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58화
#158화
그 시각, 이하린의 집.
치익-.
마찬가지로 캡슐이 열리고.
이하린이 상반신을 일으킨다.
‘지금 시간이…….’
그녀는 일어나자마자 시간을 확인했다.
접속하고 나서 2시간이 좀 넘게 지났다.
하지만 내부에서 보낸 시간은 그보다 훨씬 길었다.
‘4달 정도 있었나?’
한 스테이지나 구역 한정으로 4달 동안 있었던 적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이하린은 압축된 과거들을 떠올렸다. 1층부터 10층까지. 일반적인 게임에서는 본 적도 없는 몹들을 만나보고, 또 쓰러트리기까지 했다.
그 결과 실력이 엄청 늘었다.
같은 레벨의 스텟으로 붙는다고 가정했을 때.
자신이 못 이길 사람이 없을 정도로 말이다.
‘그리고 계량형 비술도 만들고 몸도 괜찮아졌지.’
이하린이 자신의 주먹을 쥐락펴락한다.
이제 이동 속도를 올리는 것에서 탈피해, 특정 부위를 강화시켜서 쓸 수 있게 되었다.
소멸 간섭파로 스킬을 교란시키고, 더 나아가 이동 속도도 빨라졌으니.
‘이제 야나 이바노프한테 질 일은 없겠어.’
그녀가 속으로 안심하고 있을 때였다.
“이제야 나오니?”
“아, 엄마.”
이근희가 캡슐이 있는 지하실로 내려왔다.
이하린의 몸 상태가 걱정됨과 더불어.
이번에 기간티아 성에서 활동한 내용을 듣기 위함이었다.
“지금 내부 분위기는 어때?”
“아직 사냥조 활동 중인데, 중심 세력 라인으로는 안 들어가 봐서 잘 모르겠어요.”
사냥조 활동은 수호 기사와 그 측근들을 중심으로 돌아간다.
아직 이하린이 거기까지 접근할 레벨은 아니었다.
애초에 획득한 스킬도 2개밖에 없고 말이다.
“흠, 생각보다 조심스럽게 움직이려는 모양이네.”
“나중에 특별히 징조 같은 거 보이면 말할게요.”
“그래.”
고개를 끄덕인 이근희.
그녀가 몇 가지를 더 물어보더니, 이어서 몸 상태에 대해 질문했다.
“몸은 괜찮고?”
“응, 괜찮아.”
이하린이 고개를 끄덕인다.
고대현에게 부탁하던 게 불과 며칠 전인데…….
그에게 맡긴 치료 임무 내용을 상기한 그녀가 이하린에게 질문한다.
“그 이후로는 몇 번 했어?”
“어…….”
입술을 손가락 끝으로 만지며 고민하는 이하린.
얼마 지나지 않아 그녀가 입을 연다.
“50번?”
“??”
고대현에게 치료 부탁을 한 건 최근의 일이다.
‘아니, 언제 저렇게 많이 한 거지?’
그때부터 그리 오랜 시간이 지나지 않았기 때문일까.
이근희가 속으로 당황한다.
하지만 그만큼 했으면 상태가 호전됐을 게 확실했으니.
그녀는 마음을 가라앉히고 말했다.
“그러면, 이제 남은 건……, 정규전 준비 하나인가?”
“응, 뭐, 더 연습할 것도 없지만.”
이하린의 종합 티어는 높지 않았다.
기껏해야 골드 수준.
그러나 이미 기사 대행으로 어느 정도 길을 텄기에.
이근희는 더 이상의 신경을 쓰지 않고 등을 돌렸다.
지금은 약을 제공하다가 잠적한 이를 찾는 게 중요했으니까.
* * *
주말을 지나서 평일.
드디어 정규전 당일 아침이 밝았다.
대현은 평소처럼 아침 일정을 마친 뒤 교실로 향했다.
“오늘은 일찍 왔네?”
교실에는 이하린을 제외한 반 아이들이 있었다.
“전국적으로 보는 시험 당일이니까 빨리 와야지.”
옆에 있던 허건섭이 말한다.
그는 앞으로 유력할 것 같은 장비.
혹은 아이템 빌드 예상을 보면서 정규전을 대비하고 있었다.
대현은 곁눈질로 허건섭의 홀로그램 창을 보다가 입을 열었다.
“정규전 초반에는 기초테스트 비슷한 거 한다고 그랬었지?”
“응, 간단한 싱크로율 측정 같은 건데……. 아니 당일날 그걸 물어보냐?”
허건섭이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말을 잇는다.
“너 설마 그냥 피지컬로 다 밀어버릴 생각이었어?”
“어? 뭐, 꼭 그렇다는 건 아닌데…….”
고대현이 말끝을 흐리자, 허건섭이 자신이 보던 홀로그램 창을 기울여서 보여준다.
“이건 뭐야?”
“게이밍 플러그에서 준 자료야. 저번 달부터 유료구독하고 있었거든.”
게이밍 플러그는 고대현도 익히 들어서 알고 있었다.
‘어디 한 번 봐볼까.’
대현은 허건섭의 홀로그램창을 슥 훑었다.
3대 종목에 대한 메타 흐름과 아이템 빌드에 대한 예상 정보가 잘 정리되어 있었다.
‘뭔가 이전 세계에서 보던 족집게 요약본이랑 비슷한 느낌이네.’
예전에 최성재에게 들었던 내용도 조금 담겨 있었다.
‘그때 자살 사이언을 알려줬었지…….’
허건섭이 보여준 홀로그램 페이지에는 자살 사이언에 대한 내용이 없었다.
국내 탑 게임 교육 단체에서 추천하지 않거나. 아예 생각을 안 해본 모양이었다.
“흠, 흥미로운 내용이 많네.”
“너는 조금만 잘하면 다이아 이상도 한 번에 노릴 수 있으니까 미리 봐둬.”
허건섭은 고대현이 적어도 다이아 이상을 갈 거라 여기고 있었다.
‘어차피 나랑 비슷한 구간에서 정규전을 할 리는 없을 테니까.’
학기 초였다면 이렇게 알려줄 일은 없겠지만.
수준 차이가 어느 정도 나는 걸 확인하자, 그냥 상대에게 잘 보이는 루트로 갈아탄 것이었다.
그렇게 3대 종목에 대한 토론이 계속될 때쯤.
드르륵.
이하린이 교실로 들어왔다.
“어? 뭐야 다들 일찍 왔네?”
“대현이랑 똑같은 소리 하네. 너도 시작 전에 자료나 볼래?”
“뭔데 그게?”
이하린은 자신의 캡슐 옆에 소량의 먹을거리를 둔 뒤, 대현의 옆에 붙어 앉았다.
거의 어깨를 맞대고 밀착하는 수준이었다.
‘둘이 언제 저렇게 가까워졌지?’
이에 나머지 아이들이 속으로 물음표를 띄웠지만.
바쁠 때라서 그런지 직접 입 밖으로 내뱉는 사람은 없었다.
“그라운드 제로는 전부 솔로로 진행이니까 혼자서 은 엄폐하기 쉬운 곳 위주로 가야 해.”
“흔히들 말하는 버티기 전략으로 많이 가겠네.”
상황에 따라서는 외곽에서부터 버티며 들어오는 게 유리했다.
잘못해서 시작하자마자 죽으면 손해가 막심하기 때문이었다.
“반대로 처음부터 중심지로 가는 사람도 있어. 다른 애들이 다 소극적으로 나오니까 오히려 중심지가 더 한적할 때도 있거든.”
“흠…….”
턱 끝을 만지던 이하린이 입을 연다.
“나는 그냥 중심지로 바로 가서 애들 때려눕히는 식으로 가야겠다.”
“넌 컨트롤 스타일이 근접이니까, 그것도 나쁘지 않지.”
정규전은 신원이 가려진 상태로 진행되며.
기존의 교내 평가전처럼 같은 반과 팀을 이뤄서 진행하지 않는다.
전국 단위의 솔로 랭크전이라고 봐도 좋았다.
때문에 허건섭은 대수롭지 않게 이를 넘겼다.
“흠, 나도 중심지로 가야겠네.”
“너도?”
하지만 고대현까지 그렇게 말하자, 허건섭의 미간이 좁혀진다.
자신에게 오는 실익을 떠나서.
그간의 고대현이 보여줬던 컨트롤과 어울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너는 신경 지구력이랑 저격 실력이 좋으니까, 외부에서부터 산타면서 이동하는 게 더 유리할 것 같은데…….”
고대현은 무거운 짐을 메고 수영을 하는 등.
돌파력의 수준이 남달랐다.
‘그런 장점을 활용하면 좋을 것 같은데…….’
즉, 굳이 중심지로 들어가서 재빠른 시가전을 할 필요는 없었다.
“아, 괜찮아. 괜찮아.”
고대현이 손을 휘휘 저으면서 안심하라는 제스쳐를 취한다.
그가 옆에 있는 이하린을 살짝 보다가 말한다.
“그래봤자 겨우 사람이잖아. 처리하기 쉽지.”
“맞아. 겨우 사람이네.”
이하린도 고개를 끄덕인다.
“응? 겨우 사람이라니……. 그게 무슨 소리냐?”
“아, 그런 게 있어.”
이하린과 입가를 가리고 웃는다.
허건섭과 나머지 아이들은 영문도 모른 채 고개만 갸웃거릴 뿐이었다.
띠리리리링-.
[곧 시험 시작입니다.]
[학생들은 캡슐 내부에서 대기하세요.]
그때였다.
정규전 시작에 앞서 안내 방송이 나온다.
‘드디어 시작인가.’
대현은 여유롭게 가상현실 캡슐 안으로 들어갔다.
아직까지는 정규전 전에 있는 대기모드였다.
그는 시작되기 전까지 동작 단축키를 더 익히기로 했다.
‘좀 더 자연스럽게 이어지면 좋겠다.’
이하린과 탑을 오르면서.
대현은 그간 많이 쓰지 않던 동작 단축키 부분의 숙련도가 대폭 늘었다.
매일 괴물이랑 싸워서 그런 듯했다.
띠링-.
[곧 측정이 시작됩니다.]
때마침 측정을 시작하겠다는 메시지가 나타난다.
저번 시즌의 정규전 티어와 지금 보는 측정을 통해. 초반에 매칭되는 상대가 정해진다고 그랬었지.
그렇다면 무조건 높게 받아야 했다.
시작을 높게 해야 빨리 올라가기 편할 테니까.
대현은 내면의 공간 내부에 있는 의자를 끌어당겨서 허리를 밀착시켰다.
그러자 머지않아 모니터에 측정 필드로 이동하겠다는 문구가 표시된다.
‘측정은 3대 종목으로 하는군.’
고대현이 해야 하는 건 주로 표적 맞추기와 스킬 정확도 측정하기였다.
탕탕탕-!!
먼저 총을 들고 장거리에 위치한 표적을 조준한 뒤 쏜다.
탑 내부에서 120일간 총을 써보진 않았다. 하지만 기본적인 감각이 강화된 지라 이전보다 사격의 감각이 좋아졌다.
띠링-.
[측정이 끝났습니다.]
[다음 스테이지로 이동합니다.]
그라운드 제로. 언더워치. LOH가 순서대로 나온다.
고대현이 이번에 도착한 곳은 언더워치의 훈련장이었다.
컨테이너 같은 구조물이 곳곳에 있으며.
박스의 내부에 표적 로봇이 존재하고 있었다.
‘컨트롤 캐릭터는 솔쟈보이로 고정이네.’
띠링-.
[제한 시간 동안 표적을 해치우세요.]
솔쟈보이는 기본적인 힐링과 딜링이 고른 챔피언이다.
대현은 이동 속도와 사격 실력을 이용해, 1분 동안 50개의 표적을 파괴했다.
다른 사람이 한 걸 못 보기에 객관적인 평가가 불가능했지만.
적어도 10반 이상의 측정 결과일 것이다.
고대현이 그런 생각을 하는 사이, 스테이지가 변환되고 경사가 가파른 산이 나온다.
‘이번 챔피언은 켄지?’
켄지는 2단 점프가 가능한 어쌔신 캐릭터다.
이에 따라 고대현이 해야 할 측정은 암벽타기였다.
띠링-.
[제한 시간 동안 최대한 높이 올라가세요.]
‘이 정도를 컨트롤 할 수 있다면, 대충 수준이 보인다는 건가?’
대현은 마우스를 잡고.
켄지를 컨트롤했다.
중요한 건 방향과 타이밍에 맞게 키보드를 누르는 것.
딸깍.
발을 디딜 수 있는 모서리 지점에 맞춰.
고대현이 정확하게 손가락을 움직이자, 화면 속 켄지가 안정적으로 경사를 점프하면서 올라간다.
‘탑 9층에서 했던 자돌리브 깨기에 비하면 장난 수준이네.’
2 페이즈의 거대한 자돌리브를 처치하려고, 한때 외벽을 엄청 타면서 올라갔었다.
그때는 전용 2단 스킬도 없는 상태인지라, 이하린이 계량형 비술로 간신히 클리어했었지.
과거를 상기한 고대현의 손놀림이 빨라진다.
탓탓탓!!
켄지는 어느새 정상에 올라가 있었다.
띠링-.
[측정이 끝났습니다.]
[다음 스테이지로 이동합니다.]
‘휴 이 정도면 내가 전국에서 거의 1등이겠는데?’
아마 이하린을 제외하면 그럴 것이다.
고대현이 생각하고 있자니, 화면이 LOH의 차례로 넘어간다.
LOH도 앞선 과정과 마찬가지로 기초적인 측정이 전부였다.
타워에 박히는 CS 챙기기. 무빙. 스킬 동작 완성도 등등.
모든 것을 끝낸 대현의 앞에 모든 측정이 끝났다는 메시지가 나타났다.
띠리링-.
[전 티어와 측정 결과 합산.]
[종합 점수에 기반한 매칭 준비 중…….]
[시작 지점 : 골드 3으로 배정되었습니다.]
‘흠, 맨 처음 스타트 지점은 골드 3인 건가?’
조금 아쉽긴 하지만.
아이언 2 때의 점수와 합산해서 시작 지점이 결정되는 거니까 어쩔 수 없었다.
‘뭐, 지금부터 잘하면 되겠지.’
손가락을 풀면서 준비하고 있으니.
오버 클럭 준비 중이라는 문구가 추가적으로 나타나고.
[오버 클럭 조정중…….]
[지금부터 외부와의 시간이 다르게 흐릅니다.]
[그로기 상태 진입 시 자동 종료이니. 이점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몇 분 뒤, 첫 게임인 그라운드 제로가 시작되었다.
[에란 웹 - 시험 전용 맵으로 이동합니다.]
띠링-.
부우우우웅–.
화면이 밟아지자, 넓은 비행기 내부였다.
대현은 주변을 둘러봤다.
전부 신원이 가려져 있는 상태인지라.
누가 누군지 구분할 수 없었다.
혹시 아는 사람을 만나서 봐줄 수도 있으니 하는 조치 같았다.
‘다들 어디로 가려나…….’
외곽지대에 도달하자, 사람들이 대거 내린다.
허건섭이 알려준 정보와 비슷했다.
‘내리는 사람의 비율을 체크하고, 나처럼 눈치를 보는 애들도 있네.’
그쯤.
대현은 지도를 펼쳐서 하강할 지점을 선택했다.
이제 슬슬 맵 중앙이니까.
‘포츈키로가자.’
딸깍-.
방향키를 조작함에 따라.
해치 밖으로 나가고.
대현의 몸이 지면을 향해 올곧게 하강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