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30화
#130화
“어디 안 가니까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그럼 다행이고.”
현재 한국 대륙에서 최상급의 대우를 받을 수 있는 곳이 레기온 성이다.
따라서, 굳이 다른 곳으로 갈 필요는 없었다.
“그런데 레기온 성 수호 기사는 괜찮은 건가요?”
“응, 일단은.”
일단은, 이라…….
아직 확실한 건 아닌 모양이었다.
그때 레기온 성주가 입을 열었다.
“어차피 승계식 자체는 몇 년 뒤니까. 지금 당장 조바심 낼 필요는 없어.”
승계식 자체는 졸업하고 나서 있을 정도로 먼 일정이었다.
성주 말대로 지금 당장 조바심을 낼 필요는 없어 보였다.
무엇보다 대지룡의 알도 손에 있으니까.
‘그동안 잘 키우면 되겠네.’
“부화하면 알려 드릴게요.”
고대현이 그리 답하자, 레기온 성주가 입꼬리를 올리면서 말을 잇는다.
“아참, 그건 그렇고. 지금 서브 스킬 숙련도는 어떻게 되니?”
“감마 스트라이크가 40이고, 검날 흘려내기가 30, 발광탄이 10입니다.”
“마지막 전사 퀘스트는 아직 안 했구나.”
“네.”
마지막 전사 퀘스트는 어쩌다 보니까 못했다.
스킬이 없어도 싸우는 데에 지장이 없어서 그런 듯했다.
‘이렇게 생각하니까 스킬을 잘못 선택한 느낌도 드는데…….’
킬이나 어시스트를 딸 때마다 이속이 증가하고.
군중 제어기의 영향을 덜 받는 건 좋지만.
어지간한 단체전이 아니면 닿기도 전에 감마 스트라이크를 쓸 테니, 필요성이 떨어지긴 했다.
“꼭 북부전에 맞춰서 준비할 필요는 없지만. 그래도 개장 정도는 해놓는 게 좋아.”
그렇게 말한 성주가 계약서처럼 생긴 창을 꺼낸다.
띠링─.
다음 순간.
[(성)급 조직 내부에서의 인지도 상승.]
[S급 기사 대행 승인.]
[서브 스킬 슬롯이 2개 추가되었습니다.]
지위가 올랐다는 문구와 함께 스킬 슬롯이 2개 늘어났다.
“이, 이건?”
“미성년 기사 대행이 가질 수 있는 최대 스킬 수야. 앞으로 잘해 보라고.”
“감사합니다…….”
대현은 자신의 스킬 슬롯을 멍하니 응시했다.
띠링─.
[서브 스킬을 선택하세요.]
서브 스킬 선택창에 다양한 서브 스킬들이 주르륵 나타난다.
아직 메인 스킬은 공백이고, 서브 스킬도 방금 추가된 슬롯 덕에 2칸이 공백이었다.
“시간은 많으니까 고민하면서 생각해 보렴.”
성주가 시간을 확인하고 말을 잇는다.
“주말인데 내가 너무 오래 붙들고 있었구나, 이제 가 봐도 좋아.”
“아, 네…….”
성주와의 대화는 이것으로 끝.
얼떨결에 추가된 스킬 슬롯을 보던 대현은, 얼마 지나지 않아 성 밖으로 나올 수 있었다.
‘오늘은 여기까지 하고……, 이제 종료해야겠다.’
그렇게 슬슬 접속 종료를 하려고 하는데.
‘누나는 갔으려나?’
돌연 까먹고 있던 게 생각났다.
고대현은 다시 광장으로 돌아갔다.
하지만 이미 광장에 자신이 찾는 인물은 없었다.
‘하긴, 뻘쭘하게 계속 기다리고 있기는 애매하니까.’
대현은 광장에서 없어진 서희를 확인하고는 접속을 종료했다.
헤드셋을 벗고 고개를 들자, 옆에서 쭈구려 앉아 있는 서희가 고대현의 눈에 들어온다.
“저, 저기…….”
“왜요.”
“기사 대행은 원래 기초적인 일만 하는 거 아니야? 어떻게…….”
기사 대행은 내부적인 일에 크게 관여하지 못한다.
기껏해야 참관 또는 ‘견학’이라는 인식이 강했으니까.
서희가 알고 있는 기사 대행이란 그런 것이었다.
“그냥, 여러모로 실적을 세우다 보니까 이렇게 됐어요.”
그가 무심하게 말하자 정적이 흐른다.
그녀도 과거의 사냥에서 고대현이 어떻게 싸우는지 봤기에.
그저 가만히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때, 고대현이 자리에서 일어나면서 말했다.
“보니까 아주 못하진 않던데, 열심히 해보세요.”
여러 가지 무기와 스킬을 번갈아 가면서 쓰는 모습이 꽤 능숙해 보였다.
아직 나이가 어리니까 이대로 정진하면 좋은 성과를 거둘 것으로 보였다.
“하지만, 나 스킬이 구려서 한계가 명확해…….”
“그래요?”
대현은 그녀에게 스킬 내용을 물어봤다.
그러자 서희가 자신의 스마트 워치로 계정 스테이터스 정보를 보여준다.
“네가 직접 봐.”
그를 통해 서희가 보유한 모든 스킬 내용을 알 수 있었다.
메인 스킬을 포함한 총 보유 스킬이 3개.
그러니까 메인 1, 서브2 정도의 스킬을 가지고 있었다.
‘이 누나, 본 대륙에서 활동한 지 좀 되지 않았나?’
예상외로 스킬 수가 적었다.
이에 고대현이 의문을 가지자 서희가 한숨을 쉰다.
“원래 그게 일반적인 거야. 넌 레기온성 기사 대행이라서 비교적 많이 받은 거고…….”
“엄청 적네요.”
메인 스킬을 얻기 전까지는 2개로 스타트라는 건데.
이 2개를 통해서 ‘지위’를 얻기까지의 난이도가 매우 높아 보였다.
‘그래서 다들 초반에 좋은 서브 스킬을 얻으려고 하는 거구나.’
메인 스킬로 역전이 가능하다고는 하지만.
이대로라면 그냥 학교에서 열심히 한 다음, 졸업할 때 스킬을 잘 받는 게 유리해 보였다.
“휴, 그런데 좋은 줄 알았던 메인 스킬까지 구려서 더 문제야. 이럴 줄 알았으면 그냥 드랍하고 새로 찾는 거였는데…….”
“흐음.”
나름 진지한 고민이었다.
고대현도 그간 혜택을 많이 받은지라.
이런 부분에서는 인지를 못하고 있다가 이번 기회에 확실하게 알게된 상태였다.
‘확실히 차이가 많이 나긴 하네.’
대현은 턱 끝을 만지면서 서희의 스킬 조합을 응시했다.
스킬 사이에 평타를 쓸 때마다 강화되는 메인 스킬.
지금 당장은 구리긴 해도 성장할수록 그림이 나올 것 같았다.
‘무기는 총이랑 칼……. 흠, 스킬을 보니까 LOH의 사미러처럼 컨트롤 하면 될 것 같은데 말이지.’
고대현이 위와 같은 생각을 담아서 말하자, 서희가 한숨을 푹 쉰다.
“그렇게 해도 실전에서는 불리해……, 결국 성이나 고위급 길드에서 원하는 인재는 아니야.”
문제는 그렇게 해 봤자 한국식 라그나로크에는 불리하다는 것이었다.
거기에 더해서, 신경 지구력 한계 문제도 존재했다.
그녀는 사미러처럼 날뛸 만큼 지구력이 좋지 못했으니까.
‘엄청 애매하구나.’
이런 상태면 계속 열심히 하라고 하기도 애매한 상황이며, 차라리 라그나로크 메타가 바뀌는 게 더 빠를 지경이었다. 그나마 나은 건 서포터로 전향하거나. 싱크로율 분배기를 통해 패밀리어 계약을 쓰는 건데…….
‘그걸 쓸 수는 없지.’
패밀리어 계약을 통해 도와줄 생각은 없었다.
‘내가 굳이 나설 필요는 없으니까.’
만약 도와준다면?
‘퀘스트랑 슬롯, 뉴럴 퓨즈 카트리지까지 손해다.’
대현은 서희 누나랑 사이가 그리 좋은 편도 아니었기에, 더 이상 말을 꺼내지 않았다. 자리에서 일어난 대현은 다시 친척과 가족들이 모여있는 방으로 갔다.
“대현이 왔니?”
“이제 다 끝났어?”
그러자 다들 내부에서 있었던 일을 물어본다.
성의 일정 반경은 관전 불가능 모드니까 궁금할 법도 하겠지.
대현은 간략하게 설명을 이어 나갔다. 물론, 성 내부에서 있었던 회의와 알에 대해서는 일절 꺼내지 않았다. 그저 간단하게 둘러보고 온 정도로 설명했다.
그때였다.
“그러고 보니, 대현이 스킬이 전부 근접 검이던데……, 잘 다룰 줄은 알고?”
할아버지가 질문하신다.
대현은 못한다고 답할 것도 없기에 자신 있게 고개를 끄덕였다.
“네.”
“흠.”
대현의 할아버지는 뭔가를 고민하듯 수염을 만지더니, 이내 입을 열었다.
“할아버지 친구 중에 잘하는 사람 있는데. 그 사람한테 언제 함 배워보는 게 어뗘?”
“친구요?”
일전의 대화를 들어보니 한때 검사셨던 것 같은데…….
‘내가 누구한테 가서 배울 급은 아니지. 그리고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거기에 더해서 당장 급한 것도 아니었으니.
대현은 정중하게 거절했다.
어차피 그냥 해 보신 말 같았으니까.
* * *
주말 간의 만남이 끝난 후.
시간은 빠르게 지나서 어느덧 평일이 되었다.
대현은 교내 기숙사에서 자신이 소유한 아이템을 점검했다.
스마트 워치에 있는 앱에 접속하자 보유한 아이템이 나타난다.
띠링-.
[부화까지 남은 시간 : 26시간 55분 55초]
부화까지 남은 시간은 얼추 하루 정도.
즉, 내일 중으로 새끼를 볼 수 있다는 소리였다.
‘태해란이나 경리단 선배한테는 말 못하겠네.’
성의 내부 인원 말고는 알리지 말라고 했으니 말할 곳이 없었다.
‘사실상 비밀 병기나 다름없으니까.’
고대현은 기숙사를 나선 뒤, 평소처럼 펫 테라피실에 들러서 경리단과 함께 시간을 보냈다.
이왕 시간이 나는 김에, 그는 경리단에게 특별 케어에 대한 내용을 질문했다.
“특별 케어? 그거 각 학년에서 선출된 사람들끼리 모아서 진행해.”
그러자 각 학년에서 선출된 사람들끼리 모여서 게임을 한다는 대답이 들려왔다.
“내가 있는 학년에서는 1명, 2학년도 1명이니까, 너까지 3명이서 하겠네.”
“3명이면 팀원이 모자라지 않나요?”
“괜찮아. 어차피 선생님들이 상대해 줄 거니까.”
“선생님이요?”
실력을 빠르게 올리기 위해 강한 자들과 붙인다.
이론보다는 직접 당하는 게 깨우치는 속도가 빠르다는 이유에서였다.
‘그럼 신영범 선생님이나 클로이 연 선생님이랑 붙는다는 소린가…….’
특별 케어.
말 그대로 ‘특별’하게 다뤄주는 거니까 그 정도는 해줄지도 모른다.
실제로 상위권 반은 선생님 팀이랑 붙은 적도 있다고 하니까…….
그런 생각을 하면서 시간을 보내고 있으니.
어느새 수업 시간이 가까워졌다.
이번 주는 저번 주와는 달리 사격 수업이 이루어졌다.
전부 그라운드 제로에서 이루어지는 수업답게 기본적인 신경 부하 강도가 높았다.
“대현이는 자세가 참 안정적이고 좋네.”
“감사합니다.”
기본적인 장전 자세가 모범적이라고 칭찬을 받는 한편.
‘이하린은 저번이랑 크게 다른 게 없네.’
대현은 이하린의 몸 상태를 훑었다.
디텍트 아이를 통해 본 결과 몸에 이상은 없었다.
‘만약 저번처럼 되면……, 내가 또 그 짓을 해야하는 건가.’
다만 보고 있으니 저번에 했던 일이 떠올랐기에, 대현은 잠시 멍해졌다.
‘그래도 패밀리어 계약으로 내가 부담하니까…… 괜찮겠지?’
신경 지구력을 부담하는 것으로 계약했다.
처음에는 단순히 빙의체에 부담이 가는 것으로 이해했고.
그렇기에 아무런 손해가 없을 거라 여겼다.
하지만 뉴럴 퓨즈 카트리지의 소모가 확 빨라진 것으로 봐선.
패밀리어가 한계를 넘어서 기술을 쓸수록 가중 부담 처리가 되는 듯했다.
‘패밀리어랑 할 때는 헤드셋 말고 캡슐방에 가서 해야되겠다.’
지금이야 카트리지의 소모가 빠른 수준이지만
나중이 되면 헤드셋으로는 못할 정도로 소모가 이루어질지도 모르는 노릇이지…….
“자, 오늘 수업은 여기까지! 다들 힘들었지? 이제 종료하고 잠깐 쉬도록 하렴.”
고대현이 속으로 나름의 계산을 하고 있자니, 어느새 수업이 끝나 있었다.
치이익-.
반 내부에 있는 가상 현실 캡슐이 소리를 내면서 열린다.
“으응, 주말에 쉬어서 그런가? 오랜만에 하니까 좀 힘드네.”
이번 수업은 사막 맵에서 진행한지라, 40반마저도 피로도가 좀 쌓인 편이었고.
이하린을 제외한 나머지는 휴식에 들어갔다.
“잠깐 나와봐.”
막간을 이용해서.
고대현은 이하린을 불러냈다.
“기간티아 성에서 기사 대행으로 활동한다면서? 언제부터 시작해?”
“으음, 아마도 이번 주부터.”
“그럼 너도 잘하면 라그나로크 참여하겠네.”
이하린은 라그나로크라는 말을 듣고 어깨를 으쓱였다.
“글쎄다. 그쪽에서 나를 참가시켜 줄지가 미지수긴 한데…….”
고대현처럼 침략전부터 탄탄하게 다지고 오는 게 아닌 이상.
시작한 지 얼마 안 되는 이하린이 중요한 임무를 맡을 가능성은 낮았다.
‘얘도 나랑 같이 북부 쪽으로 가면 좋을 텐데. 그래야 퀘스트적으로도 이득이고…….’
고대현이 그리 생각하고 있으니.
띠리링-.
얼마 지나지 않아 수업 종이 울린다.
고대현과 이하린이 다시 반으로 돌아와서 다음 수업 내용을 전달받았다.
이번에는 쉬는 시간을 겸해서 간단한 수업을 한다고 한다.
[다들 주목.]
[이번에는 이색적인 수업을 할 예정이다.]
김원 선생님의 목소리와 함께 벽면에 문구가 나타났다.
“이색적인 수업? 또 뭘 하시려고 그러지.”
“이상한 거만 아니면 좋겠네.”
평소와 같은 수업 공지였지만.
이색적이라는 말이 추가적으로 붙어있기에 모두의 관심이 집중되었다.
그렇게 추가적인 문구를 기다리고 있으니, 별안간 수업 내용이 화면에 나타난다.
‘저건?’
수업 내용은 모두의 예상을 빗나간 것이었다.
“매드 무비?”
[대부분의 컷이 제작 봇 안에 넣으면 그냥 나온다. 하지만 원본이 되는 컨트롤 영상이 별로면 뭘 해도 수준이 낮을 뿐이지.]
아무리 자동으로 짜집기 해서 나와도.
영상 자체가 구리면 좋은 매드 무비는 나오지 않는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은 매드 무비 신 만들기를 하겠다.]
“갑자기?”
“그러게, 오늘 무슨 날인가?”
평소에 강도 높은 수업만 해서 그런지 반 아이들이 어색해 한다.
[각 반별로 생성된 결과물을 보고 점수 평가를 매길 거야.]
[투표수가 제일 많은 영상은 학교 홍보 자료에 쓰일 예정이니 다들 열심히 하도록.]
‘홍보 자료?’
그러고 보니.
학원이나 학교 채널에서 우수 학생의 매드 무비를 걸어 놓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이번엔 그런 거를 직접 만들어 보는 시간인 모양인 듯했다.
김원 선생님은, 이어서 이론 수업을 시작했다.
각 종목별로 자주 나오는 슈퍼 컨트롤과 그에 따른 시야각.
그리고 동작 구현을 할 때의 팁이 주된 설명 내용이었다.
[종목당 1개씩 해서, 총 길이 5분 미만으로 설정해서 뽑아 줘. 너무 길면 안 받는다.]
그렇게 몇 분 뒤.
대략적인 이론 수업이 끝나고.
각 반 학생들에게 회의하는 시간이 주어졌다.
“그라운드 제로는 사격, LOH는 일대 다수 상대, 언더 워치는 궁극기 사용 타이밍이 좋을 것 같은데 어때?”
“그게 적절하긴 하겠네.”
다만 전략보다는 어떤 장면을 연출 할지에 초점이 맞춰진 회의였고. 자연스럽게 게임을 하다가 나오는 게 아닌, 인위적인 상황을 만들고 이를 답습하는 것이 주목적이었다.
고대현은 간추려진 상황 목록을 훑었다.
‘이런 건 모범 공식 풀이 영상 같은 것에 비유하면 되려나?’
아무리 생각해도 그거밖에 없었다.
‘그렇다면 적당한 게 있긴 한데…….’
대현은 가상 현실 캡슐에 들어간 뒤, 내면의 PC에서 오랜만에 [강의] 탭을 살폈다.
‘PC 모드로 컨트롤 할 때의 팁이 나와 있는 부분……, 이걸 까먹고 있었네.’
여러 가지 내용을 살핀 그는.
남들이 볼 때 신기하게 여길 수 있는 부분이나 잘 안 나오는 장면을 눈여겨본 뒤.
이에 따른 픽을 반 아이들에게 말했다.
‘조용하네…….’
한데, 이에 대해 따로 질문하는 사람이 없었다.
“너네……, 내가 어떤 식으로 뭐할 건지 물어보지도 않는 거냐?”
“글쎄? 뭔진 몰라도 신기한 거 하겠지.”
“대현이 정도면 따로 생각하는 게 있지 않을까?”
“그렇긴 해.”
이제는 물어보지도 않고, 자동으로 기대하는 반 친구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