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54화
#154화
과부하가 심해지기는 했다.
몇 달 전까지만 해도 이 정도 활동량은 웃어넘길 수 있는 수준이었으니 말이다.
‘이대로 끌면 민폐야.’
하지만 그 방식이 어떻든 간에.
이제는 상대에게 어느 정도 의존 해야 했다.
이미 탑에 들어왔고 나가기에는 지금까지 투자한 게 아까우니까.
물론, 외부의 시간은 많이 지나지 않았으니.
사실상 아주 손해는 아니었지만.
그녀는 고대현에게 맞춰주기로 했다.
‘원하니까 좀 더 있는 게 맞겠지.’
그간 아이템은커녕 변변찮은 선물조차 받아본 적이 없는지라.
상대에게 도움을 줘야겠다고 생각한 이하린이었다.
“한다?”
끄덕끄덕.
고대현의 말에 이하린이 고개를 끄덕인다.
이윽고 고대현이 소멸 간섭파를 시작하고.
둘의 몸이 포개어진다.
“…….”
“…….”
정적과 함께 벼락 나무가 불타는 소리.
보스몹이 공중에서 바람을 모으는 소리.
중간 보스몹, 알마루크가 나뭇잎을 흔드는 소리.
그리고 이하린의 숨소리만이 들리고.
‘뭔가 편해…….’
라고 생각한 이하린의 컨트롤 웨이브가 다시 잠잠해진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띠링-.
[재사용 대기시간 : 5분]
[치료 활동 : 2/10]
[스킬 사용 : 10/10]
고대현의 모니터에 퀘스트 완료 표시가 나타난다.
각각 적응형 인물 퀘스트와 패밀리어 퀘스트였다.
‘스킬 사용 퀘스트가 완료됐네.’
패밀리어 퀘스트 중 하나인, 복사한 스킬 사용 10회.
그것이 채워지면서 이하린에 대한 모든 패밀리어 퀘스트가 완료되었다.
그 결과.
[패밀리어(이하린)에 대한 신경 지구력 부담 비율이 25%로 상향됩니다.]
[복사한 스킬의 출력 수치가 25%로 상향됩니다.]
이하린에게서 25%를 부담함과 동시에, 복사한 비술을 더 나은 출력으로 쓸 수 있게 되었다.
‘소멸 간섭파와 민첩화 비술이 더 강해졌다고 보면 되겠네.’
그간 민첩화를 쓰긴 했지만, 속도는 당연히 이하린보다 떨어졌다.
소멸 간섭파도 야나 이바노프급 인물에게 써보진 않았지만.
아마 비술이나 스킬을 완벽하게 캔슬시킬 수준은 아닐 것이다.
‘그래도 이번에 25%로 올라서 더 강해졌다.’
대현은 완료된 스킬 항목을 만족스럽게 보다가 창을 내렸다.
그러자 자신에게 안겨있는 이하린이 눈에 들어온다.
새근새근.
이하린은 아직까지 눈을 감고 가만히 있는 상태였다.
“이제 영업 끝났습니다. 손님.”
“어? 아, 응…….”
이하린이 잠에서 깬 강아지처럼 주변을 두리번거리다가 품에서 벗어난다.
이것으로 치료 활동은 끝.
이제 슬슬 보스몹 레이드를 해야 했다.
“준비됐으면 수락한다?”
끄덕끄덕.
이하린이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자, 고대현이 수락 버튼을 누른다.
다음 순간.
대기하고 있던 몬스터들이 활동을 시작했다.
제일 먼저 움직인 건 선두에 있던 알마루크들이었다.
길쭉한 팔다리를 가지고 있는 몬스터답게.
4마리가 동시에 팔을 휘두르면서 다가온다.
“저걸 어떻게 다 피하지……?”
“그냥 민첩화를 최대로 사용해.”
이하린의 비술인 민첩화를 쓰면 가능성이 있었다.
특히 이하린 본인은 100%의 출력으로 쓸 수 있으니까.
계속 최대치로 사용하면 분명 뚫을 수 있을 것이다.
“여차하면 또 치료 활동하면 되니까 괜찮아.”
“알았어…….”
이에 이하린이 호흡을 가다듬고, 발을 뻗는다.
투각.
그녀의 몸이 빠르게 움직이고.
이어서 주변 사물이 느리게 보이기 시작한다.
“내가 먼저 무릎을 공격할 테니까, 네가 쓰러진 거 처리해줘.”
“오케이.”
재빠르게 움직여서 수십 개의 공격을 피한 이하린이, 돌려차기를 쓰면서 알마루크의 무릎을 가격한다.
우드득.
그러자 일전처럼 다리가 부러지면서 쓰러지는 알마루크.
그 틈을 고대현은 놓치지 않았다.
퍼걱!!
이하린에게 배운 뒤 등록한 발차기 동작.
여러 가지 단축키를 이용해서 알마루크의 머리를 공격한다.
‘한 놈에 3대는 때려야 한다.’
쓰려졌다 하더라도 3대는 때려야 죽일 수 있기에.
민첩화 25%를 사용하고.
재빠르게 연타해 몸을 움직인다.
띠링-.
[알마루크(를) 처치하셨습니다.]
순식간에 3마리의 알마루크가 처리되었다.
대현은 화면을 전환해 앞을 응시했다.
전방에 있던 이하린은 벌써 벼락나무 근처까지 이동해 있었다.
모든 힘을 끌어내서 그런지, 상당한 속도였다.
‘과연, 야나 이바노프랑 비등비등했던 실력답네.’
하지만, 피해야 할 건 알마루크 말고도 있었으니.
상공에서 공격 하나가 더 준비된다.
“위에 조심해!”
공중에 있던 보스몹, 모길이 흰색 구름으로 만들어진 구체를 발사한다.
푸확-!!
구체가 땅에 떨어지고, 주변에 토네이도를 형성한다.
이하린의 몸이 자동적으로 그 옆으로 끌려간다.
그사이 다른 알마루크가 새로 생성되어서 나무 앞을 지켰다.
‘이쯤에서 무기를 한번 써야겠다.’
모든 어그로가 이하린에게 집중되어 있기에.
고대현이 무기를 꺼내 장착한다.
중간에 있는 알마루크를 단번에 뛰어넘어서 도달하려면 이 방법이 제일 빠르니까.
‘감마 스트라이크.’
스거거걱-!!
몸이 순간 이동된 다음.
몇 미터 앞에 있는 알마루크의 앞에 나타난다.
그대로 한 마리를 처치한 뒤.
대현은 앞에 있는 벼락나무를 응시했다.
타닥타닥.
윗부분이 불타고 있는 나무가 가만히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스걱-!!
나무를 향해 일반 공격을 날리자, 벼락 나무가 우드득, 하고 쓰러진다.
파직.
쓰러진 나무에 전류가 생성되더니, 이내 하늘을 향해 역으로 벼락 치듯 올라간다. 목표물은 당연하게도 미로왕, 모길이었다.
치지직!!
띠링-.
[미로왕, 모길]
-HP(19/20)
나무 하나가 쓰러지면서 체력이 19로 줄어들었다.
‘이런 식으로 하는 거군.’
대현은 다음 타깃인 나무를 바라봤다.
여기서 몇 미터 정도를 더 이동한 곳에 벼락 나무 한 그루가 더 있었다.
“하나 처리했어! 이제 저쪽으로 가자.”
보스몹이 타격당해서 어그로가 풀린 이하린에게 말했다.
그녀는 이제 막 토네이도가 끝나서 땅에 착지한 상태였다.
“무기, 결국 쓰기로 했네?”
“어쨌든 네가 죽으면 다시 돌아가야 하니까.”
현재 무기의 내구도는 77.
앞으로 남은 나무가 19개니까.
이제 위에서 날아오는 공격도 유심히 살펴봐야 했다.
“흠, 미안. 좀 더 민첩하게 움직여야겠네.”
“응? 아까보다 더 빨리 움직일 수 있어?”
“아, 그러고 보니 지금까지 말한 적 없었나?”
이하린이 자신의 얼굴을 가리키면서 말을 이었다.
“나, 입학하고 나서 지금까지 100% 이상으로 써본 적 없어.”
“그래?”
아무래도 더 상위단계로 움직일 수 있는 모양이었다.
“문제없겠어?”
“네가 그거 써준다면서……, 또 받으면 어떻게든 되겠지. 그러니까 이제 무기는 넣어둬.”
“아, 또 합체하면 되긴 하지.”
“그렇게 표현하지 말라니까.”
자기 때문에 무기를 쓴 것 같아서 죄책감이 느껴진 걸까.
얼굴을 긁적이던 이하린이 이어서 다음 나무로 이동한다.
이번에는 더 빠른 속도였다.
퍼퍼퍽!
거의 동시에 5마리 정도를 무릎 꿇린 이하린이 곧바로 몸을 비튼다.
위에서 날아오는 바람 공격을 피하기 위함이었다.
쿠궁.
이번에는 멀리 떨어져서 그런지.
이하린이 당겨질 정도의 인력이 형성되는 일은 없었다.
우지끈.
그런 사이.
체술로 알마루크를 처치한 고대현이, 두 번째 벼락나무를 주먹으로 때린다.
벼락나무는 고대현의 주먹에 중심이 꺾이더니, 이내 옆으로 쓰러졌다.
파지직!
다시 벼락이 위로 올라가고.
띠링-.
[미로왕, 모길]
-HP(18/20)
모길의 HP가 18로 떨어진다.
‘이제 18개만 처리하면 끝.’
그렇게 생각한 고대현이 고개를 돌리자.
어느새 다음 벼락나무 앞에 도달한 이하린이 나무를 공격한다.
‘빠르다.’
중간에 있는 알마루크를 전부 뛰어넘고 나서 얻은 결과였다.
우지끈!
띠링-.
[미로왕, 모길]
-HP(17/20)
“그냥 애들 무시하면서 처리할게.”
“으, 응.”
모든 힘을 개방한 이하린의 능력은 상당했다.
고대현이 알마루크의 공격을 간신히 피할 정도가 되어서 몸을 빼내자, 이하린은 어느새 저 멀리까지 가 있었다.
‘역시, 전지수를 그냥 이겼던 게 아니네.’
고대현이 이하린의 움직임을 보고 감탄한다.
그는 곁눈질로 서브 모니터에 나타난 수치를 살폈다.
[이하린]
[빙의체 상태 : 약 과부하]
벌써 과부하 상태의 초입에 이르렀다.
이에 고대현이 중간에 또 써야겠다고 생각하는 한편.
미리터를 해제한 이하린이 다음 나무 앞에 도달하고.
또 하나의 나무를 부순다.
우지끈!
속도가 너무 빨라서 공중에 있는 보스몹이 저지하지도 못할 정도였다.
그렇게 10그루의 나무를 처리했을 때.
띠링-.
[미로왕, 모길]
-HP(10/20)
쿠르르릉!!
미로왕, 모길이 2 페이즈 상태에 돌입했다.
흰색이던 모길의 몸체가 검게 변해간다.
‘이제 또 뭘 날릴 거지?’
아직 남은 나무는 10개.
경험상 10개에 접근하기 더 어렵게 하거나.
날리는 공격의 패턴이 더 강해질 것이다.
몇 분 뒤.
그의 예상대로, 검은 구름으로 변한 보스몹이 땅을 향해 더 커진 공격을 날린다.
“온다!”
“응.”
대현과 하린은 단순하게 몸을 움직여 그 공격을 피했다.
단순한 투사체 공격이기 때문이었다.
쿠구궁.
그렇기에.
바닥에 떨어진 구름이 퍼져나가는 걸 보면서 대현과 하린은 눈을 크게 떴다.
‘미로가 만들어진다?’
검은 구름이 퍼져나가면서 나무 10개의 주변으로 벽을 세운다.
시야가 전체적으로 검게 변해서 여러모로 위험한 미로.
이 때문에 고대현과 이하린의 거리가 멀어졌다.
조만간 다시 소멸 간섭파를 쓰려고 했던 고대현의 미간이 좁혀졌다.
‘이거 다시 합류 안 하면 좀 위험해지겠는데?’
아직 위험 단계는 아니지만.
아직 나무가 10개나 남은 상태인지라 다시 과부하 상태에 들어갈 확률이 높았다.
‘그때 내가 없으면…….’
재수 없으면 그로기 상태에 들어가서 퀘스트 자체가 취소될 수 있었다.
대현은 검은 안개 사이로 날아드는 알마루크의 팔을 피하면서, 이하린이 있는 방향으로 이동했다.
띠링-.
[화면 시야가 조정됩니다.]
저번 블록 수업 때처럼.
주변이 어두워지자 야간 투시 모드에 들어간다.
‘퀘스트를 깨고 얻은 건데 생각보다 요긴하게 쓰네.’
화면에 길쭉한 형태가 투시되어 보이고.
그 너머로 비교적 작은 몸체가 보인다.
이하린도 아직까지는 몸 상태가 양호해서 계속 싸우는 중이었다.
‘몇 칸을 더 건너서 가면 되겠어.’
투쾅-!!
그때, 위에서 보스몹이 날린 구체가 떨어진다.
이에 또다시 미로의 구조가 복잡해진다.
보스몹이 합류를 방해하고 있었다.
‘안 되겠다. 나무부터 얼른 처리해야겠어.’
고대현은 목표물을 벼락 나무로 바꿨다.
일단 보스몹을 처리하는 게 더 빠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현은 몬스터들의 공격을 피하면서 나무로 접근했다.
벼락나무는 불타고 있는 중이라 비교적 시야에 잘 잡혔다.
‘지금은 어쩔 수 없이 무기를 써야겠네.’
흑요석 대검을 이용해 벼락나무를 베어 넘긴 고대현이, 다른 나무가 있는 쪽을 응시한다.
띠링-.
[미로왕, 모길]
-HP(8/20)
2개의 나무가 거의 동시에 넘어갔다.
이하린도 빠르게 보스몹을 죽이는 것으로 목표를 수정한 것 같았다.
“이제 8개 남았다.”
고대현이 다음 목적지로 재빠르게 자신의 몸을 컨트롤한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스걱-!
마지막 나무가 바닥을 향해 쓰러지고.
띠링-.
[미로왕, 모길(을) 처치하셨습니다.]
드디어 보스몹을 클리어했다.
화아악!
도시에 주변을 휘감고 있던 검은 안개가 사라진다.
대현은 몇 미터 정도 떨어진 거리에서 이하린을 발견했다.
‘벌써 과부하 상태다.’
이하린은 이미 과부하 상태였다.
한 번에 힘을 많이 써서 쉽게 과부하에 도달한 것이었다.
‘내가 임의대로 그냥 쓴다고 했으니…….’
대현은 예고 없이 이하린에게 소멸 간섭파를 사용했다.
꼬옥-.
또다시 이전과 같은 광경이 연출된다.
다행히도 타격이 오진 않았다.
‘흠, 괜찮으려나.’
대현은 이하린의 안색을 살폈다.
그러자 편안한 표정으로 가만히 있는 이하린이 대현의 눈에 잡힌다.
“어차피 쓸 일도 없을 거라면서 자주 이용하네.”
고대현이 장난식으로 말하자, 이하린이 입을 연다.
“그냥……, 앞으로 자주 써.”
“응?”
“나 때문에 무기 썼잖아. 그러니까 자주 쓰라고. 앞으로 내가 다 처리할게.”
‘그런 걸 신경 쓰고 있던 건가.’
대현은 자신의 무기 내구도를 살폈다.
흑요석 대검의 내구도는 벌써 70에 도달해 있었다.
어차피 1번의 시도는 무리라고 여겨서 큰 신경은 쓰지 않았는데…….
‘이거 때문에 이하린이 순순히 있으니까, 오히려 이득이네.’
띠링-.
[치료 활동 : 3/10]
스킬 사용을 끝마친 고대현은, 다시 무기의 장착을 해제했다.
그리고 자신의 무기 내구도를 보면서 생각했다.
‘앞으로 요긴하게 써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