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66화
#166화
‘이하린?’
고대현이 눈을 깜빡거리면서 상대를 바라본다.
현재 있는 구간은 다이아 이상의 최상위권만 모인맵이다.
그런 맵에서 이하린을 만나니까 반가움보단 어색했다.
그도 그럴 게, 이하린은 40반이니까.
종합 티어가 골드였나? 아마 그랬을 거다.
‘흠, 그러고 보니. 그라운드 제로는 티어가 좀 높은 편이었네.’
대현은 이하린이 그라운드 제로에 한해서는 티어가 높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다른 쪽 티어가 처참해서 종합티어가 골드가 나온다는 사실을 간과하고 있던 것이다.
하지만, 그라운드 제로의 티어가 높다고 해도 보통 근접을 많이 치지.
원거리 저격 능력이 높지 않아서 마스터 구간까지는 절대 아니었다.
그쯤, 고대현은 이번 정규전에서 이하린이 어떻게 여기까지 왔는지 어렴풋이 깨달았다.
‘탑 수련을 해서 더 강해진 것 같네. 나랑 달리 이하린은 순수하게 몸으로 움직인 거니까. 그리고 내가 치료해줘서 몸 상태도 더 좋아졌지.’
단순 정보만 나열해도 컨디션이 최상급인 걸 알 수 있었다.
올라올 만 하긴 하네.
뻐억-!!
그때, 이하린이 교전하던 상대의 총을 날려버리고 적을 마무리한다.
그리고 그녀가 고개를 돌려, 고대현이 있는 곳을 내려다본다.
“…….”
“…….”
정적이 일었다.
둘 다 잠깐 동안 말이 없었다.
아니, 어차피 말을 해도 들리지 않는 거겠지만…….
이하린도 상대의 반듯한 자세를 보고 눈치챈 듯했다.
그녀도 오랫동안 봤으니까.
저벅.
이하린이 계단 아래로 내려온다.
손이랑 목을 풀면서 내려오는 걸 보아하니, 거하게 한판 뜰 생각인 듯했다.
‘그래, 정규전이니까 서로 싸워야지.’
고대현도 긴장하면서 준비한다.
사실, 그도 궁금했다.
이하린과 싸우면 누가 이길지 말이다.
‘신경 지구력은 내가 위다. 하지만 여러 기술까지 합하면 장담할 수 없지. 그리고 이하린도 소멸 간섭파를 쓸 수 있으니까.’
치료를 통해 몸의 주기가 정상으로 돌아온 이하린은, 이전처럼 다시 소멸 간섭파를 쓸 수 있게 되었다. 물론 본인은 중요한 시기에 써야 한다고 거의 사용하지 않지만, 혼자서 비술을 계량할 정도로 재능이 넘치는 사람이기에.
타탓-!!
고대현이 달려오는 상대방을 보면서 준비하고 있을 때였다.
드드드드드─.
고대현이 서 있는 아래 층계의 계단에서부터 진동이 울리고, 엄청난 수의 학생이 밀고 올라온다.
‘난잡하네.’
올라오면서 치고받고 총을 쏘면서 서로 싸운다. 패자부활전으로 리스폰이 되는 시간이 맞물리면서 빌딩 안에 순식간에 많은 인원이 찬 것이었다.
저들은 막 살아난 탓에 장비가 충분하지 않았고.
이 때문에 서로 주먹으로 때리기보단 서로 달리면서 먼저 무기를 줍는 데 열중하고 있었다.
그러다 보니 계속 위에 있는 층으로 달리면서 올라온 거고 말이다.
퍼억-!!
이하린이 막 올라오는 학생의 안면을 후려친다.
고대현을 공격하다가.
일순 방향을 틀어서 때린다.
‘도와주는 건가……? 아니, 그건 아니다.’
지금 하는 건 팀전이 아닌 개인전 시험이다.
그렇기에.
이하린은 어려운 상대인 고대현을 공격하기보단.
근접 쩌리인 학생과의 교전에 집중하기로 한 것이었다.
‘티어가 고착화되어야 끝나니까. 최대한 킬을 따면서 점수를 올리려고 하는 거구나.’
위의 사실을 깨달은 고대현도, 막 리스폰 된 적을 처리하는 것에 집중하기로 했다.
잠깐 시험이라는 것을 까먹고 있었다.
‘다음 정규전은 또 몇 달 기다려야 하니까, 무조건 지금 높여야 해!’
딸깍.
딸깍.
그의 손이 바쁘게 움직인다.
그렇게 수십명의 학생을 상대하기를 몇 분.
띠링-.
[킬 : 30]
대현은 30킬을 달성했다.
이로써 전적 관리는 어느 정도 한 셈이었다.
저벅저벅.
그때였다.
잡몹을 처치한 이하린이 계단을 오르며 원래의 목적지인 옥상으로 향한다.
척─.
그녀가 문득 멈춰서 손가락으로 위층을 가리킨 뒤, 다시 계단을 오른다.
그걸 본 대현도 위층으로 향하는 계단을 올랐다.
‘옥상에서 싸우자는 건가?’
현재 남은 생존자 수는 5명.
즉, 옥상에 3명 정도 있다는 소리였다.
그들을 처리하고 1대1을 하는 것도 나쁘지 않아 보였다.
끼익.
때마침 이하린이 최상층의 문을 열고 옥상으로 몸을 내민다.
탕-!!
그러자 바로 총알이 날아온다.
상대가 아래로 피할 것을 예측해서 몸통 쪽으로 쏜 총알이었다.
이하린은 민첩화를 최대로 전개해서 이를 피해냈다.
탕!
이번에도 총소리가 들린다.
하지만 이하린에게 쏘는 게 아니었다.
위에 있는 3명의 인원도 서로 적이었기에.
옥상에 새로 올라온 인원을 견제하기보단, 저격을 하고 있는 다른 상대에게 총알을 날린 것이었다. 이미 옥상에 있을 정도이며, 생존 시간이 긴 대상을 처리하는 게 효율적이라 여긴 듯했다.
타앗-!!
하지만 이하린을 먼저 노리지 않은 것은 그들의 명백한 실수였다.
민첩화 비술 계량형을 쓴 이하린이 일순 도약하면서 저격하는 상대의 바로 앞까지 이동한다.
그리고 상대가 손을 움직이기도 전에.
퍼걱-!!
적의 안면을 후려친다.
방어구가 있었지만 들어가는 타격이 상당했는지, 몇 대를 더 때리자 총 생존자 수가 줄어든다.
‘역시 빠르네. 이하린의 비술은 나보다 강하니까 당연한 일이지만…….’
패밀리어 계약으로 따온 비술은 현재 25%.
즉, 이하린이 고대현보다 4배는 빨랐다.
타타탓!! 그걸 증명하듯, 이하린이 눈에 보이지도 않을 속도로 돌진을 계속한다.
아무리 방어구를 껴입었어도 탑에서 만난 보스몹처럼 기괴한 스킬이 없었기에.
그들은 이하린의 괴물 같은 피지컬에 속수무책을 당할 수밖에 없었다.
띠링-.
[생존자 수 : 2]
그렇게 남은 2명.
‘흠, 너무 빨라서 패턴이라는 게 무의미하네. 소멸 간섭파로 민첩화를 교란시켜야 그나마 가능성이 있겠어.’
이하린의 동작을 상기한 고대현이 앞으로 움직이기 시작한다.
팟!
하지만 몇 미터를 이동하기도 전.
이하린이 재빨리 움직여서 그의 코앞까지 도달한다.
‘상단 차기다.’
공격을 예측한 고대현이 엎드리기를 사용한다.
쌔앵-.
발차기라고 믿기 힘든 소리가 공기를 떨리게 한다.
부웅-.
이하린은 발차기가 빗나간 관성을 이용해서 다시 몸을 돌렸다.
그리고 이어서 돌려차기를 사용했다.
부웅.
하지만 이마저도 허공을 갈랐다.
‘내가 재빨리 일어나는 걸 예측해서 날린 중단차기네……. 그냥 엎드려있길 잘했다.’
고대현은 이하린의 중심을 무너뜨리기 위해 그대로 태클을 걸었다.
속도가 빠르니까.
이렇게 된 이상 관절기로 끌고 가야 했다.
‘근접 관절기 최종형.’
고대현이 저장해둔 단축키를 쓰면서 이하린에게 관절기를 건다.
과거, 이하린의 집에 가서 배웠던 기술이었다.
스륵─.
그러나, 고대현의 팔이 좁혀들기도 전에 이하린이 그에게서 빠져나온다.
‘뭐야, 따로 파훼법이 있던 건가?’
빠져나오는 흐름이 매끄럽다.
많이 해본 것 같은데…….
파훼법이 있는 줄은 몰랐다.
하지만 가르쳐준 장본인이니까 알고 있을 법도 했다.
대현은 좀 더 다양한 관절기를 등록해둘 걸, 이라고 생각하면서 혀를 찼다.
타탓!!
그때.
민첩화 비술, 계량형을 써서 다리에 힘을 집중시킨 이하린이 총알처럼 다가온다.
대현은 이쯤에서 소멸 간섭파를 쓰기로 했다.
‘소멸 간섭파.’
툭-.
운 좋게 상대에게 닿았다.
이제 비술이 교란되서 민첩화의 출력이 약해질 것이라고.
고대현이 안심할 때였다.
띠링-.
[간섭 불가능]
[동일한 파장이 감지되었습니다.]
소멸 간섭파의 작용에 실패했다는 메시지가 나타났다.
‘응? 동일한 파장?’
삼인칭으로 보던 고대현이 다시 일인칭으로 시야를 바꾼다.
그러자 보인다.
이하린이 자기 자신에게 소멸 간섭파를 쓰고 있는 모습이.
‘이런 미친…….’
이하린이 스스로에게 소멸 간섭파를 쓴다.
이를 통해 자신에게 들어오는 상대의 간섭파를 무력화시키고 있었다.
재빠른 반응 속도와 숙련도가 있어야 가능한 일이었다.
‘이렇게 되면, 민첩화의 무력화는 거의 불가능해진다는 소린데…….’
고대현이 생각하고 있을 순간.
쩌억─!
이하린의 무릎이 그의 안면을 타격한다.
다행히도 실드 프로텍터가 있어서 직접적인 대미지는 없었지만.
‘내구도가 떨어진 수준을 보니까. 발차기 위력이 총알이랑 맞먹는데……?’
실드 프로텍터의 내구도가 상당히 떨어졌다.
앞으로 남은 방어 가능 횟수는 2번 정도였다.
대현은 자돌리브를 상대했을 때처럼 속임수 공격을 쓰기로 했다.
그것만큼은 야나 이바노프도 한 번 당해줬으니까.
스륵.
그가 기술을 쓰면서 몸을 굽히고.
동작을 취소한 다음 다시 다른 기술을 쓰는 등.
모션 캔슬을 통해 무작위적인 속임수 공격을 가한다.
퍼억─! 퍽!
‘됐다!’
이번에는 이하린에게 먹혀들어 갔다.
민첩화를 통해 빠른 대응이 가능하지만.
예지 수준의 예측을 하기엔 탐지계 비술조차 배우지 않았기 때문이다.
대현은 그대로 기세를 놓치지 않고 이하린을 타격했다.
탑에서 나온 뒤, 이하린과 처음으로 붙는 1대1 전투.
여기서 졌다간 이하린이 두고두고 기만질을 할 게 뻔했다.
‘반드시 이긴다.’
그렇게.
고대현이 5번째 속임수 동작을 쓰면서 상대의 복부를 타격할 때였다.
와락.
이하린이 고대현의 빈틈을 찾아, 다리를 걸고.
그대로 팔과 몸통 윗부분을 안았다.
그리고 팔로 목을 조르기 위해 밀착했다.
‘이대로 있으면 당한다.’
대현은 일전에 이상한 광인을 상대했을 때처럼, 엎드리기 동작을 사용하기로 했다.
의외로 이게 가까이 붙은 관절기를 상대하니 편하니까.
딸깍.
키보드를 누르자 화면 속 자신이 재빠르게 바닥에 엎드리면서 포복 자세를 취한다.
원래라면 즉각적으로 나올 수 없는 동작이었지만, PC모드가 그걸 가능하게 했다.
콰직!
상반신에 붙어서 관절기를 걸려고 했던 이하린이, 그대로 딱딱한 바닥에 등부터 내팽개쳐진다. 방어구를 뚫고 대미지가 전해졌을 정도의 위력이었다.
‘다시 근접 관절기를 써야겠다.’
대현은 다시 승기를 잡기 위해 단축키를 사용하려고 했다.
꾸욱.
그러자, 이하린이 고대현의 뒷목을 잡고 자신의 가슴팍 쪽으로 끌어당겨 안는다.
바닥에서 쓰는 그라운드 기술로 가기 위한 동작이었다.
‘이하린은 야나 이바노프랑 싸울 때도 그라운드 기술이 뛰어났지.’
과거.
훈련 대륙의 겨울 모드에서 보조 교사인 야나 이바노프와 이하린이 단독으로 붙은 적이 있는데, 이하린의 속박 관절기만큼은 야나 이바노프를 찍어누를 정도로 능숙했다.
이에 고대현이 위험을 느끼고 일어나기 키를 누른다.
‘아 참! 그렇게 하면 되겠다.’
때마침 새로운 기술이 생각난 그가 다시 엎드리기 키를 누른다.
콰직!
이하린이 다시 바닥에 처박힌다.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앉았다 일어났다, 연속!’
엎드리기의 타격을 연속으로 가한다.
딸깍.
딸깍.
계속해서 몸을 일으켜 세우고.
다시 엎드리게 하면서 이하린을 방앗간 절구처럼 땅에 박히게 한다.
쿵쿵쿵-!
퍽퍽퍽-!
속도가 너무 빠른 탓에.
이하린은 죽음의 절구질에서 빠져나오지 못한 채 대현의 품속에서 사망했다.
다음 순간.
띠링-.
[생존자 수 : 1]
[티어 책정이 완료되었습니다.]
[점수 고착화 종료.]
[리스폰이 중단.]
[정규전 - (그라운드 제로)의 모든 파트 게임이 종료됩니다.]
[수험생 여러분들. 수고하셨습니다.]
게임이 끝나면서 오버 클럭이 풀리고 모든 학생의 접속이 종료되었다.
치이이익─.
그렇게 캡슐에서 일어나니.
각 교실의 스크린에 최종 확정된 티어가 띄워져 있었다.
‘아직 종합 티어는 아니고 단일 종목이지만, 그래도 뿌듯하네.’
고대현이 스크린을 응시한다.
띠링-.
[그라운드 제로]
고대현 : 챌린저
이하린 : 챌린저
허건섭 : 플레티넘 1
이태원 : 플레티넘 2
유금옥 : 다이아 3
40반의 그라운드 티어는 위와 같았다.
‘그런데 초반에 봤던 그 사람은 뭐였을까…….’
잠시 그런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하위권인 40반에서, 무려 마스터 이상의 티어가 2명이나 나온 역사적 순간이기에.
“뭐, 뭐야?”
“둘이 채, 챌? 이거 잘못 적힌 거 맞지?”
일단 이 분위기를 즐기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