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14화
#114화
대현은 눈앞의 두 사람을 응시했다.
띠링─!
[이름 : 손돌]
[빙의체 상태 : 양호]
띠링─!
[이름 : 진철]
[빙의체 상태 : 각성]
‘한 놈만 각성 상태.’
아까 이상한 걸 쓰더니, 저걸 사용하면 괜찮은 모양이었다.
“너, 넌 뭔데 안 통하는 거지?”
“어디서 구한 건지 말이나 하시지?”
“구, 구하다니. 뭐를?”
손돌은 당황한 나머지 말을 더듬거리다가 얼버무렸다. 아무래도 효과만 숨기면 될 거라고 여긴 듯했다.
‘간단하게 말하진 않겠네.’
그렇기에 대현은 인벤토리에서 아이템 하나를 꺼낸 뒤 그들에게 겨누었다. 외형은 달리기 시합에서나 쓰는 조그마한 신호탄에 가까웠다.
탕-!
그것을 각각 손돌과 진철에게 발사했다.
대미지를 주는 탄이 아닌지라 각자의 몸에 이상은 없었다.
취해있는 진철은 그렇다 치고.
자신의 몸을 살핀 손돌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그가 이변을 알아차린 건, 싸한 분위기를 감지하고 로그아웃을 하려던 때였다.
“로그아웃!”
로그아웃을 해서 잠시나마 상황을 모면하려던 손돌의 얼굴이 일그러진다.
“응? 어, 어째서……?!”
이후 몇 번이나 로그아웃을 외쳤지만, 작동되는 일은 없었다.
“둘 다 이대로 성까지 가줘야겠어.”
고대현이 입꼬리를 올리며 말했다.
이에 손돌이 도주를 시도하려 했다. 그러나 상대에게서 도망치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다.
고대현이 재빠르게 움직여서 그의 다리를 공격했다.
퍼걱!
아무런 아이템 장비도 착용하고 있지 않았기에, 그는 쉽게 넘어졌다.
보통 체력이 완전히 떨어지면 자동으로 로그아웃이 되는데, 손돌은 그런 상황에 도달하지 못하고 있었다.
몸의 신경 부하만 거세지고 있다는 소리였다.
“어, 어째서…….”
통제할 수 없는 꿈속에서 허우적거리듯.
손돌은 바닥을 기었다.
“재미있네.”
그 장면을 보면서.
대현은 이근희가 준 아이템의 효과를 읽어내려갔다.
띠링.
[접속 종료 억제기]
-맞은 대상의 단위로만 국소 오버클럭을 가한다.
이름, 접속 종료 억제기.
말 그대로, 맞은 대상에게만 오버클럭을 가하는 기능이 있는 아이템이었다.
‘오버클럭, 저번에 허건섭한테 들었지.’
시간 소모가 많은 시험 때, 수험생 전체가 오버클럭 모드로 진행해서 짧은 시간 안에 게임을 마무리하게 되는데.
이 접속 종료 억제기라는 장치는, 그런 오버클럭을 이용해서 상대의 접속 종료를 억제하고 있었다.
띠링-!
[로그아웃 진행 중…….]
[1%…….]
‘종료될 때까지의 시간을 어마어마하게 늘려서 억제하는 거구나.’
비유하자면 의도적으로 로딩 시간을 엄청나게 늘리는 것과 같았다. 대현은 이근희와 대화했던 기억을 떠올렸다.
-레기온 성은 이번 일을 완벽하게 해낼 수 없을 거야.
현재의 성은 도파민 다운로더의 존재를 알아도 제대로 된 대처를 하지 못할 것이다.
이게 이근희의 주장이었다.
‘명확한 제도가 잡히기 전까진 시간이 걸릴 테니까.’
이 아이템은 그런 상황을 대비한 물건이었다.
파킨-!
물론, 사용한계가 2명인 나머지 쓰자마자 파괴되었지만…….
‘이 정도면 충분하다.’
레기온에 보고를 한 뒤, 그쪽 병력을 설득시켜서 움직여야 하는 수고를 덜은 셈이었다.
대현은 둘을 어떻게 데려갈지에 대해 고민하다가 잠시 밖으로 나왔다. 동작이 자유로운 이하린에게 부탁하기 위함이었다.
“그래? 나도 방금 한 명 잡긴 했는데…….”
때마침.
이하린도 태무진에게 접속 종료 억제기를 사용한 참이었다.
굳이 귀띔해주지 않아도 잡은 걸 보아하니, 기존의 의심 리스트에 있던 모양이었다.
“여기 주인이랑, 아까 투기장에 있던 사람까지 2명? 처음부터 많이 잡았네?”
“응, 여기 다운로더 하나도 챙겼어.”
고대현이 붉은색 보석을 들어 올리자 태무진이 발작한다.
“그, 그거 줘!! 당장!”
하지만 종료 불가능 상태에서 이하린에게 맞았기에, 그도 손돌과 마찬가지로 신경 부하의 늪에서 허우적거리고 있었다.
대현은 느리게 다가오는 공격을 피하면서 말을 이었다.
“모을 건 다 모았으니까 슬슬 가볼게.”
“성으로?”
“응, 애초에 이거 효과도 제한적이잖아. 풀리기 전에 만나봐야지.”
이하린도 대현의 말에 동의했다.
“그럼 다녀와.”
자신의 캐릭터는 레이나프라를 떠날 수 없게 설계되었노라고.
3명을 줄로 속박하고 재갈까지 물려서 건네준 이하린이 눈웃음을 지으면서 말한다.
‘제한이 있는 건가?’
대현은 이하린이 속해 있는 ‘틈새’를 상기했다.
‘거기를 성으로 두고 접속한 거라면, 확실히 못 벗어날 수도 있긴 하겠네.’
이근희가 굳이 자신을 시켜서 일을 이행하는 이유를 어렴풋이 눈치챌 것도 같았다.
‘그건 그렇고…….’
“너, 그런 모습으로 웃으면서 말하니까 좀 징그럽네. 무섭기도 하고…….”
“아, 듣고 보니 이 모습이었구나…….”
뒤늦게 인식 저해 상태라는 걸 알아차린 그녀가 인식 저해를 해제한다.
스륵.
가면을 벗자 다시 원래 상태로 돌아오는 이하린.
고대현도 이동하기에 앞서, 착용했던 가면을 벗었다.
인식 저해가 풀림과 동시에 묶여서 이 광경을 보고 있던 태무진의 눈이 동그랗게 커졌다.
“너, 너는?!”
하슬란과 같이 왔던 것을 기억한 모양이었다.
“자세한 이야기는 가서 합시다.”
대현은 세 명의 남자를 둘러맨 채 레기온 성으로 향했다.
“역시 괴물이야…….”
그 모습을 뒤에서 보던 이하린이 나지막하게 중얼거렸다.
* * *
접속 종료 억제기는 시간제한이 있다.
따라서 고대현은 곧장 레기온 성에 들르기로 했다.
사람 위에 천을 덮어서 이동하니까 그냥 큰 짐으로 인식하는 경우가 대다수였다. 하지만, 중간중간 몸을 비트는 투기장 주인 때문에 귀찮은 일이 몇 번 발생한 나머지, 워프 게이트를 타기 힘들어졌다.
‘일부러 시간을 버는 건가?’
한국 대륙의 곳곳에 숨어 있는 반한 연합한테 들키면 일에 차질이 생긴다. 대현은 조용한 루트로 이동하고자 마음먹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보니까 이쯤에서 부르던데.’
그가 도착한 곳은 태해란이 그리핀을 불렀던 곳과 흡사한 지역이었다.
‘그런데……, 여긴 뭐가 이리 많지?’
대현은 거대한 짐을 들고 이동하다가 비행형 몬스터들이 묶여있는 장소를 발견했다.
공중 기사단이 탈것을 길들이기에 앞서, 와일드 개체를 포획하고 속박시킨 장소였다.
“여기는 일반인이 오시면 안 됩니다.”
가까이 가서 구경하자 공중 기사단 소속으로 보이는 사람이 와서 저지한다. 고대현은 모든 몬스터의 위에 떠 있는 상호작용 – F 표시를 보면서 입맛을 다셨다. 한 번에 길들이는 게 가능한 그였기에, 더욱 아쉬움이 느껴졌다.
크르륵.
철컹철컹!
그때였다.
구석에 속박을 다른 개체보다 과하게 당한 몬스터가 난동을 부린 것은.
“저기 구석에 있는 애는 뭐죠?”
“아, 저 개체요?”
와이번과 드래곤의 교잡 개체인 ‘와이곤’인데.
보다시피 성질이 사나워서 길들이기 쉽지 않다고.
기사 대행이 당장 신분은 낮을지라도, 졸업하고 본격적으로 활동을 시작하면 금방 지위가 높아지기에.
가까이에서 고대현의 기사 대행 엠블럼을 본 공중 기사단원이 친절하게 설명했다.
“그럼, 제가 길들여봐도 될까요?”
“저놈을요? 쉽지 않을 텐데…….”
본디 안락사해서 아이템 화 시킬 예정이었지만, 길들이면 이득이긴 했다.
와이곤은 적당한 크기에 날개가 많아서 기동력이 좋으니 말이다. 하지만 교감 난이도가 극상인지라 쉽지 않을 거라 여겼다.
펄럭!
“이거 제가 타고 가도 되죠?”
그래서였다.
그가 곧장 와이곤을 컨트롤한 고대현을 보면서 놀란 이유는.
“어, 어떻게……?”
뭐라 질문할 시간은 없었다.
곧장 날아오른 고대현이 와이곤과 함께 하늘 저편으로 사라졌으니까.
“거참…….”
뭐가 되었든 간에 포획한 몬스터가 사라졌다.
그가 하슬란에게 이 일을 보고하고도 혼나지 않는 건 몇 시간 뒤의 일이었다.
* * *
당장 레기온 성주를 만날 권한이 고대현에게는 없었다.
‘만만한 건 정태룡 정도인가?’
일전에 문자를 보낸 것도 있으니.
성에 도착한 대현은 곧장 정태룡을 찾아갔다.
“잠시만요. 아직 수업이거든요.”
하지만, 당장 만나서 이야기를 할 수는 없었다.
‘수업이라고?’
물어보니까 4수호기사 중에서도 1위에 위치한 박하성이라는 사람이 정태룡의 과외를 봐주고 있다고 한다.
‘불타는 게임 사교육 현장이네.’
대현은 억제기의 시간을 진행을 확인했다. 아직 6% 정도로, 매우 느린 수준이지만 기다리고 있자니 답답함이 올라왔다.
중간에 다른 사람을 만나서 보고해볼까도 생각했다.
-내가 알기론 반한 연합은 성 내부에도 있어.
-레기온 성에도요?
-그렇게 자세하게는 몰라. 그래도 10개의 성 중, 한두 명 정도는 있을걸?
그러나 아웃라인에서 했던 대화가 떠오르는 바람에 섣불리 실행할 수 없었다.
‘대충 뭐 하는 지나 봐볼까?’
대현은 시야 모드를 3인칭으로 바꾼 뒤, 수호기사 박하성과 정태룡이 있는 쪽을 비췄다.
벽 너머에 있었지만, 확대하고 스피커의 출력을 높이니 몰래 보는 듯한 효과가 나타났다.
“좀 더 비틀 듯이 쏴야 합니다.”
“으음, 잘 안 되는데…….”
“팔에 지지하는 힘이 부족하신 듯합니다만?”
“흐음.”
정태룡은 기술의 숙달 및 다음 단계로의 발전에 벽을 마주한 상황이었다. 계속해서 굴절활 비술의 다음 단계인 다중 굴절활 구현에 실패한다.
연사를 하면서 방향을 비틀어야 하는데, 한 발을 쏘고 또 쏘는 과정에서 딜레이가 발생하면서 정확도가 떨어지고 있었다.
‘─!!’
그때.
보고 있던 고대현의 뇌리에 패밀리어 등록이 스쳐 지나갔다.
“저거 그냥 내가 도와주면 될 것 같은데?”
시간이 정해져 있기에.
생각의 이행은 빠르게 이루어졌다.
고대현이 문을 활짝 열고 연무장 안으로 진입한다.
“대현?”
“음? 누구?”
둘의 시선이 고대현에게 닿았다.
“제가 보조해줘도 될까요?”
“보조?”
박하성의 눈이 동그랗게 커졌다. 그는 고대현을 천천히 살폈다.
‘그러고 보니 신규 기사 대행이 있었다고 그랬지.’
한창 야나 이바노프가 침략전을 들어왔을 때, 박하성은 접속하지 않았다. 다른 중요한 곳으로 레이드를 갔기 때문이었다. 성으로 복귀했을 때 상황은 이미 끝나 있었다.
“어떻게 보조를 한다는 거지?”
그래서일까.
‘과연 나도 못 한 걸 어떻게 한다는 건지…….’
쉬는 시간도 겸비해서.
박하성은 기분 나쁨보단 흥미로운 시선으로 고대현을 응시했다.
그러는 한편.
“좀 더 팔에 신경 지구력을 집중하면서 쏴야 해.”
“신경 지구력?”
사실상 박하성이 했던 말의 답습이었지만.
고대현은 정태룡을 가르치는 척하면서 패밀리어 등록창을 조작했다. 2명이 최대였던 슬롯이 꽉 찼다.
[패밀리어가 등록되었습니다.]
[정태룡 : 신경 지구력 20% 계약]
[추출 중.]
띠링─.
[컨트롤 웨이브 동기화 완료. 스킬로 변환됩니다.]
-굴절활 : 탄을 굴절시켜서 타격할 수 있다.
‘이제 굴절활도 쓸 수 있겠네.’
고대현은 정태룡에게 다시 비술을 써보라고 조언했다.
“씁, 아까도 그런 소리 들었는데 안 됐는데, 이게 되려나?”
“잔말 말고 쏘기나 해.”
정태룡은 미심쩍은 표정으로 활시위를 당겼다. 구경하고 있던 수호기사 박하성도 의구심이 들긴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구태여 입 밖으로 내지는 않았다. 아이언 2라고 하던데 이런 원거리 타격을 얼마나 안다고 그러겠는가.
‘어차피 내 쉬는 시간의 볼거리일 뿐이니까…….’
핏-!!
그렇기에 다음 순간.
더욱 완벽해진 활의 궤적을 확인한 박하성의 눈이 동그랗게 커졌다.
‘내가 가르쳐줄 때는 그대로였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