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겜공역전 세계의 게임천재가 되었다-107화 (107/200)

제107화

#107화

레이나프라와 관련된 글은 전부 부정적이었다.

처음 방문하는 사람은 무조건 PK를 당한다든가.

사람들의 질이 떨어진다든가.

전부 우려를 표하거나 지역을 비방하는 내용이었다.

[여기 밤중에는 오지 마라, 음지 중에서도 음지임. PK 해서 나오는 부산물 먹을 생각만 가득한 놈들 천지. 거기에 더해서 고위급 유저 뜨면 굽신거리는 추한 곳이다.]

‘갑자기 가고 싶어지네.’

요약하자면 거친 사람만 모인 곳이라는 소린데, 그게 역으로 대현의 흥미를 자극했다. 어쨌거나 전투는 즐거운 일이니 말이다.

매일 싸우면 그만큼 실력도 빨리 늘어나겠지.

‘이하린도 여기 있다는 거 보니까, 그간의 행동이 왜 그랬는지 알 것 같네.’

이런 곳에서 만나자는 걸 보면 레이나프라가 주요 활동 장소일 터. 이하린이 게임 내부에서 보여준 동작을 상기하니 뭔가 어울린다는 생각도 든다.

‘접속 시간은 내일……, 그 전에 미리 가볼까?’

이하린과 만나기로 한 날은 주말.

즉, 하루가 더 지나야 하기에.

대현은 가상현실 헤드셋을 챙긴 뒤 접속을 시작했다.

늦었으니 짧게 하고 끝낼 작정이었다.

띠링-.

[접속을 시작합니다.]

내면의 공간 안에 있는 PC장비들.

그 중앙에 있는 모니터에 레기온 성 내부가 나타났다.

금요일 밤답게 내부에 사람이 거의 없었다.

고대현은 앞으로 이동하면서, 뒤를 돌아봤다.

접속할 때 몸이 제일 먼저 나타나는 원형 제단.

각 구역별로 지위가 표시되듯.

제단이 영역별로 나뉘어 있었다.

‘이쪽이 기사 대행이 리스폰 되는 곳인가.’

재단은 오른쪽으로 갈수록 화려하면서 거대했다.

아마 길드장이나 수호기사 급이 나타나는 장소일 것이다.

“너는 누구지?”

그때 목소리가 들려왔다.

고대현은 어깻죽지 너머에 있는 존재를 확인했다.

굳이 돌아볼 필요도 없이 3인칭 모드로.

‘누구지?’

등에 길쭉한 대궁을 메고 있는 여자가 있었다.

띠링-.

[이름 : 하슬란]

[빙의체 상태 : 양호]

[컨트롤 웨이브 : (교감)형, (탐지)형]

디텍트 아이를 통해 정보가 나타난다.

‘평범한 사람은 아니야.’

30대 정도 됐을까. 나이대가 있어 보인다.

대현은 화면 속 자신의 몸을 뒤로 돌렸다.

레기온 성 내부에 있다는 거 자체가 어느 정도 위치가 있다는 소리니까. 괜히 트러블이 나지 않으려면 이렇게 하는 게 좋겠지.

“이름과 소속은?”

이름과 소속을 물어본다.

당연하게도 아직 정하진 않았다.

접속한 지 얼마 안 되기도 했고.

“이름은 고대현이고, 소속은 아직 없습니다.”

“으음, 기사 대행인 건가?”

어느 정도 무게감이 있는 목소리.

굳이 비교하자면 사미러와 일러오이의 중간 정도랄까.

강압적인 목소리에, 고대현이 자신도 모르게 긴장할 때였다.

“음…… 아, 누군지 알겠다. 네가 그 고대현이로구나.”

표정이 풀어진다.

상대가 먼저 아는 척을 한다.

내부에 소문이 퍼진 건 진작 알고 있기에, 고대현이 침을 삼키며 가만히 있자니, 상대가 가까이 오면서 말을 잇는다.

“태해란한테 들었다. 와이번을 잘 다룬다면서?”

‘태해란한테 들었다고? 그렇다면 공중부대일 확률이 높겠네.’

고대현은 태해란한테 들었던 정보를 더듬으면서 대답했다.

“그냥 적당히 하는 수준이에요.”

“적당히? 해란이가 말하는 거로 봐선 적당히가 아닐 것 같은데.”

그렇게 대화를 이어지면서.

고대현은 얼떨결에 하슬란과 이동하게 되었다.

“나는 공중부대에서 대공 방어를 담당하고 있는 하슬란 이라고 한다.”

하슬란은 자신을 간부라고 소개했다. 듣자 하니 태해란의 직속 상관인 듯했다.

도대체 태해란이 무슨 입김을 불어 넣은 건지.

하슬란도 고대현을 자기 소속으로 넣으려는 뉘앙스를 보였다.

“아직 안 정했다면서. 그러면 이쪽으로 들어올 생각은 없어?”

“저는 이번에 북부로 가게 될 거라는데…….”

“아, 벌써 결정이 났나? 아직 정식 공문이 내려온 건 없을 텐데.”

“정태룡한테 들었어요.”

“큼, 그럼, 그럴 만도 하지.”

하슬란은 몇 가지 대화를 나눈 끝에 경쟁자가 많다고 여겼는지 혀를 찼다.

‘아깝네…….’

적은 땅으로만 오지 않는다.

오히려 땅이 포격으로 방어되는 만큼, 공중으로 들어오는 시도를 하는 나라가 많다.

그렇기에 하늘의 공백을 메우는 것.

그것이 공중부대가 라그나로크에서 담당하는 일이었고.

당연하게도 실력 있는 사람이 필요한 곳이었다.

“그래도 관심 있으면 나중에라도 오렴. 날아다니면서 방어하는 것도 나름 재미있으니까.”

갈 곳이 있는 듯.

이제야 손을 흔들면서 헤어질 준비를 하는 하슬란.

그녀가 발걸음을 돌리며, 별생각 없이 입을 열었다.

“그나저나 넌 어디 가려고 이 시간에 접속한 거니?”

“레이나프라요.”

“레이나프라??”

하슬란이 눈을 동그랗게 뜬다.

“그건 의외네. 나도 지금 거기에 가려던 중이었거든.”

“진짜요?”

고대현도 목소리를 높이며 반응했다.

‘우연의 일치치고는 너무 겹치잖아? 일부러 거기 간다고 하는 건 아니겠지?’

그때.

“내가 태워다줄게. 일단 가면서 이야기하자꾸나.”

자신의 탈것에 태워주겠노라고.

하슬란이 입꼬리를 올리면서 손짓했다.

‘흠, 그러고 보니 워프게이트로 이동하는 것도 귀찮겠네.’

고대현은 고민하다가 찬성했다.

신경 지구력의 영향을 덜 받는다 하더라도, 지루하게 키보드를 누르고 있는 것은 별로였으니까.

그는 하슬란을 뒤를 따라갔다.

의외의 동행이 결정된 순간이었다.

* * *

휘잉─.

바람이 스쳐 지나가는 소리가 스피커를 통해 흘러나온다.

현재 있는 위치는 구름과 비슷한 고도의 상공.

고대현은 와이번을 타고 칠흑 같은 어둠의 위를 날고 있었다.

“검날 흘려내기를 익혔다고? 선호도가 꽤 낮은 걸 골랐네.”

이전의 이야기를 이어나가면서 이동하자, 자연스레 골랐던 스킬에 대한 질문이 오갔다.

하슬란은 고대현이 고른 검날 흘려내기에 관심을 가졌다.

그녀는 고대현이 신경 지구력이 좋다는 것과 테이밍을 잘한다는 사실만 알고, 나머지는 잘 몰랐다.

특히 검날 흘려내기는 고르는 사람만 고르는 스킬이었으니, 질문을 안 할 수 없었다.

“제가 검날 흘려내기를 좀 잘해서.”

“그 정도야? 괜히 궁금해지네.”

어지간하면 멀리서 저격하거나 스킬을 발사하기 때문에, 주변에는 좀처럼 쓰는 사람이 없다고.

회상하듯이 말한 그녀는 돌연 오른쪽 하늘을 가리켰다.

“저쪽 보이지? 저기가 중국 대륙이랑 붙는 구역이야. 내 주 활동무대기도 하고.”

“힘들겠네요.”

원래 세계에서도 중국 유저는 인구수가 과할 정도로 넘쳤다.

원래 세계는 서버가 나뉘어 있어서, 그나마 마주치는 일이 적었지만.

여기는 그런 게 아니니까.

그 엄청난 인구수를 직접 체감하겠지.

“어, 특히 땅이 안되니까 하늘로 들어오려는 사람이 많거든. 라그나로크가 시작되면, 하늘이 조용할 새가 없어.”

“보통 몇 명 정도 상대하세요?”

“첫 시작에 선발대가 와. 보통 여기서 그 시즌의 라그나로크 난이도가 정해지지.”

모든 대륙이 합해지고.

접경지 부분의 병합이 완료된 뒤.

지휘관들은 선발대의 규모에 따라 상대의 전략을 파악한다.

일정 라인이 뚫리기 전까지는 어떤 스킬을 써도, 접경지를 넘어올 수 없기에, 선발대의 규모를 보고 장기전으로 갈지 단기전으로 갈지 판가름이 난다.

하슬란이 고삐를 잡으며 말을 이었다.

“작년에 왔던 중국 선발대가 5억 명 정도였을 거야.”

“5억이요?”

5억.

원래 세계에서는 아무리 큰 공성전을 하더라도 볼일 없는 숫자였다.

고대현이 중국의 규모에 감탄하고 있으니, 하슬란이 웃으면서 덧붙인다.

“선발대가 저 정도고, 나중에 본대가 합류하면, 총합 10억은 넘어.”

“10억…… 그거 방어가 가능하기는 한 건가요?”

“하하, 괜찮아. 오히려 대륙 크기에 비해 인구가 너무 많아서 그런가. 개인이 가지는 힘은 좀 약한 편이거든. 자원은 한정적인데 분배가 균형적이 않은 탓이지.”

다행히도 고위급 스킬 몇 방이면 많은 교통정리가 이루어진다고 한다.

“그리고 인도 대륙이 우리랑 동맹이거든. 그쪽에서 도와주니까 걱정 안 해도 돼.”

“아, 인도가…….”

인도는 중국 못지않은 대국이다.

인도가 동맹이라고 하니까 단번에 이해가 된다.

“레이나프라는 단순히 둘러보려고 온 거라 했지?”

“네.”

“난 지금부터 지하 투기장에 갈 생각인데, 넌 어쩔 거니?”

고대현은 적응형 퀘스트에 있던 투기장 5연승 항목을 떠올렸다.

‘어차피 해야 하는 거면 이참에 보는 게 좋겠지?’

안내해 주는 사람도 있겠다, 지금 그녀를 따라나서는 게 좋을 것이다.

속으로 결심을 마친 고대현이 단축키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따라와.”

펄럭─.

와이번이 땅에 착륙한다.

어느새 레이나프라에 도착한 상태였다.

금요일 밤이라서 그런 걸까.

사람이 거의 없었다.

“한산하네요.”

“그래? 난 많은 게 느껴지는데.”

“네?”

대현은 하슬란의 말에 주변을 다시 둘러보았다.

낙후된 건물들이 자리하고, 드문드문 수풀이 있을 뿐.

역시나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탐지계로 본 건가?’

문득 디텍트 아이로 확인했을 때, 하슬란의 정보에 탐지형 컨트롤 웨이브가 있던 게 떠올랐다.

이를 증명하듯.

“지상이 아니라 지하야.”

하슬란이 특정 건물의 입구를 가리키면서 발걸음 옮겼다.

낙후된 문을 통과한 뒤.

아래로 계단을 밟고 내려가자 주황색 스포트라이트와 함께 사람들이 모여있는 게 눈에 들어온다.

띠링띠링─.

디텍트 아이를 통해서 정보가 들어온다.

사람들이 밀집해 있는 탓에 모니터로 보이는 시야가 더러워진다.

‘잠시 꺼놔야겠네.’

고대현이 디텍트 아이의 가동을 중지하는 사이.

하슬란이 입구를 지키는 사람에게 일정 비용을 지불한다.

그녀는 고대현을 이끌고 좌석으로 향했다.

“이쪽이야.”

“여기는……?”

뒤늦게 설정을 마치고 따라온 고대현.

그는 갑자기 거대해지는 주변 풍경에 눈을 동그랗게 떴다.

마치 드래곤의 둥지처럼 웅장하게 파인 동굴의 중앙.

콜로세움의 맨 위 좌석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듯.

가운데의 결투장을 수천 개의 계단식 좌석이 감싸 안고 있었다.

고대현은 웅성이는 사람들 사이로 이동했다.

“지나가요.”

“어, 어……?”

중간중간에 버티고 서 있는 사람도 있었지만, 전부 밀려났다.

이에 몇 명이 얼빠진 얼굴로 고개를 돌렸다.

고대현은 신경 쓰지 않고 하슬란에게 말했다.

“그런데 여기에 볼일이 있으셔서 왔다고요?”

“어.”

어느새 후드를 눌러쓴 그녀가 정해진 좌석으로 향한다.

밀집된 사람들 사이를 비집은 끝에, 대현은 지정 좌석에 앉을 수 있었다.

‘전부 고위급은 아닌 것 같네.’

자리에 앉은 뒤.

사람들의 면면을 살핀 고대현이 맨 처음으로 내린 감상이었다.

“내가 오늘 여기 왜 왔게? 맞춰봐.”

옆에 있던 하슬란이 다리를 꼬면서 말했다.

그녀는 처음부터 이곳에 올 목적이었다고 했다.

“글쎄요…….”

고대현이 말끝을 흐리자 하슬란이 한숨을 푹 쉰다.

“사람을 찾으러 왔어. 아주 멍청한 짓을 하는 놈이 있거든.”

“사람이요?”

무슨 일일까.

고대현이 고민하고 있을 순간.

하슬란이 의미심장한 말을 던진다.

“네 친구랑 관련된 일이니까 곧 알게 될 거야.”

‘친구?’

그때였다.

와아아-!!

거대한 함성 소리와 함께 100명의 참가자가 모습을 보였다.

띠링─.

나타난 것은 참가자뿐만이 아니었다.

고대현의 앞에 추가적으로 홀로그램 창이 나타났다. 하슬란의 앞에도 창이 있었다. 시스템적인 창이 아닌, 콜로세움 시스템에 의한 창이었다.

‘이건……?’

고대현의 미간이 좁혀졌다.

[예측 게임]

[남은 생존자 수 10 이하 or 10 초과]

[이하]

-18%

배율 1:5.5

[초과]

-82%

배율 1:1.2

[50초 후 제출이 마감됩니다.]

베팅을 하는 시스템이었다.

관중들의 선택에 따라 배율과 걸린 코인이 요동친다.

고대현은 일단 아무것도 걸지 않았다.

단순하게 상황을 지켜보고 할 생각이었다.

하슬란도 돈을 걸지 않았다.

그렇기에 고대현은 신경 쓰였다.

‘뭐지?’

그녀는 친구와 관련된 일이라고 말했었다.

고대현의 머릿속에 생각나는 거라곤 이하린 밖에 없었다.

‘설마 이하린을 알고 있고, 여기서 활동하는 건가?’

추측이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얼마나 지났을까.

이러한 고대현의 의문이 해소된 것은.

무기와 스킬 없이하는, 다소 원초적인 데스매치 게임이 끝난 후.

하슬란이 어딘가로 성큼성큼 걸어가서 누군가의 멱살을 잡았을 때였다.

“이런! 망할 정배들이! 응? 윽! 뭐야, 당신 누구야!?”

“역시 여기에 있었군.”

하슬란이 으르렁거리며 입을 열었다.

“자식이 번 돈을 여기에 전부 탕진하다니.”

태해란과 투기장.

그의 뇌리에 경리단과 태해란이 했던 대화가 스쳐 지나간다.

그제야 사건의 전말을 이해한 고대현이 속으로 중얼거렸다.

‘태해란의 부모님이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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