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05화
#105화
“나중에……, 나가서 이야기해.”
이하린이 저번처럼 궁금해한다.
그래도 이번에는 바로 물어보지 않았다.
그녀는 갑자기 안긴 게 어색한 건지 거리를 유지하고 있었다.
‘뭘 설명해도 힘들겠네.’
비술을 사용한 건 의외로 해명이 쉬울 것이다.
저번에 거짓말을 섞어서 말했던 이론에 약간의 변주를 주면 되는 일이니 말이다.
‘대충 범단월이랑 비슷한 과라고 하면 되겠지.’
범단월의 특기는 복사.
이미 선례가 있으니 이어지는 반박도 차단할 수 있다.
‘문제는…….’
그걸 껴안는 방식으로 사용했다는 점이다.
왜, 굳이, 안아버렸는가.
이게 몇 분 뒤.
현실의 고대현이 이하린에게 설명해야 하는 부분이었다.
‘쉽지 않네.’
[생존자 결산이 시작됩니다.]
그때 생존자 결산을 알리는 문구가 나타남과 동시에 처음에 수업 내용을 알려주던 장소로 몸이 이동되었다.
화면이 전환되고 평원이 나타났다. 4분의 1 정도 남았을까.
주변은 한산했다. 처음과 비교하니 인원이 엄청나게 줄었다.
대현은 3인칭 모드로 주변을 둘러봤다.
이번에 얻은 디텍트 아이 시스템 덕분에 학생들의 정보가 나타났다.
[이름 : 이밀훈]
[빙의체 상태 : 보통]
[컨트롤 웨이브 : 없음]
‘이 사람은 비술이 없는 거구나.’
이하린을 대상으로 몇 가지를 써보니, 정보를 어떻게 파악해야 할지 감이 온다.
그렇게 정보를 살피던 중.
“다들 수고 많았다. 이런 방식의 요새 방어전은 처음일 텐데 잘 버텨줬어. 내 예상을 뛰어넘는 실적을 낸 사람도 있고 말이야…….”
단상에서 서 있는 신영범 학년 담임의 시선이 40반 쪽으로 향한다. 상위권반 아이들의 시선도 뒤따라서 40반으로 향했다.
이번 평가전에서 EX 등급을 받은 40반.
1순위도 아니고 EX면 무슨 짓을 한 걸까.
동료를 잘 서포트 해줘서 협동 점수라도 준걸까?
최대한 방어했음에도 2~3등이 전부였던 그들은 이해할 수 없었다.
“뭐지? 40반이 EX등급에, 생존자가 고대현이라고?”
특히 임상배가 그러했다.
보조교사와 1대 1로 붙어서 살아남은 임상배는, 그 괴력과 강함을 아주 잘 알고 있었다.
고대현의 신경 지구력은 입학 전 그린 인페르노 전에서 봤으며.
자신의 예상보다 훨씬 높은 수준이었지만.
‘그 딱딱한 동작으로는 못 이길 텐데.’
기술적인 측면에서, 고대현이 이길 수 있는 상대가 아니었다.
도끼의 동작과 유연함.
그 완성도.
그런 걸 구현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임상배는 보조교사의 정체에 대해 추론했다.
‘한국 대륙이 영토를 확장하던 시기……. 요새 점령전에서 활약하던 돌격대장이라고 보는 게 유력해.’
물론 현재는 메타가 바뀌면서 선호도가 크게 하락했고.
당시의 구성원들은 나이를 먹어서 에이징 커브가 왔지만.
아무리 그래도 고대현에게 진다는 모습은 상상할 수 없었다.
임상배에게는 무기력한 모습의 고대현이 더 익숙했으니까.
“40반은 이번 평가전에서 보조교사를 이겼다.”
그렇기에 신영범 학년 담임의 입이 열린 순간.
그는 자신의 귀를 의심하는 수밖에 없었다.
“응? 뭐, 뭐라고??”
웅성웅성.
저마다 믿기 힘들다는 듯 떠드는 소리.
보조교사를 한 번이라도 상대해본 이들에 의해서.
주변이 단숨에 소란스러워진다.
이중 에는 전지수도 포함되어 있었다.
“이겼다고? 어떻게……?”
1반마저도 버티는 게 전부였고, 한 명이 남았을 뿐.
교사를 아웃시키는 건 그녀로서도 상상하지 못할 일이었다.
“40반은 단상 앞으로 나오도록.”
신영범은 40반을 호명했다.
상상 이상의 일을 해냈으니.
다른 반에게 자극도 줄 겸.
노고를 치하할 생각이었다.
“넵.”
별안간 고대현과 이하린이 앞으로 걸어 나온다. 시선이 집중된다. 보고 있던 이들은 다시 한번 놀랐다.
“저 녀석. 눈이……?”
“저 정도면 움직이기 힘든 레벨 아닌가? 용케 버티고 있네.”
초록색으로 표현된 상처는 각 부위의 신경 부하를 늘리는 역할을 한다.
고대현은 현재 눈이 보이지 않고, 온몸이 초록색인 상황이었다.
그는 각 신경 부하가 강해져서 움직이기 힘들어 보일 정도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반면 이하린은 고대현만큼 큰 상처가 없었다.
실제로는 합공이었지만.
누가 봐도 고대현이 전열에서 싸운 것처럼 보였다.
‘살아남은 애들은 강하다는 거겠지?’
한편, 이동하던 대현은 학생들의 정보를 확인했다.
디텍트 아이로 확인하면 될 뿐이니 큰 수고는 없었다.
마우스로 이동장소를 지정해놓고 읽고 있자니 전지수의 정보가 눈에 들어온다.
[이름 : 전지수]
[빙의체 상태 : 나쁨]
[컨트롤 웨이브 : (탐지예측)형, (????)형]
‘응? 2개네?’
전지수는 2개의 비술을 가지고 있었다.
탐지 쪽은 OT 때 같은 조를 하면서 알고 있었지만.
물음표가 가득한 건 처음 보는 것이었다.
‘전지수가 저런 걸 쓴 적이 있었나?’
물음표 비술의 정체는 무엇인가.
고대현은 문득 궁금해졌다.
너무 고급이라서 정보조차도 읽을 수 없는 걸까.
잘 모르겠지만 기간티아 성주의 딸이니, 2개쯤 있는 게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여하튼.
중요한 건 전지수와 패밀리어를 맺으면 저걸 20%만큼 쓸 수 있다는 점이었다.
‘1반 애들 위주로 패밀리어를 해야겠네. 저 물음표도 내가 써보면 뭔지 윤곽이 나오겠지.’
그쯤, 대현은 신영범 학년 담임의 앞에 도착했다.
띠링─.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 정보가 나타난다.
[이름 : 신영범]
[빙의체 상태 : 양호]
[컨트롤 웨이브 : 없음]
대현은 미간을 좁히며, 모니터를 향해 상반신을 숙였다.
신영범 학년 담임의 비술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었다.
‘없다고?’
비술이 없다는 건 정직하게 검술로만 승부를 봤다는 의미였다.
기교 없이 기본기만으로 저 경지에 이르렀다는 건가? 신선한 충격이 느껴진다.
‘소설에 기본 검술만 극도로 수련해서 고수를 이기는 내용이 가끔 나오긴 했는데…….’
대현이 멍하게 보고 있자니.
“허허…….”
신영범도 대현을 내려다보며 표정을 굳혔다.
그는 검사답게 고대현의 세세한 움직임에 주목하고 있었다.
‘눈이 안 보이면 주저하는 게 있을 텐데. 움직임에 전혀 머뭇거림이 없다.’
야나 이바노프의 몸에 기록석을 달아뒀으니.
그녀가 보는 시각으로 된 전투 기록 영상이 있을 것이다.
신영범은 침을 꿀꺽 삼켰다.
야나 이바노프의 전투 장면이 기록된 영상을 보고 싶다는 게, 현재 그가 가진 가장 큰 욕구였다. 아, 빨리 보고 싶다.
“─모두 입학 성적이 낮았지만 노력해서 유종의 미를 거둔 40반을 본받거라.”
신영범은 훈화를 빠르게 마쳤다.
그리고 대현과 하린을 보면서 입을 열었다.
“둘은 방과 후에 잠시 교무실로 오렴.”
각각 모니터링하면서 이참에 제대로 봐주겠노라고.
속으로 다짐한 그가 웃으면서 말했다.
대현도 큰 저항 없이 단축키로 고개를 끄덕였다.
끝나고 이하린과 어색하게 대화할 바에 상담이나 하는 게 좋겠지.
“넵.”
그렇게 대현의 대답과 함께.
별안간 수업은 끝이 났다.
* * *
접속을 종료한 직후.
대현과 하린은 한껏 환호를 받았다.
갑작스레 성이 무너져서 코인도 다 날리고 평가전도 망치는 게 아닌가 싶을 찰나, 보조교사를 이기면서 EX등급을 달성했으니 당연한 반응이었다.
허건섭이 스크린에 나타난 정보 공시를 보면서 입을 열었다.
“EX는 1등보다 점수를 많이 준다더라고.”
“다행이네. 안 그래도 성이 다 무너져서 다시 지어야 했는데.”
EX등급을 받았으니 다음 전략도 짜야 한다.
성이 무너진 것도 다시 짓고 해야 하니까.
40반 아이들이 대화를 나눌 때였다.
“둘이 무슨 일 있었어?”
눈치가 빠른 유금옥이 고대현과 이하린을 보면서 질문했다.
이하린이 대현의 옷깃을 꾹꾹 잡아당기고 있고.
대현은 이를 모른 척하면서 시선을 돌리는 중이었다.
“아, 응? 아, 아무것도 아니야.”
이에 손사래를 치면서 고개를 젓는 이하린.
유금옥은 그녀의 과한 리액션이 이상함을 느꼈지만.
마침 금요일이고 이기기까지 했으니 크게 신경 쓰지 않기로 했다.
꼬르륵.
사실, 그보다 주린 배를 채우는 게 우선이었다.
시계를 보니 어느새 점심시간이었다.
“밥이나 먹으러 가자.”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됐네.”
“오늘은 뭐 먹지?”
“글쎄다. 어차피 평가전 코인 많이 받으니까 비싼 거로 먹어도 되지 않겠냐?”
40반은 곧장 학생 식당으로 이동했다.
오전동안 수고한 탓에 그들의 발걸음은 빨랐다.
초반에 따로따로 이동하던 걸 생각하면 많이 친해진 상황이었다.
한편.
‘조용하네…….’
이동하면서.
대현은 곁눈질로 다른 반의 내부를 살폈다.
복도가 한산하다. 다들 성을 방어하느라 고생 좀 했는지.
축 처진 채 누워있거나 가만히 앉아 있는 사람이 많았다.
“어, 쟤는─.”
그 중엔 대현을 알아보고 고개를 돌리는 사람도 있었다.
단상에서 봤던 기억 때문인지. 예전과 비교했을 때 보는 시선들이 꽤 달라져 있었다. 그렇게 복도 중앙에 있는 계단으로 이동할 때였다.
“벌써 밥 먹으러 가는 중? 빠르네.”
“정태룡?”
갑자기 1반 애들이 합류했다.
정태룡을 필두로 조지아, 범단월, 태해란, 전지수까지.
1반과 40반의 조합은, 자연스레 합석까지 이어졌다.
테이블이 순식간에 10명의 인원으로 가득 찼다.
“왜 갑자기 1반 애들이 우리랑?”
“그러게.”
소곤소곤.
이태원과 허건섭은 어색한 표정을 지었다.
1반의 정태룡은 레기온 성주의 아들이며.
옆에 있는 전지수는 기간티아 성주의 딸이다.
나머지 아이들도 그 후원을 받는 쟁쟁한 라인의 학생…….
저 정도 구성원들이 40반과 합석하다니.
참으로 이상한 일이었다.
‘그러고 보니…….’
반면.
유금옥은 영상을 다루면서 상황을 알고 있기에 크게 개의치 않았다. 그냥 그러려니 할 뿐.
이는 대현과 하린도 마찬가지였다.
고대현은 이미 1반과 아는 사이인지라 신경 쓰지 않았고.
와구와구.
이하린은 음식을 먹느라 앞을 보지도 않았다.
그렇게 약간의 정적이 오가는 와중─.
“단도직입적으로 물어볼게.”
정태룡이 입을 열었다.
“어떻게 이긴 거야?”
그녀는 현재 레기온 성 지하 감옥에 있기에.
정태룡은 보조교사의 정체가 야나 이바노프인 것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알고 있는 만큼, 야나의 무력에 대해서도 숙지하고 있었다.
‘북부 요새를 먹으면서 신영범 선생님도 상대할 정도였는데 이긴다고?’
그래서 이해되지 않았다.
던전에서 보여준 고대현의 실력은 어마어마한 것이었으나.
일전의 수업은 감마 스트라이크 없이 순수하게 맞붙는 대결이었으니까.
“어떻게 이기긴.”
그때였다.
고대현이 숟가락을 멈추고 옆을 가리킨다.
이하린이 있는 방향이었다.
“내가 힘 좀 빠지게 만들고, 쟤가 파파박! 해서 이겼지.”
“그래??”
40반의 생존자는 두 명이었다. 이를 전지수를 통해 전해 들은 정태룡은 이하린을 응시했다.
‘처음 보는 앤데…….’
정태룡은 항상 특별하다 싶은 사람들을 주시했다.
이하린은 아직 그의 데이터상에 없는 인물이었다.
‘대충 막타 친 건가?’
때문에, 정태룡은 그러려니 하면서 고개를 돌렸다.
그의 시선은 고대현에게 향하고 있었다.
어쨌거나 직접 상대해서 이긴 거면 평범한 일이 아니니까.
‘역시, 최근 후원한 사람 중에 제일 아웃풋이 좋군.’
단체 레이드 사건 이후.
정태룡은 어머니인 레기온 성주에게 압박을 받고 있었다.
레이드 도중 3명이 탈락했는데, 제대로 보고 고른 게 맞냐면서 말이다. 특히 기사 대행은 성의 이미지도 좌우할 수 있기에, 그의 어머니는 해당 일을 쉬이 넘기지 않았다.
‘그나마 고대현 때문에 체면이 섰지.’
레기온 성주는 고대현이 졸업했을 때 정식으로 스카우트 할 생각을 하고 있었다. 티어로 말은 많지만. 실력을 보니 검과 총, 둘 다 잘 다루는 것 같고.
이번 정규전에서 티어를 꽤 높이 올릴 수 있을 것 같다면서 말이다.
‘랭크전이 열리는 시기가 라그나로크 전이었지 아마?’
마인드 오버클럭 상태로 열리는 정규전.
그곳에서 티어를 갱신하고 그대로 북부전에 참가해서 공을 세우면 완벽한 그림이었다.
“저기.”
“왜, 뭐 원하는 거라도 있어?”
그렇기에.
자신의 깍듯한 태도에 옆에 있던 애들이 놀라든 말든.
정태룡은 최대한 대현의 편의를 봐주기로 했다. 내년에 계약을 파기하고 다른 성으로 갈 수도 있는 노릇이니 말이다.
그런 정태룡에게.
“대리기사, 아니, 기사 대행 한 명 더 받을 생각 없냐.”
고대현은 문득 떠오른 생각을 말하기로 했다.
가이아 얼라이언스에서 해야 하는 패밀리어 퀘스트.
그거 무려 50시간을 같이 있어야 하고.
던전 레이드도 가야 한다.
매주 수업으로는 택도 없지.
그러니까.
이하린까지 데려와서 동시에 진행하면 개꿀 아닌가?
“쟤한테 자리 하나 줘라. 네 생각보다 훨씬 강하니까.”
쿨럭.
그러자 음식을 먹고 있던 이하린이 기침을 하면서 고개를 돌린다.
그녀의 목덜미가 붉게 물들었다.
모두의 시선이 정태룡에게 집중된 가운데.
그가 머리를 긁적이면서 창밖을 응시했다.
“그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