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70화
#170화
매트리, 켄지, 핸조.
전부 난이도가 꽤 있으며 실력에 따라 기량 차이가 심한 챔피언이었다. 하지만, 고대현이 켄지와 핸조를 잘한다는 사실은 이미 잘 알려져 있었다.
때문에 40반 아이들은 그의 선택에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다만, 매트리는 픽한 적이 거의 없어서 이태원이 다시 질문했다.
“매트리하게?”
“응? 그냥 뭐, 조합 봐서 가끔 했지.”
매트리.
발광탄을 날려서 스턴을 가한 다음 헤드샷으로 원콤하기 좋아서 자주 이용했었다.
‘매판 매트리만 한 건 아니지만. 그래도 가끔 꺼내면 쓸만해.’
매트리의 궁극기는 다수의 적을 처치하기 편하다.
실드나 구조물 뒤만 아니라면.
사실상 일정 시간 동안 응시한 적을 죽일 수 있는 스킬이 있으니 말이다.
물론 발동 조건이 있긴 한데.
고대현에게는 그 조건을 채우기 편한 시스템이 있어서 큰 부담이 없었다.
그렇게 시험 메타를 상상하면서 기다리고 있으니.
[곧 정규전이 시작됩니다.]
어제처럼 시험 시작을 알리는 방송이 나왔다.
대현은 캡슐을 통해 게임에 접속했다.
드디어 2번째 종목의 정규전이 시작되는 순간이었다.
* * *
[시험이 시작되었습니다.]
2번째 정규전이 시작되고.
게임교육과 관련된 사람들이 같은 곳에 모여서 어제처럼 관전을 시작한다. 오늘 볼 종목은 LOH와 언더 워치였기에 사람들의 관심이 더 컸다.
“어제 보셨어요? 그라운드 제로 때문에 학생들이랑 학부모들 커뮤니티가 엄청 난리더라고요.”
관전실에서 대기하던 사람이 옆에 있던 주나무에게 말한다.
주나무는 턱 끝을 만지며 입을 열었다.
“그럴 만도 하죠. 저도 설마 특수 맵이 그런 난이도로 나올 줄은 몰랐으니까요.”
기껏해야 유동성 맵에서 서로 저격을 하거나.
좀 더 원거리 전투가 가미된 맵이 나올 줄 알았다.
하지만 현실은 그의 예상과 다르게 수상 가옥 같은, 많이 움직여야 하는 맵이 더 자주 나왔다.
“주나무 씨가 담당하는 학생들은 잘 됐나요?”
“아, 그건…….”
주나무가 말끝을 흐린다.
그의 예상과 달리, 고위급 구독자와 자신이 봐주는 아이들의 성적이 낮게 나왔기 때문이다. 이번에는 챌린저 티어 배출을 늘리겠다고 자부했건만, 제일 높은 학생이 마스터 한 명이고 나머지는 전부 다이아 티어 라인이었다.
“소문을 들어보니 게임고 하위 티어 반에서 챌린저가 2명이나 나왔다고 하던데요?”
그렇기에 이어지는 상대의 질문을 듣고.
주나무는 묘하게 기분이 나빠졌다.
“커뮤니티에서 보긴 했는데……, 그게 사실입니까?”
“네. 여러 명이 말하는 거 보니까 확실해 보여요.”
“그라운드 제로 챌린저가 2명이라…….”
그때 주나무의 뇌리에 한 명의 존재가 스쳐 지나갔다.
‘설마 고대현이?’
신영범과 함께 관전했으나, 중간부터 따로 본 탓에 주나무는 고대현이 어디까지 올라갔는지 짐작도 못 하고 있었다.
하지만, 성의 동태를 체크하기 위해 얻은 정보.
그 정보에 따르면, 아이언 2로 들어온 고대현의 실력은 상당했다.
‘어제 봤던 그라운드 제로에서 잘하긴 했지.’
다수를 상대로 침착하게 싸우는 게, 비슷한 일을 여러 번 해본 것처럼 보였다.
주나무는 아이언 2가 뭘 하면 그렇게까지 강해졌는지 궁금했다.
그러나, 자기 소속 학생이 아니기에, 따로 그 학생만 검색해서 찾아볼 수가 없었다.
그때였다.
“아, 이제 언더 워치 정규전 시작됐네요.”
정규전 시작을 알리는 메시지가 나타났다.
주나무는 시선을 옮겨 관전창을 응시했다.
실시간으로 매치되고 있는 수천 개의 게임이 눈에 들어온다.
‘일단 중간 티어부터 볼까?’
처음부터 너무 낮거나 높은 사람을 보면 오래 볼 수 없기에.
주나무는 중간 티어부터 관전하면서 학생들을 살펴보기로 했다.
탕탕-!!
양쪽 진영 사이에서 총격전이 시작된다.
맵은 일반 맵으로, 거점을 공격 또는 수비 하거나 화물 근처를 경호하면서 목적지에 도달하는 방식이었다.
‘일반 맵은 보통 10개 정도가 나온다. 각 맵마다 좋은 위치랑 팁을 다 알려줬으니 기본은 하겠지.’
오늘 보는 종목들은 피지컬적인 부분도 크게 작용한다.
하지만 알려준 부분만 의식적으로 지키면, 부족한 피지컬 부분을 상당 부분 보완할 수 있었다.
그렇게 관전을 이어 나가고 있으니.
슬슬 해당 정규전의 메타 흐름이 잡혀 나간다.
수십 번의 판에서 모두 동일한 조합이 나온 것이었다.
‘흠, 역시 내 예측대로 탱커랑 보조 탱, 힐러 등을 곁들여서 버티는 팀이 많네.’
그라운드 제로와 달리 오늘 정규전은 팀전으로 진행된다.
혼자서 5~6명을 이길 수 없으니.
처음 만난 사람과 바로 팀으로 싸워야 하는 게 기본이었다. 특히 언더 워치나 LOH는 혼자서 학살을 못 하는 구조인지라, 팀원 간의 스킬 연계나 협동이 중요했다.
‘처음 만난 학생들끼리 힘을 합쳐서 내 예측대로 전략을 구성하네. 역시 나를 보는 사람이 많아.’
가끔 많은 사람이 봐서 생성되는 메타를 저격한다고.
자신이 예측한 메타를 파훼하는 메타를 개발하는 사람도 있었다.
하지만 이번에 추천한 조합이나 아이템은 딜러들의 너프에 의거한 예측이었기에, 그런 식으로 파훼가 될 일이 없었다.
띠링─.
[승리]
‘이쪽 팀은 무난하게 이겼네.’
주나무가 자신이 올린 영상 내용으로 이기는 팀을 보면서 입꼬리를 올린다. 어쨌거나 영향이 있다는 건 좋은 것이었으니 말이다. 그 후로는 티어를 매기기 위한 타임 오버 클럭 내부의 반복적인 게임이 이어졌다.
‘잠시 쉬어야지.’
그 이후로.
주나무가 다시 관전창을 응시하기 시작했을 때는, 학생들이 슬슬 정규전 특수 맵에 진입할 시기였다.
‘이번에는 어떤 맵이 나오려나.’
그가 화면을 보면서 팔짱을 끼고 있자, 얼마 지나지 않아 기대하던 특수맵이 모습을 드러냈다.
“이번 특수맵은 로봇 호위인가.”
기존의 화물 이동 맵은 자동차가 이동하는 걸 지키는 것이었으나, 이번에 서로 밀어야 할 건 거대한 로봇이었다.
‘아니, 사실상 호위가 아니라 보조인 건가…….’
기존 화물 맵과 다른 점은 호위하는 로봇도 공격을 한다는 것이었다. 넓게 보면 양 팀의 로봇이 서로 싸우고, 팀원들은 그 주위에서 서로 보조하는 식으로 갈 확률이 높아 보였다.
‘리스폰 장소는 호위 로봇의 등이네. 사실상 기동 기지야.’
주나무는 해당 특수 맵을 유심히 관찰했다. 이런 맵은 보고 나서 후기나 분석 글을 올리면 조회수가 잘 나오니까 말이다.
쿠구구구구─.
그때였다.
양쪽 호위 로봇이 기동을 시작한 것은.
‘어지간한 빌딩보다 큰데?’
주나무가 로봇의 호위가 아니라 보조라고 표현한 데에는 이유가 있다.
저렇게 거대하니까 호위한다는 표현 자체가 어색한 것이었다.
쿠웅, 쿵─.
로봇이 움직임에 따라 땅에 거대한 균열이 생긴다. 주변에 크고 작은 건물들이 있는 탓에, 도심에서 로봇끼리 전투를 하는 느낌이었다. 주나무는 정수리 부분이 거의 구름에 닿는 게 아닐까 싶은 로봇을 응시했다. 이동 속도는 느리다.
다만 방어력이 엄청나게 높을 것 같았다.
내용만 보면 적당히 공중 기동이 가능한 팔라 같은 딜러가 좋아 보였다. 물론 아직 히트 스폿마다 방어력이 어떤지 모르기에, 보고 평가해야 했다.
‘이번 판을 본 다음 생각해야겠네.’
쿵- 파앙─!!
그때, 양측 팀 사이의 격돌이 시작되었다.
주나무의 예상대로 공중 기동 챔피언인 팔라가 날아다니면서 유탄을 발사한다.
‘그리고…….’
호위 로봇의 어깨 위에 타고 있는 위도 테이커가 저격을 한다.
실드를 세우는 기존의 탱커 챔피언은 별로 없었다. 일단 서로 공격해서 대략적인 딜 체크를 할 모양인 듯했다.
퍼퍼펑-!!!
딜은 당연하게도 헤드 부분.
그리고 하반신의 무릎에서 많이 나왔다.
무릎 부분도 약점이라고 밝혀지자, 아래로 접근해서 공격하는 학생도 점차 늘어났다.
띠링-.
[게임이 종료됩니다.]
그렇게 특수 맵이 종료되고, 주나무는 대략적으로 감을 잡았다.
‘다른 티어는 어떻게 하고 있으려나…….’
그리고 다른 팀에서 이뤄지고 있는 특수 맵으로 시야를 옮겨서 관전을 지속했다.
그러자 거대한 두 로봇이 서로 충돌하고.
그 사이에서 서로 박 터지게 싸우는 양측 팀원이 눈에 들어온다.
‘역시, 상위권으로 갈수록 잘하네.’
하위권은 서로 멀리서 공격만 날리는 포격 대결이었지만, 위로 올라오니 작살로 로봇의 몸 위를 이동면서 슈퍼 컨트롤을 하는 위도 테이커나, 높은 실력으로 로봇의 위에서 점멸하는 트레리스가 보인다. 컨트롤에서 역량 차이가 명확했다.
철컥─.
그때였다.
거대 로봇의 어깨 위에서 부스터 온이 게틀링 건 모드로 변신한다. 주나무는 그 부스터 온을 보면서 눈을 크게 뜰 수밖에 없었다.
‘저 식별 코드는?’
신영범과 고대현을 관전할 때 봤던 식별 코드.
그 번호가 관전창의 옆에 떠 있었다.
‘언더 워치도 여기까지 올라왔군.’
주나무는 벌써 플레 상위구간까지 온 고대현의 실력에 혀를 내두르면서도 그의 픽을 유심히 살폈다.
‘부스터 온? 저건 심상력을 많이 필요로 하는 챔피언인데…….’
저런 변신형 챔피언은, 계속해서 변신을 유지하려면 마음속에 일정 심상을 유지시키는 게 중요했다. 게임고에서도 심상력과 관련된 트레이닝을 하고 말이다.
‘하지만, 학생 중에서 부스터 온을 잘하는 애들도 전 탄 소모는 못 시키는데 과연…….’
주나무가 위와 같이 생각할 찰나였다.
드드드드드─.
게틀링 건의 헤드가 회전하면서 총알을 발사한다.
여기까지는 일반적인 부스터 온의 연사였다.
그러나.
촤라라라락-.
멀리서 봐도 탄피가 흘러내리는 게 보일 정도로 빠른 연사는 일반적인 게 아니었다. 탄피가 로봇의 어깨부터 시작해서 물처럼 흐른다. 탄피가 빛을 반사하면서 반짝거리는 탓에 황금이 흘러내리는 것처럼 보였다.
‘저, 저런 건 본 적도 없다.’
주나무의 입이 떡 벌어진다.
보통 변신이 풀리는 것도 억제하기 힘들어하며.
저렇게 빠른 게틀링 건 회전은 꿈도 못 꾸는 학생들이 많았다.
철컥-. 드드드드드드드!!!
거기에 더해서, 전 탄을 소모한 뒤.
다시 장전한 뒤 게틀링 건 회전을 이어 나간다.
‘경직되면서도 정확한 동작이 특징이더니……, 설마 진짜 재능은 신경 지구력이 아니라 심상력이었던 건가?’
콰직-!!
그때였다.
상대 호위 로봇의 헤드 실드가 깨지면서 방어력이 약한 부분이 드러난 것은.
‘보통 10분 정도 지나야 실드가 벗겨지는데……, 저걸 게임 시작하자마자 다 깠다고?’
주나무가 경악한다.
그가 정확한 게임 시작 시간을 보려고 한다.
하지만 이보다 빨리.
드드드드드드─!!!!
쨍그랑, 쨍쨍 그랑!!
상대 로봇의 안면이 파괴되면서 게임이 끝났다.
주나무가 손가락을 움직이기도 전에 일어난 일이었다.
띠링-.
[해당 학생의 게임이 종료되었습니다.]
“흐음…….”
주나무가 조용히 턱 끝을 만지며 생각에 잠긴다.
그간 학생들을 봐오면서 느낀 게 있기에.
‘저 정도면 최소 마스터 급은 간다.’
그가 미간을 좁히며 관전창을 넘긴다.
고대현은 장차 레기온 성에 큰 도움을 줄 게 확실해 보였다.
이에 기간티아에 붙은 주나무의 심기가 살짝 불편할 때였다.
‘내가 담당하는 학생이랑 고대현이 붙었네?’
다음 판, 고대현과 자신이 담당하는 학생의 식별 코드가 보인다. 상위권으로 올라갈수록 인원이 추려져서 이런 식으로 만나는 경우가 많았다.
“과연 무슨 챔피언을 할까…….”
주나무가 화면을 주시한다.
그가 직접 지도해줬던 학생은 탱커 챔피언을 픽했다. 그리고, 그 뒤로 여러 보조형 챔피언과 딜러 하나가 붙었다. 주나무가 말했던 이상적인 현 메타 조합이었다.
‘그래, 딜러가 너프를 먹었으니 저게 좋겠지. 맵도 특수 맵이 아니니까 정석적인 게 안정적이고.’
그렇게 생각한 주나무가 고대현 쪽으로 시야를 돌린다.
그가 보는 관전창 내부에서.
데구르르─.
고대현의 매트리가 앞으로 구르면서 적진으로 향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