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3화
#83화
‘뭐 이런 균형 잡힌 괴물이 다 있지?’
각각의 수치가 높은데 균일하기까지 하다.
그간 범단월과 태해란 등 뛰어난 학생을 여러 번 봐왔지만 이런 경우는 처음이었다. 홍영은 당황했지만, 겉으로 내색하지 않고 말했다.
“뭘 해도 다 잘하시겠네요. 으음, 이러면 전사 말고 원거리 딜러가 나을 것 같은데…….”
띠링.
그녀가 말을 꺼냄과 동시에, 대현의 앞에 서브 스킬 선택창이 나타났다.
‘생각보다 인재야. 재능을 썩히게 둘 수는 없지.’
홍영은 진심 어린 조언을 건네기로 했다.
“스킬끼리 궁합이 맞는 걸 골라야 합니다. 잘못하면 아크션처럼 애매한 캐릭터가 되거든요.”
“궁합…….”
“서브 조합 보완에 따라서 메인 스킬 찾을 장소도 달라지니, 신중하게 선택하시길.”
수호기사의 말을 곱씹은 고대현은 스킬 목록을 살폈다.
그리고 약 500개 가까이 되는 스킬 중 적당한 것을 골랐다.
‘A급 대행은 4개를 고를 수 있으니까…… 이걸로 가야겠다.’
현재 허용된 건 서브 스킬 4개가 전부였다.
전부 강력한 궁극기로 채워 넣고 싶지만.
‘쿨타임도 고려해야겠지.’
“골랐어요.”
“제가 봐도 될까요?”
“여기요.”
그녀는 고대현이 고른 스킬 목록을 살폈다.
[감마 스트라이크]
[검날 흘려내기]
[발광탄]
-수집 퀘스트 후 사용 가능합니다.
[재롱둥이]
“──!!”
그리고 눈을 동그랗게 떴다.
감마 스트라이크와 검날 흘려내기, 발광탄, 재롱둥이라니.
감마 스트라이크와 검날 흘려내기는 시너지가 좋아서 그러려니 하는데…….
발광탄과 재롱둥이는 너무 뜬금없었다.
“……진지하게 고른 건가요?”
“음, 역시 별론가요?”
“감마 스트라이크랑 검날 흘려내기는 같은 도검류니까 그렇다 치고. 발광탄은 특수무기. 재롱둥이는 창입니다. 이렇게 가면 스킬 완성도가 떨어질 수밖에 없어요.”
그녀가 조목조목 설명해준다. 대현은 수호기사의 말을 곱씹다가 입을 열었다.
“무기를 여러 개 고르면 되는 거 아닌가요?”
홍영이 고개를 젓는다.
“무기별로 숙련도 따로 올려야 해서 비효율적이에요. 전투 중에 무기를 바꾸기도 어렵고, 2개를 동시에 올려야 하니까 돈도 많이 듭니다. 근본적으로 스킬 슬롯도 제한적이고요.”
“비용이랑 숙련도, 효율이 문제라는 건가요?”
그녀가 고개를 주억거린다.
“올 마스터를 목표로 한다면 말리지 않겠습니다. 다만, 지금은 대행증으로 하는 것이니 돈 투자는 안 하는 게 좋겠지요.”
“네, 알겠습니다.”
대현은 스킬을 확정 짓기 전에 다시 한번 스킬 내역을 살폈다.
빙의체가 있는 LOH나 언더 워치와는 다르게, 무기에 따라서 난이도와 신경 지구력 소모값이 변동된다.
‘확실히 다르긴 하네.’
검날 흘려내기와 감마 스트라이크는, 소지하고 있는 무기가 검일시 구현 난도가 내려가고 효율이 상승한다.
또한, 스킬이 유지되는 기본 시간을 넘기면, 신경 지구력 소모값이 확 올라가는 구조였다.
‘이게 어른들의 무대라는 건가.’
새삼 신영범 학년 담임이 주관했던 [중간 모드]가 생각난다.
자신은 PC모드라서 큰 상관이 없지만, 다른 일반적인 학생들에겐 도움이 많이 되겠지…….
“아무튼, 스킬 몇 개는 빼고 다시 고르는 게 좋을 것 같네요. 고르는 게 어렵다면, 제가 커스텀을 도와줄 수도 있습니다.”
“흐음…….”
재롱둥이와 감마 스트라이크는 순간 무적 딜링기.
검날 흘려내기는 카운터 기술. 발광탄은 스턴기에 가까운데, 침략전 때 봤던 장면이 떠올라서 편입시킨 스킬이었다.
확실히, 고심하지 않고 고르긴 했다.
‘그래도.’
“한번 써보고 결정해도 되나요?”
“네. 뭐, 정 그러시다면.”
수호기사가 훈련장의 무기고로 데려간다.
“일단 공격 수단이 평타가 대부분이게 되는데. 생각해두신 무기 있나요?”
“검 아니면 창으로 하게요.”
“검이 좋을 것 같긴 한데 재롱둥이를 생각하니까 애매하네요.”
“그냥 둘 다 써보고 결정하는 거로 하죠.”
그 말에 수호기사가 검과 창을 건넨다.
“발광탄은, 나중에 수집 퀘스트를 완료하고서 쓸 수 있을 겁니다.”
“수집 퀘스트요?”
“네, 간단하게 사냥하고 보상 얻고 하는 식으로 발광탄 소자를 얻어야 해요.”
사냥, 보상이라고 하니, 뭐랄까.
본격 RPG 시작! 이라는 느낌이었다.
철컥.
대현은 무기를 받았다.
무기 슬롯에 무기 2개가 장착된다.
‘검부터 써봐야지.’
화면 속 자신이 검을 들게 한 뒤, 스킬을 살핀다.
처음 쓸 건 당연하게도 감마 스트라이크였다.
3인칭 모드로 바꾸고 훈련용 꼭두각시를 노린다.
그러자 스킬 시전 사거리가 나온다.
꼭두각시를 중심으로 하늘색 원이 둥글게 생성되어 있었다.
‘나한테만 보이는 거군.’
옆에 있는 수호기사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다는 게 그 증거였다. 키 배열 배치는 끝냈으니. 대현은 안심하고 스킬을 사용했다.
딸깍.
훅.
고대현의 인영이 일순 자취를 감추었다. 마치 제자리에서 푹 꺼진 것처럼 보였다.
사사사삭!!
삑.
[동작 구현 : 100%]
훈련장의 꼭두각시를 중심으로 몸이 현란하게 움직인다. 겉모습을 묘사하자면. 무작위적으로 순보를 밟으며 검을 휘두르는 것 같다.
‘챔피언이 아니라 내 분신으로 쓰니까…… 이상하면서도 신기하네.’
LOH에서 마스터 우의 몸으로 감마 스트라이크가 시전 되었다면. 지금은 순수한 자신의 아바타로 실행되는 움직임이었다.
탓.
감마 스트라이크를 멈춘 대현의 아바타가 꼭두각시의 앞에서 멈춘다. 발아래에서 먼지가 일어났다가 연하게 흩어진다.
“빨라…….”
뒤에서 보던 홍영이 저도 모르게 중얼거린다.
훈련용 기본 검으로 저 정도 감마 스트라이크를 재현해내다니…….
‘이거, 그대로 돌풍 길드에 투입시켜도 되겠는데?’
돌풍 길드.
한때 신영범이 있던 곳.
다음 라그나로크 때 또다시 북부를 담당하게 될 길드다.
아직 기간이 남았으니, 충분히 성장시킨 다음에 투입해도 꽤 괜찮을 결과가 나오지 않을까 하는 예감이 든다.
철컥.
한편.
그녀가 놀라는 사이, 고대현은 ‘재롱둥이’를 준비했다.
무기를 교체하지는 않았다.
궁금한 게 있으니까.
그는 화면 아래에 있는 스킬창을 응시했다.
[감마 스트라이크] : 가능
[검날 흘려내기] : 가능
[발광탄] : 불가능
[재롱둥이] : 가능
‘검으로 재롱둥이를 쓸 수 있을까?’
가능이라고 뜨긴 하지만 재롱둥이는 동작이 기괴한 편이다.
원본은 창으로 땅을 찍은 상태에서, 창에 매달린 채 물구나무서기를 하는 것인데. 아무래도 검으로 하기엔 난도가 높았다.
‘그래, 어차피 내가 움직이는 것도 아니니까…….’
준비를 끝마친 대현은, 곧바로 재롱둥이를 사용했다.
푹!
화면 속 자신이 땅에 검을 박으면서 물구나무 자세를 취한다.
아니. 물구나무라고 하기에도 애매한 무언가였다.
‘원래는 창을 땅에 박고, 거기에 옆으로 매달리는 형태지.’
창이 아니라 검.
길이가 짧다 보니 땅에 검을 박고, 검 손잡이를 잡은 채 몸을 거꾸로 세운 꼴이 되었다.
퍼즈가 ‘재롱둥이’ 스킬을 사용하는 것과는 다른.
뭔가 불쾌한 골짜기가 느껴진다.
‘재롱둥이가 아니라 X발둥이 같네.’
대현의 미간이 좁혀졌다.
빙의체로 움직이는 건 그렇다 치는데. 본래의 몸으로 저 동작을 취하니까 봐줄 게 못 되었다. 결과적으로 완성도는 높지만 보기에는 이상한 장면이 연출되었다.
“오…….”
반면 수호기사는 감탄하면서 입을 벌렸다.
“대미지는 약해졌지만 그걸 그렇게 쓰다니……. 대단합니다.”
“대단해요? 이게? 이 추한 모습이?”
“당연하죠. 정답이 없는 상태에서 그 정도로 한 건데…….”
무기가 일치하지 않는 상황에서는 동작이 필연적으로 달라질 수밖에 없다. 이렇게 달라질 경우.
동작의 공백을 메꾸는 것은 본인의 몫이었다.
한데, 고대현은 이런 부분을 단번에 캐치하고 실행한 것이었다.
“외부 노출 모드로 바꾸고도 해보시는 건 어떻습니까? 팔다리 길이가 다르니까 이왕 적응할 거면 그쪽으로 하는 게 나을 겁니다.”
“듣고 보니 그러네요.”
대현은 겉모습을 외부 노출 모드로 바꾼 뒤 재롱둥이를 사용했다. 그러자 더 추한 모습이 연출되었다.
‘으음…… 재롱둥이는 이쯤에서 그만하고 검날 흘려내기나 써야겠다.’
검날 흘려내기는 검을 빠르게 휘두르면서 튕겨내는 거니까.
재롱둥이보다는 볼만하겠지.
“한발 날려드릴까요?”
“네.”
수호기사가 장총을 꺼낸다.
저번에 테라스에서 봤던 그 총이었다.
겉에 마법진 같은 게 엄청나게 많이 새겨져 있는데, 위력이 상당히 강해 보였다.
“살살 쏠 거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시길.”
“아, 네…….”
고대현은 살살 쏜다는 말이 잘 이해되지 않았지만, 그러려니 하고 검날 흘려내기를 사용했다.
‘이번에는 1인칭으로 전환해서…….’
수호기사의 총구가 있는 방향으로 검날 흘려내기를 시작한다.
길쭉한 금속이 이리저리 움직인다. 단검이 아닌 롱소드로 실행되는 검날 흘려내기였다. 고대현은 수호기사가 방아쇠를 당기기 전에 말했다. 문득 떠오른 경고였다.
“아 참, 안 죽게 조심─.”
“네??”
탕-!
티잉-!
총알이 번쩍하고 날아옴과 동시에 불꽃이 튄다. 총알로 보이는 투사체가 왔던 길로 되돌아간다. 설마 역으로 헤드샷이 나오는 건 아니겠지? 고대현이 수호기사가 있는 방향을 응시한다.
퍼엉!
무언가가 터지는 소리가 난다.
쨍그랑 쨍 쨍그랑, 저 멀리 있는 바닥에 조각 같은 물건이 떨어진다. 뭐지? 잘 만든 레고 모형이 부서지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아아…….”
뭔가 불안하다. 가까이 가자, 사건의 전말이 보인다. 아까 떨어진 조각들. 수호기사가 가지고 있던 총이 산산조각이 난 것이었다. 고대현은 땅에 떨어진 총의 부품을 보며 긴장했다.
‘아니, 장비가 이렇게 잘 부서질 줄 알았냐고.’
보통 이런 게임은 무기에 내구도가 있어서, 손상되면 더이상 본래의 무기가 아니게 된다. 게다가 파손되었다면 그 확률은 더욱 높았다. 대현은 침을 꿀꺽 삼키고 입을 열었다.
“조립 가능한 건가요?”
“……글쎄요. 잘 모르겠습니다…….”
수호기사는 말끝을 흐렸다. 그녀도 당황스러운 나머지 머리가 제대로 돌아가지 않았다. 어지간해서 고장이 안 나게 인챈트한 무기가 이렇게 되다니. 홍영은 총이 박살 나기 직전. 찰나의 순간을 떠올렸다.
‘총알이 총구로 들어왔었나?’
잘 흘러 내봤자 거기서 거기라고 생각했다.
왜냐? 장비 차이가 워낙 심했기 때문이다. 기본 무기로 하면 얼마나 하겠는가.
하지만 고대현의 검날 흘려내기는 그녀의 예상을 훨씬 뛰어넘는 것이었다.
총구를 나간 총알이 곧바로 총구로 들어온 뒤, 내부에서 터져버렸다. 아무리 좋은 장비라도 내부에서 터지니까 답이 없었다.
“괘, 괜찮아요. 아, 아마도…….”
“이 총. 가격이 어떻게 되죠?”
홍영은 바닥에 떨어진 부품을 주워 담으면서 대답했다.
“100억 정도입니다.”
라그나로크 전에 출시되는 한정 장비에 여러 가지를 인챈트해서 업그레이드시킨 걸 얻은 무기.
다시 얻을 수 없는 유니크한 것이었기에. 그 가치가 상상을 초월했다.
“100억이요??”
집판검이 아니라 집판총이라니. 아니, 집을 팔아도 못사나?
고대현의 눈이 동그랗게 커진다.
‘접속 종료하고 도망갈까?’
그걸 본 홍영은 손을 휘휘 저으면서 말했다.
“괜찮습니다. 물어내라고는 안 하니까요. 애초에 이렇게 정확하게 반사해서 올 줄 몰랐으니……. 다 방심하고 있었던 제 탓이죠.”
“그, 그래도…….”
“하나 더 있으니까 너무 신경 쓰지 마세요.”
“네??”
상상을 초월하는 가치지만, 한국 대륙 최고성의 고위직 정도에겐 3개 정도 있는 물건이었다. 일종의 국방 자원이라고 봐도 좋았으니 말이다.
“흐음.”
절그럭.
홍영은 파괴된 총의 단면을 살폈다.
얼마 전.
정태룡과 범단월을 봐주다가, 검날 흘려내기의 복제 반사 때문에 헤드샷을 당한 적이 있다. 그런 걸 경험하고 나서도 함부로 총구를 겨눈 게 문제였을까.
‘물론, 고대현 학생의 검날 흘려내기 실력이 예상외인 게 제일 컸지만.’
솔직히 누가 총구로 총알이 되돌아올 거라고 생각할까.
홍영은 기껏해야 입고 있는 갑옷에 총알이 튕겨 나가거나.
재수 없으면 헤드샷을 맞아서 로그아웃되는 미래를 상상했다.
‘나중에 크게 되겠는데?’
검날 흘려내기를 잘한다고 신영범에게 얼핏 들었긴 했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대략적인 부품을 주워서 자리에서 일어나는 홍영.
그녀는 고대현에게 재롱둥이를 빼고 바람검사의 스킬인 돌풍검을 넣는 게 좋을 것 같다고 말했다.
“그냥 다 검사나 세팅으로 갑시다. 재롱둥이도 나쁘진 않은데, 마법딜 스킬이라서 나중에 가면 아이템 때문에 골치 아파져요.”
“흠.”
재롱둥이의 모션 비주얼이 별로였던지라 고대현도 그 말에 동의했다.
‘그럼 하나는 궁극기 급으로 들까?’
감마 스트라이크와 검날 흘려내기 정도면 충분하다.
움직임을 적절하게 잡아줄 걸 고르자.
대현은 궁극기 페이지를 탐색했다.
[모래 황제의 밀치기]
적합도 : 30%
-특수 퀘스트 진행 후 사용 가능합니다.
[시간과 정신의 방]
적합도 : 50%
-특수 퀘스트 진행 후 사용 가능합니다.
‘무슨…… 전부 다 특수 퀘스트를 진행해야 한다고 하네.’
무기나 마도구로는 재현할 수 없는 무언가를, 특수 퀘스트를 통해 얻는 모양이었다. 그는 고민하다가 결국 적합도 90%에 근접하는 궁극기를 골랐다.
띠링.
[마지막 전사]
적합도 : 90%
-특수 퀘스트 진행 후 사용 가능합니다.
효과 : 무아지경에 빠지며 둔화 효과 면역. 공격 속도와 이동 속도가 증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