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57화
#157화
이하린 덕분에 새로운 비술을 쓸 수 있게 되었다.
‘이거라면 몽환의 던전을 뚫을 수 있겠어.’
2 페이즈의 자돌리브를 상대할 때 상체의 내핵을 타격하는 게 제일 힘들다.
변칙적으로 오는 공격을 피하면서 외벽을 타야 하는데.
일정 수준의 고도에 도달하기 전까지 떨어지면 안 되고.
그 지점에 정확하게 점프한 뒤, 자돌리브의 내핵을 타격해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비술을 좀 더 활용한다면?
‘이번에는 깰 수 있을 거야.’
띠링-.
[9층]
[2인 파티]
-몽환의 던전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대현과 하린은 다시 9층 던전에 도달했다.
매크로 모드로 쓰면서 의자를 젖히고 누워있던 고대현이 다시 마우스를 잡는다.
9층은 현실을 비틀면서 공격을 가하는 만큼.
매크로로 해결이 안 되는 게 많아서 수동으로 움직여야 했다.
“일단 구니우스부터 처리하자.”
“이제 구니우스 정도면 준비운동 용이지.”
우웅-.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환각마, 구니우스가 등장해서 구체를 날린다.
대현은 구르기를 쓰면서 계량형 민첩화 비술을 사용했다.
훅-.
그러자 몸이 전방으로 튀어 오르면서 빠르게 돌진한다.
대현은 속도가 실린 주먹을 앞으로 뻗는 키를 누르고.
퍼억-!
그대로 구니우스의 명치를 가격했다.
띠링-.
[환각마, 구니우스]
-HP(1,920/2,000)
‘평타랑 연계하니까 대미지가 더 강해졌네, 좋다.’
가속도가 붙으면서 파괴력이 증가했다.
대현은 이하린과 돌아가면서 구니우스를 때렸고.
얼마 지나지 않아 구니우스를 처치할 수 있었다.
이전과 다른 점이 있다면.
‘무기를 안 쓰고 잡았다.’
무기나 스킬을 사용하지 않고 잡았다는 것이다.
초반에 어떻게 무기를 아끼나 고민했던 때와 비교하면 장족의 발전이었다.
“이제 구니우스 정도는 한대도 안 맞고 잡는구나, 우리.”
“그러게……, 여기 돌면서 컨트롤 실력이 엄청 늘어난 것 같아.”
이전에도 컨트롤 실력이 나빴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곳의 난이도는 상당히 높았고.
여러모로 속성 훈련을 받았기에.
대현은 자신이 3배 정도 강해졌다고 확신할 수 있었다.
‘이 수준이면 다시 산신이랑 비벼도 이기지 않을까?’
그가 그렇게 생각할 때였다.
꿀렁-.
여러 번의 고비를 안겨준 요정수, 자돌리브가 나타났다.
“준비하자. 아까 세웠던 작전 내용, 잘 숙지했지?”
“응!”
이번에야말로 깬다.
타임 오버 클럭이 적용되었는데도 60일을 넘겼다.
이제 클리어 할 때도 됐지.
대현은 지금까지 했던 것처럼, 동작에 속임수를 섞어서 자돌리브의 꿈 장막을 벗겨냈다.
그리고 자돌리브의 약점에 올라가서 대검으로 공격을 가했다.
끼에에엑-!!
얼마 지나지 않아, 자돌리브의 체력이 낮아지고 2 페이즈가 시작된다.
‘저 크기는 계속 봐도 익숙해지지 않네.’
어지간한 빌딩만 한 거인이 된 자돌리브가 팔을 뻗어서 주먹을 내리친다. 대현과 하린은 던전 외벽에 있는 발판을 딛고 점프하면서 공격 범위에서 벗어났다.
‘다행히도 움직임은 빠르지 않아……. 공격할 때가 틈이다.’
퍼엉-!!
계량형 민첩화를 쓰니, 몸이 튀어 오르면서 몇 계단 이상을 점프한다.
츠츠츠츠.
그쯤, 자돌리브의 분화된 팔도 벽을 타고 위로 올라오고 있었다.
‘따라잡히기 전에 내핵을 공격해야 한다.’
자돌리브의 반투명한 몸 내부에 있는 빨간색 내핵.
그것을 공격하기 위해 옆으로 각도를 틀고 점프할 준비를 한다.
‘일단 선발대는 이하린.’
“지금이야!”
고대현이 신호를 주자, 이하린이 계량형 민첩화를 쓰면서 도약한다.
퍼엉-!
고대현보다 5배는 멀리 점프한 그녀가 건틀릿을 끼고, 2 페이즈 자돌리브의 내핵을 겨눈다.
촤라라락-.
위협을 인지한 자돌리브의 어깨 부분에서.
여러개의 팔다리가 분화되어 파도처럼 쏟아져 내리고.
퍽!
이하린이 공중에서 그 모든 공격을 받아낸다.
‘집속펀치.’
그리고 100레벨에 도달한 집속펀치를 시전했다.
시전자의 체력이 낮아도 축적하는 대미지 수치가 높았기에.
파앙-!!
되돌려주는 고정 대미지가 상당했다
터진 풍선처럼 터져나가는 수많은 팔다리들.
머지않아, 고대현도 점프를 해서 이하린의 뒤에 도달한다.
그리고 이어서.
‘감마 스트라이크.’
동작 구현 100%.
스킬 레벨 150에 도달한 감마 스트라이크를 사용했다.
다음 순간.
스거걱-!!
공중에 뜬 자돌리브의 파편을 타면서 몸이 이동한다.
이윽고.
파편을 처치하면서 다시 모습을 드러낸 고대현의 아래.
집속펀치를 쓰고나서 잠시 체공하고 있던 이하린이 외쳤다.
“빨리 밟아!”
자신의 몸을 가리키면서 하는 소리였다.
거리가 머니까.
공중에서 서로의 몸을 밟고 다시 한번 도약하는 게 작전이었다.
팡!
각력으로 이하린의 어깨 부분을 발로 찬다.
다시 시야에 빨간색 내핵을 담은 대현은.
푸욱-!!
내핵을 향해 찌르기를 시전했다.
검은색 대검이 빨간색 구체를 깨부수면서 틈을 비집고 들어간다.
깡깡깡-!!
‘죽어라. 죽어.’
여기선 무기의 내구도를 아낄 필요가 없었다.
일단 10층을 밟아보기라도 하는 게 최우선이었으니까.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띠링-.
[요정수, 자돌리브(를) 처치하셨습니다.]
딱딱하게 굳은 자돌리브가 먼지로 변하면서 사라진다.
드디어 자돌리브를 처치한 것이었다.
그와 동시에.
띠링-.
[10층으로의 이동을 시작합니다.]
[10층]
[2인 파티]
-영원의 던전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대현과 하린은 10층으로 전이되었다.
“우, 우리 깬 거야?”
“그런 것 같네.”
고대현이 떨떠름한 말투로 답한다.
자돌리브를 처치했다는 사실이 아직 실감 나지 않은 상황에서 바로 10층으로 온 탓이었다.
“와아, 깼다–.”
기분이 좋은 걸까.
이하린이 고대현을 껴안는다.
“아직 다 클리어한 거 아니야. 지금 있는 층 남았잖아.”
“에이, 혼자서 분위기 잡기는.”
이하린이 뾰로통한 표정을 짓는다.
현실의 시간까지 합쳐서.
사실상 100일 가까이 알고 지낸 탓에, 이전보다 더 가까워진 그들이었다.
“그건 그렇고…….”
그때.
고대현이 영원의 던전 초입 길을 살펴본다.
탑의 마지막 층인 만큼.
9층보다 기상천외한 몬스터가 나올 게 틀림없었으니 말이다.
‘겉보기에는 평화로운데…….’
하지만, 10층은 지금까지 왔던 던전 중에서 제일 조용한 곳이었다.
몬스터조차 보이지 않고, 그저 일상적인 풀밭과 따스한 햇살만이 가득했다.
‘이건 또 새롭네. 역으로 평화롭다니…….’
고대현은 긴장은 풀지 않았다.
방심시켰다가 공격하려는 걸지도 모르니까.
그렇게 주변을 경계하면서 긴장을 풀지 않기를 몇 시간.
띠링-.
[특수 조건 달성 실패.]
[영원의 던전 공략에 실패하셨습니다.]
[재생의 집으로 전이됩니다.]
10층 공략에 실패했다는 메시지가 떠올랐다.
“응? 실패라니? 아직 아무것도 안 했는데…….”
허무하게 재생의 집으로 돌아온 고대현이 중얼거린다.
“우리가 모르는 특수 조건 같은 게 있던 게 아닐까?”
“조건? 일단 퀘스트 관련 메시지가 초반에 안 나타났던 거로 아는데.”
“흠, 안 나타나서 난이도가 높은 걸지도……?”
이하린이 조심스레 추측한다.
하지만 어떤 추측이 나와도 정확하지는 않았다.
결국 다시 시도하면서 알아볼 수밖에 없었으니…….
‘매크로 시스템의 힘을 빌려야겠네.’
대현은 다시 9층을 클리어하고 10층으로 올라가기로 다짐했다.
* * *
띠링-.
[10층으로의 이동을 시작합니다.]
[10층]
[2인 파티]
-영원의 던전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10층에 다시 도달한 고대현과 이하린.
그들은 장착한 무기를 해제하면서 대화를 나눴다.
“이동을 아예 안하는 조건으로는 해봤으니까. 이번에는 무기 장착 해제인가?”
“응, 그냥 해제하고 돌아다녀 보면 될지도? 물론 안될 확률이 높은 것 같기는 한데…….”
대현과 하린은 10층에서 다양한 조건을 채워서 동작을 수행해왔다.
저번에는 들어오자마자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않기였고.
이번에는 무기를 해제하고 돌아다니기였다.
‘한때 적을 탐색해보겠다고 땅을 파보기까지 했는데 다 실패했었지.’
메커니즘 상 무언가에 자극을 주지 않아서. 10층의 조건이 수행되지 않았을 확률이 높았다.
과연 그 조건이 무엇인지.
고대현이 고민하면서 이동하던 때였다.
“아.”
풀썩.
무언가를 떠올린 듯한 이하린이 잔디 위에 몸을 눕혔다.
“갑자기 왜 누워?”
“방금 느낌이 왔어.”
“느낌?”
“이거, 몸에 긴장 상태를 푸는 게 중요한 거였어.”
“그런가……?”
“응. 그리고 어차피 자돌리브 공략하는 것도 슬슬 익숙해졌으니까. 이제 좀 쉬어도 되지 않을까? 뭐, 안되면 그때 가서 다시 생각해 보면 되지.”
이하린은 직접 빙의해서 컨트롤 웨이브를 다룬다.
때문에, 대현은 그녀의 말을 단순한 추측으로 치부할 수 없었다.
‘그럼, 나도 몸 좀 눕혀볼까.’
대현은 이때를 위해 모션 캡쳐로 등록해놨던 눕기 동작을 실행했다.
그러자 화면 속 자신이 잔디 위에 눕는다.
끼익.
눕는 건 화면 속의 빙의체 뿐만이 아니었다.
PC가 있는 내면의 공간.
그곳에 있던 고대현도 의자를 뒤로 젖히고 휴식을 취했다.
그렇게 몇 시간 정도 지났을 순간이었다.
띠링-.
[특수 조건 달성에 성공하셨습니다.]
[10층 보스, 조바심(을) 처치했습니다.]
특수 조건을 달성했다는 메시지와 보스 처치 메시지가 나타났다.
“이게 10층 보스?”
대현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이렇게 추상적인 개념이 보스일 거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
“잘못하면 영영 못 깰 수도 있고, 많이 시도할수록 증가하는 감정이라서 보스 아닐까?”
“하긴, 네가 아니었으면 여기에 얼마나 더 시간을 소비했을지 상상이 안 가긴 하네.”
소모 시간이 어디까지 늘어날지 모르기에.
어떻게 보면, 영원의 던전이라는 이름에 걸맞은 보스몹이었다.
대현은 곁눈질로 시간을 살폈다.
탑 퀘스트를 시작하고 나서 지금까지 지난 일 수는 약 120일.
현실의 시간으로는 2시간이었지만.
‘참, 길었네…….’
예상치 못하게 이하린과 긴 시간을 보내버린 고대현이었다.
띠링-.
[2차 각성 퀘스트 최종 완료.]
[보상이 지급됩니다.]
그때였다.
탑의 완전한 클리어 표시가 나타나고.
두 사람의 스킬 슬롯에 ‘마지막 전사’가 생성되었다.
‘여기까지는 일반적인 마지막 전사다.’
과연 2차 각성 효과는 어떤 내용일지.
고대현이 스킬을 열어서 확인하자, 마지막 전사의 2차 사용 효과에 대한 스킬 동작이 나타났다.
띠링-.
[마지막 전사 – 심상 무기 Lv. 1]
-2차 효과는 마지막 전사 상태에서 마나를 소비해, 발동시킬 수 있으며.
-무기가 없는 완전한 무장 해제 상태에서도 스킬을 쓸 수 있다.
[사용 방법]
-신체 강도와 한계에 따라 대미지를 입는다.
-시전자의 심상을 무작위 스킬에 맞춘 뒤 움직임을 취하는 게 중요하다.
.
.
.
‘생각보다 내용이 길다.’
대현은 스킬 내용을 읽다가 무기 없이 스킬을 쓸 수 있다는 문장을 발견했다.
‘무기 없이 스킬을? 그럼 검 없이 감마 스트라이크를 쓸 수 있는 건가? 그건 좋네.’
2차 각성을 하느라 탑에서 있었던 시간을 생각하면.
꽤나 괜찮은 등급의 보상이었다.
“너도 나랑 똑같은 거지?”
“어. 그런데 무기 없이 스킬을 쓰는 거 말고도 발전형이 하나 더 있는 것 같은데?”
“응? 그게 뭔데.”
고대현이 질문하자 이하린이 중간을 가리킨다.
“심상을 무작위 스킬에 맞춘 뒤 움직임을 취하라고 그랬잖아. 마침 무기도 필요 없다고 그랬으니까……, 사실상 모든 스킬을 쓸 수 있는 거 아니야?”
“─!”
몰랐는데.
다시 보니까 그런 의미의 내용이 맞는 것 같았다.
“신체 강도에 따라 대미지를 입으니까 계속 쓸 수는 없겠어. 뭐, 그 대신 맨몸으로 마법 공격이라도 쏠 수 있게 되는 건가?”
“글쎄에…….”
정확한 건 해봐야 알게 될 것이다.
“정규전 끝나도 서로 만나서 실험해보자.”
“응, 알았어. 나중에 학교에서 보자.”
‘일단 피곤하니까 이쯤에서 접속 종료해야겠다.’
현실에서는 2시간 좀 넘게 지났을 뿐이지만.
내부에서 한 일이 함축적으로 너무 많아서 그런 걸까.
엄청난 피곤함을 느낀 대현과 하린은 접속을 종료했다.
* * *
치이익-.
캡슐이 열리고.
고대현이 몸을 일으킨다.
몸 자체는 별 이상이 없지만.
뇌에 들어온 정보량이 많아서 살짝 골이 아픈 느낌이 들었다.
‘어디 보자, 날짜는 그대로네.’
혹시 몰라서 날짜를 체크하자 오늘 그대로였다.
“휴, 일단 정규전 때까지는 좀 쉬어둘까.”
그가 날짜를 보다가 옆에 있는 홀로그램 캘린더를 넘긴다.
[정규전 일정]
D-3.
‘이제 진짜로 정규전이다.’
어느덧 정규전이 코앞에 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