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37화
#137화
온페리스는 사람이 길들인 개체 중 제일 거대한 크기를 자랑한다.
해서, 온페리스가 어느 정도 섬에 가까워졌을 때.
전투를 관전하던 학생들마저도 위를 올려다볼 수밖에 없었다.
“어? 저건?”
“레기온 성주까지 왔네?”
라그나로크 일정을 앞두고.
한국 대륙의 성, 랭킹 1위와 2위 성주가 훈련대륙에 모였다.
원래라면 일어날 수 없는 일이었기에 모두의 시선이 집중된 가운데.
챙-!
신영범과 기간티아 성주의 전투가 막바지에 도달했다.
칼을 떨어트린 신영범의 앞에, 기간티아 성주가 총구를 들이민다. 이제 방아쇠를 당겨서 상대를 쓰러트리기만 하면 끝. 상대에 대한 통제권을 가지는 것이 가능해진다.
하지만 그렇게 되기 전.
펄럭-!
온페리스에 탄 레기온 성주가 땅을 밟았다.
흰색 날개를 접은 온페리스가 몸을 웅크리고 대기 자세로 전환할 때쯤.
기간티아 성주도 고개를 돌려서 레기온 성주를 응시했다.
“생각보다 빨리 왔군.”
“대놓고 일을 벌이다니……, 제정신인가?”
분위기가 험악했지만.
레기온 성주가 당장 둘 사이에 끼어들어서 싸우는 일은 없었다.
두 사람이 있는 고유 스테이지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게 불가능함과 더불어.
승자나 패자가 나오기 전까지는 지정된 대상만이 대미지를 입힐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둘의 말싸움이 시작될 무렵.
‘흠.’
고대현은 화면을 확대해서 둘의 대화를 엿듣고 있었다.
‘대부분 임상배에게 들었던 내용이네.’
레기온 성주는 다른 성의 내부에 적이 숨어있다고 생각하고 있으며. 기본적으로 다른 성을 신뢰하지 않는다.
이는 기간티아도 마찬가지였다.
기간티아 성은 레기온 성의 과거의 일을 거론하면서 레기온 성을 신뢰하지 못하고 있었다.
‘잘은 모르겠지만…….’
다수의 시민 사이에 숨은 마피아를 찾아내서 없애야 하는 마피아 게임 장르와 현 상황이 비슷하단 생각이 대현의 뇌리를 스쳐 지나갔다.
아군 사이에 숨은 적을 색출하는 것이나.
그 과정 중 오인 사격, 또는 다툼이 발생하는 게 비슷하달까.
이어서.
‘처음에는 왜 시스템적인 강제 요소가 없나 싶었는데…….’
직관적인 벤 시스템이 왜 없을까에 대한 의문이 어느 정도 해소되었다. 처음에는 대륙 단위로 사람을 통제하기 힘들기 때문이라 여겼으나.
‘이런 것도 하나의 과정이었던 건가?’
내부 색출 과정 또한 라그나로크의 연장선이었다.
대현은 마우스를 움직여 기간티아 성주와 레기온 성주가 있는 곳을 응시했다.
과연 어떻게 결론이 내려질지.
긴장이 감돌고 있는 가운데.
기간티아 성주가 신영범을 처리하는 것을 완전히 중단하고.
이를 본 레기온 성주가 입을 열었다.
“야나 이바노프의 리스폰 지점을 기간티아 지하 감옥으로 양도하는 것으로 하지.”
“그래, 잘 선택했다.”
띠링-.
성주급 유저간의 거래가 시작되었다.
라그나로크에서 북부를 담당하는 신영범을 온존하고, 야나 이바노프의 관리 권한이 양도된다. 이대로 활동을 정지당하기에는 신영범의 전투력이 강했고.
학년 담임을 맡은 이가 지하 감옥에 들어가면.
사람들 사이의 여론이 더 나빠질 확률이 높기 때문이었다.
그 뒤로 얼마나 지났을까.
“그럼 나중에 보도록 하자고.”
거래를 마친 기간티아 성주가 포탈을 열고, 무기를 회수한 뒤.
친 기간티아 성향인 성주들과 함께 모습을 감춘다.
허공에 생긴 원이 그들을 모두 삼키고 나서야 상황이 종결되었다.
“나보다 약한 주제에 기고만장해져서…….”
레기온 성주가 하늘을 보면서 입술을 짓 이기고 있으니.
“죄, 죄송합니다.”
별안간 신영범 학년 담임이 레기온 성주에게 고개를 숙인다.
작금의 일은, 그가 현 수업을 기획했기에 일어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괜찮아.”
그러나.
거대한 일이 한꺼번에 일어나서 역으로 초연해진 건지.
아니면, 진짜로 큰일이 아닌 건지.
침착한 표정을 지은 레기온 성주가 손을 휘휘 저으며, 별거 아니라는 듯 고개를 돌린다.
그녀의 눈이 얼마 지나지 않아 고대현에게서 멈추고.
발걸음을 옮긴다.
‘설마 나한테?’
대현은 자신에게 다가오는 레기온 성주를 보며 위와 같이 생각했다.
다만, 아직 확실하진 않기에 그냥 가만히 서 있었다.
“여, 옆으로 비켜드려야겠지?”
“당연한 걸 물어보고 있네. 멀뚱멀뚱 서 있지 말고 뒤로 나와 있어.”
일련의 사건은 그렇다 치고.
거대 성의 성주임에는 변함이 없었기에.
레기온 성주가 다가옴에 따라 학생들이 절반으로 쫙 갈라진다.
“뭐지? 왜 여기로…….”
이에, 임상배도 주춤하면서 옆으로 물러난다.
그는 어째서 레기온 성주가 학생들 사이로 오는지 알 수 없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마침내.
레기온 성주가 고대현의 앞에서 멈추고.
“그거는 깨어났니?”
그녀가 고대현에게 말을 건넨다.
기껏해야 정태룡에게 가나 싶었던 학생들이 저마다 수군거리는 한편.
‘그거라니……, 그게 뭐지?’
고대현은 성주의 말을 곱씹으며 기억을 더듬었다.
그러자 기다리다 못한 레기온 성주가 작은 목소리로.
“알.”
단 한 글자를 입에 담았다.
* * *
오늘 생긴 일은 덮어두기 힘들었다.
수많은 학생의 눈에 띄어서라기보단.
기간티아가 본격적으로 레기온을 견제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2위 성이라고 해도 규모가 상당하기에.
레기온은 기존과 같은 포지션을 유지하기 힘들어졌다.
제일 큰 변화가 나타난 곳은 커뮤니티의 여론이었다.
학생까지 더해서 보는 눈이 많았던지라 이야기가 새어나갈 수밖에 없었다.
-레기온 성이 한국 대륙 배신했다는 게 사실임?
-내부 고위직에 다크 테이머 있다는데 지켜봐야 알 듯.
‘레기온을 불신하는 글이 많이 올라오는군.’
홀로그램 창을 보고 있던 레기온 성주가 혀를 찬다.
누구나 이런 커뮤니티 시스템을 쓰기에 파장이 더욱 컸다.
‘신영범에게 권한을 줬던 게 문제였나.’
레기온 성주는 과거, 신영범에게 야나 이바노프의 통제권을 줬던 때를 떠올렸다. 야나 이바노프를 활용한 훈련대륙 수업은, 당시 신영범이 중요성을 강조했기에 허락된 수업이었고.
당시에는 레기온 성주도 어느 정도 반대를 했었다.
하지만 북부에서의 실책이 지적되는 와중에 신영범의 말을 무시할 수만은 없었다. 그래서 결국엔 허락한 일이었다.
‘나도 약간의 반발을 예상하긴 했는데…….’
물론, 지금처럼 성까지 싹 다 묶여서 공격을 당할 줄은 몰랐다.
기껏해야 몇몇 학생을 강하게 가르친다는 목적을 가지고 시행했을 뿐이니까.
‘룰 브레이커를 막으려면 단순하게 왜곡하는 거론 부족할 텐데.’
레기온 성주는 이어서 기간티아 성의 방어체계가 나타나 있는 단면도를 살폈다. 기간티아에서 야나 이바노프를 어떤 식으로 관리할지는 잘 모르겠다만.
‘일단 신뢰가 안 간다.’
레기온 성주는 기간티아 성주를 신뢰하지 않았다.
이유는 간단했다.
‘나보다 약하니까.’
기간티아 성주의 스킬은 강력하고 변칙적이며.
원거리 포격과 적의 근거리 접근을 대비한 서브 스킬의 분배도 깔끔한 편으로, 대부분의 사람이 볼 때는 강해 보이겠지.
그러나.
‘그래봤자 나한테는 안되지.’
화력으로 보나 전투력으로 보나.
기간티아 성주는 레기온 성주보다 아래에 위치한 사람이었다.
자신보다 강하면 몰라.
약한 이의 말은 절대로 안 듣는 레기온 성주였다.
그녀가 고대현을 특별 취급하는 것도 위와 비슷한 맥락이었다.
고대현이 가지고 있는 알의 성체는.
어찌 보면 온페리스보다도 더 까다로운 등급의 몬스터였으니 말이다.
‘걔는 시간이 지나면 나보다 더 강해질 확률이 높다.’
때문에, 고대현을 잡아두고자 하는 그녀의 마음이 더욱 강해졌다.
아직 기간티아 성주는 알의 존재를 모르니까.
잘 키우면 지금처럼 대드는 성주들도 한 번에 정리가 가능하겠지.
“흠, 일단 대륙작전통제권부터 살펴볼까…….”
현재 해결해야 할 제일 급한 불이 대륙작전통제권인지라.
레기온 성주는 대륙작전통제권에 대한 것을 살폈다.
‘이런 걸 조건으로 제시할 줄이야.’
북부를 담당할 주요 병력인 신영범을 되돌려 받는 것.
그리고 서로를 대상으로 한 사냥조 활동을 멈추는 조건으로.
기간티아 성주는 작통권을 포기할 것을 요구했다.
본디 한국 대륙의 전체적인 라그나로크 준비과정을 레기온 성이 총괄했으나.
‘친 기간티아 성만 따로 빠진다 이거지?’
10대 성 중에서 기간티아와 가까운 소속의 성이 전부 연맹에서 나가기를 선포했다.
아직 공식적인 발표는 나오지 않았지만, 사실상 연맹 해체나 다름없었다.
“기간티아 쪽이 준비를 잘하려나…….”
그녀가 중얼거리고 있으니.
얼마 지나지 않아 수호기사들이 집무실 내부로 들어온다.
“어떻게 됐어?”
“그게…….”
오늘의 사건이 있은 직후.
레기온 성도 다크 테이머 포획에 박차를 가하고 있었다.
하지만 기간티아와 실적 차이가 꽤 벌어져 있는 상황이었다.
레기온이 기간티아 보다 포획 수가 낮으면, 아무래도 인식 상 불리해지기 마련.
이에 레기온 성주가 인상을 찌푸리자, 수호기사 중 한 명이 고대현에 대한 것을 입에 담았다.
“확인해보니 깨어난 지 꽤 됐고. 지금 적응 중이라고 합니다.”
“그래?”
알에 대한 이야기였다.
레기온 성주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당장은 헤츨링 상태겠네.’
그녀는 자리에서 일어나면서 말을 이었다.
“안내해봐. 직접 보게.”
그런 거대 몹의 헤츨링은 그녀도 본 적이 없기에, 직접 보기 위해 발걸음을 옮겼다. 수호기사가 안내한 곳은 몬스터를 길들이기 위해 마련된 외곽지대였다.
그곳에 도착하자, 묶여있는 상태로 길들여지고 있는 와일드 개체들이 그녀의 눈에 들어온다.
여기까지는 일상적인 풍경이었기에, 레기온 성주는 별다른 반응이 없이 시선을 돌렸다.
“저건?”
그러던 중.
그녀의 시선에 조그마한 생명체가 포착되었다.
땅에 서리가 내린 것으로 보아 얼어붙은 대지용의 새끼임이 분명했다.
삐이이이익—.
그들이 가까이 다가가자 고대현의 어깨에 있던 헤츨링이 전 방향으로 음파 공격을 날린다. 아직 강한 수준이 아니었기에. 레기온 성주는 그럭저럭 참으며 고대현의 앞에 섰다.
“아, 오셨어요?”
“응, 그런데……, 애가 꽤 시끄럽구나.”
음파 공격은, 당장에는 괜찮지만 대미지가 계속 누적된다.
직접적인 체력이 다는 것은 아니지만, 집중력 저하로 인해 전체적인 싱크로율 저하가 일어날 확률이 높았다.
‘그런데…….’
그런 의미에서, 레기온 성주의 눈에 보이는 고대현의 집중력은 어마어마한 것이었다.
“이어플러그도 없으면서 잘 버티네?”
“…….”
대답 없는 분위기가 지속된다.
“저, 저기?”
“아, 못 들었습니다.”
소리가 안 들렸는지 뒤늦게야 대답하는 고대현.
‘너무 오래 들어서 감각이 이상해진 건가?’
레기온 성주는 안쓰러운 표정을 지으면서 입을 열었다.
“언제부터 헤츨링이랑 같이 있던 거야?”
“꽤 됐어요. 저녁때부터 있었으니까 5시간 정도 됐네요.”
“5시간?”
5시간 동안 버텼다는 말에 레기온 성주가 손으로 이마를 짚었다.
“정상적으로 깨어난 건 봤으니까 이제 그만 들어가서 쉬어.”
“벌써요?”
“응.”
이대로 계속 무리하면 앞으로 컨트롤할 때도 문제가 있다고 판단한 그녀였다.
“아, 네. 그럼…….”
그 말을 끝으로.
대현은 접속을 종료했다.
* * *
‘볼륨을 줄여서 중간에 대답이 늦었네.’
혹여나 실수한 게 아닌지 걱정하는 사이.
대행 계정으로의 접속이 종료되고.
게임 선택 이전의 대기 모드 창이 모니터에 떠오른다.
‘흠, 오랜만에 퀘스트나 살펴볼까?’
대현은 오랜만에 퀘스트 항목을 살펴보기로 했다.
다음 순간.
띠링-.
[신규 적응형 퀘스트]
-헤츨링을 성체까지 육성하자.
오늘 깨어난 얼어붙은 대지용 헤츨링.
그 녀석을 성체까지 키우는 퀘스트가 눈앞에 나타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