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28화
#128화
[게임을 종료합니다.]
헤드셋을 벗은 뒤.
고대현은 자신의 머리카락을 정리했다.
“오빠 그런 건 언제 배운 거야?”
그러자 진아가 달라붙어서 질문한다.
“대현이, 너 실력이 엄청 늘었구나?”
“아까 했던 회피 동작은 게임고에서 배운 거니?”
아니, 진아 뿐만이 아니었다.
주변에 있는 모두가 그에게 질문한다.
‘내가 너무 압도적으로 이기긴 했지…….’
대현은 질문들에 적당히 답을 하면서.
곁눈질로 옆에 있는 현수를 응시했다.
현수는 귀가 붉게 달아오른 상태로 머리를 긁적이고 있었다.
“어땠냐? 내 수준은.”
“어? 어, 그게…….”
현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입만 뻐끔거렸다.
형 수준에 어떻게 게임고를 갔냐고 물어봤을 때와는 상반된 태도였다.
‘이제 뭐라 할 일은 없겠네.’
속으로 조소를 머금은 대현은.
이어서 자신의 스마트 워치를 내려다보았다.
띠링─.
스마트 워치의 알림이 울린다.
“아이고, 역시 내 손주들이라 그런지 둘 다 잘하네.”
확인해보니 할아버지로부터 용돈이 도착해 있었다.
“받거라, 용돈이다.”
“감사합니다.”
게임을 하고 용돈을 받은 적은 이번이 처음이었기에 대현은 어색한 기분을 느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뿐.
그는 곧이어 친척들의 대화에 맞춰주느라 진땀을 빼야 했다.
“비술은 어떻게 배웠니?”
“어……, 친구한테 살짝 배웠어요.”
“친구? 아아, 게임고 애 말이구나.”
“네.”
“역시 인맥이 좋긴 하네. 이러니까 엄마들이 다 게임고 보내려고 난리지.”
게임교육과 관련된 이야기가 나오자 다들 언성이 높아진다.
“저런 걸 또 어떻게 배운 거람, 호호.”
예상치도 못한 고급 기술을 배워서인지, 부모님도 상기된 표정이었다.
저번에 잠깐 관전했을 때는 비술을 안 썼으니.
이번에 보여준 컨트롤이 몇 배나 격이 높은 셈이었다.
“아 참, 대현이 너, 진로는 어떻게 할 생각이냐.”
“진로요?”
그때, 대현의 할아버지가 진로에 대해 질문했다.
“지금 수준이면 좋은 곳으로 갈 수 있을 것 같은데…….”
‘하긴, 이런 상황에서 진로 이야기가 안 나오는 게 이상하지.’
게임고 재학과 더불어 실력도 올랐으니, 후보군으로 고를 곳은 많았다.
대현은 자신의 미래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그간 학교생활을 하느라 크게 고민해 본 적이 없기에.
도출되는 거라곤 레기온성에 들어가서 활약하는 게 전부였다.
그나마 목표라는 게 있다고 한다면…….
“성에 들어가서, 나중에 성주가 되려고요.”
그것은 성주가 되는 것이었다.
이왕 이렇게 된 김에 성주까지 달아보는 게 좋겠다는 결심이 섰다.
“오오, 성주라. 역시 꿈은 크게 갖는 게 좋지.”
성주라는 말에 수염을 만지며 고개를 끄덕이는 대현의 할아버지.
‘꿈이 크군.’
‘성’은 한국 대륙 내에서 10개에 불과하며, 산하 길드와 크고 작은 클랜만 수백 개가 넘는다.
따라서 그 모든 조직의 정점인 성의 주인이 된다는 것은.
한국을 움직이는 권력층이 되겠다는 소리와 다름이 없었다.
이건 아무리 실력이 좋아도 힘든 일이기에.
“성주를 하려면 졸업하고 나서 열심히 해야겠구먼.”
“할아버지 돌아가시기 전에 될 수 있게 노력해볼게요.”
“허허, 녀석 참.”
그가 대현의 말을 간단하게 웃어넘기려 할 때였다.
“네가 성주를?”
길드 취업 관련 질문을 받고 리타이어 상태에 있던 서희가 입을 열었다.
그녀는 고대현이 성주에 대해 쉬이 말한 게 마음에 안 드는 모양이었다.
“일반인이 성주를 하려면, 라그나로크에서 공을 크게 세우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을 텐데……?”
성주는 자식에게 승계식을 통해 세습시키거나.
자식이 승계식을 통과하지 못하면, 라그나로크에서 큰 공을 세운 자에게 돌아가는 방식이었다.
그녀는 승계식 일정에 대해 떠올렸다.
‘렘고성 승계식이 제일 가까웠지, 아마.’
성주의 인적 사항을 분석한 뒤 공지하는 인류 관리 시스템, 에덴의 공지에 따르면.
앞으로 있을 승계식 중 렘고성의 승계식 일정이 가장 빠르며.
렘고성 이후 4년에서 5년이 지나야 다른 성의 승계식을 볼 수 있었다.
위의 내용을 대략적으로 설명한 서희는, 팔짱을 끼면서 말을 이었다.
“일정에 맞춰서 공을 세우는 것도 힘들고, 무엇보다 승계식에서의 탈락 여부가 미지수야.”
성주의 자식들은 대부분 게임 실력이 출중하다.
허나, 평범한 수준이라면?
자신까지만 성주를 하고 다른 사람에게 자리를 내줘야 한다.
그러나 자신의 자리를 자식까지 잇게 하고 싶은 만큼.
성주들은 과외나 비술을 통해 자식들의 실력을 억지로 끌어올리는 게 대부분이었다.
“그리고 사실상 수호 기사급으로 올라가지 않는 이상 큰 공을 세우는 건 무리야. 대부분 잡 병력으로 투입되니까.”
요약하자면, 시기상 대현의 실력을 올릴 시간이 부족하다는 것이었다.
보통 라그나로크에서 공을 세우는 연령대가 30대였으니.
확실히, 서희의 말이 맞긴 맞았다.
하지만 맞는 말이라도 분위기를 보면서 해야 하는 법.
“허허, 서희야 대현이가 장난으로 한 말에 너무 진지하게 반응하는구나.”
분위기가 일순 차갑게 식었다.
서희는 그제야 자신이 취업 히스테리를 부렸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최근 되는 일이 없어서 그런지, 한참이나 어린 동생을 상대로 자격지심을 느끼고 말았다.
‘조용히 있어야지, 그냥…….’
이에, 서희가 다시금 입을 다물고 벽에 몸을 기대려 할 때였다.
“흠, 일정 보니까 졸업하고 나서 성 하나는 노려볼 만하네요.”
고대현이 손가락으로 수를 세면서 말했다.
그는 졸업한 뒤에 있는 가장 가까운 승계식의 일정을 확인하고 있었다.
‘당장 북부 전에도 참가하니까 공을 세울 시간은 충분하고, 나중에 대행기사 기간이 끝나도 인맥빨로 어떻게든 될 것 같네.’
당장 레기온 성주와 기간티아 성주.
그리고 고위급 길드 출신인 선생님과 더불어 잘나가는 친구들도 많으니까.
딱히 꿀릴 일은 없었다.
하지만 이를 모르는 서희에게는 같잖아 보일 뿐이었다.
그녀조차 못 들어가는 상위급 조직의 수장이 되겠노라고.
멋모르는 고등학생이 말하는 꼴이었으니 말이다.
“성에 들어가려면 정규전 티어 말고, 교내 활동 점수도 중요한 거 알지? 게임기록부 관리 잘해야 돼.”
성쯤 되는 조직은 단순한 티어 말고도 전적 표에서 얼마나 잘 협동하는지를 확인한다.
지금 당장 게임고에서 티어를 올리고, 인맥을 쌓을 수는 있어도.
과거에 게임을 던진 적이 많다면 불리할 수 있었다.
“맞아, 성에 들어가기가 쉬운 게 아니지.”
그때, 서희의 옆에 있던 대현의 고모가 고개를 끄덕이면서 동의했다.
“요즘에는 비술 조금 할 줄 알고 티어만 높다고 다가 아니야. 게임만 잘하고 인성이 별로인 애들이 많아서 OB. BB 종합 전형으로 뽑는 곳도 있다잖아.”
OB. BB는 각 게임의 종합 전적을 확인할 수 있는 웹 사이트다.
최근에는 이를 통해 학생의 전체적인 협동력이나 인성을 확인하는 일이 곧잘 있는 모양이었다.
‘내가 교내에서는 점수가 잘 안 나올 거라 생각하시는 것 같다.’
대현은 상대방의 의도를 어렴풋이 눈치챘다.
저건 걱정을 빙자한 훈수임과 동시에 입을 다물라는 신호였다.
고대현은 상대의 의견에 적당히 고개를 끄덕이면서 넘어가려고 했다.
‘따지고 보면, 입사도 못 하는 사람 앞에서 회사 사장이 되겠다고 한 꼴이니까……, 이쯤에서는 조용히 넘어가고 끝내야겠네.’
“대현이는 게임고에서 특별 케어해준다고 해서 괜찮아요.”
그때였다.
엄마가 특별 케어에 대해 언급했다.
“특별 케어?”
특별 케어를 모르는 친척들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의문을 표하는 한편.
게임고의 특별 케어 시스템을 아는 대현의 작은 아빠는 흥미롭다는 표정을 지었다.
“실력은 높은데 티어가 낮은 애들을 집중 케어하는 시스템 말하는 거구나? 그거, 본래 취지는 실력 떨어지는 성주 자식을 케어하려고 만든 거라는데.”
이러다가 진짜 최연소 성주를 다는 거 아니냐고.
그가 반쯤 농담인 표정으로 말하자, 대현의 엄마가 입가를 가리며 한 차례 웃은 뒤 입을 열었다.
“안 그래도 대현이가 요즘 기사 대행까지 하는 중이거든요……. 호호.”
“기사 대행??”
기사 대행은 미성년자가 할 수 있는 활동 중, 가장 상위랭크에 위치한 것이기에.
집 안에 있는 모든 친척들이 눈을 동그랗게 뜨며 놀란다.
“기사 대행이면……, 어느 성에서 하는 대행을 말하는 거니?”
기사 대행이라도 어느 성에서 대행을 하냐에 따라 급이 나뉜다.
그렇기에 친척들은 조심스레 질문했다.
대현의 엄마는 조금 뜸을 들이다가 나지막하게 말했다.
“레기온 성이요.”
“뭐, 레, 뭐라고?”
“레기온이요.”
또박또박 레기온이라고 말하자, 시간이 멈춘 듯 주변이 잠시 얼어붙는다.
레기온이면 한국 대륙에 있는 성중에서 제일 큰 성이 아니던가.
그런 성의 기사 대행이 되는 것은 하늘의 별 따기나 다름없었다.
게다가 시간을 생각하면 아직 대현의 정규전이 지나지도 않았으니.
앞으로의 가능성만 보고 뽑았다는 결론이 나왔다.
‘벌써부터 레기온의 기사 대행으로??’
서희는 고대현이 보여준 스마트 워치의 홀로그램을 응시했다.
[레기온 성 기사 대행(정식) : 고대현]
순간적으로 숨이 턱 막히는 것을 느꼈다.
자신은 기사 대행 경험 같은 건 해보지도 못했는데.
몇 달 전까지만 해도 친척 모임에는 나오지도 않던 사촌 동생이 레기온 성의 기사 대행이 됐다니…….
한편.
“그러면 본 대륙에서 활동하고 있는 기여?”
“아, 뭐, 가끔 들어가고는 있어요.”
“흠.”
기사 대행 이야기까지 나오자, 대현의 할아버지는 믿기 힘들다는 표정으로 웃었다. 갑자기 좋은 소식 여러 개가 한꺼번에 들이닥치자 정신이 없는 그였다.
“이번 라그나로크에 참가하겠네, 그렇게 되면…….”
“라그나로크요? 아, 아마 참가할 거예요.”
라그나로크는 어른들의 장이다.
이런 무대에 학생 때부터 참가하는 건 굉장히 이례적인 일이었다.
“라그나로크 힘들 텐데.”
“어머, 그러게요. 대현이가 장하네요.”
그렇기에 여러 가지 말들이 오가는 가운데.
대현의 할아버지는 자신의 수염을 쓸다가 문득 입을 열었다.
“그럼, 이참에 서희 누나랑 같이 돌아 다녀보는 건 어뗘? 누나한테 여러모로 배워둬야 편하지.”
서희는 손가락을 자신의 얼굴을 가리키면서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제가요……?”
“일단 서희가 본 대륙 선배니까 여러모로 알려주면 좋지 않나?”
레기온 성의 기사 대행인 시점에서 선배라는 건 의미가 없는 일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급 자체가 다르니까.
‘흐음, 이참에 확인이나 해볼까…….’
하지만, 이왕 이렇게 된 거 내부에서 고대현의 실력이나 확인해 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시기를 듣자 하니, 된 지 오랜 시간이 지나진 않은 것 같고.
아직 스킬 레벨도 낮은 수준일 게 분명했으니 말이다.
‘지금은 내가 더 강할 테니까. 이참에 콧대 좀 눌러줘야겠다.’
“따라 들어와.”
괜히 심술이 난 서희는 고대현에게 헤드셋을 주면서 접속하라고 말했다.
“네?”
“아직 초짜일 거 아니야. 누나가 몇 개 알려줄게.”
“초짜 정도는 아니고─.”
“너, 지금까지 퀘스트는 몇 개 해봤어?”
“……아직, 2개 정도요.”
“그럼 초보네.”
코웃음 치면서 접속하는 서희.
‘역시 삐뚤어진 성격은 안 변한 건가…….’
대현은 그런 그녀의 모습을 보면서 잠시 고민하다가 뒤이어 접속했다.
‘이참에 콧대 좀 눌러줘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