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01화
#101화
금요일에는 보통 옆 반과의 평가전이 있으며.
저번 주엔 39반과 평가전을 치러서 3연승을 했다.
‘하지만 오늘은…….’
고대현은 등교할 때 문 앞에 쓰여있던 공지를 상기했다.
갑작스럽지만 오늘 아침.
금일 평가전은 훈련대륙 수업으로 대체하겠노라고.
기숙사에 있는 개인 스크린에 공지가 떠 있었다.
해서, 오늘 1학년들은 옆 반 대신 신영범 학년 담임과 보조 교사인 야나 이바노프를 상대하게 되었다.
“자, 각자 20반씩 나눠서 나와 보조 교사가 랜덤으로 들어가게 될 거다. 40개의 반중 절반은 나. 또 다른 절반은 보조 교사가 공격을 담당하게 될 거야.”
훈련대륙에 있는 필드.
200명의 학생이 모인 가운데.
신영범 학년 담임의 설명이 이어진다.
“학교 코인으로 업그레이드를 한 다음. 방어할 준비를 마치면 깃발을 세우도록. 내가 공격해서 깃발을 회수할 테니까.”
수업 방식은 간단했다.
각 반이 성에서 대기하고.
야나 이바노프 혹은 신영범 학년 담임이 랜덤으로 공격해오는 식이었다. 일종의 디펜스 게임이라고 보면 되겠지.
“1명당 20반씩 상대한다는 거네.”
현재 접속한 훈련대륙은 신경 부하가 꽤 높은 상태였다. 사실상 그라운드 제로에서 1대 5를 연속으로 20번 한다는 건데, 과연 어떻게 될까.
모두가 주목하는 가운데.
“오랜만이다. 꼬마들아.”
학생들을 내려다보면서.
야나 이바노프가 손을 흔든다.
기본적으로 풀 플레이트 상태임과 더불어, 인식 저해가 걸려 있어서 그녀의 정체를 알아보는 사람은 없었다.
고대현은 이따금 1반 쪽을 응시하다가 자신에게 고개를 돌리는 야나를 보며 생각했다.
‘저 인간은 무슨 생각을 하면서 사는 걸까.’
막무가내로 습격하고.
지금은 보조 교사를 하고 있다.
‘꼭 외국인들이 익스트림 스포츠 같은 걸 많이 하는 것처럼, 여기도 그런 건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자니 전지수에 대한 것도 떠오른다. 생각날 만한 거리가 오늘 아침에 있었기에.
간단하게 설명하자면, 전지수가 문자를 보냈었고.
문자에는 기간티아 성주가 자신을 만나고 싶어 한다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설마 관전하고 있었을 줄이야.’
당황스러웠으며, 뭘 그 정도까지 하나 싶었다. 하지만 곧바로 첫날이 생각났다.
캡슐방에서 다시 보기 자료 달라는 학부모.
여러 과외와 관련된 자료 등등…….
게임 교육과 관련된 열기는 예상보다 거셌다.
이 학교는 상위권이 모인 곳이니 더 심할 것이다.
다만, 그 정도 위치에 있는 사람이 관전으로 염탐하는 건 처음 있는 일이기에.
‘귀찮아질 것 같네.’
대현은 마우스를 돌려서 1반이 있는 방향을 응시했다. 거리가 너무 먼 나머지 전지수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그 대신 웅성이는 소리만이 들려왔다.
“아, 이거 누가 걸려야 이득이지?”
“보조 교사가 공격대로 걸리길 바라야지. 아무리 그래도 신영범 선생님이 더 셀걸?”
전부 보조 교사를 신영범 학년 담임의 아래로 보고 있었다.
‘야나가 절대 학년 담임보다 아래는 아닐 텐데…….’
타입에 따라 다른 문제긴 하다만.
저번 침략전에서의 전투력을 보면 수호 기사에 버금가는 실력을 갖추고 있었다. 그뿐만 아니라 저번 수업에서도 강한 면모를 보여주지 않았는가.
전지수와 관련된 문제는 일단 뒤로하고.
당장 수업에서 좋은 성과를 내야 하니까.
대현은 같은 반 아이들에게 질문했다.
“여기 중에서 저 보조 교사랑 붙어본 사람 있어?”
“응? 아마 대현이랑 하린이 정도일걸? 나는 옆에 있다가 금방 아웃당했거든.”
아.
유금옥의 말을 들은 뒤 깨달았다.
살아남은 사람 위주로 접촉하는 구조니까.
하위권 반은 그녀의 실력을 잘 모른다는 것을.
“저 사람 강한 편이야?”
“어.”
“우리 정도면 얼마나 버틸 수 있을 것 같아?”
그때.
“강해. 아마 금방 뚫릴걸?”
이하린이 끼어들면서 말을 이었다.
“사실상 5대 1이니까, 성하나 격파하는데 5분 아래로 걸릴 것 같은데?”
이하린은 야나와 직접적인 육탄전으로 꽤 오래 살아남았다.
그런 그녀의 감이니 정확하겠지. 고대현도 최선을 다해 싸우긴 했지만, 결국 졌기에 이하린의 말에 동의했다.
‘이번 평가전은 얼마나 오래 버티냐가 관건이 될 것 같네.’
그렇게 설명을 듣고 있으니.
“다들 내용 숙지했으면 각 성으로 이동하거라.”
별안간 각 반이 만들어 놓은 성으로 이동하는 시간이 되었다.
“우리도 준비하자.”
“응.”
전반이 축성해둔 지역으로 발길을 옮긴다.
저번에 김원 선생님이 실수로 부쉈던 부분을 재건한 것 외에 달라진 점은 없었다.
‘이제 이 성에서 5명으로 방어를 해야 한다는 건데…….’
띠링.
그때였다.
[-상점-]
-무기
-증축
-장비
40반 인원이 성안으로 진입하자 상점 창이 나타난다.
상점창 내부에는 방어를 위한 무기와 디펜스 장비 등이 나열되어 있었다.
“이 자동 감지 마력 포탑은 어때?”
“함정 장치도 괜찮을 것 같지 않아?”
장비를 고른 아이들이 저마다 입을 연다.
포탑 한두 개 정도 부착하는 게 좋으니 대현도 동의했다.
하지만 그 전에.
“일단 각자 무기부터 구매할래?”
“그러는 게 좋겠다. 무기는 필수니까.”
싸울 수 있는 무기부터 구매하기로 했다.
아직 두 사람 중 누가 이쪽으로 올지 결정 나지 않았지만, 누가와도 디펜스 장비 정도는 금방 격파할 것 같았기에.
스르릉.
대현은 상점 창에서 검을 골랐다. 창이나 도끼를 고르려다가 검을 골랐다. 대행 기사 계정에서도 검을 쓰니까. 이걸로 익숙해질 필요가 있었다.
‘총은 밸런스 문제 때문에 없는 것 같네.’
여타 아이들은 활이나 창을 골랐다.
이하린과 고대현만이 근접 무기를 들고 있을 뿐이었다.
띠리링.
무기를 소환하자 보유 학교 코인이 감소한다. 디펜스 포탑까지 사니, 저번 평가전에서 얻은 코인 중 대부분이 소모되었다.
‘시스템을 보아하니 평가전에서 계속 지면 불리하겠네.’
지면 더 이상 장비를 살 수 없게 된다.
실력이 떨어질수록 연쇄적으로 힘들어지는 구조…….
타개할 방법은 적팀을 분석한 다음 평가전 때 이기는 방법밖에 없었다.
다만.
‘이번에는 각반별 순위 등급으로 지급하는 식이었지.’
평가전까지 겸하는 금일 수업은 방어 성공 시간이 중요했다.
야나와 학년 담임을 방어한 시간 순위로 등급을 매기니까.
즉, 무조건 오래 버텨야 코인을 많이 받을 수 있다는 소리.
“한 번 써볼까?”
각각 상점 창에서 고른 무기를 확인하고 있으니, 슬슬 연습해보는 시간이 되었다.
아직 준비 완료 깃발을 걸기엔 미숙한 점이 많으니.
붕붕.
모션 캡처로 등록해놓은 몇 가지 동작을 사용했다.
기본적으로 팔다리를 움직이는 체술.
검격을 한다는 가정하에 등록해놓은 동작.
그 두 가지를 섞어서 사용한다.
다른 애들이 논 스킬인 반면. 고대현은 버튼을 이용한 즉발 동작인지라, 속도와 자세가 남달랐다.
“오, 대현. 잘하는데?”
“그러게.”
옆에서 보고 있던 이태원과 허건섭이 감탄한다.
그들은 기껏해야 활과 창을 휘두르고 있는데, 옆에서 바람이 날릴 정도로 움직이니 시선이 갈 수밖에.
훅훅─.
“가르쳐준 대로 잘하네.”
보고 있던 이하린도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고대현과 자신이 앞에서 막고.
뒤에서 나머지가 저격해야 하는 구조인지라, 그녀는 그의 동작을 유심히 보고 있었다.
‘하루 가르쳤는데 저 정도면 기대 이상이야.’
자세도 그렇고 동작도 그렇고, 여러모로 합격이었다.
그때였다.
매일 대현의 컨트롤을 유심히 봤기 때문일까.
전과의 차이점을 인식한 유금옥이 입을 열었다.
“대현이, 예전보다 동작이 부드러워졌네?”
“응, 이하린이랑 연습 좀 했지.”
“연습? 열심히 하네.”
“얘랑은 스타일이 비슷하니까, 몇 개 맞춰봤어.”
“어쩐지 비슷하더라.”
그렇게.
그들이 수다를 떨면서 시간을 보낼 때였다.
쿠웅.
멀리 있는 성에서 폭발음이 들려왔다. 교전 중인 모양이었다.
“흠, 이제 우리도 슬슬 깃발 세울까?”
“그래. 빨리 끝내자.”
이미 깃발을 올리고 평가를 끝낸 성도 있으며.
유의미한 결과를 낸 반도 있었다.
띠링.
[순위]
2반.
3반.
20반.
5반(교전 중…….)
순위창에 계속해서 갱신된다.
[순위]
2반.
5반.
3반.
20반.
아래에 있던 5반이 위로 올라간다.
최종 갱신된 방어 시간의 길이가 남들보다 앞선 것이리라.
순위를 본 이하린이 나지막하게 말한다.
“역시, 오늘 처음 해서 그런지 순위가 반이랑 완벽하게 연동되지는 않는구나.”
“학기 초 성적 좋다고 끝까지 간다는 보장은 없으니까.”
원래 세계에서도 입학 수석이 계속 수석인 경우는 거의 없었다. 항상 뒤집으면서 바뀌는 부분도 많았고.
이런 걸 생각해보면 기간티아 성주가 신경을 쓰는 게 이해가 되기도 한다.
‘그렇다고 너무 관심 가지는 건 별로긴 하지만…….’
띠링─.
그렇게 생각할 때였다.
고대현의 귓가에 알림음이 울렸다.
‘드디어 오는 건가?’
공격대가 오는 알림음이라고 여기고 주변을 둘러봤지만.
“무슨 소리 못 들었어?”
“응? 뭐가?”
“아, 아니야.”
소리를 인식한 사람은 자신뿐인 것 같았다.
얼마나 지났을까.
고대현이 환청을 들었나 싶어 머리를 긁적일 때.
[인물 정보 수집이 완료되었습니다.]
[(인물) 적응형 퀘스트]
[야나 이바노프에게 1승 하기.]
소리의 주인공.
적응형 퀘스트 창이 드디어 모습을 드러냈다.
* * *
한편, 그 시각.
“쳇…….”
임상배는 혀를 찼다.
그는 야나 이바노프와 첫 교전을 치렀던 인물답게.
누가 와도 어려운 수비 전이 될 걸 알고 있었다.
‘그 보조 교사. 신영범 학년 담임보다 아래라고 생각했었는데. 절대로 아래가 아니었다. 단순하게 무력으로 붙었는데 그 정도라니…….’
임상배는 그런 사람이 어디서 굴러들어왔을지 생각했다.
그러나 당장 특정되는 사람은 없었다.
학년 담임이 아는 사람을 초빙한 거라고 볼 수밖에…….
“후, 일단 버티고 보자.”
임상배는 같은 반인 15반 아이들에게 오더를 내렸다.
반에서 제일 잘하는 이가 그였기에 전부 잘 따랐다.
그렇게 준비를 마치고 무기까지 고를 시점이 되었다.
‘불균형한데.’
앞에서 시간을 끌 사람이 없기 때문일까.
뭔가 균형이 안 맞았다.
이래서는 성을 지키면서 싸우는 게 아니라 계속 도망 다니면서 싸워야 할 판이었다.
즉, 누군가가 희생을 해야 하는데…….
“이게 다 신경 지구력 기르기 모드라서 그래.”
먼저 나설 리가 없었다.
“쯧, 포킹하면 끝인데 이런 걸 해서 뭐 한다고. 실전에서는 이런 상황 안 나오잖아.”
나머지 애들이 구시렁거리고 있자니, 임상배가 낮게 읊조린다.
“이게 다 그 녀석 때문에 그런 거지.”
그는 이 일의 원흉이 된 고대현을 상기했다.
따지고 보면 그 녀석이 검을 아무렇지도 않게 뽑아서, 이 정도 난이도가 된 거니까 말이다.
‘……꼬그모를 잘했지.’
하지만.
당장 떠오르는 고대현에 대한 것은 꼬그모밖에 없었다.
꼬그모를 컨트롤하는 움직임이 아주 정교하며.
카이팅 속도가 신속했고.
평타의 정확도가 아주 높았다.
클로이 연 선생님이 피하지 못할 정도로 말이다.
‘특별 전형에서 지구력이 뛰어나서 들어온 거로 알고 있는데…….’
한때 같은 반일 시절.
임상배는 고대현이 잘하는 꼴을 본 적이 없었다.
특히 원딜은 더더욱.
그렇다면 입학하고 나서 발전했다는 걸까.
아무리 생각해도 의문이 해소되는 일은 없었다.
‘에라 모르겠다. 뭐, 어차피 올라와도 20반 라인이야. 그 이상은 무리라고.’
임상배는 미간을 찌푸리다가, 기분 전환용으로 어제 있었던 좋은 일을 떠올리기로 했다. 후원에 관한 것이었다.
‘나도 이제 위로 간다.’
그간 적극적으로 친선 경기를 치르고, 선배와 교류한 덕분에 티버레스성의 후원을 받을 수 있었다.
티버레스는 한국 대륙에 위치한 성 중 10위권에 머무르는 성.
기간티아나 레기온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충분히 상위 클래스라 할 수 있었다.
‘난 대외 활동으로 앞서 나가야지.’
고대현에게 이런 활동까지는 사치일 것을 알기에.
임상배가 음흉한 미소를 지을.
쿠웅!!
바로 그 순간이었다.
갑옷을 입은 기사가 문득 방어진을 친 성 앞에 나타났다. 이에 모두가 경계하면서 무기를 들었다.
“결국 저 사람이 왔군.”
콰앙!!
보조 교사가 움직임에 따라 미리 설치해둔 함정이 발동된다.
임상배는 곁눈질로 뒤를 응시했다.
딱 봐도 함정은 금세 돌파될 게 뻔한데.
먼저 나갈 사람은 없어 보였다.
‘……누군가는 나서야 한다.’
근접 무기 따위.
전부 사용할 줄은 알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LOH에서 다양한 챔피언을 해왔으니까.
하지만 광속으로 퇴장당하는 게 싫은 건지, 다들 미동조차 안 하는 상황이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어쩔 수 없네.”
꾸욱.
별안간 그의 손에 도끼가 들린다.
묵직하다. 확실히, 데리우스 상태로 드는 것과는 다르다.
그래도, 그나마 재미있으며, 취미 픽으로도 자주 했으니.
“으럇.”
쿠웅─!!!
쿵─!!
두 개의 무기를 충돌시키며 시간을 버는 것.
임상배는 기꺼이 그 역할을 맡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