간을 찌푸린 서드가 뒤로 물러난다.
자신도 신경 지구력이 꽤 높다고 여겼건만.
레기온 측의 기사 대행은 더 월등한 지구력을 가지고 있었다.
‘거기에 더해서 전투 센스도 좋아.’
세컨드가 도끼로 강한 공격.
서드는 할버드로 변칙적인 공격을 가했다.
그러나, 고대현은 이런 변칙 공격 따위는 우습다는 듯.
계속해서 참격을 회피하고, 반격하면서 유유히 빠져나갈 뿐이었다.
“벌써 끝이냐?”
부웅-.
한 바퀴를 구른 고대현이, 대검을 휘두르면서 다가온다.
무거운 대검인데도 불구하고 동작이 굉장히 날쌔다.
스걱-!!
대검의 날이 그들의 등을 베고 지나간다.
하지만.
‘방어구가 너무 단단해.’
방어구로 몸을 떡칠했기에, 베어도 유의미한 체력 감소가 일어나지 않았다.
이제 4분의 1 정도 줄어든 수준이랄까…….
딸깍-.
그쯤, 대현은 다시 감마 스트라이크를 사용했다.
적이 아이템 중 하나인 워무그의 심장을 이용해 체력을 회복하면 곤란하기 때문이었다.
스거거걱-!!
다시 세컨드와 서드 주변에 칼날 폭풍이 일어난다.
대현은 세컨드와 서드를 잡아두면서 신영범 학년 담임이 있는 곳을 살폈다.
학년 담임은 안개 사이에 숨어서 칼로 바체슬라프를 상대하고 있었다.
스핏!
안개에서 나온 칼날이 바체슬라프의 등을 베고 지나간다.
바체슬라프의 표정에는 아무런 미동도 없었다.
‘저놈이 최종 보스…….’
미간을 좁힌 고대현이 기억을 되짚어본다.
알아본 소식에 의하면, 바체슬라프는 나세스의 스킬, 흡수의 타격을 가지고 있다.
흡수의 타격은, 계속해서 스택을 쌓으면서 영구적인 대미지를 늘리는 만큼 신경 부하가 심한데. 바체슬라프는 신경 지구력을 타고났기 때문에, 흡수의 타격 대미지가 상상 이상이라고 했다.
‘추정치가 1,000만 대미지라고 그랬었지, 아마?’
공격 한대에 1,000만.
방어구를 떡칠해도 한방에 컷 당할 확률이 높다. 진짜 원거리에서 계속 견제하거나, 감마 스트라이크 같은 지정 불가 스킬로 공략하는 게 좋아 보였다.
“비켜 엑스트라들.”
푹-!
감마 스트라이크를 끝내고 공중에서 나타난 고대현이 대검을 수직으로 찔러넣는다.
약점 부위라서 그런 걸까.
정수리를 타격당한 서드가 주저앉으면서 땅을 구른다.
“으윽, 이 자식이…….”
공격은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고대현이 후방에 있는 수호기사, 홍영과 통신한다.
-지금입니다. 미간에 갈겨주세요!
-말 안 해도 그렇게 할 겁니다.
타앙-!!
가속 역장을 10중첩시킨 홍영의 총알이 눈밭 일대를 가른다.
퍼억-!!
야나 이바노프를 다운시킨 기술이라서 그런 걸까.
머리에 총알을 맞은 서드가 그대로 뒤로 넘어가면서 다운된다.
‘하나 처리했고.’
남은 사람은 하나.
고대현이 빈틈을 노리면서 돌진한다.
카가각!!
도끼와 대검이 맞물리면서 불똥이 튄다.
대현은 적의 동작을 머릿속에 새겼다.
다행히도 난이도가 그리 높지 않았다.
즉, 탑 내부에서 사용했던 움직임을 꺼낸다면?
‘잘 쳐줘야 8층 보스몹 급? 이러니 내가 이길 수밖에 없지.’
딸깍-.
고대현이 민첩화 비술과 함께 이하린에게 배웠던 동작을 사용한다.
퍽-!
다리로 상대의 허벅지를 가격하고.
이어서 발등으로 무릎이 접히는 안쪽을 찔러준다.
비틀-.
체력이 빠진 세컨드의 몸이 흔들린다.
고대현은 그 틈을 놓치지 않았다.
‘연속 찌르기로 간다.’
파츠츠츠츠-.
마지막 전사를 사용한 고대현이 빠르게 돌진함과 동시에, 전방으로 대검 찌르기를 사용한다.
쾅쾅쾅쾅!!
“읏!”
세컨드가 도끼의 옆면으로 겨우 방어한다.
흐름이 무너진 그녀는 방어밖에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방어해도 소용없어.’
쾅쾅쾅!
고대현이 계속해서 찌르기를 사용한다.
파킨!
그때였다.
내구가 떨어진 대검에 금이 가면서 파괴되었다.
대현은 당황하지 않고, 곧장 인벤토리의 검을 꺼내서 공격을 이어 나갔다.
쾅쾅쾅!
파킨-!
그렇게, 약 5개 정도의 검이 깨지는 순간.
푸걱!
고대현의 검이 도끼를 파괴하고, 세컨드의 가슴팍을 찔렀다.
이로써 적 수호기사 2명을 단신으로 처치한 것이었다.
“휴우.”
전투를 끝낸 고대현이 숨을 돌린다.
챙챙!
그런 순간에도.
아직 북부의 전투는 끝나지 않고 계속되고 있었다.
‘이제 바체슬라프가 있는 쪽으로 갈까?’
이에 고대현이 바체슬라프에게 돌진한다.
마지막 전사 효과덕에 금세 적진에 도달한 그는.
콰앙!
곧장 바체슬라프에게 일격을 날렸다.
“그 둘을 벌써 처치했다고? 내가 훈련을 잘못시켰군.”
“아니, 내가 너무 강해서 그런 거야.”
카가가각-.
고대현이 도끼로 자신의 공격을 막고 있는 바체슬라프를 압박한다.
스걱-!
그때, 뒤에서 학년 담임이 나와서 바체슬라프를 공격한다. 2명이라서 이전보다 훨씬 딜이 수월하게 들어갔다.
“흐음.”
그럼에도 바체슬라프의 표정은 여유로웠다.
“후후.”
‘무슨 다른 꿍꿍이가 있는 건가?’
이에 고대현이 순간 싸늘함을 느낄 때였다.
-야야.
고대현에게 정태룡의 전음이 들려왔다.
-E4쪽 뚫렸대!
-뭐? 그럼 우리 망한 거 아니야?
아니.
벌써 밀리는 건가?
‘레기온 떡락…….’
고대현이 혀를 차고 있으니, 정태룡이 추가 소식을 전한다.
-기간티아 성 내부 반란 일어났어. 지금 야나 이바노프 탈출했다는데?
이것이 정태룡이 진짜로 전하고 싶은 소식인 듯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