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46화
#146화
촤악.
물이 허공에 튀면서 햇빛을 산란시킨다.
1초에 한 번씩 해서 1시간에 3,600개.
하루에 3시간씩 10일 동안 정권 지르기를 해야 해금이 가능했다.
처음에는 어려워 보였지만, 이하린에게는 그다지 어려운 편이 아니었다.
‘그래도 조금 쉬었다가 해야지. 다른 사람도 있는데 계속 수련만 하고 있으면 좀 그러니까.’
이하린이 폭포수 아래에서 나온 뒤 전지수에게 다가간다.
전지수는 아까부터 같은 위치에서 가만히 앉아 있는 중이었다.
뭔가를 고민하고 있는 걸까.
이하린은 상대의 주의를 끌 겸 한마디를 던졌다.
“그러고 보니, 요즘은 어떻게 돼가고 있어?”
“뭐가?”
화들짝 놀란 전지수가 고개를 든다.
보아하니 다가오는 것을 인지하지 못한 듯했다.
‘감지력이 좋은 사람도 정신을 다른 곳에 두면 이렇구나.’
이하린이 옆자리에 앉으며 말했다.
“사냥조 활동 말이야.”
기간티아 성은 기사 대행까지 움직여서 사냥조 활동을 수행하고 있었다.
이하린은 아직 들어온 지 얼마 안 돼서 내부 진행 상황에 대해 아는 게 없었다.
하지만 상위라인과 걸쳐져 있는 전지수가 있으니 물어보면 해결될 일이었다.
“지금 낮은 위험 등급부터 잡고 있긴 해. 아직 고위급 다크 테이머는 찾지도 못한 수준이지만…….”
“헤에.”
전지수의 대답에, 이하린이 턱 끝을 만지며 생각한다.
개인 단위로는 정말 강하기에.
작정하고 숨거나 도망가면 성 단위의 병력이 추적해도 찾을 수 없는 게 상위 다크 테이머다.
특히 1급 다크 테이머는 한창 방어를 수행하고 있는 라인의 뒤쪽에서 게릴라 전을 하기에 상당히 까다로운 존재인데…….
“목표물 리스트 좀 볼 수 있어?”
기간티아 성이 목표로 하는 명단.
과연 어디까지 닿았을지 궁금한 이하린이 묻자, 전지수가 창을 띄워서 리스트를 보여준다.
띠링-.
[아군 공격 위험 등급 인물 1급]
-나무꾼
-도살자
-바위
.
.
(중략)
.
.
[중립 -> 목표물로 전환]
-산신
유명한 3명은 이미 알고 있는 사람이었다.
이하린은 마지막에 나타난 이름을 응시했다.
‘산신도 있네.’
산에 거주하면서 가까이 오는 사람은 다 처리하는 인물이 있다.
마지막 전사의 스킬 퀘스트를 수행하러 오는 사람은 다 처리하는 괴물이.
‘먼저 건드리지 않으면 크게 안 움직여서 그간 가만히 두는 분위기였는데, 이젠 아닌가 보네.’
대륙 정세에 지각 변동이 생기는 만큼.
기간티아 성은 그간 넘어갔던 사람들까지 다 견제하려는 모양이었다.
“왜 아군을 공격하는 걸까.”
그때, 푸념하듯이 말하는 전지수.
안 그래도 정규전이 코앞이라 스트레스인 탓에 그 이외의 것들은 신경 쓰기 싫은 그녀였다.
이하린은 곁눈질로 전지수의 그늘진 표정을 보다가 입을 열었다.
“글쎄, 아마 다시 활약하고 싶어서 그런 사람도 있을 테고. 아니면 그냥 재미로 하는 사람도 있을 것 같은데.”
“재미로?”
“그 뭐냐, 혼자서 다른 걸 한다는 쾌감 비슷한 게 아닐까?”
정확한 이유는 당사자에게 들어야 알겠지만.
뭐, 어차피 거기서 거기겠지.
그렇게 말한 이하린이 리스트를 닫는다.
“재미라……, 대현이랑 비슷하면서도 다르네.”
“……걔는 왜?”
느닷없이 나온 고대현이라는 이름에 의아한 표정을 짓는 이하린.
“대현이는 상대방을 화나게 하는 게 목적이라고 그랬거든.”
“그래?”
이하린은 과거를 상기했다.
입학시험 때도 그렇고.
왜인지 모르게 짜증 나게 하는 부분이 있었는데.
‘설마 일부러 그랬던 거였나?’
이하린이 고대현의 행동에 대해 고찰하는 한편.
“우리는 네가 스킬 퀘스트를 다 끝내면 움직일 예정이야.”
“오, 예상보다 투입이 빠르네. 목표물은 대충 몇 급 정도로 예상해?”
“아직 네가 약해서 상위 타깃까지는 무리고. 기껏해야 5급 정도만 가능할걸?”
“그럼 빨리 성장시켜야겠네.”
이하린이 주먹을 꽉 쥔다.
레이나프라에서만 있다가 이제 막 다른 지역에서 싸울 수 있게 된 덕분에 들뜬 그녀였다.
“그렇다고 너무 급하게 할 필요는 없어. 어차피 큰 기대는 안 받는 중이거든.”
다른 기사 대행자들은 전부 본대와 함께 사냥조 활동을 이어 나가는 중이었으나.
전지수는 이제 막 들어온 친구를 관리한다는 명목하에 따로 떨어져 있는 상황이었다.
게다가 이하린은 기간티아의 기사 중 최하위 등급인 플루토.
아직 성의 중심 병력과 함께 활동하기엔 부족했다.
“나는 언제쯤 메인 스트림으로 가려나.”
고개를 들며 혼잣말처럼 중얼거리는 이하린.
그녀가 기간티아 성에 들어온 것은 내부 조사를 하기 위함이었다.
‘엄마가 알아보라고 했으니까.’
레기온은 고대현이 있으니.
주시해야 할 곳은 야나 이바노프가 있는 기간티아였다.
다만 아직 위치가 위치인지라 조사는커녕 내부에서 말을 꺼내기도 어려운 상태였다.
“흠, 운 좋게 거물급 하나 잡으면 등급은 금방 오를걸? 아빠, 지금 실적 엄청 신경 쓰고 있으니까.”
“그럼 최대한 빨리 깰게.”
스킬 퀘스트에 대한 이야기였다.
이하린이 주먹을 쥐면서 말하자, 전지수가 내심 놀란다.
‘이제 막 들어왔는데 열심히 하네.’
보통 적응하느라 초반에는 하는 게 거의 없는데.
빨리 기간티아 성의 중심에서 활동하고 싶은 걸까.
‘하위권이라 걱정했는데, 열심히 하는 타입이었구나.’
“그렇다고 너무 무리하지는 말고. 이번 시즌엔 누가 봐도 분위기가 안 좋아서, 꼭꼭 숨어있는 탓에 아예 못 찾을 확률도 높으니까.”
“하긴, 작정하고 숨으면 찾기 힘들긴 해.”
이미 숨어있기의 달인인 자신의 어머니를 떠올린 이하린이 고개를 끄덕인다.
그러던 중.
‘아 참.’
“그런데 산신은 어떻게 잡는데?”
“아, 그쪽은 나도 잘 모르겠네…….”
산신은 기간티아만이 목표 명단에 올려둔 존재였다.
특히 산신은 알려진 바에 의하면 어지간한 성주급 이상이라고 하던데.
이런 사람을 어떻게 찾을지 궁금해진 가운데.
전지수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
“흠, 산신은 그냥 명목상 올려놓은 느낌도 있어. 우리는 이렇게 강하게 나간다. 라는 느낌으로.”
“아하.”
“일단, 아직 위험 등급 1급인 사람을 아무도 못 찾아서. 그것부터 해결해야 될 거야.”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일반인은 발도 못 들이는 곳에 있다는데, 과연 어디에 있을지…….
말을 마친 전지수가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본다.
어느새 꼭두서니 빛 석양이 주변을 감싸고 있었다.
* * *
“당신도 결국 여기로 도망쳤네.”
“어쩔 수 없지. 감시가 예전보다 강해졌으니까.”
“그래도 다행이네. 여기까지는 못 찾을걸?”
얼음 기둥의 아래에서 사람들이 대화를 나눈다.
‘길드 모임?’
왜 길드 모임이 여기에…….
얼음 아래에 있는 사람을 본 첫 감상은 그것이었다.
외형도 마법사, 탱커, 전사, 검사여서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저 사람은?’
하지만 고대현은 금세 정신을 차리고 상대와의 거리를 유지했다.
과거의 기억으로 인해 상대가 적인 것을 인식했기 때문이었다.
‘저 여자는 발광탄 퀘스트 때 나랑 싸웠던 사람이잖아?’
초반에 태해란과 함께 발광충을 잡을 때 마주쳤던 여자였다.
“그런데……, 저자는 누구지? 더 올 사람이 있었나?”
“저런 대검을 쓰는 사람은 들어본 적이 없는데…….”
그때, 고대현의 존재를 알아차린 이들이 하나씩 고개를 돌린다.
보라색 여자를 제외하고는, 전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어? 쟤는 설마.”
“응? 아는 사람인 건가?”
“네가 부른 거냐? 바이올렛.”
덩치가 큰 사람이 보라색 옷을 입은 여자에게 말한다.
바이올렛이라 불린 여자는 격하게 고개를 저으며 남자의 말을 부정했다.
“아, 아뇨. 제가 설마 허락도 없이 그럴 리가.”
“뭐야. 그러면, 지금 적이 침투한 거라는 거야?”
“그게…….”
‘대화 내용을 보니까 전부 다크 테이머 같은데.’
몸을 좌우로 컨트롤하면서 적들을 살피는 고대현.
다들 언젠가 봤던 게임 광고 속 이미지처럼 화려해 보이는 장비를 끼고 있었다.
‘여기에서 자력으로 나가는 건 불가능하겠고……, 결국 싸워야 하겠네.’
자세한 사정을 모르겠지만.
얼핏 들리는 대화를 통해 이곳이 다크 테이머들의 피난처라는 사실을 깨달은 고대현이었다.
‘스킬 한번 잘못 썼다가 이상한 곳으로 올 줄이야.’
다들 다크 테이머를 찾고 있으니, 이렇게 마주한 것은 엄청난 이득이었다.
하지만.
소곤소곤.
“검 실력을 보니까 산신의 아들인 것 같다고? 그걸 왜 이제야 말해! 아이고 이쪽으로 오시죠”
“??”
바이올렛의 추측을 들은 적들은 대현의 예상과 달리 깍듯한 태도로 그를 맞이했다.
‘그러고 보니, 저 여자 예전에 나한테 죽으면서 산신 어쩌고 했었는데.’
그때의 기억이 뇌리를 스치기 무섭게 다크 테이머들이 고대현을 내부로 안내한다.
대현은 어떻게 할지 고민하다가 그냥 상황이 바뀔 때까지 연기를 해야겠다고 다짐했다.
‘당황스럽지만, 오히려 좋아.’
이참에 정보를 모으면 되는 일이었기에.
대현은 차분하게 키보드를 눌렀다.
‘적들 사이에서 코스프레를 하면서 이중 스파이 짓을 하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
어쨌든 간에 적의 본거지다.
전부 잡으면 레기온의 실적이 압도적일 테니 무조건 작전통제권을 가지게 되겠지.
고대현은 상상을 이어 나가면서 앞으로 이동했다.
그때였다.
“응? 누가 내 아들이라고?”
웬 허름한 망토에 검 한 자루를 들고 있는 남자가 고대현을 신기하게 바라보며 고개를 갸웃거린 것은.
“아, 오셨습니까?”
이에, 앞에서 고대현을 안내하던 이가 고개를 숙인다.
“흠, 난데없이 아들이라는 소리가 들려서 나와봤는데……, 저놈은 뭔가?”
“네……, 예?”
수십 명의 사람이 동시에 멈추며 정적이 흐른다.
‘벌써 들통나다니.’
기대와 달리 정체가 금세 탄로 났다.
대현은 곧장 무기를 전환했다.
그러자 화면 속의 자신이 거대한 대검을 꺼내며 자세를 잡는다.
“후우, 저놈을 없애고 다른 곳으로 은신처를 옮기던가 해야겠군.”
“어차피 한 명이야! 빨리 처리해!”
“넵.”
고위급으로 보이는 다크 테이머가 귀찮은 듯이 한숨을 쉬며 손짓하자, 부하들로 보이는 이들이 장비를 준비한다.
“저 녀석, 보기와는 다르게 강합니다. 아마 저 정도 병력으로는…….”
“응? 겨우 한 명인데?”
바이올렛이라 불린 여자는 유일하게 고대현과 싸운 경험이 있었다.
그녀가 급하게 고대현과 싸웠던 일을 말하자 고위급 다크 테이머들의 얼굴이 굳어진다.
“흠, 그렇단 말이지…….”
“결국 우리가 나서야 한다는 건가.”
‘빨리 오기나 해라.’
감마 스트라이크를 쓸 준비를 하면서.
고대현은 적에게 시선을 떼지 않았다.
그렇게 고위급 한 명이 싸우기 위해 나올 순간.
“흠, 폼이 아주 기계 같은 녀석이군. 내가 직접 싸워보고 싶다.”
수염을 쓸면서.
눈매를 좁힌 남자가 가까이 다가온다.
“산신님께서 움직일 필요는 없습니다. 제가 처리하도록 하죠.”
“아니. 내가 직접 확인해보고 싶어서 그래.”
검 손잡이에 쥔 그는 고개를 돌려 바이올렛에게 질문했다.
“감마 스트라이크를 연속으로. 그것도 완벽에 가깝게 사용했다고 그랬었나?”
“네, 넵! 그렇습니다.”
“흠, 과연 대검으로 어떻게 했을지 궁금하군.”
지금까지 감마 스트라이크에 관심을 보이는 이는 많았다.
오히려 평범할 정도다.
때문에, 고대현은 상대에게 큰 경계심을 느끼지 않았다.
‘지금까지 했던 것처럼 한번 긁고. 저 사람이 죽었을 때 곧바로 날아오는 스턴기를 조심해야 하는데…….’
그저 상대를 빨리 죽인 뒤.
감마 스트라이크가 끝났을 때 검날 흘려내기를 쓸 생각뿐.
그렇기에 다음 순간.
고대현은 아무런 저항도 하지 못했다.
산신이라 불린 자가 검 손잡이에 손을 대자마자.
스핏!
쓰걱!
몸에 베인 상처가 생기면서 체력이 줄어든다.
반응할 틈도.
막을 틈도 없는 속도였다.
‘발도술인가?’
스윽.
상대가 다시 손잡이를 잡는다.
이번에는 고대현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곧바로 감마 스트라이크를 대응해서 사용한 것이다.
후욱!
그의 몸이 일순 사라지면서 일대에 거대한 칼날 폭풍을 만든다.
“대검으로 저 짓을 한다고?”
“미쳤군.”
지켜보고 있던 모두가 놀라는 가운데.
“이 사람은 좀 다르네.”
고대현도 적의 스킬을 보면서 혼잣말을 내뱉고 있었다.
그의 시선이 멈춘 곳.
“꽤 하는구나.”
영혼화를 통해 지정 불가 상태가 된 남자가 칼날 폭풍 속을 노려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