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50화
#150화
화면이 전환되고 나타난 곳은 넓은 평야였다.
대현은 시야를 삼인칭으로 전환한 뒤 근방을 둘러봤다.
아직 아무것도 없는 평야에는 두 명의 사람밖에 없었다.
적이 오나 관찰하고 있으니, 별안간 눈앞에 스킬 퀘스트 내용이 나타난다.
띠링.
[제한 시간까지 버티기]
-총 10 웨이브.
-10초 뒤, 1 웨이브가 시작됩니다.
‘이게 마지막 전사 퀘스트…….’
이름답게 오랜 전투를 버텨야 하는 퀘스트인 듯했다.
대현은 마찬가지로 옆에서 퀘스트 내용을 살피고 있는 이하린을 응시했다.
“이대로 계속 싸우면 되는 건가?”
“응, 아마도.”
10 웨이브라는 것을 보아하니.
약 10번의 디펜스를 완료해야 할 것이다.
대현은 현재 캡슐에서 하는 상태다. 지구력과 관련한 문제가 없으니 난이도는 적당했다.
이하린도 신경 지구력이 좋은 편이니 괜찮을 것이다.
‘물론 문제가 하나 있다면…….’
“너, 장비는 있어?”
장비 수준이 마음에 걸렸다.
“당연히 챙겼지. 날 뭐로 보고.”
이하린이 인벤토리에서 꺼낸 아이템을 보여준다.
앞에 짧은 갈고리가 몇 개 달린 스파이크였다.
주먹에 착용해서 쓰는 아이템인 것 같았다.
그녀는 이어서 체력 아이템을 둘렀다.
고대현은 이하린의 손에 들린 스파이크를 보며 생각했다.
‘등급이 높아 보이진 않네.’
나름 고심해서 샀을 테지만, 이하린의 형편이 그리 좋은 편이 아니라 무기의 퀄리티가 아주 좋지는 않았다.
‘지금 주면 적당하겠다.’
대현은 인벤토리에서 흑요석 대검을 살 때 같이 구매했던 건틀릿을 꺼냈다. 그러자 이하린의 시선이 혹한의 건틀릿에 쏠린다.
“이거 써라.”
“어? 나 주는 거야?”
“지금 쓰는 장비로는 오래가기 힘들 것 같아서.”
건틀릿을 받아든 이하린이 성능을 읽어내려간다.
“이거 성능 엄청 좋은 건데……?”
“싸게 샀어.”
“얼 만 데?”
고대현이 대략적인 가격을 말해주자 이하린의 눈이 동그랗게 커진다.
“어, 엄청 비싼 거 아니야?”
혹한의 건틀릿이 근접 아이템이어도 기본적인 성능 때문에 비싼 축에 속했다. 이하린은 평소에 궁핍하게 살았으니 더 크게 느껴지겠지.
그때, 아이템을 조심스레 착용한 이하린이 말한다.
“잘 쓰고 돌려줄게.”
“응? 그냥 가져도 돼. 나 어차피 건틀릿 쓰는 스킬도 없고, 대검 살 때 서비스로 받은 거라 상관없어.”
“그, 그래도. 이거 되팔기만 해도 돈은 꽤 될 텐데.”
“나는 돈 많아서 괜찮아.”
빈말이 아니라 진짜였다. 기초적인 동작을 찍는 영상만 해도 조회 수가 꽤 높으니 말이다. 대현은 인벤토리에서 흑요석 대검을 꺼내면서 말을 이었다.
“일단 퀘스트나 깨자. 지금은 그게 중요하니까.”
“으, 응……, 고마워.”
푸른빛이 감도는 혹한의 건틀릿을 바라보던 이하린이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인다.
다음 순간.
몬스터 웨이브가 온다는 메시지가 그녀의 눈앞에 떠오른다.
띠링─.
[웨이브 1이 시작됩니다.]
그와 동시에 저 멀리에서 생성된 몬스터가 중앙을 향해 돌진을 시작한다. 가운데에서 계속 몬스터를 상대하는 구조였다.
“온다.”
몬스터의 능력치를 본 고대현이 앞으로 나서면서 감마 스트라이크를 쓴다. 이전보다 스킬 레벨이 올랐기에 1 웨이브의 몬스터 정도는 쉽게 처리 가능했다.
스스슥-!
한번 일대를 크게 배면서.
대현의 몸이 이동하니 몬스터 수십 마리의 체력이 극도로 낮아진다. 이하린은 그렇게 남은 잔여 몬스터 들을 처리하는 역할을 담당하기로 했다. 새롭게 얻은 건틀릿을 끼고 주먹을 휘두르자 슬로우가 걸리면서 몬스터들이 없어진다.
아직 집속 펀치를 쓸 정도의 수준은 아니었다.
‘성능이 괜찮네.’
건틀릿을 쓰던 이하린이 고대현이 있는 방향으로 고개를 돌린다.
고대현은 이전보다 넓어진 감마 스트라이크를 사용하고 있었다.
몸이 사라지면서 상대의 중심에 칼날 폭풍을 만들고, 그 위에 나타나기를 반복한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웨이브 1이 종료되었습니다.]
-p1 : 30
-p2 : 30
[1차 목표 수치에 도달했습니다.]
첫 번째 웨이브가 끝나고 잠시 쉬는 시간이 되었다.
“아직 할만하지?”
“이 정도면 문제없어. 앞으로 얼마나 난이도가 오를지는 모르겠지만…….”
난이도가 10배가량 오르면 소모되는 신경 지구력이 확 늘어날 듯 보였다. 거기에 더해서 각자 잡아야 하는 몬스터의 최소 횟수가 정해져 있기 때문에 아직 안심할 수 없었다.
“그런데 넌 안 힘들어?”
고대현의 신경 지구력이 천외천인 건 알지만.
저렇게 대검을 들고 계속 움직이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게다가 사용하는 스킬도 난이도도 꽤 높았으니까.
“응, 아직 할 만해.”
고대현이 표정 하나 바꾸지 않고 말한다.
그는 오히려 이하린을 걱정하고 있었다.
“너나 조심해. 나중에 힘들면 말하고. 바로 써줄 수 있으니까.”
“아, 아직 필요 없으니까 괜찮아.”
비교적 최근에 중화 과정을 거쳤으니, 아직 몸을 겹칠 타이밍은 아니었다. 몸 상태가 안 좋아지긴 했어도 이 정도에 남에게 의지할 정도는 아니니까.
이하린은 이번 퀘스트에서 최대한 상대에게 기대지 않는 게 목표였다.
띠링.
[웨이브 2가 시작됩니다.]
그때 두 번째 웨이브가 시작되었다.
이번 몬스터는 대미지와 이동 속도가 더 빨랐다.
“감마 스트라이크로 커버가 안 될 수 있으니까 조심해.”
끄덕끄덕.
이하린이 고개를 끄덕임과 동시에 고대현의 몸이 다시 앞으로 튀어 나간다.
스걱-!
대상으로 지정한 몬스터를 반경으로 칼날 폭풍이 불고.
죽은 몬스터의 앞에 나타난 고대현이 발광탄을 쓰면서, 대검으로 일반 공격을 날린다.
쾅쾅-!
대검 자체의 효과가 좋아서 그런지 단일 대상으로는 일반 공격 대미지가 더 크게 들어갔다.
스슥!
다시 감마 스트라이크로 일대를 대검으로 휩쓸자, 할당량의 절반 정도가 채워진다. 고대현의 공격은 광범위하게 들어가서 할당량을 채우기 편했다.
‘후우, 이 정도면 됐나.’
몬스터를 정리한 고대현은 뒤에 있는 이하린에게 시선을 옮겼다.
퍽퍽!
이하린은 체술과 스킬을 번갈아 쓰고 있었다.
2개의 비술 중 하나인 민첩화까지 사용하니 2번째 웨이브도 금세 마무리된다.
‘아직 과부하 상태는 아니다.’
디텍트 아이를 켜서 확인해도 몸에 큰 문제는 없어 보였다.
그대로 다음 웨이브까지 속행하기로 한 고대현은 계속해서 감마 스트라이크를 시전했다.
그리하여.
대현과 하린은 30분 정도 지난 시점에서 10 웨이브에 도달할 수 있었다.
띠링.
[몬스터 : 10 웨이브]
-원거리 수치 60
-방어력 100
-공격력 150
‘이번에는 난이도가 좀 높네.’
원거리 공격까지 하는 몬스터에 이전에 나왔던 까다로운 몬스터까지 섞여 있었다.
신경 부하 보정이 거의 없는 곳이다 보니, 10번째에서는 이하린도 지쳐있는 모습이었다.
“넌 이제 막타만 쳐. 나머지는 내가 처리할게.”
두 명이 들어온 이상 두 명 다 퀘스트를 완료해야 나갈 수 있었다.
해서, 대현은 이하린이 체력이 줄어든 대상만 처리하게 했다.
전투중에 소멸 간섭파를 쓸 수는 없으니까.
티티티팅!
날아오는 투사체를 검날 흘려내기로 반사하면서 전체적인 적들의 체력을 뺀다.
‘오히려 원거리 몬스터가 있어서 더 편하네.’
검날 흘려내기로 원거리 공격을 가한 뒤.
대현은 자신의 몬스터 처리 할당량을 채웠다.
그리고 이어서 이하린한테 바톤 터치.
체력이 줄어든 대상만 처리하게 했다.
우우웅, 퍼엉-!
줄어든 체력만큼의 공격을 가하는 집속 펀치가 전방을 가르자 몬스터 수십 마리가 일제히 없어진다.
띠링.
[10 웨이브 클리어.]
“하아, 후우…… 이제 끝난 건가?”
10 웨이브까지의 몬스터 할당량을 채웠다.
둘 다 마지막까지 버틴 셈이었다.
‘이제 다시 밖으로 나갈 수 있겠네.’
고대현이 스킬 페이지를 켜서 살펴본다.
‘다음은…….’
그는 밖으로 나가면 다른 스킬 퀘스트 장소로 이동할 예정이었다.
레기온 성주가 스킬을 몇 개 채워오라고 했으니. 마지막 전사 외에도 다른 스킬을 더 추가해야 했다.
‘영혼화랑 순간 무적도 좋아 보인다. 이번 흑요석 대검을 써보니까 생명력 흡수도 있어서 나쁘지 않아.’
그렇게 생각할 찰나.
띠링-.
[10 웨이브, 최단기간 돌파]
[소모 HP 최저 기록갱신]
[특수 조건 달성]
[2차 각성 퀘스트가 시작됩니다.]
새로운 문구가 나타났다.
“02차 각성?”
고대현이 의아하게 말하며 글귀를 읽으니.
“스킬에 추가 효과가 붙어서 나오는 거야……, 마지막 전사에 붙어서 나오는 경우는 지금까지 없었는데…….”
이하린이 혼잣말처럼 중얼거린다.
“추가 효과가 붙어서 나오는 거면, 상당히 좋은 거 아니야?”
가끔 스킬 하나에 패시브부터 해서 이중 사용까지.
꽤나 여러 가지가 붙어서 나올 때가 있다.
이왕 얻을 스킬을 그렇게 얻으면 이득이었다.
안 그래도 스킬 슬롯이 제한되어 있었으니까.
하지만 다음 순간.
[2차 각성 퀘스트 지역으로 이동합니다.]
[외부와 시간이 다르게 흐릅니다.]
[1분 -> 24시간으로 조정]
[타임 오버 클럭이 적용 완료]
‘타임 오버 클럭?’
시간이 다르게 흐른다는 메시지가 나타났다.
“24시간이 1분으로?”
외부의 1분이 여기에서는 24시간.
즉, 여기에서 엄청 오랫동안 머물다 나가도 밖은 몇 분밖에 지나지 않는다는 소리였다.
“저기 봐.”
그때였다.
이하린이 손으로 어딘가를 가리킨다.
‘저건……?’
그녀의 손이 멈춘 곳에 거대한 탑 하나가 있었다.
주변은 허허벌판이고, 건물이라고는 탑 하나와 옆에 있는 작은 집 밖에 없었다.
[퀘스트를 수락하시겠습니까?]
-거절 시 원래 있던 외부 좌표로 이동됩니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간단했다.
“저 탑을 클리어해야 하는 건가…….”
탑의 1층부터 최상층까지 클리어하는 던전인 듯했다.
아까의 웨이브 형식이 탑으로 변형되었다고 보면 될 것이다.
“난이도가 너무 높아…….”
이하린이 중얼거린다. 그녀는 막 전투를 끝낸 탓에 힘든 상태였다. 그런 상황에서 탑 하나를 클리어하라고 하자 진이 쭉 빠진 듯했다.
“집 안이 리스폰 지역인 것 같네.”
혼자 움직여서 집안을 확인해본 고대현이 중얼거린다.
저 탑에서 죽어도 이 집에서 리스폰 되는 것 같았다.
원천적으로 나가는 게 불가능했다.
나가려면 지금 거절 버튼을 누르는 것뿐.
“일단 해보자.”
그가 다시 이하린이 있는 곳으로 돌아와서 말한다.
당연하게도 퀘스트를 포기한다는 선택지는 없었다.
지금 아니면 언제 또 이 퀘스트를 깰 수 있을지 모르니까.
‘지금은 과부하 상태보단 자연적으로 지친 거니까 패밀리어 시스템으로만 일정량 부담하면 되겠네.’
탑의 난이도가 어디까지 올라갈지는 모르겠지만.
계속 버티다 보면 언젠간 되겠지.
고대현이 탑 옆에 있는 작은 집을 가리키면서 말했다.
“어차피 시간은 많으니까 저기서 천천히 쉬었다가 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