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04화
#104화
‘패밀리어와 핸들러라…….’
일종의 계약 관계인 것 같았다.
대현은 글귀를 유심히 뜯어보며 스크롤을 내렸다.
[효과]에 대한 내용이 추가로 있었다.
[패밀리어의 싱크로율을 부담한 만큼, 패밀리어의 컨트롤 웨이브를 복사할 수 있습니다.]
‘패밀리어의 싱크로율을 부담? 그라운드 제로에서 대신 짐 드는 거랑 비슷한 건가?’
일단 싱크로율을 부담한다는 표현은 이해가 간다.
심상력, 신경 지구력, 동작 구현.
이 세 개가 합쳐져서 싱크로율을 구성하니까.
예의 셋 중 하나를 부담한다는 거겠지.
요컨대 패밀리어가 스킬을 쓰는 데 100의 힘이 들면, 80의 힘만 쓰게 만드는 것이었다.
일종의 버프라고 봐도 좋았다.
‘나는 PC모드니까 내가 부담해도 큰 차이는 없겠네.’
20%를 부담해도 손해는 없어 보인다.
대현은 짧은 시간 내에 싱크로율 분배기에 대해 이해했다.
매일 다양한 스킬을 살펴보던 그에겐 쉬운 일이었다.
‘그리고 컨트롤 웨이브 복사는…….’
시선을 돌려서 다시 디텍트 아이로 이하린의 정보를 본다.
[이름 : 이하린]
[빙의체 상태 : 과부하]
[컨트롤 웨이브 : (소멸 간섭)형]
컨트롤 웨이브는.
확실하진 않지만 비술을 의미하는 것 같았다.
‘야나가 쉽게 질 리 없는데 진 걸 보면 감이 온다.’
옆에서 봤을 때, 대현은 야나의 몸이 갑자기 축 처진듯한 기분을 느꼈다.
‘애초에 이름부터 컨트롤 어쩌고니까.’
컨디션에 문제가 생겼거나 제한이 걸린 게 아니라면 예측이 맞을 확률이 높았다.
‘그래도 직접 물어보는 편이 정확하겠지.’
대현은 이하린에게 발걸음을 옮겼다.
상대의 것을 복사하는 시스템이니 [등록]을 해보면 저절로 답이 나올 것이다.
“후으, 후…….”
한편, 이하린은 아직도 숨을 가다듬고 있었다.
그녀는 한창 몸에서 나오는 파장을 억제하는 중이었다.
‘왜 여기 있는 거지?’
야나 이바노프가 왜 이곳에 있는지 모르겠다. 예상치 못한 상대를 만난 탓에 감정이 쉬이 가라앉지 않았다.
‘덕분에 억제하기가 더 힘들잖아.’
본래 시간을 들여서 해야 하는데, 너무 급조해서 밀어 넣었다.
이하린은 상대의 심장부에 붙어야만 발동되는 자신의 비술에 대해 떠올렸다.
‘모든 스킬이 작동되기 전. 개인마다 일정한 파동 신호가 있지.’
일명 컨트롤 웨이브.
이 비술은, 단순히 신경 지구력을 늘리는 게 아니라.
오버클럭 시킨 자신의 파동을 상대의 파동에 찔러넣어서 간섭하고 소멸시키는 것.
비슷한 파장끼리 충돌시켜서 상쇄하는 것과 같았다.
거기에 더해서 야나 이바노프에게 접촉하는 걸 상정했기에.
이하린은 신경 지구력과 민첩이 오르는 비술도 익혔다.
‘억지로 흘려내느라 소모가 심했어.’
그러나 1개는 몰라도 2개부터는 몸이 버티기 힘들었다.
특히 야나 이바노프의 스킬을 대미지 없이 상쇄하는 건 아직 무리였다.
‘졸업할 때까지는 쓰지 말라고 하셨는데…….’
이대로 가면 그로기 상태는 확정이었다.
접속이 끝나면 반나절은 축 늘어져 있어야 할 정도.
‘나가면 많이 먹어야겠네.’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순간.
“괜찮아?”
고대현이 다가왔다.
“아? 어, 응…….”
이하린은 어색하게 답했다.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지만, 그의 모습에 의해 흩어졌기 때문이었다.
“너……, 안 보이는데 어떻게 한 거야?”
그는 앞이 보이지 않는데도 여기까지 왔다.
시야를 차단당한 상태에서 야나 이바노프와 겨루던 급이니, 이 정도는 당연한 거겠지만.
그래도 사람이 가능한 선이라는 게 있지 않은가.
‘너무 태연한데…….’
그때, 고대현이 질문했다.
“말하는 거 보니까 아는 사이 같던데.”
“그런 게 있어.”
이하린은 대화를 피하기로 했다.
고대현은 관계없는 사람일 뿐이고.
이번 일은 주말에 집으로 복귀하면 제일 먼저 보고해야 할 사안이었으니 말이다.
“읏…….”
이하린은 자리에서 일어나던 도중 몸을 비틀거렸다. 슬슬 한계인 걸까. 그로기 상태가 온다.
‘아파.’
아직 약물로도 보완이 안 되는 부분. 아무래도 강제로 접속을 종료해야 할 것 같았다.
“응?”
그렇기에 다음 순간.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들었다.
갑자기 몸이 가벼워지면서 쾌적해진 기분이 들기 때문이었다.
‘뭐지??’
마치 투약이라도 받은 것처럼 편안해진다.
이하린은 무형의 의지가 가리키는 방향대로 고개를 돌렸다.
고대현이 옆에 있다. 복잡하게 꼬인 실이, 가까이 갈수록 풀리는 듯한 기분이 든다. 왜일까.
“흐음.”
그러는 한편.
고대현은 한창 등록 완료 창을 보면서, 내용을 곱씹고 있었다.
[패밀리어가 등록되었습니다.]
[이하린 : 신경 지구력 20% 계약]
[추출 중…….]
띠링─.
[컨트롤 웨이브 동기화 완료. 스킬로 변환됩니다.]
[자동 단축키로 설정되었습니다.]
-민첩화 : 이동속도 20% 증가
-소멸 간섭파 : 접촉함으로써 상대의 스킬과 비술을 교란시킬 수 있다. (현재 출력 20%)
‘민첩화와 소멸 간섭파…….’
민첩화는 안 봐도 이하린의 재빠른 움직임이겠고.
소멸 간섭파는 이하린이 야나 이바노프에게서 이길 수 있었던 이유였다.
‘설마 이런 걸 익히고 있었을 줄이야.’
글귀에 나타난 정보로 봤을 때.
소멸 간섭파를 쓰면 상대의 비술은 물론이고, 스킬시전까지 방해할 수 있는 모양이었다.
이 정도면 상대를 거의 맨몸 상태로 만드는 것과 다름이 없었다.
엄청난 이득.
다른 이들과도 패밀리어 계약을 해서 복사한다면 훨씬 강해지겠지.
‘야나 이바노프에게 이긴 보상이 꽤 크네.’
띠링─.
[싱크로율 분배기 : Lv1(0/300)]
[업적]
-패밀리어와 A급 던전 레이드
-복사한 스킬 사용 10회
-패밀리어와 동행 50시간
[각 경험치 100 지급]
[수행 지역은 가이아 얼라이언스 서버로 제한됩니다.]
추가적으로 나타난 업적창.
퀘스트를 통해서 싱크로율 분배기의 레벨이 상승하는 건 좋지만, 장소가 가이아 얼라이언스 서버로 제한되는 게 흠이었다.
그래도 레벨이 오르면, 가능한 패밀리어 수가 늘어나거나 부담할 수 있는 퍼센트 한도가 늘어날 게 뻔하니.
“써볼까?”
먼저 스킬 사용 10회부터 완수하기로 했다.
그도 그럴 게 이하린과 함께 가이아 얼라이언스 서버에 있을 기회는, 린이지 내부의 훈련 대륙에 있는 지금뿐이니까.
먼저 민첩화부터 사용했다.
민첩화는 단순하게 키 한 개가 아닌, 여러 개를 한 번에 써서 시전하는, 일종의 콤보 방식이었다.
딸깍딸깍.
앞으로 움직였다가 뒤로 움직이고.
다시 옆으로 움직여서 정위치로 돌아오는 동작을 마치며.
츠즈즈즈.
민첩화가 사용된다.
[민첩화 효과가 적용됩니다.]
-이동속도가 20% 향상되었습니다.
대현은 화면 속의 자신을 이리저리 움직여 보았다.
확실히.
이동속도가 빨라진 게 눈에 보인다.
‘이건 스킬이 아니라 비술을 통한 속도 증가다. 그렇다면, 여기에 스킬까지 쓰면?’
한계가 있는 스킬 슬롯을 벗어나기 위해 나온 게 비술이다.
한데 비술을 스킬화 시켜서 쓰고, 여기에 스킬까지 얹어서 사용한다면 시너지가 장난 아닐 것이다.
‘일단 다음 스킬도 써봐야지.’
상대의 컨트롤 웨이브를 소멸시키는 건 어떻게 할까.
대현은 이어서 소멸 간섭파가 단축된 키를 눌렀다.
[대상을 지정해주세요.]
그러자 대상을 지정하라는 문구가 나타났다.
‘음, 대상이 있어야 하구나.’
대현은 마우스를 돌리던 중,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자신을 올려다보고 있는 이하린을 발견했다.
혼잣말로 흠흠, 거리면서 스텝을 밟아대고, 중얼거리기까지 했으니 당연한 결과였다.
……뭐, 그건 그렇고.
[상호작용 – F]
-파동 과부하 상태입니다.
-상호 작용(F)으로 간섭 소멸이 가능합니다.
상호작용 F가 떴다.
‘그래도 이건 편하게 뜨는 구조네. 민첩화처럼 콤보로 누를 필요가 없어서 다행이다.’
민첩화는 LOH의 챔피언 콤보처럼 숙달할 필요성이 있었다.
반면 이건 F 하나만 누르면 손쉽게 해결이었으니.
고대현은 별생각이 없이 상호작용 키를 눌렀다.
그렇기에 다음 순간.
그는 당황한 표정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어……?”
화면 속 자신이 끌어안는다.
앉아 있는 상대를.
가까이 가서…….
그냥.
예고도 없이.
막.
[접촉확인]
뭐, 아무튼 그렇게 되었다.
[파동 일치, 간섭 시작]
“어, 그…….”
대현은 말을 더듬으며, 조심스레 이하린의 안색을 살폈다.
그랬더니 웬걸.
속 쓰림을 앓고 있던 사람이 갭이스콘을 먹은 것처럼, 이하린이 편안한 표정으로 눈을 감고 있는 게 아니겠는가.
“아.”
하지만 그런 순간은 오래가지 않았다.
문득 눈을 뜬 이하린의 눈동자가 굴러가면서 상황 파악이 끝날 때 즈음─.
퍼억-!
짝, 도 아니고 퍽, 소리가 났다.
화면 속에 있는 대현의 상체가 휙 돌아간다.
‘PC모드라서 다행이야.’
대현은 오랜만에 PC모드에 감사함을 느꼈다.
“나중에…… 나가서 이야기해.”
다만 이어지는 이하린의 말 때문에 큰 의미는 없었다.
* * *
그 시각 1반.
채앵─!
전지수는 칼날을 힘겹게 피해내며 상대를 바라봤다.
‘신영범 선생님. 역시 강하네.’
1반의 상대는 신영범 학년 담임이었다.
그는 빠르고 정확한 검격으로 조지아를 다운시키고 4대1을 진행하는 중이었다.
스핏-!
바닥을 구르며 공격을 피하자 머리 위에서 공기를 가르는 소리가 들린다.
전지수는 거리를 벌리며 활시위를 당겼다.
‘야나가 올 줄 알았는데, 신영범 선생님이 올 줄이야…….’
야나 이바노프라면 억지라도 부려서 이곳으로 올 줄 알았다.
해서, 전략도 그녀에 맞춰서 준비하고 있었다.
그게 현재 1반이 밀리고 있는 이유였다. 물론, 왜인지 모르게 의기소침해져 있는 범단월 때문인 것도 있지만.
‘이럴 줄 알았으면 좀 더 다른 전략을 취할 텐데.’
스핏-!
그렇게 생각하던 중, 신영범의 검날이 전지수가 가지고 있던 활시위를 끊어냈다. 동시에 공격이 이어지면서 목을 향해 날아오는 검.
‘1차는 페이크.’
전지수는 감각을 끌어올렸다.
검로와 전기 신호가 집중된 부분.
어깨의 방향과 시선.
그것을 인식하기까지 0.03초.
검이 목을 향해 날아들다가 미묘하게 방향을 아래로 바꾸는 걸 알아차리기까지 0.06초.
휙-!
몸을 뒤로 빼서 아슬아슬하게 피한다.
전천후만큼은 아니지만, 그녀도 근거리 탐지계 활용은 할 줄 알았다.
“약하군.”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신영범 학년 담임을 이길 수 없었다.
서걱!
옆에서 돌진해오던 범단월의 발목과 팔을 연속으로 찌르며.
그를 바닥에 눕힌 신영범이 말을 잇는다.
“이러니 원거리에서는 유리하지만, 근접에서 지는 거다.”
현 수업은 적이 멀리서부터 오는 게 아닌, 바로 성 아래에서 시작하는 모드였다. 한 성을 끝내면 위치를 지정해서 다른 반으로 텔레포트 하는 식으로, 상당한 근접거리를 허용했다.
“만약의 경우에 대비할 수 있어야 한단다.”
푹!
신영범이 범단월을 로그아웃시킨다.
이제 남은 사람은 전지수와 정태룡, 태해란 정도였다.
“이번에는 내가 전열에 설게.”
태해란은 너달리를 잘하는 만큼, 두 사람보다 더 근접으로 신영범과 맞붙었다.
핏─!
“윽……!”
그러나 이기기엔 역부족이었다. 뒤에서 정태룡의 날카로운 지원 사격이 더 해져도 마찬가지.
“굴절시킨다고는 하지만 타점이 단조롭군. 노리는 지점이 한결같아.”
태해란을 처리한 그가 성의 외벽을 밟고 점프하면서, 정태룡에게 수직 베기를 날린다.
키잉!
중간에 끼어들어서.
이를 활로 막아내는 전지수.
시위가 끊어졌으니 사실상 활을 몽둥이처럼 삼아서 막은 것이었다.
“반응 속도는 좋다만, 이거로는 안 된다.”
챙!
그가 검을 휘두름에 따라 활이 공중으로 튕겨져 나간다.
서걱!
이어서 정태룡을 처리하고.
마지막으로 전지수를 남겨놓은 신영범이 입을 연다.
“다른 걸 써보는 건 어떻겠느냐.”
“다른 거요?”
더 이상의 대화는 이어지지 않았다.
경직된 공기를 잡아 찢듯, 그의 몸이 앞으로 쇄도했다.
가상의 일이지만, 위협적으로 느껴질 만한 일격이었다.
전지수는 한순간 호흡을 집어삼켰다.
“히.”
그리고 입꼬리를 올렸다.
생존 본능을 인식했을 때는, 이미 주먹을 앞으로 뻗고 있었다.
스륵.
날아오는 검의 옆면을 쳐내면서 권을 내지른다.
대부분의 사람은 반응하지 못했을 속도와 힘이었다.
그러나.
툭-!
주먹이 닿기 직전.
전지수의 팔이 힘을 잃고 툭 떨어졌다.
옆으로 쳐냈던 신영범의 검이, 찰나에 방향을 틀어서 전지수의 어깨를 베어낸 것이었다.
“좀 더 다듬으면 좋을 것 같군. 기존의 탐지계와 혼용하면 좋을 것 같다만.”
그가 검집에 검을 넣으며 몸을 돌렸다.
“……왜, 선생님이 이쪽으로 오셨나요.”
전지수는 궁금한 걸 질문했다.
“흠, 그건.”
신영범은 곤란한 표정을 짓다가 입을 열었다.
“야나가 중간에 졌거든.”
“네에??”
전지수의 눈이 동그랗게 커졌다.
야나 이바노프를 이기다니.
‘근거리에선 신영범 학년 담임보다 강한 사람인데 누가…….’
띠링─.
그러한 전지수의 의문에 대해.
마침 나타난 각반별 순위창이 그 대답을 대신해줬다.
[순위]
1반.
2반.
15반.
5반.
3반.
.
.
.
[EX : 40반]
“설마…….”
순위표의 맨 아랫부분.
그곳에 EX 등급으로 표시된 40반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