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0화
#90화
이하린이 그라운드에서 주로 쓰는 동작은 발차기였다.
주먹도 쓰긴 하지만 주류는 아니었다.
기본적으로 빠르게 붙어서 가격해야 하는데, 팔보단 다리가 더 길었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고대현에게 발기술부터 가르쳐주기로 마음먹었다.
“자, 이렇게 다리를 움직이면서 허리를 돌리는 거야.”
임상배와 같은 조였을 시기. OT때 2층에서 사용했던 기술을 재현했다.
몸을 극하단으로 낮췄다가 위로 발차기를 하자, 훙- 하면서 공기를 가르는 소리가 난다. 옆에 있는 고대현의 뺨까지 바람이 느껴질 정도였다.
“넌 뤼신을 잘하니까 이 정도는 금방 할 수 있을 거야.”
“……너무 믿지 않는 편이 좋아.”
아무래도 뤼신을 했던 걸 보고 과한 신뢰감을 가지는 듯했다.
고대현은 조심스럽게 다리를 들어 올렸다.
처음부터 빠르게 하진 않았다.
일단 형태를 잡은 다음 속도를 높이기로 했다.
“다리를 조금 더 위로.”
“이렇게?”
“응.”
이하린이 고개를 끄덕인다.
난이도가 높긴 해도, 고대현은 그녀의 동작을 곧잘 따라했다.
그도 PC모드가 되기 전에 다양한 챔피언을 했기에 움직임이 어색하진 않았다. 그러나 몇 번 따라 하자 숨이 차올랐다.
‘이건 현실의 몸…….’
원래 세계에서도 이런 식의 동작 연습을 했지만.
대부분 가상현실 내부에서 했기에, 현실의 몸과 괴리감이 있었다.
‘다른 애들은 게임 속에서도 이런 환경이겠지.’
스킬 동작을 익히기 위한 빙의체 모드가 아닌 이상.
평범한 애들은 단순한 동작을 넘어서 하루에 할 수 있는 시간까지 제한되곤 했다. 그로기 상태라는 게 와버리기 때문이다. 아마 이를 넘을 수 있는 사람은 오직 자신뿐이리라.
‘지금까지는 동작이 딱딱했다. 부족한 건 부드러움…… 이제 그 간격을 좁히는 거야.’
게임 내부의 강자를 모두 뛰어넘는다.
게임고에 입학하고 난 뒤에도, 오직 그 생각뿐이었다.
대현은 호흡을 가다듬었다.
풍-.
발을 뻗자 샌드백에서 메마른 소리가 난다. 동작은 얼추 따라했지만, 역시 파괴력에서 차이가 났다.
“좀 더 중단으로 빠르게 해봐. 허리에 힘주고.”
투웅-!
그녀가 지시하는 대로 하자, 좀 더 소리가 커졌다. 잘못된 부분은 간단한 피드백만 해주는 식으로 진행되었다.
얼마나 연습했을까.
슬슬 동작에 익숙해졌다.
대현은 스스로의 움직임에 대해 짧은 평가를 내렸다.
‘기습할 때 좋겠네.’
PC 모드는 예비 동작의 텀이 아주 짧다.
잘만 이용하면 생각지도 못한 자세에서 공격을 날릴 수 있으니까.
야나 이바노프와 싸울 때 사용했던 엎드리면서 찌르기가 이에 속했다.
‘후에 있을 수업에서 쓰면 효과적이겠지?’
고대현은 땀 때문에 가슴팍에 달라붙은 도복을 털면서 상반신을 일으켰다.
그러자 이하린이 고개를 끄덕이면서 입꼬리를 올렸다.
“그때보다 잘하네.”
“그때?”
“있잖아. 그 홀로그램 훈련.”
체육관에 들렀다가 했던 훈련을 말하는 모양이었다.
“갑자기 몬스터 같은 거 등장시키고 피하라고 하니까 그렇지. 오랜만에 움직이는 거라서 몸이 잘 안 따랐다고.”
공격을 읽는 건 가능했다. 단지 몸이 머리를 따라가지 못했을 뿐이었다.
“흐음, 그래? 그럼 다행이고…… 이제 다른 기술로 넘어가자.”
“다른 거?”
이하린은 이어서 전지수에게 썼던 기술을 고대현에게 가르쳐주기로 했다.
“가까이 붙어.”
“응?”
“허리 좀 숙여줘. 다리를 차서 쓰러트릴 순 없잖아.”
“아, 알았어.”
고대현이 허리를 숙이자 이하린의 손이 그의 옷깃을 잡았다.
꾸욱.
잡아당기는 느낌과 함께 안다리가 걸린다.
이에 몸의 균형이 무너졌다. 이에 자신도 모르게 허리를 뒤로 젖히려고 했으나, 이하린은 이미 등 뒤에 매달린 채 목 조르기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 짧은 순간 몸통에 달라붙어서 뒤를 잡은 것이었다.
“어때? 쉽지?”
“아니…….”
대현은 고개를 저었다.
이건 곧바로 따라하기엔 어려웠다. 상대의 반응에 따라서 전신을 움직여야 하기에 숙련도가 필요해 보였다.
‘게다가 등록해서 쓰기도 애매하고…….’
이 기술은 발차기와는 다르게 타격기가 아니었다.
상대의 옷깃을 잡는 부분에서 정확도가 떨어질 게 분명했다.
하지만 이하린이 가르쳐주는 것이니 거절할 수도 없고…….
대현은 늘어난 도복 옷깃을 가다듬었다.
그러자 이하린이 자신을 가리키면서 말한다.
“이번에는 네가 나한테 걸어봐.”
“너한테 직접?”
“응. 허공에다가 할 수는 없잖아. 목인장에 하기도 그렇고.”
구석에 사람을 본뜬 나무 기둥, 목인장이 있으나, 관절기 수련에는 적합하지 않았다.
고대현은 하는 수 없이 이하린과 밀착했다.
‘키 차이가 좀 나서 불편하네.’
옷깃을 잡고 중심을 넘어뜨리는 부분부터 주저함이 앞선다.
결국 어색하게 동작을 취하다가 뒤에서 끌어안는 형태가 되어버렸다.
“매달리듯 하면서 졸라야지…… 이건 그냥 백허그잖아.”
“아, 미안.”
머리를 긁적이면서 뒤로 물러난다.
‘으음, 직접 힘을 가하려니까 익숙하지 않네.’
그라운드 제로와 비슷한 환경이라고 되뇌어도 어려웠다.
그곳에서는 총을 주로 사용했지. 이렇게 목 조르기를 쓰진 않았으니까.
“이 정도면 나름 쉬운 동작이야.”
“이게?”
“응, 그러니까 오늘 안에 마스터하는 거로 하자.”
아직 까지는 워밍업 수준이라는 걸까.
또 오늘 안에 마스터하라고 한다.
“이제 12시인데 가능하려나.”
내일은 월요일이므로 미리 기숙사에 복귀해야 했다.
집에 돌아가서 쉬는 것까지 고려하면, 저녁 전에는 집에 가고 싶은데 말이지…….
고대현의 표정이 살짝 어두워지자 이하린이 눈을 깜빡인다.
“아, 맞다.”
“……뭐가?”
“배고프지? 밥 먹자. 점심이잖아.”
아까 말 한대로 시간은 12시 정각이었다. 이하린의 말대로 배고플 시간이긴 했다.
“기다려봐.”
고대현이 뭐라 말하기도 전에 이하린이 자리에서 일어난다.
‘산속이라도 드론 배달이 가능하니까 시켜먹어도 될 것 같은데…….’
로봇이 제조하고 배달까지 하는 음식점이 널렸다.
주문하자마자 신속하게 올 것이다.
그러나 이하린이 향한 곳은 마당으로 향하는 창문이었다.
드르륵.
문을 양쪽으로 열자 차가운 바람이 들어온다.
‘어디로 가는 거지?’
자연스레 뒤를 따라가다가 비닐하우스를 마주했다.
내부에 다양한 농작물이 심겨있고. 다양한 기계 장치들을 통해 관리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아직도 이렇게 사는 사람이 있구나…….
가만히 보고 있자니 이하린이 몇 가지 농작물을 수확한다.
‘가만히 있기 뭣하네…….’
“나도 도와줄까?”
“그럼 좋고.”
이하린이 이마에 맺힌 땀을 닦으며 말했다.
이에 고대현도 이하린의 옆에서 파릇파릇한 채소의 잎사귀를 땄다.
“좀 더 끝을 비틀면서 따는 거야.”
“아, 이렇게?”
“응.”
갑자기 분위기가 주말농장이 되었다.
“되게 친환경적으로 사네. 이거다 유기농이지?”
뭔가 신선해 보여서 살짝 베어 물었다.
“아니? 농약 쳤는데?”
“퉤.”
머금고 있던 걸 뱉어냈다.
어쩐지 잎사귀에 흰색 자국이 있더라.
대현은 미간을 좁히면서 쓴 표정을 지었다.
“그런데 너 먹을 건 전부 농사지어서 먹는 거야?”
“다는 아니고 필요한 부분만.”
“힘들겠네.”
“아니야. 별로 안 힘들어. 가끔 가지치기랑 씨 관리만 해주면 되니까.”
언제부터 이렇게 산 거냐고 물어보고 싶었지만, 그 전에 이하린이 허리를 펴고 어딘가로 이동했다.
그렇게 도착한 곳은 부엌이었다.
설마 손수 밥을 해줄 줄이야.
고대현이 감탄하면서 입을 열었다.
“요리하는 사람. 엄청 오랜만에 보는 것 같다.”
집에서도.
학교에서도.
대부분의 일은 기계가 도맡아서 해왔다.
취미 영역이 아닌 이상 요리를 하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그래? 하긴, 수작업 요리가 비주류긴 하지.”
이하린이 냄비에 물을 받고 가스버너를 켠다.
탁탁, 거리는 소리와 함께 불이 올라온다. 저것도 오래된 방식이었다.
“뭐 만들게?”
“그냥, 평범한 가정식.”
“나는 도와줄 거 없어?”
“음, 옆에서 계란이나 까줘.”
갑자기 분위기가 요리 교실이 되었지만, 계란 까기 정도는 쉽다.
대현은 계란을 톡 쳐서 겉면에 균열을 낸 다음, 껍질이 섞이지 않게 조심스럽게 깠다. 그릇에 노란색 원이 담겼다.
“계란으로는 뭐 만들 거야? 계란후라이?”
“계란말이.”
흰자와 노른자를 섞은 계란 물에 송송 썬 야채 몇 가지가 들어간다. 그대로 섞은 뒤 프라이팬에 붓는다. 얇게 펴서 돌돌 말아 올리는 것이 꽤 능숙해 보인다. 고대현은 식탁에 앉아서 이를 응시했다. 계란의 주도권이 이하린에게 넘어가니까 할 게 없어졌다.
“난 아까까지만 해도 시켜 먹을 줄 알았는데. 직접 할 줄은 몰랐네.”
“대부분 직접 만들어서 먹어. 안 그러면 게을러지거든.”
의외의 대답이었다.
보통 가사 로봇한테 맡기는 게 일상이며, 없다 하더라도 배달시키면 금방 오니까.
‘수작업 매드무비에 이어서 수작업 요리라…….’
고대현이 생각하는 사이, 계란말이와 된장국이 완성되었다.
냉장고에 있던 반찬까지 꺼내서 식탁에 올려놓자 그럴싸한 밥상이 차려졌다. 대현은 자리에 앉은 뒤 숟가락을 들었다.
“잘 먹겠습니다.”
그렇게 말한 다음 된장국부터 떠먹었다. 약간 묽은 듯하면서도 손맛이 느껴진다. 인위적인 무언가가 없는 느낌이랄까. 이런 건 오랜만이었기에 오래 음미하면서 먹었다.
“맨날 느끼는 건데, 잘 먹네.”
“……맨날 느끼냐?”
“응, 급식 먹을 때 보니까 정신없이 먹던데.”
맛있게 먹긴 했다만.
그렇게 무아지경 상태로 먹진 않았다.
단지 잡생각이 많았을 뿐.
그때는 아직 세상에 적응할 시기였으니까.
고대현은 젓가락을 움직이다가 문득 과거를 떠올리고 말했다.
“너야말로 슈바인학센 정신없이 먹던데 뭘.”
“그건…… 맛있어서 어쩔 수 없던 거고.”
서로 티격태격하면서 밥을 먹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고대현은 싱크대에 빈 그릇을 옮기고 나서 물을 틀었다.
‘먹었으니까 설거지는 내가 해야지.’
가사 로봇이 없으니 직접 접시를 닦아야 했다.
“네가 하게?”
“이 정도는 당연한 거지.”
쏴아아.
그릇에 물이 떨어진다.
그릇의 양이 적었기에, 설거지는 금방 끝났다.
그렇게 식사까지 마무리하자 다시 수련의 시간이 다가왔다.
“아까 했던 거 다시 해보자.”
“그 목 조르기?”
“응.”
이하린이 고개를 끄덕인다.
‘또 아까처럼 될 것 같은데.’
고대현은 일전의 어색한 상황을 떠올렸다.
좀 더 큰 사람이랑 하면 좋을 텐데 말이지.
이하린이랑은 키 차이 때문에 조금 애매했다.
“다른 건 없냐?”
“역시 이건 좀 어려웠나?”
“실제로 사용하기 힘들 것 같긴 해.”
“그래도 몇 번 정도는 더 해보는 게 좋아. 될지도 모르니까.”
하지만 이하린의 권유 덕에 마지못해 기술을 시연했다.
턱.
옷깃을 잡으며 안 다리를 걸어 무게 중심을 무너뜨린다.
이때 재빨리 뒤를 잡으면서 조르자 얼추 모양새가 나왔다.
“흠, 느리긴 한데 그래도 괜찮네.”
이하린은 만족스럽다는 표정을 지었다.
‘이제 끝인가?’
고대현도 예상보다 몸이 잘 움직여서 기분이 좋았다.
이걸 모션 캡처로 등록해서 실제로 쓸 수 있을지는 미지수였다.
잡는 부분에서 오차가 어느 정도로 날지 모르는 일이니까 말이다. 그래도 한 가지를 얼추 마스터하니까 속이 후련해졌다.
끼릭.
그가 그런 생각을 하면서 땀을 닦고 있을 때였다.
“그건 또 뭐냐?”
“이거?”
이하린이 창고에서 무언가를 가져온다. 모형 총검이 착검된 나무 소총이었다. 그녀는 모형총을 고대현에게 내밀면서 입꼬리를 올렸다.
“이제 총검술도 해야지. 솔직히 이게 더 쓸모 있을걸?”
“무슨 모형총까지 있냐······.”
싱크로율을 위해 현실에서 모형총을 다루는 이들이 있다고 얼핏 들었다. 처음 들었을 때는 뭘 그렇게까지 하나 싶었는데.
‘내 앞에 있을 줄은 몰랐네.’
고대현은 한숨을 쉬면서 그걸 받아 들었다.
그래도 아주 쓸모없을 것 같지는 않았으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