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80화
#180화
시험이 끝났다는 것은, 학생에게 해방을 의미한다.
하지만 어느 정도 수준이 높은 학군이면.
해방보다는 오답 정리 등의 활동을 하면서 스스로를 발전시키는 계기로 삼았고, 그것은 이쪽 세계도 마찬가지였다.
각 반의 담당 선생님이 게임 전적 영상을 보면서 피드백을 이어 나간다.
“허건섭은 이번 정규전에서 에임 적중률이 올랐네. 그런데 LOH의 골드 수급량은 저번보다 줄었구나.”
“아, 그건…….”
김원이 허건섭에게 질문한다. 허건섭은 이번 정규전은 시야가 좀 좁아졌다고 자책했다.
“그래, 다음 정규전에서는 그 부분을 더 다듬고……, 어디 보자 그다음은…….”
다음 차례는 유금옥이었다.
“금옥이는 종합 티어가 좀 올랐네? 다음 배정 때 20반 정도는 가겠어.”
“헤헤, 연습을 좀 했더니 올랐네요.”
40반은 전체적으로 종합 티어가 올랐다.
아마 다음 배정때 40반에 잔류하는 이는 없을 것이다.
‘역시, 고등학생은 입학 성적이 다가 아니네.’
성적이 고착화되기 전, 엎치락뒤치락하는 구간이 있다.
이때 적응을 못 하고 중학교 때 수준으로 하다가 뒤로 밀려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정신을 차리고 티어를 차근차근 올리는 학생도 있었다.
‘물론, 차근차근 이라고 표현하기엔 너무 빠른 사람도 있지만…….’
김원의 눈이 이하린과 고대현의 티어에 닿는다.
이하린은 이번 정규전에서 종합 티어 다이아 1을 받았고.
고대현은 종합 티어 챌린저를 받았다.
둘 다 원래 티어를 생각하면 장족의 발전이었다.
“하린이도 실력이 정말 많이 늘었구나. 특히 그라운드 제로는 움직임을 더 극한으로 끌어올려서 단점을 상쇄시키고 있어.”
김원이 감탄하듯 말한다.
원래 이하린의 움직임은 날렵한 편이었나.
어느 정도 침착함을 갖추고 쏜다면 잡을만한 수준이었다.
하지만 이번에 보여준 움직임은, 근거리에서는 쏴서 맞추는 게 거의 불가능할 정도였다.
“언더 워치랑 LOH도 많이 올랐고……, 내가 볼 때는 하던 대로 가면 될 것 같네. 오히려 스타일을 바꿨다간 더 망가질 것 같아.”
김원이 이어서 이태원을 피드백한다.
고대현의 차례에서는 별말이 나오지 않았다.
3 챌린저를 피드백해봤자 크게 나올 건 없었으니까.
만약 피드백할 점이 있어도, 본인이 이미 알고 있을 것이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피드백 시간은 얼마 지나지 않아 마무리되었다.
* * *
시험은 예측도 그렇지만.
해설의 조회수도 상당히 높다.
그렇기에 주나무는 정규전이 끝난 다음이 더 바쁜 시기였다.
특히 정규전에 나왔던 픽이나 아이템 조합을 빠르게 분석하는 게 중요했다. 그래야 특색이 있으니 말이다.
‘흠, 이색 챔피언 픽 관련해서는 그 학생한테 컨텍할까?’
그러던 중.
주나무는 최성재에 대해 떠올렸다.
자살 사이언은 그가 현 정규전에서 본 전략 중에서 제일 특이한 방식이었다.
그는 결국 고민을 거듭하다가 최성재라는 학생에게 접촉하기로 했다.
“최성재라는 학생, 정보 알아내서 연락처 아는 사람 있으면 연락 넣어보세요. 보니까 3군 정도 되는 학교일 것 같은데.”
주나무는 게이밍 플러그 수강생 중, 중위권에 위치한 학생들을 수소문해서 최성재에게 접촉하려고 했다. 다행히도 얼마 지나지 않아 최성재의 존재를 아는 학생을 만나서, 어렵사리 최성재에게 연락을 할 수 있었다.
“제가 했던 자살 사이언을 인터뷰하고 싶다고요?”
“네, 이번 정규전에 나왔던 의외의 이색 핫 픽으로 소개하고 싶네요. 승률도 괜찮고, 생각지도 못한 방식이라서 괜찮을 거라 생각하는데…….”
“흠…….”
최성재가 말끝을 흐린다.
보통 이런 것을 권유하면 다들 흔쾌히 받아들이기에, 주나무는 내심 의아하게 여기며 최성재의 대답을 기다렸다.
“이건 제가 먼저 만든 게 아니라서요.”
“아, 그래요? 그럼 누가 먼저 한 거죠?”
다른 사람이 관여했다는 것을 안 주나무가 귀를 기울인다.
그런 그의 귓전에, 이미 알고 있던 이름이 날아와서 박혔다.
“고대현이요.”
* * *
‘일단 주변 사람들한테도 알리자.’
고대현은 학교가 완전히 끝난 뒤.
부모님과 김성현 대표에게 연락했다.
“채, 챌린저?”
“네.”
“거짓말 아니고? 진짜로?”
“제가 왜 이런 걸로 거짓말을 하겠어요.”
대현은 메신저로 티어가 나온 정보를 보냈다.
부모님은 그제야 납득을 하시는 모양이었다.
“그래, 집 조심해서 오고. 오늘 저녁은 맛있는 거 먹자.”
“넹.”
그렇게 대답한 고대현이 무인차에 타고 집으로 향한다.
‘음, 이제 집에 가서 밥 먹고 다시 본대륙에 접속해야겠다.’
정규전이 끝났으나, 아직 고대현에게는 끝나지 않은 일이 있었다.
‘라그나로크가 정규전이 끝난 다음에 있었지…….’
라그나로크.
그것이 모든 대륙들이 서로 싸우면서 기량을 다투는 거대한 공성전이다.
고대현도 이번 라그나로크에서 실적을 거둬서 레기온의 도움이 되어야 했기에, 학생치고는 가지고 있는 짐이 꽤 많은 편이었다.
‘그러고 보니, 펫을 키우는 퀘스트도 있었지.’
생각해보니, 대지룡의 새끼를 성체까지 키우기 퀘스트도 존재했다.
대현은 라그나로크가 오기 전, 막판 스퍼트로 파워업을 하기로 했다.
‘일단 그전에 밥부터 먹고.’
달그락달그락.
집에 도착한 그가 식탁에 앉아서 밥을 먹는다.
“아니, 오빠가 어떻게 3챌이 나와?”
그때, 옆에 있던 진아가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말한다. 그녀는 그라운드 제로에서 높은 티어가 나온 것은 이해했지만. 언더 워치와 LOH까지 챌린저가 나오자 머리가 어질어질한 모양이었다.
“뭐, 챌 할 수도 있는 거지 허허. 진짜 과외 붙여야 하는 거 아닌가 걱정했는데, 한시름 놔서 다행이야.”
“진아도 내년에 게임고 시험 볼 거라 그랬지? 지금부터 오빠 말 잘 들어라.”
“으엑…….”
진아를 제외한 부모님은, 그저 고대현이 높은 티어가 나왔다는 것에 감사한 듯한 표정이었다.
“아 참.”
그렇게 밥을 먹던 때였다.
무언가를 떠올린 듯한 대현의 부모님이, 별안간 라그나로크에 대한 이야기를 꺼낸다.
“대현이는 이번에 북부로 갈 확률이 높다고 그랬지?”
“네, 거의 북부로 갈 것 같더라고요.”
“흠, 몸조심하고. 이번에 네가 잘 막아서 성의 위신을 세워야 한다.”
현재 고대현의 가족은 전부 레기온의 지원을 받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따라서 이번 라그나로크에서 좋은 성과를 거두고, 기간티아 성에 밀리지 않아야 유리한 입장이었다.
“괜찮아요. 북부는 문제없을 거예요. 뭐, 문제가 있다면 다른 라인에 있을 확률이 높을걸요.”
“그, 그렇긴 하네.”
고대현이 태연하게 답하자, 대현의 부모님도 고개를 끄덕인다.
어쨌든 간에 북부는 고대현 말고도 다른 인력이 가니까.
고대현은, 그저 기사 대행으로서만 자리를 지켜도 할 일은 다 한 셈이었다.
“그럼, 이참에 본 대륙으로 접속이나 할게요. 깨야 할 퀘스트가 있어서.”
“시험이 오늘 끝났는데 벌써 접속한다고?”
“네, 그래야 라그나로크에서 이길 확률이 올라가죠.”
그렇게 말한 고대현이 캡슐이 설치된 자신의 방으로 향한다.
대현의 부모님은 그런 그의 뒷모습을 보면서 말했다.
“허허, 기세만 보면 나중에 성주도 한다고 하겠어.”
“에이, 설마…….”
3챌을 받아와도.
아직까지 성주는 무리라고 생각하는 그들이었다.
* * *
띠링-.
[본대륙에 접속을 시작합니다.]
[레기온 성 리스폰 지역에 도착하셨습니다.]
‘다시 접속하는 건 꽤 오랜만이네.’
고대현이 주변을 둘러본다.
그간 정규전을 치러서 그런지, 성 내부를 엄청 오랜만에 본다는 느낌을 받았다.
‘아, 그러고 보니 탑 안에서 120일 동안 있어서 더 그랬겠네.’
그렇게 생각한 고대현이, 외부에 있는 소환수 육성소로 향한다.
이런 성 내부에서 대지룡을 소환할 수는 없으니까.
띠링-.
[얼어붙은 대지룡, 헤츨링을 소환합니다.]
뾰롱-.
밖으로 나온 고대현이 툰드리스를 소환한다.
뀨융뀽.
툰드리스가 주변을 날아다닌다.
저번에 북부에서 레이드를 한 덕분에, 툰드리스의 레벨은 30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이놈을 언제 성체까지 키울까.’
당장 생각나는 것은, 역시 저번과 같은 레이드였다.
‘역시 사냥이나 돌리는 게 최고지.’
이에, 고대현이 툰드리스를 타고 타지로 향한다.
파닥파닥.
속도가 빠르진 않지만, 얼음 동굴에서 탈출했을 때처럼 툰드리스의 발을 잡고 탈것으로 이용할 수 있었다.
‘여기쯤 내려야겠다.’
대현은 적당한 사냥터에서 하강했다.
그리고 무기를 장착했다.
그는 이참에 마지막 전사 스킬의 2차 해금 내용도 확인할 생각이었다.
띠링-.
[마지막 전사 - 심상 무기 Lv. 1]
-2차 효과는 마지막 전사 상태에서 마나를 소비해 발동시킬 수 있으며.
-무기가 없는 완전한 무장 해제 상태에서도 스킬을 쓸 수 있다.
[사용 방법]
-(주의사항) 신체 강도와 한계에 따라 대미지를 입는다.
-시전자의 심상을 무작위 스킬에 맞춘 뒤 움직임을 취하는 게 중요하다.
.
.
.
대현은 그때 읽지 못한 사용 방법을 읽어 내려갔다.
‘흠, 심상에 맞추고 움직임을 취한다는 게 무슨 의미지?’
고대현은 의문을 가지다가.
딸깍.
그냥 마지막 전사를 발동시켰다.
슈슈슛-.
그러자 화면 속 자신이 몸이 빛에 휘감기면서 이동 속도가 빨라진다.
‘여기서 2차 효과를 발동…….’
딸깍-.
고대현이 마지막 전사 발동 중, 또다시 스킬을 사용한다.
다음 순간.
화면이 바뀌면서 2차 효과가 발동되기 시작했다.
띠링-.
[사용자의 심상이 적용됩니다.]
1인칭으로 변한 시야에서 위와 같은 메시지가 나타난다.
‘심상?’
고대현은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그냥 마우스를 움직여서 일반 공격을 날렸다.
부웅부웅-.
칼날이 공기를 가르는 소리가 낮게 울려 퍼진다.
그러나 몇 번이나 칼질을 해도 바뀌는 것은 없었다. 그저 아까의 메시지가 계속해서 허공에 떠 있을 뿐이었다.
“아니, 뭐 어쩌라는 거야?”
100일을 넘게 고생해서 얻은 건데 사용법을 모르겠다니, 어처구니가 없는 일이었다.
‘심상이면, 심상력이랑 관련이 있는 건가?’
그때.
이하린도 이 스킬을 얻었다는 사실을 떠올린 대현은, 서둘러 이하린에게 연락을 걸었다.
게임 내부 메신저로 친구추가 되어 있는 이하린에게 메시지를 보내자, 얼마 지나지 않아 답장이 온다.
띠링-.
[2차 각성 스킬 사용법을 모르겠다고?]
[ㅇㅇ]
[흠, 심상력이니까 마음속으로 상상해서 하는 게 제일 중요할걸?]
[상상?]
[응. 저번에 학교에서 했던 홀로그램 링 만들기 수업있잖아. 내가 볼 때는 그거랑 비슷한 방식인 것 같아.]
이하린의 말에, 대현은 언젠가 했던 수업을 떠올렸다.
분명 클로이연 선생님의 수업 시간에 체육관에서 했던 기억이 난다.
‘그때 집중하면서 허공에 뭔가를 만들었는데…….’
원래 PC모드를 안 써도 잘했어서 그런지, 처음부터 꽤 잘 됐던 기억이 난다.
[그러면 상상하면서 쓰는 기술이라는 건가?]
[아마 그럴걸? 나도 이따 들어가서 써볼게.]
[ㅇㅋㅇㅋ 들어오면 연락 줘.]
[알았어.]
고대현이 연락을 끊고, 다시 스킬창을 본다.
상상.
그리고 심상력.
그렇다는 것은…….
다른 의미로 차분해진 고대현이 마음속으로 결론을 내린다.
‘이, 이거 PC모드로는 못 쓰는 스킬인 것 같은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