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16화
#116화
전지수의 난데없는 스카우트 권유에 2명의 눈이 동그랗게 커졌다. 식당에 사람이 별로 없어서 그런 걸까. 잠시 적막감이 내려앉았다.
‘갑자기 스카우트 제의를?’
고대현이 양쪽을 번갈아 본다. 한때 정태룡이 자신에게 했던 광경이 제3자에게 벌어지고 있었다. 그것도 40반에서……. 원래 이런 게 좀 빈번한 건가?
“내가 알기로 기간티아에서 나 같은 타입은 별로 안 좋아한다고…….”
“관련 편제가 부족하긴 해. 그래도, 너 정도면 따로 자리를 만들 수도 있을 거야.”
‘저 정도까지?’
전지수가 이하린의 어떤 면을 보고 저런 조건까지 제시하는가.
처음에는 자신이 정태룡에게 했던 말 때문인가 싶었다. 하지만 대현은 얼마 지나지 않아 그 이유를 깨달았다.
‘그러고 보니 이하린이 야나 이바노프를 이겼었지.’
전지수가 자세한 전투 내용까지 보진 않았지만, 마지막에 남은 생존자가 2명이었다.
이하린이 OT 때 전지수를 이긴 게 둘의 첫 만남이었으니, 얼추 추론이 가능했을 것이다.
‘거기에 더해서, 내가 추천까지 했으니까.’
전지수도 이참에 공격적으로 움직일 모양이었다.
그녀는 정태룡에 비해 지나칠 정도로 조용했다. 위치를 고려한다면 지금까지 안 움직인 게 이상할 만큼 말이다.
‘이하린이 현재 쓰고 있는 아바타는 레이나프라에서 밖에 못 움직인다고 그랬지?’
이하린이 전지수의 조건을 수락한다면 어떻게 될까.
고대현은 상상해봤다.
일단 패밀리어 퀘스트를 진행해야 한다. 이하린이 기간티아 소속으로 움직인다면, 정태룡과 동시에 퀘스트 진행이 가능한 순간도 오겠지.
“어……, 일단 고민해보고.”
하지만 이하린은 섣불리 수락하지 않았다.
그녀는 어머니와 고려해야 할 뒷사정이 있었다.
해서, 당장 수락하는 건 무리였다.
‘하긴…….’
사정을 어느 정도 알고 있는 대현은 후식으로 나온 빵을 입에 넣고 우물거렸다.
반면 전지수는 당황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그녀는 은연중 40반 정도라면 바로 수락하지 않을까? 같은 생각을 하고 있던 것이다.
‘야나 이바노프랑 붙어서 살아남은 앤데, 나도 모르게 과소평가했네…….’
전지수는 얼굴이 화끈해지는 걸 느꼈다.
그러는 사이, 아침 식사 시간이 끝났다.
“오늘은 블록 방어 실습한다고 그랬나?”
“전 학년 합동으로 한다고 했어.”
“음, 2, 3학년이랑 보는 건 이번이 처음인데, 괜찮겠지?”
대현의 말에 전지수가 작게 답한다.
“이번 수업 담당하시는 분이 3학년 학년 담임인데, 글쎄……, 좀 엄격한 면이 있으시긴 해.”
“설마 수염 좀 길고 한 사람은 아니겠지?”
“맞아, 수염 긴 분.”
3학년의 학년 담임 백일광은 친 기간티아 성향의 사람이었다.
전지수가 그에 대한 정보를 말하니 이하린이 미간을 좁힌다.
“끙, 뭔가 안 좋은 예감이 드는데…….”
“기본만 하면 터치 많이 안 하시는 분이야. 물론, 40반한테는 좀 다를 수도 있지만.”
“으, 역시.”
3명이 대화하면서 복도를 이동한다. 이하린이 어느 정도 친화력이 있는 편이라서 그럭저럭 거리가 유지되었다.
“난 가볼게. 나중에 생각 정리되면 말해줘.”
1반은 40반의 정반대에 위치해 있었다. 중간에 갈라져야 했다.
전지수가 이하린에게 위의 말을 남긴 채 멀어진다. 대현과 하린은 40반으로 향하는 복도를 걸었다.
“할 거냐?”
고대현이 슬쩍 떠본다.
“하면 좋을 것 같긴 해. 순간 혹하기도 했고. 그런데 일단 엄마랑 상의해 봐야지.”
대현과 하린도 얼마 지나지 않아 교실에 도착했다.
드르륵.
문을 여니 이태원과 허건섭, 유금옥은 이미 교실에 도착해 있었다.
교실이 좁아서 그런지 다들 가상현실 캡슐 옆에 있는 여유 공간에 앉아 있었다.
‘이 좁은 교실도 보다 보니 익숙해졌네.’
“뭐야, 이제 둘이 같이 오는 거야?”
그때, 허건섭이 장난치듯 입을 열었다.
“아침 운동을 열외로 빼다 보니 그런 거지 뭐.”
보통 아침 운동을 한 뒤 자율적으로 아침을 먹거나 기숙사에서 씻고 나오는 시간을 가지는데.
고대현은 아침 운동을 테라피룸 관리 명목으로 제외해서, 같은 반 애들과 시간대가 맞지 않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이하린이 일부러 밥을 늦게 먹는 게 아니라면 우연이겠지.
“너, 언제 그쪽 선배랑 친해진 거냐? 지금 보니까 인맥 좀 되는 것 같다?”
테라피룸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자 대화 주제가 그쪽으로 틀어진다.
“흠, 생각해보니 그러네? 내가 어쩌다 리단 선배랑 친해졌더라…….”
“……지금 기만하는 거 맞지?”
고대현이 경리단과 어떤 식으로 만났는지에 대해 기억을 더듬고 있자니 허건섭이 장난스레 옆구리를 찌른다.
그런 일상적인 시간을 보내고 있을 때였다.
[곧 실시할 수업에 대해 공지하겠다.]
교실 벽면에 있는 스크린을 통해 수업 공지가 시작되었다.
[접속 시간은 30분 전까지다. 오늘은 전 학년이 다 모이는 거니 질서를 잘 지키면서 움직였으면 좋겠군.]
[그리고 접속 위치는 훈련 대륙의 특수 지대로 고정해 놨으니 적당히 몸을 풀고 있는 게 좋을 거다.]
백일광 학년 담임도 신영범 학년 담임 못지않게 두꺼운 목소리를 가지고 있었다. 목소리를 듣자마자 공기가 가라앉는 느낌이 날 정도였다.
“이번 수업, 소문으로 들었을 때는 꽤 어렵다고 하던데. 벌써부터 조짐이 보이는 것 같지 않냐?”
“그러게 말이야…….”
이태원이 손톱을 물어뜯고, 유금옥이 고개를 주억거린다.
고대현은 딱히 힘들게 없었기에, 별말 없이 가상현실 캡슐 내부로 들어갔다.
접속 시간이 30분까지 지만, 미리 접속하지 말라는 말은 없었으니까.
“대현이, 너는 미리 들어가서 예습이라도 하려고?”
“아? 아, 뭐, 그냥 둘러볼 겸 해서.”
“으, 응 그렇구나. 우리는 더 있다가 들어갈게.”
접속하는 이는 고대현뿐이었다.
‘대충 돌아다니면서 살펴봐야지.’
위잉.
캡슐에 누운 다음 작동시키자, 평소처럼 내면의 공간이 나타난다. 모니터에는 따로 화면이 표시된 채 훈련 대륙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특수 지대라고 말한 거 답게 처음 보는 지역이네.’
반별로 작은 성을 짓던 곳에 비하면 굴곡이 심했다.
소환사의 계곡을 좀 더 거대하고, 복잡하게 구현시킨 것처럼 생겼다. 비유하자면 평지에서 계곡으로 온 급이랄까.
‘나 말고 또 있네.’
대현은 시야를 스쳐 지나가는 나비를 응시하다가 자신과 마찬가지로 먼저 접속한 사람들을 발견했다.
5명 정도 되는 인원이 주변을 관찰하고 있었다. 딱 봐도 1학년은 아니었다. 색이 달랐다.
‘학년별로 아바타에 나타난 표식 색이 다른 모양이구나.’
고대현은 노란색, 저 앞에 있는 무리는 빨간색이었다.
“이번 수업 때 협력하는 길드가 카람빗 길드라고?”
“응, 윗반에 있는 친구가 그렇게 말하더라고.”
“카람빗 길드면 꽤 쌘 곳인데……, 이번 1학년 앞 라인은 좀 힘들겠네.”
“1학년 때는 다 그런 거지 뭐. 우리도 1학년 때 그랬으니까.”
“하긴, 1학년 때 앞에서 방패막이도 하고 그래야지.”
원래 1학년 때 하고, 학년이 올라갈수록 안 하는 게 전통이라면서 떠드는 무리들.
‘아는 게 많아 보이시네?’
고대현은 어차피 같이 수업을 들을 예정이니까. 얼굴도 비춰볼 겸 그들에게 가까이 갔다. 잘하면 좋은 정보라도 얻을지 모른다. 원래 있던 세계도 족보니 뭐니 하면서 선배들끼리 공유하는 일이 잦았으니 말이다.
“응? 우리 말고도 벌써 들어온 애가 있네?”
“1학년?”
그렇게 접근하니까 알아보는 이가 생긴다.
“흐음, 설마 네가 고대현인가?”
그것도 예상보다 디테일하게.
“저를 아세요?”
고대현이 내심 놀라면서 묻자 리더격으로 보이는 남자가 고개를 끄덕인다.
“알긴 알지. 우리도 40반이니까.”
학년이 다르더라도 같은 라인의 반이면 알고 있는 게 보통인가?
고대현이 의문을 가지고 있자니, 3학년이라 밝힌 선배가 말을 잇는다.
“이번 블록 수업은 같은 반끼리 묶어서 하는 거거든. 알기 싫어도 미리 알아놓는 게 유리해서.”
“같은 반끼리요?”
“말 그대로야. 각자 담당하는 블록이 있는데, 맨 앞에 1학년 40반 한 줄. 두 번째에 2학년 40반 한 줄 세우는 거지. 마지막이 우리고.”
이번 수업은 실제 라그나로크의 접경지 분위기를 살려서, 미리 디펜스를 해보는 게 목적이었다.
실제 라그나로크는 면적이 커서 지금처럼 블록 단위로 하는 게 불가능하지만, 라인을 정해서 잘하는 순으로 후방에 서는 구조는 비슷했다.
“흠, 그런 구조면 제가 맨 앞에 서는 거겠네요.”
“그렇지.”
“정보 감사합니다.”
“아니야. 어차피 알게 될 정보였는데 뭘.”
리더격으로 보이는 남자가 손사래를 친다.
그때였다.
옆에 있는 나무에 기대고 있던 선배가 입을 열었다.
“이번 1학년 40반은 신경 지구력을 중점적으로 봐서 뽑았다고 그랬나? 그럼 오히려 잘됐네. 그런 거 전문일 거 아니야.”
카람빗 길드가 공격대 맡아서 걱정했는데 잘됐다고.
웃으면서 말하는 선배를 보고 있자니 궁금해진다. 대충 길드가 참여하는 건 알겠는데, 어떤지는 모르니까.
“카람빗 길드요?”
“아아. 카람빗이라고. 인도 대륙 길드 있어. 이번 실습 때 도와준다더라고.”
기억난다.
한국과 동맹이라고 그랬지.
“아무튼, 우리는 뒤에서 쏠 테니까 앞에서 잘 버텨줘.”
사실상 3라인이 다 원거리 공격으로 견제하는 것이었지만.
결국 1차가 뚫리는 건 어느 정도 기정사실 인지라, 1학년은 중간에 인간 방패로 소비되는 게 일반적이었다.
“야, 애한테 너무 부담감 주지 마.”
“농담이야. 농담. 어차피 아웃당할 거 빨리 당하는 것도 이득이지~.”
3학년 중 몇 명은 제대로 할 마음이 없는 듯했다.
‘혼자서 캐리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을 텐데…….’
비록 퀘스트는 없지만, 고대현은 좋은 성과를 낼 생각이었다.
과연 얼마나 역량을 낼 수 있을지, 대현은 선배들을 슥 훑었다.
단순한 시선이 아닌 디텍트 아이로 본 것이었다.
띠링띠링띠링─.
‘어디 보자, 비술 소유자는 음. 한 명도 없구나…….’
전부 말끔한 기록을 가지고 있었다.
40반으로 내려온 이유를 알 것 같았다.
‘1학년 때는 몰라도 고학년 때 40반이면, 사실상 습관이 굳어진 게 문제겠네.’
그가 ‘역시 이하린이랑 비술을 쓰면서 가야 하나?’라고, 생각할 때.
“그런데, 너 티어가 어디라고 그랬지?”
앞에 있던 여선배가 질문했다.
대현은 거짓말을 하기도 뭣해서 사실대로 말했다.
“아이언 2요.”
“이야, 대단하네……, 그럼 순전 재능으로 들어왔다는 거잖아.”
“네?”
그런데 뭔가 반응이 기존과 달랐다. 왜 이렇게 호의적이지? 보통 멸시하지 않나.
“아직 갱신 안 한 거?”
“아, 네…….”
“괜찮아. 학교 다니다 보면 저절로 오르겠지.”
그때, 옆에서 다른 선배가 끼어든다.
“그런데 너, 같은 반 애들이랑 트러블 있는 거 아니지?”
“트러블이요?”
반문하자, 그들이 고개를 끄덕인다.
‘내가 같은 반 애들이랑 사이가 안 좋아서 혼자 들어온 거라고 생각한 것 같네.’
어느새 시선이 측은하게 바뀌어 있었다.
“아니에요. 사이 좋아요.”
“진짜?”
늦었다. 선배들은 이미 ‘우리가 잘 케어해줘야겠다.’ 같은 표정을 하고 있었다.
“안 되겠다. 이리 와봐 내가 편한 자리 알려줄게.”
고대현은 앞장서는 선배의 뒤를 따라갔다.
그러자 잘 보이는 위치랑 맨 처음 몰려오는 장소.
카람빗 길드의 특징 등등.
팁들을 잔뜩 알려준다.
보통 티어를 보면 공격적으로 변하곤 하기에, 이번에도 그럴 거라 여겼는데…….
‘착하시네.’
평소처럼 실력으로 뒤집어서 본때를 보일 필요가 없어졌다.
‘의외로 티어가 인성 필터링 기능을 하는 걸지도?’
그렇게 서로 대화를 나누며 시간을 보내고 있을 때였다.
띠링─.
[현재 시각 : 9시 25분 48초]
[접속한 학생은 중앙으로 모여주세요.]
전교생의 집합이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