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82화
#182화
다음날.
고대현은 날이 밝자마자 이하린의 집으로 향했다.
날이 점점 더워질 시기라서 그런가.
예전보다 올라갈 때 땀이 많이 난다.
대현은 중간쯤에 멈춰서 이마에 흐르는 땀을 닦았다.
‘내가 여기를 다시 올 줄은 몰랐네.’
가파른 산길을 오르고 있으니, 이곳에 처음 왔던 때가 생각난다.
‘뭔가 자연 친화적인 집이었지…….’
이하린의 집은 현시대의 자동화 시스템과 어느 정도 거리를 벌리고 있었다.
가정집에 있는 흔한 로봇이라던가, 전자기기조차 존재하지 않았다.
대현은 이를 그저 특이한 라이프 스타일 중 하나라고 여겼다.
그러나, 이하린의 엄마와 접촉한 뒤.
고대현은 이하린이 이렇게 사는 이유를 알게 되었다.
‘이근희가 인류 관리 시스템에 대항했다가 그 아래에 잡혀서 사는 느낌이었지, 아마?’
이근희는 현재 인류 관리 시스템의 아래에서 선을 벗어나는 사람들을 관리하는 중이다. 바체슬라프를 견제하는 이유가 그래서였다. 거기에 더해서, 이하린을 기간티아 성으로 들어가게 해서 내부 조사까지 진행하고 있었다.
탁-.
그쯤, 고대현이 이하린의 집 초입 길에 발을 들였다.
‘그때랑 크게 달라진 건 없네.’
집의 외관을 확인한 그가 문을 똑똑 두드린다.
드르륵-.
그러자 이하린이 곧장 문을 열어준다.
“오느라 힘들었지?”
그녀가 고대현을 내부로 안내한다.
‘시원하다.’
다행히도 집안에 에어컨은 있는 모양이었다. 고대현은 이하린이 건네준 물을 마시면서 집 내부를 둘러봤다. 오늘은 마지막 전사 2차 각성 스킬에 대한 이야기를 할 겸 왔으니.
‘또 저번처럼 몸을 움직일 것 같네.’
이하린과 육체적 수련을 했을 때처럼.
도복을 입고 땀을 빼게 될 것 같았다.
“이제 슬슬 시작할까?”
예상대로, 이하린이 그를 수련실로 안내한다.
이번에 하고자 하는 건 심상력에 대한 수련이었다.
단순한 동작 구현도로는 2차 각성을 쓸 수 없기에.
좀 더 그쪽을 신경 써서 공략하기로 했다.
“그런데, 어떻게 수련할 건데? 애초에 이게 수련이 가능한가?”
그때, 고대현이 이하린에게 말한다.
사실……, 그는 아직도 현 수련이 미덥지 않은 상태였다.
이렇게 수련을 해서 모션 캡처를 한다고 해도, 결국 화면 내부의 몸이 동작을 수행하는 거니까. 2차 각성의 심상력 조건을 채우지 못할 확률이 높았다.
“일단 해봐. 손해 볼 건 없잖아?”
이하린이 자세를 취하면서 동작을 준비한다.
이에 고대현도 하는 수 없이 몸을 움직일 준비를 했다.
‘사실, 오늘은 그냥 얼굴 볼 겸 놀러 와본 건데…….’
의도치 않게 고강도 수련을 하게 된 그였다.
* * *
그로부터 1시간 정도의 시간이 지났다.
이하린은 자신이 느낀 것을 고대현에게 전해주려 노력했다.
처음에는 단순히 동작을 봐주는 것이었고.
그다음은 스킬을 쓸 때의 특정 심상에 대한 피드백이었다.
각 캐릭터별로 그것을 컨트롤하기 편한 상태가 되는 방법이 있는데.
게임고에서 수업했을 때처럼.
마음속으로 특정 도형을 떠올리거나 숫자를 세는 식으로 진행되었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흠, 직접 접속한 다음 안에서 봐주면 좋을 텐데…….”
이하린이 이마에 흐르는 땀을 닦으면서 말한다.
현실에서 수련을 하고, 바로바로 내부에서 보면 좋았으나 지금은 그 방식을 쓰기 애매했다. 지하실에 캡슐이 있긴 하지만, 그건 개인 전용이라 다른 사람이 못 쓰는 거니까.
“그럼 우리 집으로 와서 할래?”
“네 집?”
그때, 고대현이 자리에서 일어나면서 말을 이었다.
“우리 집에 캡슐이랑 헤드셋도 있어서 할만할걸?”
“진짜?”
“응, 아니면 가상현실 캡슐 한 대 더 사면 되니까.”
가상현실 캡슐이 싼 편은 아니다. 일반인은 성 산하의 캡슐 스테이션에 가서, 출근하듯 캡슐을 사용하는 게 대부분이었으니 말이다.
그렇기에, 캡슐을 한 대 더 산다는 고대현의 말은 꽤나 파격적인 것이었다.
‘그러고 보니, 고대현은 채널 수익도 크고 레기온 성 중심에 있어서 돈이 많은 편이었지…….’
이하린은 막 기간티아 성에 들어갔다. 그것도 전지수를 통해 그나마 있는 틈을 비집고 간 것이었다. 기본적인 지원을 받는 게 늘었긴 하지만, 결국 고대현 정도는 아니었으니까.
“그럼, 다음에 가볼까?”
문득 대현의 집에 궁금해진 그녀가 말한다.
고대현은 자신의 짐을 챙기는 것으로 답을 대신했다.
“아니, 그냥 지금 가자.”
“지금?”
이하린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말하자, 고대현이 고개를 끄덕인다.
‘마침 좋은 게 생각났다.’
2차 각성을 사용할 방법이 어렴풋이 손에 잡힌 고대현이었다.
* * *
끼익.
공유 차를 타고 온 그들이 인도에 내린다.
먼저 차에서 내린 이하린이 주변에 있는 집들을 응시한다.
현재 고대현이 거주하고 있는 집은 레기온 성에서 마련해준 것이었고.
때문에 고위급 인물이 많이 모여있는 부촌에 위치하고 있었다.
“여기야?”
얼떨결에 따라온 이하린이, 고대현의 집을 가리키면서 말한다.
저택이라고 표현할 정도는 아니지만.
3층 정도 되는 고급스러운 주택에, 그녀의 눈이 동그랗게 커졌다.
“집 엄청 좋네…….”
“너도 업적 세우면 기간티아에서 하나 마련해줄걸?”
“에이 설마. 나 그 정도는 아니야. 그리고 이미 야나 이바노프도 지하 감옥에 있어서, 사실상 내가 활약할 곳은 별로 없어. 애초에 성에 들어간 이유도 정보 파악이 우선이고.”
“그래? 내가 볼 때는 너도 조금만 하면 수익 꽤 높게 받을 수 있을 것 같은데.”
“본 대륙은 근접이 뜨는 메타가 아니라서 아마 힘들 거야. 물론 잠깐 화제는 되겠지만…….”
근접은 대륙 메타가 아니다.
그 말에, 고대현도 잠시 린이지 내부의 상황을 떠올렸다.
‘나도 바체슬라프나 야나 이바노프 대항용으로 뽑힌 거였지.’
고대현은 신경 지구력에 의거해서 기사 대행이 되었다.
바체슬라프 같은 존재가 없다면?
‘뽑힐 이유가 없었지.’
기사 대행으로 들일 이유가 전혀 없었다.
물론.
만약 안 뽑혔어도 일반적인 티어와 실력으로 어떻게든 비볐겠지만.
자신과 달리, 이하린은 장거리 사격이 취약한지라 상황이 달랐다.
“그래도 너는 전지수랑 사이잖아. 여차하면 자리하나 달라고 하면 되지. 아니면 나중에 내 보조로 들어오던가.”
“보조?”
“응, 툰드리스라고 내가 키우는 펫이 있는데, 나 혼자 키우기 좀 귀찮아서.”
“지금 나보고 네 펫 뒤치다꺼리나 하라는 거야?”
“어떻게든 일자리 창출하려다 보니, 생각나는 게 그거밖에 없네.”
“후우, 그냥 근접 메타가 다시 돌아오는 게 더 빠르겠네.”
삑-.
그때.
고대현이 집 문을 열고 그녀를 내부로 안내한다.
“일단 이동하면서 이야기하자.”
“알았어.”
이하린이 고대현의 집안에 발을 들인다.
신발장이 있는 곳을 지나자 복도가 나온다.
천장이 그녀의 생각보다 높았다.
“네 방은 어디야?”
“2층에 있어.”
“오, 2층.”
그녀가 계단을 통해 대현의 방으로 올라가려고 할 때였다.
“응? 친구 데려왔니?”
고대현의 어머니와 그녀의 눈이 마주쳤다.
“아, 안녕하세요.”
이하린이 당황하다가 허리를 숙여 인사한다.
“게임 때문에 할 게 있어서 불렀어요.”
“아, 게임고 친구야?”
“네.”
게임고에서 데려온 친구라…….
매일 게임 못하는 꼴통 같은 친구만 데려오다가 이제야 멀쩡한 친구를 데려온다. 이에, 그녀의 안색이 밝아졌다.
“그런데 정규전 끝난 지도 얼마 안 지났는데, 친구랑 또 게임 하니?”
“얘도 기사 대행이라서 준비할 게 있거든요.”
“아아…….”
기사 대행이라는 말이 나오자 고개를 끄덕이는 대현의 어머니.
라그나로크가 코앞이니, 기사 대행은 학생이라고 해도 비교적 바쁜 시기가 맞았다.
“그래, 뭐 장비 같은 거 부족하면 말하고. 헤드셋이나 추가 보급 카트리지도 전부 있으니까.”
“네에.”
대강 답한 고대현이 계단을 오르면서 이하린에게 손짓한다.
“빨리 와.”
“아, 응…….”
이하린이 고대현의 방으로 따라 들어간다.
방에는 캡슐 스테이션에 있을 법한 크기의 캡슐과 침대, 그리고 가상현실 헤드셋이 마련되어 있었다. 방이 생각보다 넓어서 아까 하던 수련을 속행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헤드셋 카트리지가 꽤 많네……, 나는 그냥 헤드셋으로 하면 되겠다.”
이하린이 헤드셋을 쓴다.
“그럼, 그때 그 지점에서 만나는 걸로?”
“응.”
그리고 만날 지점을 정한 뒤, 그곳에서 수련을 계속했다.
파츠츠츠-.
마지막 전사의 2차 각성 스킬을 작동시킨 고대현이, 이하린에게 배운 다음 등록한 동작을 사용한다. 모션 캡처를 통한 단축키 동작이기에, 움직임을 깔끔한 편이었다.
‘흠, 역시…….’
하지만, 2차 각성이 사용될 정도는 아니었다.
“좀 더 감정을 담는 느낌으로 하면 될 것 같은데…….”
이에 이하린이 붙어서 보조를 해준다.
이하린은 이제 2차 각성 스킬로 피요나의 찌르기를 20% 정도 구현할 수 있었다.
“다시 나가서 또 해보고 올까?”
“그래, 그러자.”
치이익-.
고대현이 다시 캡슐 밖으로 나오고.
이하린도 가상현실 헤드셋을 벗는다.
그들은 일전에 수련복을 입고 연습했던 것처럼.
다시 서로의 동작을 봐줬다.
그나마 다른 게 있다면, 바닥이 더 딱딱해서 얇은 이불을 깔았다는 것 정도일까.
“거기서 더 가야 할 것 같은데?”
“그러냐.”
다시 수련이 시작된 가운데.
고대현은 잠자코 이하린의 말을 들었다.
뭔가 감이 오는 게 있기 때문이었다.
‘내면의 공간은 접속된 게임 내부랑 분리되어 있지만……, 넓게 보면 결국 가상현실 내부야.’
현재 자신이 사용하는 PC 모드는.
본디 게임 선택을 하는 ‘대기실’에 생성된 것이었다.
남들은 현재 고대현이 있는 흰 공간에서.
가상현실 내부의 컨트롤 상태를 체크하거나 접속할 게임을 고르는 게 일반적이었다.
‘남들도 빙의체를 그곳에서 손보니까, 동일한 방식으로 움직인다는 거겠지. 그러니까 잘하면 될지도 모른다.’
그간 PC 모드에서 가만히 앉은 채 손만 움직여서 까먹고 있었다.
진짜 몸은 캡슐 내부에 누워있다는 것을 말이다.
손가락만 까딱거리는 몸 자체도.
이미 가상현실 내부에 존재하는 빙의체라고 보는 게 좋았다.
아마, 중간에서 방지턱 역할을 하는 PC 모드만 뛰어넘으면 심상력을 전달할 수 있지 않을까?
탁-.
그때였다.
“앗.”
서로의 다리가 엉키면서 무게중심이 흐트러진다. 동작의 실수였다.
다음 순간.
고대현의 몸이 이하린 쪽으로 기울고.
쿵.
이로 인해 그를 봐주던 이하린도 뒤로 넘어졌다.
“야, 무거워. 빨리 나와.”
그녀가 바닥에 탭을 치면서, 고대현에게 빨리 일어나라는 신호를 보낸다.
“아, 미안.”
이에 고대현이 몸을 일으키려 할 순간.
벌컥-.
방문이 벌컥 열렸다.
문을 연 사람의 정체는 대현의 어머니였다.
“대현아, 너, 네 영상 봤니. 이번에 게임고에서 아이언 2가 챌린저로 갔다고 입소문이 나서 조회수가……. 으, 응?”
한 손에 간식을 들고 있던 그녀의 눈이 동그랗게 커진다.
“어, 음. 하던 거 계속하렴.”
그녀가 다시 대현의 문을 닫고 나간다.
방안에 정적이 흘렀다.
“아…….”
정적을 깬 이는 이하린이었다.
퍽.
그녀가 옆에 있던 베개를 그에게 던지는 것으로, 상황은 비교적 안전하게 마무리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