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18화
#118화
블록 방어 수업이 순조롭게 진행되는 가운데.
40반 라인의 맨 뒤.
3학년 라인에 있던 강찬은 탄창을 갈아 끼운다.
그가 이번 수업에 참여하는 건 이로써 3번째였다. 1학년 때는 라이플과 방패, 칼 등으로 무장했었는데, 지금은 맨 뒤에 있는 라인에서 편하게 저격만 하고 있었다.
탕-!
철컥.
스코프 너머로 보이는 적을 맞춘 뒤, 다시 총알을 장전한다.
‘장전하는 것도 일이네.’
본 수업은 단지 순위만으로 평가되지 않는다. 관전하고 있는 선생님들의 개인 피드백까지 들어갈 예정이니, 순위가 굳혀졌다고 해서 쏘는 것까지 대충해서는 안 된다.
‘앞에 있는 1학년은 잘하고 있으려나?’
강찬은 자신의 1학년 시절을 떠올렸다.
그때는 카람빗 길드가 아니라 다른 학교 상위권과의 협약하에 이루어진 방어전이 이루어졌다. 이는 게임고만 훈련 대륙을 쓰는 게 불공평하다는 이유에서였다.
그때는 상대 학교도 근거리 전은 오래 하지 못했기에, 멀리서 쏘기만 하는 거로 어느 정도 버틸 수 있었다. 하지만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니 1차선이 밀리는 건 똑같았다.
절대적인 인원수 차이를 극복하기 힘들기 때문이었다.
강찬은 그 수업을 경험한 후.
새삼 세상이 쉽지 않다는 사실을 느꼈다.
‘어른들은 이런 걸 어떻게 맨날 하지.’
한 방에 처리 가능한 명중률과 정확도가 있기에, 겨우 2차선을 지킬 수 있었다. 물론, 본 대륙은 던전에서 나온 아이템과 추가 레벨업이 있는지라, 좀 더 화력이 강하다. 하지만 규모로 치환한다면 비슷한 규모의 싸움일 것이다.
퉁!
그때였다.
워무그의 갑옷과 가시 갑옷을 입은 탱커들이 침투한다.
갑옷을 입으면 신경 부하가 올라가지만, 이를 견디고 민첩한 움직임을 계속하는 특수 부대 라인이었다.
‘죽어라, 탱커.’
탕-!
강찬은 1번째 라인으로 다가온 카람빗 길드원의 머리에 한 발을 날렸다.
팅!
그러나, 이미 머리를 노리는 것엔 익숙한 듯.
도끼의 옆면으로 정수리를 방어하면서 들이닥친다.
맨 앞 라인이 벽 스킬로 방어하고 있긴 하지만 금방 뚫릴 것으로 보였다. 이에 강찬은 위치를 좀 더 뒤로 옮길 준비를 했다.
스킬로 투망과 갈고리, 고속 이동 등을 택하긴 했다만. 결국 베테랑의 앞에서는 카이팅이 큰 의미가 없을 것이다.
“에너지 곡사포 쿨타임 얼마나 남았냐?”
“50초!”
“마지막 섬광이랑 전방위 폭약은?”
“지금 다 됐어.”
“잘됐네. 저 위로 올라가서 정비하자.”
포킹하면 항상 선택되는 스킬 중 하나인 에너지 곡사포와 마지막 섬광, 전방위 폭약. LOH에서는 각각 젤아스와 락스 지익스의 스킬이었다. 그걸 쓰기 위한 장비를 들고 올라간 3명은 언덕 부근에 도착한 뒤,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그런데…….
‘아까랑 차이가 없다?’
총을 내려놓은 강찬은 이상함을 느꼈다. 앞 라인이 뚫릴 걸 대비해서 움직이기 시작했다.
본래는 1학년 라인은 여기에 도착하는 사이 뚫리고, 2학년 라인까지 밀렸어야 정상이었다. 하지만 적 병력은 아직도 1라인에서 멈춘 채 앞으로 오지 못하고 있었다.
‘어떻게…….’
이번 1학년은 신경 지구력을 중점으로 뽑힌 학생이다.
‘그래서 더 빨리 뚫릴 거라 생각했는데…….’
강찬의 의문스러운 시선이 돌연 빛나는 구석에서 멈췄다.
“저 스킬은?”
그의 시선이 멈춘 곳.
파앗-!
고대현이 계속 아군을 살리면서 선을 지키고 있었다.
* * *
그 시각 1반 블록.
1반 라인은 최상위권 1, 2, 3학년이 모인 만큼 어마어마한 디펜스력을 자랑하고 있었다.
탕탕-!
총알 한 발에 적들이 픽픽 쓰러진다.
단순하게 쏘는 게 아니라.
조금씩 휘게 해서 갑옷의 이음새를 적중시키고.
방향을 예측해서 폭탄을 날리기도 한다.
그들의 공격은 이미 아랫반과는 질적으로 차이가 심했다.
그렇기에 카람빗 길드는 1반에 더욱 강한 병력을 투입했다.
쿵!
“3학년 라인에 공중 침투!”
정공법으로 안되니 날아서 침투한다.
이단 점프와 돌풍참을 이용한 중간 라인 침투계획에 의해 균형이 흐트러졌다.
“다들 카이팅 해!”
상대의 머리가 향하는 방향을 보고 돌진할 방향을 미리 예측.
그리고 산개하면서 돌진이 멈출 만한 곳에 미리 총구를 겨눈다.
탕탕!
일사불란한 연계에 카림빗 길드의 베테랑도 몇 명 아웃되는 가운데.
“좀 하는군.”
카람빗 길드의 1번 공격대 대장이 빈틈을 파고들었다.
어느새 지형 곳곳에 검은 연막도 깔려있었다.
연막과 그림자 이동을 겸비한 페인트 때문에 3학년 1반도 대응이 힘들었다.
서걱-!
순식간에 1명을 처리한 공격대 대장이 지면을 밟는다.
‘1명 처리.’
1번대 공격대장.
그녀가 이어서 옆에 있는 학생을 처리하기 위해 고개를 돌릴 때였다.
“여긴 제 영역입니다만.”
어두운 연막 속에서도 방향을 잃지 않고 다가오는 이가 있었다.
‘뭐지? 미끼로 온 건가?’
분명 거리를 벌릴 거라 여겼다.
그러나, 상대는 공격해보라는 듯 더 가까이 접근하고 있었다.
‘궁으로 돌진한 다음 구르고 바로 표식으로 돌아온다.’
머릿속으로 파훼식을 짠 그녀가 발돋움을 시작한다.
삑.
[동작 구현 : 100%]
몸의 형상이 일순 흐릿해지면서 전방으로 고속 돌진이 시작되었다.
‘한방에 급소를 노린다.’
은신계로 탐지계를 커버할 정도의 실력은 이미 갖추고 있는 공격 대장이었다.
스윽.
그렇기에 다음 순간.
그녀는 최단 거리에서 자신의 공격을 단 한 발자국으로 피한 상대를 보며, 눈을 크게 떴다.
“빠를수록 피하기 쉬운 공격도 있지요.”
목소리보다 빠르게 몸에 불이 붙는다.
뒤늦게 귓가에 전천후의 목소리가 도착했을 때.
이미 그녀의 몸은 브란도의 스킬이 붙은 상태였다.
‘빠르다.’
그제야 공격 대장은 3학년 1반의 전천후가 있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기간티아 성주의 아들이자 근거리 탐지의 달인, 혹은 선택받지 못한 자.
휘릭.
그녀는 체력이 완전히 떨어지기 전에 돌려차기로 그를 처리하려 했다.
물론 발이 닿기도 전.
그는 이미 분시계 아이템을 사용해서, 몸을 순간 정지 무적 상태로 만든 뒤였다.
탕-!
전천후가 시간을 번 사이, 나머지 1반 인원이 그녀를 처리한다.
이런 빠른 연계 덕에 1반 블록은 아직까지 전체 랭킹에서 1등을 유지할 수 있었다.
“3학년 라인 문제 제거. 전라인 상황 정비해.”
팀간 전음으로 상황을 전달하는 전천후.
그가 문득 1, 2학년이 있는 라인에 눈길을 줬다.
“너희들 하늘 방어 제대로 안 해? 위 라인 다 죽을 뻔했잖아!”
“죄, 죄송합니다.”
3학년들이 간간이 1, 2학년에게 구박을 준다.
“이번 수업 끝나고, 방과 후에 특훈 내전 할 거니 그런 줄 알아라.”
“““네에…….”””
각반에서 귀족적인 위치를 소유하지 않은 나머지 인원.
그들은 따로 불려서 특훈을 받기로 했다.
‘지수는 잘 있나.’
전천후는 자신의 동생 전지수가 잘 있는지 살폈다.
머지않아 그의 시선에 잡힌 전지수는 묵묵히 저격총을 손질하고 있었다.
‘역시 저걸 골랐네.’
근거리에만 능한 자신과는 달리, 전지수는 꽤 광범위한 넓이를 탐지할 수 있었다.
‘가히 초인적이라고 하는 게 정확한 비유겠지.’
왜 아버지가 자신이 아닌 전지수를 차기 성주로 지목했는지 알 수 있는 부분이었다.
‘하지만…….’
전지수가 가지고 있는 건 탐지계 말고도 더 존재했다.
‘오히려 그게 더…….’
전천후는 별안간 떠오른 상념을 고개를 저어서 지워버렸다.
지금 당장은 앞에 오는 적을 처리하는 게 더 중요했기에.
* * *
한편, 모든 학생들의 상황이 송출되는 홀로그램 화면 앞.
백일광은 카람빗 길드의 수장과 전투를 관전하고 있었다.
모든 반 중에서, 당연하게도 1반이 오래 버티는 가운데.
종장에는 쓰러져버린 공격대 대장을 보며, 카람빗 길드의 수장 안드라 누이가 말했다.
“뚫기가 어렵군요. 학생인데도 불구하고·····.”
백일광은 자부심을 느끼며 고개를 끄덕였다.
“다들 상당한 교육을 받은 학생들입니다. 특히 상위권은 저마다의 기교도 다 익히고 있지요.”
“저희 나라는 익힌 사람이 거의 없는데 놀랍군요. 학창 시절엔 기본만 하고, 나머지는 어른이 된 다음 각자 배우는지라.”
그렇게 대화를 나누는 사이.
그들의 시선은 상위 랭크인 1반에서 30반까지 내려갔다.
“아랫반은 거의 궤멸했군요.”
“어쩔 수 없지요. 그러니까 아랫반인 것이니.”
아래로 갈수록 익숙하지 않은 1학년 라인이 빨리 뚫려서 전체적으로 돌파당하는 속도가 빨라지고 있었다.
35반쯤 되니까 살아남은 반은 거의 없다시피 했다.
‘여기보다 더 아래는 살아있지도 않겠군.’
화면을 보던 백일광이 슬슬 카메라 포인트를 다시 상위권 반으로 옮기려던 때였다.
“잠깐만 멈춰주시오.”
그렇게 말한 안드라 누이의 시선이 다른 쪽을 향하고 있었다.
‘음?’
이를 이상하게 여긴 백일광도 안드라 누이를 따라서 고개를 돌렸다.
“이 반, 아직도 싸우고 있는 거 맞습니까?”
“어, 아무래도 그런 것 같군요…….”
반별 순위가 점점 상위권으로 몰리면서 치열해지는 상황 속.
‘어떻게 40반이??’
분명 금세 낙오될 거라 여겼던 40반이 아직까지 버티고 있었다.
심지어 옆 반이 다 낙오됐기에 밀집도도 더 높은데 말이다.
이에 백일광의 입이 쩍 벌어졌다.
궁금해진 건 안드라 누이도 마찬가지였다.
“확대해보면 서로 궁금한 점을 해결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만?”
“흠, 저도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백일광이 화면을 확대했다.
곧이어 40반 라인의 전투 상황이 눈에 들어왔다.
촤라락.
팟.
촤라락.
팟!
‘이건??’
이번 수업은 원거리 딜러와 메이지류 스킬만 선택할 수 있게 해놨다. 신영범과 반대로 말이다. 사실 이게 정상이고, 신영범이 비정상이었다.
그렇기에.
백일광은 신영범의 수업에서 두각을 보였던 40반이, 이곳에서는 별 힘을 못 쓸 거라 여겼다.
하지만 현실은 달랐다.
그때, 안드라 누이가 백일광이 하려던 말을 대신한다.
“부활을 골랐군요.”
1학년 40반 인원 중 한 명이 아크션의 스킬 중 하나인 부활을 골랐다.
‘적을 죽이면, 적에게 죽은 아군이 되살아나는 스킬…….’
부활 스킬을 고른 고대현이 계속 아군을 살리면서, 팀을 연명시키고 있었다.
백일광은 많은 스킬 중에서 굳이 저걸 고른 대현의 의도를 이해하지 못했다.
철컥.
그가 가진 무기의 수를 보기 전까진.
“이번 수업은 사실상 스킬 수의 제한이 없었지요?”
“네, 안 그래도 불리하고, 또 첫 시간이니…….”
제한이 없다. 다만, 개인이 다룰 수 있는 무기에 제한이 있기에 사실상 제한이 있는 것과 다름이 없었다.
여러 개를 다룰 시간에 한두 개를 제대로 잡고 관련 스킬을 뽑는 게 효율이 좋으니 말이다.
‘그런데 저 녀석은 5개가 넘는 무기를 돌려쓰고 있군.’
만약 백일광이 처음부터 고대현의 모습을 봤다면.
싸우다가 손 꼬일 작정이냐면서 구박했을 것이다.
그러나, 고대현의 손놀림은 무기를 떨어트리지 않으면서 정확하게 타점을 잡아내고 있었다.
‘심지어 동작 구현도 올 퍼펙트…….’
백일광이 상념에 빠진 채 미간을 좁히고 있자니, 옆에 있던 안드라 누이가 웃으면서 제안한다.
“한국은 저런 학생이 40반입니까? 원래 무서운 건 알았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습니다.”
“원래 저 정도 두각을 보이던 학생은 아니었습니다.”
“호오, 그렇다면 실시간으로 발전하는 중이란 말입니까?”
안드라 누이의 눈에 이채가 돌았다. 그도 본토에서 본 적이 있었다. 갑자기 실력이 기하급수적으로 오르는 사람을.
“난이도를 좀 올려볼까요?”
그래서인지 궁금해졌다. 과연 어디까지 해낼지가.
다행히도 지금은 수업이었으니 상황 조정도 가능했다.
“난이도 조절이라 좋은 생각이군요.”
백일광도 마침 궁금한 참이었으므로 안드라 누이의 의견에 동의했다.
“근데 어떻게 난이도를 올릴지…….”
“환경을 어둡게 하는 건 어떻겠습니까?”
“어둡게, 나쁘지 않군요.”
그가 팔짱을 낀 채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하여.
쿠구구구─.
40반뿐만 아니라 다른 반까지 전부.
필드는 일순 어둠으로 물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