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81화
#181화
“많이 기다렸어?”
이하린이 고대현이 있는 곳에 도착하면서 말한다.
마지막 전사의 2차 효과를 얻은 사람은.
고대현이 아는 범위 내에서는 이하린밖에 없었다.
그렇기에, 대현은 이하린과 직접 마지막 전사 2차 해금 스킬을 수련하기로 했다.
“네가 한번 써봐.”
“응, 잠깐만.”
이하린이 자세를 취하고.
마지막 전사 스킬을 사용한다.
파츠츠-.
이하린의 몸이 빛에 휘감기면서.
공격 속도와, 이동 속도, 둔화 효과 면역이 생긴다.
“이 상태에서 마나를 소비해서 발동…….”
이하린이 몇 가지를 조작하더니, 이어서 마지막 전사 2차 효과를 발동시킨다.
그녀는 심상을 맞추는 시야 모드에서 턱 끝을 만지며 고민하다가.
철컥-.
무기 장착을 해제했다.
그리고 허공에서 손을 움직이며 자세를 취하기 시작했다.
‘저건……, LOH의 탑 챔피언인 피오나인가?’
피오나는 얇은 검을 한 손에 쥐고.
나머지 팔을 등 뒤에 붙인 채 싸우는 게 기본자세인 챔피언이다.
해서, 대현은 이하린이 표현하고자 하는 챔피언이 뭔지 단번에 알 수 있었다.
휙휙-.
그녀가 허공에서 팔을 움직인다.
무기가 손에 없기에 단순히 팔만 휘두르는 동작이었다.
“끄응…….”
눈을 감고 동작을 취하던 이하린이 다시 눈을 뜬다.
“역시 잘 안되나 보네.”
“무기 없이 하려니까 좀 힘들긴 하네.”
이하린이 손을 쥐었다 폈다 하면서 스킬의 감을 잡는다.
마지막 전사의 2차 각성인 심상 무기는.
무기가 완전히 해제된 상태에서도 스킬을 쓸 수 있으니까.
아마 그걸 연습하는 거겠지.
그렇게 생각한 고대현이, 이하린을 향해서 말했다.
“완전 무장 해제 상태에서도 쓸 수 있다고 했으니까……, 어중간한 무기로도 쓸 수 있다는 거 아니야?”
“아아, 생각해보니까 그러네?”
무기 없이 스킬을 쓴다는 내용에만 너무 집중했다.
대현은 이하린에게 건틀릿이나 다른 무기를 써서 일전의 동작을 재연해보라고 일러줬다.
철컥-.
이에, 작은 단검을 꺼낸 이하린.
그녀가 단검으로 피오나의 동작을 따라 한다.
아까와 달리 실체가 있는 단검을 들고 따라 하니.
치잉-.
피오나의 대표적인 스킬인 슬라이딩 찌르기가 아주 미세하고 약하게 발동된다.
“오오─.”
아주 약하게 발동해서 쓰나 안 쓰나 별 차이가 없었지만.
‘스킬 수가 제한된 시스템을 생각하면 파격적이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성적에 따라 스킬을 정하는 시스템을 고려하면, 아주 사기적인 스킬이었다.
파츠츠-.
“후우-.”
마지막 전사를 해제한 이하린이 자세를 가다듬으면서 숨을 훅, 내쉰다.
그녀는 일전에 찌르기가 사용되었던 감각을 떠올리면서 말을 이었다.
“스킬 배정받아서 쓸 때랑은 느낌이 다르네. 훨씬 어려워.”
“그래?”
“응, 일반적인 스킬은 동작을 취하면 구현도에 따라서 아웃풋이 나오는 구조인데. 이건 구현도로 작동하는 느낌이 아니야. 뭔가 마음의 형태가 잡혀야 쓸 수 있다고 해야 하나…….”
“흠, 내면의 구현도를 잡아야 한다는 건가?”
“어. 맞아! 그런 느낌이야.”
고대현이 적당히 설명하자, 이하린이 공감하면서 고개를 끄덕인다.
별 생각 없이 던졌는데, 그의 예상과 얼추 비슷했던 모양이다.
‘내면의 구현도라……, 그걸 어떻게 PC 모드로 하지?’
하지만, 자신이 얼마나 잘 비유하는지는 크게 중요치 않았다.
PC 모드를 메인으로 두는 한.
내면의 구현도라는 것은 사용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간 PC 모드를 꽤나 애용했기 때문일까.
고대현은 2차 각성 스킬을 제대로 사용할 수 없다는 사실에 배신감을 느꼈다.
‘아니, 어떻게 얻은 스킬인데…….’
탑에 120일 동안 지내면서 여러 실력적인 부분이 올랐지만, 결국 본 목적은 2차 해금 스킬이었다. 이를 제대로 사용할 수 없다는 건, 120일 중 절반을 날린 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대현, 무슨 생각해?”
“음? 아, 아무것도 아니야.”
고대현이 차분하게 답한다.
그는 고 티어증 소유자답게 멘탈을 빠르게 다잡았다.
‘그래, 어차피 툰드리스도 있고, 감마 스트라이크도 사기적이니까 괜찮아.’
자신은 이미 많은 것을 가졌다.
티어는 3 챌린저로.
지금까지 받은 티어 중 제일 높은 티어를 갱신했으며, 레기온 성의 유명 인사와 연줄이 있고, 수익도 꽤 괜찮은 편이었다.
‘여타 하위권 학생에 비하면 훨씬 낫지…….’
이렇게 생각하니 마인드 테라피가 되는 것 같다.
고대현이 마지막 전사의 2차 해금, 심상 무기를 뒷전으로 하고, 슬슬 서브 스킬을 무엇으로 채울까 생각할 때였다.
“대현아, 너도 한번 써봐 내가 봐줄게.”
이하린이 심상 무기 스킬을 써보라고 한다.
대현은 스킬을 쓸지 말지 고민했다.
어차피 안되는 기술을 사용하기 위해 노력해봤자, 얻는 건 없었으니까.
끼익-.
그가 내면의 공간에서 모니터와 거리를 벌린다.
그러자, 그간 업그레이드한 PC의 모습이 전체적으로 나온다.
옆에 있는 모션 캡처기까지 전부.
‘잠깐…….’
그러던 중.
대현은 내면의 PC 옆에 있는 모션 캡처기에 시선을 고정시켰다.
‘저걸로 이하린의 동작을 등록해서 사용했었지, 아마?’
대현은 본디 경직된 움직임을 가졌지만.
모션 캡처기와 단축키를 통해.
비교적 자유로운 움직임을 구사할 수 있게 되었다.
‘모션 캡처는 동작을 담는 거지만. 뭐, 여러 가지로 시도해 보면 가능할지도 모르니까…….’
고대현이 다양한 가능성을 열어둔다.
애초에 심상이라는 것부터 추상적이니.
마음을 담아서 모션 캡처를 하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잠깐만 기다려봐.”
PC 모드가 있는 또 다른 가상현실인, 내면의 공간.
대현은 그곳에서 피오나의 스킬 동작을 취했다.
그는 현재의 동작을 등록한 다음, 외부에서 그대로 따라 할 생각이었다.
‘흠, 갑자기 움직이려니 좀 어색하네.’
그러나, 오랜만에 몸을 써서 그런지.
생각처럼 몸이 정확하게 움직여지는 일은 없었다.
‘어쩔 수 없네. 그냥 해야지.’
그가 체념하고.
이하린의 옆에서 마지막 전사 2차 각성을 사용한다.
파츠츠-.
고대현이 몸이 다시 금색 빛으로 휘감긴다.
‘어디 보자, 등록했던 동작이…….’
그는 단축키에 있던 피요나의 동작을 사용했다.
딸깍-.
다음 순간.
화면 속 고대현의 몸이 팔다리를 움직이면서 피요나의 스킬 초식을 따라 한다.
“오, 좀 비슷해.”
이에, 이하린이 옆에서 감탄한다.
하지만 이하린처럼 피요나의 찌르기가 발현되는 일은 없었다.
‘역시, 심상력이 안 담긴 동작이라서 그런 건가…….’
PC 모드를 포기하면, 역전 세계가 다시 재역전된다. 굳이 PC 모드를 포기해서 세계를 바꿀 필요는 없었다. 아무래도 이 부분은 차차 연구가 필요할 것 같았다.
“금방 할 줄 알았는데 너답지 않게 꽤 오래 걸리네?”
그때, 그를 바라보던 이하린이 고개를 갸웃거린다. 고대현은 내색하지 않으면서 말했다.
“내가 평소에 딱딱하고 계산적이잖아. 아마 감성적인 부분에서 기량이 떨어지겠지. 그래서 실패한 거고.”
“그래? 어, 생각해보니까 맞는 말 같기도…….”
고대현이 진지하게 말하자, 곧잘 믿는 이하린이었다.
‘으음, 그간 도움 받았으니까 이참에 도와줄까?’
그녀는 위와 같이 생각하면서 고대현에게 말했다.
“다음에 우리 집으로 와. 또 그때처럼 알려줄게.”
자연스레 자신의 집으로 그를 초대하는 이하린이었다.
* * *
그 시각.
전지수의 집.
전지수는 한창 기간티아 성주를 맡고 있는 전인택에게 전적 검사를 받고 있었다.
“크흠, 티어는 전 정규전보다 올랐다만……, 그 기술을 사용했구나.”
전인택이 영상을 보면서 얼굴을 구긴다.
그는 전지수가 금지된 비술을 사용한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내가 몇 번이나 말했던 걸로 아는데? 한번 쓰기 시작하면, 계속 광기에 몸을 맡기게 된다고.”
전인택이 성난 어조로 말하자, 전지수가 몸을 움츠린다.
그녀는 뭐라 항변하고 싶었다.
하지만 전적 기록 영상에 나오는 광기에 찬 모습.
효율을 신경 쓰지 않고.
건물의 1층에서 사람들을 마구잡이로 처리하는 모습을 보자, 전지수의 말문이 막힌다.
“일단 대외적으로 레기온성의 정태룡보다 종합 티어가 잘 나왔으니, 이번 일은 별말 하지 않으마. 하지만 다음에도 또 이걸 쓰면? 그때는 집에서 쫓겨날 줄 알아. 알았어?”
“네에…….”
전지수가 고개를 떨구고.
그런 그녀의 옆을 전인택이 스쳐 지나가면서 말했다.
“곧 정규전인 거 알지? 뭐, 큰 전력 기대는 안 한다만. 보는 눈이 많으니 적당히 활약해줬으면 좋겠구나. 그리고 아까 말했듯, 정규전에서 사람들 보는 데에 그 기술 쓰지 말고.”
“네…….”
치이익-.
그녀가 대답하는 사이.
전인택이 캡슐에 들어가서 접속한다.
‘나도 들어가야겠다.’
이에, 전지수도 접속해서 스킬 레벨업이나 할까, 하다가.
‘아니다……, 지금은 조금 쉬고 싶네.’
집에 있는 소파에 앉아 휴식을 취하기로 했다.
‘정규전……, 정규전이 벌써 끝나다니.’
전지수가 푹신한 등받이에 몸을 기댄 채, 정규전을 준비했던 나날을 떠올린다.
그녀는 매일 같이 연습을 하면서 적의 움직임을 시뮬레이션하고.
특히 잘하는 상위권의 움직임을 간파하기 위해 밤늦게까지 반응 속도 훈련을 했었다.
그리하여 정규전의 마지막 날에 정태룡을 이겼을 때.
전지수는 어마어마한 성취감을 느꼈었다.
학기 초부터 은근히 자신을 무시해온 사람을 뛰어넘는 게 이렇게 기분 좋은 일이라는 것을, 전지수는 그때 처음 알았다.
‘그동안은 상위권인 게 당연해서 그런 감정을 몰랐지…….’
전지수가 머리맡에 있는 자신의 주먹을 올려다본다.
그녀는 주먹을 쥐락펴락하면서 그때의 감각을 되짚었다.
‘정태룡의 분한 표정을 보니까. 왜인지 모르게 기분이 좋았어.’
정태룡을 이겨서 좋았다.
그뿐만 아니라, 그의 일그러진 표정을 봤을 때.
뭔가 마음속에서 자극되는 게 있었다.
전지수는 감정의 흐름을 느끼던 중.
‘이것도 광폭화 비술의 영향 때문인가?’
돌연 생각을 중단했다.
이대로 가다간 또 약속을 어기게 될 수도 있었다.
“그냥 접속해서 연습이나 해야지. 이제 사냥조 활동할 준비도 좀 하고…….”
전지수는 결국 캡슐에 들어간 뒤, 본대륙에 접속했다.
시간상 밤이었지만, 성 내부는 사람들로 붐비고 있었다.
전부 정규전을 준비하기 위해서 이런 늦은 시간까지 성에 집결해 있는 것이었다.
‘부담스러워.’
전지수는 자신에게 몰려드는 시선을 느끼고, 재빨리 성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 자신의 혈육인 전천후를 찾아서 이동했다.
‘오빠가 탐색하던 곳이 여기였나?’
전지수의 오빠, 전천후는 일찍이 사냥조 활동을 하면서 기간티아 내부의 일을 돕고 있었다. 들리는 바에 의하면. 저번 훈련대륙 침투 사건도 전천후가 의견을 내서 주도했다고 하던데……, 전지수는 이런 소식을 들을 때마다 미안한 감정이 들었다.
‘성주는 나보다 오빠가 더 어울리는데.’
승계식의 시기는 인류 관리 시스템, 에덴이 정하지만.
후계자 자체는 성주가 고를 수 있었다.
‘아빠가 나로 고르셨지.’
전천후는 차기 성주 후보에서 전지수에게 밀렸다. 먼 거리를 감지하는 탐지계 비술을 쓸 수 없다는 이유에서였다. 전천후는 근거리의 감지에서는 뛰어났지만, 장거리는 영 아니었다.
‘성주는 좀 더 광범위하게 커버를 할 수 있는 사람이 맡아야 한다고 하셨지.’
결국, 바다에서 섬에 있는 사람을 감지할 정도의 수준이 되는 전지수가 차기 성주로 발탁되었다.
때문에 전지수는 자신이 전천후를 밀어냈다는 생각과 함께, 성적을 올려야 한다는 압박에 시달리고 있었다.
“아.”
그때였다.
산을 넘던 전지수의 눈에 전천후가 포착되었다.
그녀는 반가운 다음에 전천후에게 달려갔다.
하지만 그가 시야에서 어느 정도 커졌을 때.
흠칫-.
전지수는 자신의 탐지계에 여러 명의 사람이 감지되는 것을 느꼈다.
‘이 파형은……, 은신계?’
본래라면 탐지계로 알아낼 수 없었지만.
실력이 일정 수준 이상인 전지수는 상대방에 은신계 비술을 쓰는 사람이 많이 분포해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사냥조 활동 중인가?’
전지수가 고개를 갸웃거린다.
‘원래 사냥조에 은신계를 쓸 줄 아는 사람이 많긴 한데…….’
전지수는 뭔가 수상한 낌새를 느꼈다.
하지만 전천후가 이상한 짓을 할 리는 없기에.
“뭐, 아무것도 아니겠지.”
조용히 그 자리에서 벗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