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9화
#79화
딸깍.
천연주는 조정간을 연사로 바꿨다.
다인 모드는 빈사 상태에서 움직일 수 있다. 헤드샷이 아닌 이상 바로 죽지 않는다. 전음으로 적의 위치를 알려줄 수도 있고.
그래서 건물에서 각각 따로 움직이다가 한 명이 당하면 그때 합류하는 방식을 자주 쓰는데.
39반도 예의 방식대로 움직이는 중이었다.
즉, 옆에서 탄을 건네줄 사람은 없었다.
‘그 여자앤가?’
설마 먼저 접근하다니. 분명 멀리서 관찰만 하고, 아군이 합류할 때까지 기다릴 줄 알았다.
혼자서 5명을 상대하기란 어려운 일이니까.
천연주는 총구를 이리저리 움직이면서 뒤로 빠졌다.
메위를 하면서 기습을 많이 했던 그녀의 감각이 팽팽하게 당겨진다.
하지만 이리저리 뒤져봐도 나타나는 이는 없었다.
조용하다. 착각했을 리는 없을 텐데…….
“야, 다들…….”
천연주가 주변 팀원들에게 전음을 보낸다. 혹시 누가 왔을지도 모르니까 질문했다. 예상대로 가까이 온 사람은 없었다. 결국 대화는 최악의 경우로 흘러갔다. 누군가가 침입했다는 내용으로 말이다.
“그래? 진입하면서 체크 끝난 거 아니었나?”
“다시 한번 돌아볼게.”
갑자기 분위기가 분주해진다. 일단 흩어져서 찾아보기로 했다. 만약 습격당해도 통신으로 말해줄 수 있으니 산개해서 수색하는 게 이득이었다. 그러나 돌아다녀도 적의 실루엣은 보이지 않았다.
“잘못 본 거 아니야?”
“이상하다. 그럴 리 없는데…….”
천연주는 1층을 돌다가 3층으로 올라갔다.
적이 접근하는 것도 체크 할 겸 창문을 응시했다.
애애앵앵.
전기장 축소 경고음이 들린다. 소리가 공기를 진동시킴에 따라 멀리 있는 나무들이 하나씩 흔들린다. 나뭇가지에 앉아 있던 새들이 하늘로 날아가기 때문이었다. 천연주는 자신도 모르게 그 광경을 멍하니 바라봤다.
‘주말에 뭐하지…….’
스슥.
천연주를 현실로 불러들인 것은 미세하게 사각거리는 소음이었다. 그녀는 소리의 근원지로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한순간 호흡을 집어삼켰다. 벽면에 사람이 매달려 있었다. 손으로 건물의 처마 부분을 잡으면서 버티고 있는 것이 마치 박쥐 같았다.
가지고 있는 짐 또한 간소했다. 작은 크로스백에 권총, 단검, 방탄조끼뿐.
“아, 들켰네.”
천연주가 대응하기도 전에 이하린이 움직였다.
턱, 하고 천연주의 멱살을 잡은 뒤 창문 밖으로 끌어내서 바닥으로 던진다.
콰당.
즉사하진 않았지만 떨어진 부위가 안 좋은 탓에 빈사 상태가 되었다.
들고 있던 소총은 어느새 없어진 상태였다. 바닥으로 던져진 순간에 총을 빼앗긴 것이었다.
“3층에 사람 한 명!”
“3층?”
“벽에 매달려 있었어. 지금은 지붕으로 올라가는 중.”
천연주가 겨우 전음으로 팀원에게 말했다. 적은 굳이 자신을 죽이지 않고 총만 빼앗아서 지붕 위로 올라갔다. 팀원이 구하러 오는 순간에 쏠 작정인 듯했다.
“여기로 오지 말고 지붕 위로 올라가서 처리해!”
“지붕 위로 올라가는 거 가능한 사람 있어?”
“아니.”
그러나 처리할 방법이 마땅치 않았다. 애초에 올라가는 계단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었다. 해결 방법은 2명 정도가 엄호하면서 천연주를 구하는 것이었다.
“몰래 내부로 침입할 수도 있으니까. 1명은 3층 복도에서 대기하고, 나머지는 밖으로 나와.”
빈사 상태에서 살아있긴 해도 HP가 계속 줄어든다. 사실상 시한부 인생이기에 39반의 움직임은 신속했다. 강대협은 건물 외벽을 돌았다. 2명이 천연주를 구출하는 사이 지붕 위의 사람을 노리기 위함이었다.
‘없다?’
하지만 적은 쉽사리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아니, 아예 없는 것 같기도…….
“다시 창문으로 들어갔을 수도 있어. 3층 확인해봐.”
“글쎄. 3층으로 들어오는 인기척은 못 느꼈는데?”
천연주가 구출되고 붕대를 감을 때 동안 이하린이 나타나는 일은 없었다.
그 때문에 찝찝한 경계가 지속되었다. 강대협은 지도를 펼쳤다.
전기장 위치가 좋아서 굳이 나갈 필요가 없었다. 여길 떠날지, 아니면 싸울지 결정해야 했다.
‘일부러 시간 끄는 것 같은데…… 그냥 떠나야겠다.’
그가 그렇게 생각할 때였다.
시야가 뒤틀린다. 천장에 숨어 있던 이하린이 강대협의 어깨로 내려와서 목을 비틀었기 때문이었다.
우득.
그대로 얼굴의 위아래를 잡고, 상반신의 무게 중심을 이용해서 몸을 아래로 돌린다. 동시에 안구가 있는 방향도 위에서 아래로 돌려준다. 이대로 힘을 더 주면 곧장 즉사로 만들 수 있다.
탕탕-!
하지만 뒤에서 날아오는 총알 때문에 이하린은 몸을 틀어서 옆으로 굴렀다. 다리에 총알 몇 개가 스쳤다. 발목과 대퇴부의 신경 부하가 증가한다. 리미터를 해제하면 둘 다 처리가 가능하지만.
‘지금은 자제해야 한다.’
이하린은 힘을 억제하기로 했다. 부작용인지는 몰라도 전 시간에 몸이 안 좋았으니까. 이번에는 자제하기로 했다.
철컥.
그녀는 권총을 들고 방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벽면에 붙어서 팀원에게 전음을 보냈다.
“어디야? 나 지금 싸우는 중인데.”
“막, 도착했어. 너 방향 어디냐?”
“방향?”
“그…….”
이하린은 아무 방향이나 말했다. 당장 적이 문을 열고 들어오게 생겼는데, 그런 걸 생각할 시간은 없었다.
끼익.
문이 살짝 열리고 핀을 뽑는 소리가 들린다. 딱 봐도 수류탄이었다. 이에 이하린이 정신을 집중할.
쿠구구구.
바로 그때였다.
무언가가 날아오는 소리.
파공성이 점점 커진다.
이하린은 벽이 무너지기 직전.
날아오는 게 무엇인지 인식했다.
‘RPG?’
콰앙!
흙먼지가 튀면서 건물 내부가 메케한 연기로 뒤덮였다.
* * *
“흠, 킬이 없네.”
RPG를 내려놓은 고대현이 혀를 찼다.
“말했잖아. 가성비는 별로라고.”
옆에서 유금옥이 말한다. 그는 대답 대신 저격 소총을 들었다. 아까 보급에서 얻은 AWM이었다. 건물에 폭탄이 처박힌 탓일까. 창문 내부로 분주하게 움직이는 적팀이 보인다.
‘하나, 둘…….’
탕-!
[1킬 : 이보빈]
헤드샷으로 한 명을 즉사시켰다.
이제 마우스로 하는 헤드샷도 익숙해진 참이었다.
“이제 접근하자.”
끼익.
이하린이 말한 장소 근처에 차를 세운 40반은 RPG를 때려 박은 건물로 접근했다.
“야, 너…….”
그러던 중 빈사 상태로 기어 다니는 이하린을 발견했다.
“뒤에 있다면서 왜 건물 안에 있냐?”
“빨리 치료나 해…….”
고대현은 다른 애들이 엄호하는 사이 이하린을 치료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빈사 상태였던 그녀가 최소한의 체력으로 살아났다. 대현은 바닥에 붕대와 에너지 드링크를 툭 던지면서 말했다.
“이걸로 피 채워.”
“병주고 약주네…….”
이하린이 눈살을 찌푸린다. 고대현은 별 말하지 않고 앞으로 이동했다. 연기가 걷히면서 적팀이 눈에 들어온다. 적들도 뒤에 빈사 상태가 된 아군을 치료하면서 총을 쏘고 있었다.
탕탕-!
나무로 된 벽이 파편을 토해낸다. 바닥에 크고 작은 구멍 여러 개가 뚫렸다.
“윽.”
상반신을 기울여서 쏘고 있던 이태원이 당했다. 헤드샷으로 인한 즉사였다. 역시 전체적인 사격 실력은 39반이 더 우세했다.
‘계단 위쪽이네.’
고대현도 뒤늦게 참전했다. 총격전은 한창 계단이 있는 통로에서 벌어지고 있었다. 대현은 Q 키로 상반신을 살짝 기울이면서 총을 쐈다.
‘여기다!’
타앙!
그러자 적 한 명이 빈사 상태가 되면서 쓰러진다. 균형이 무너졌다.
“한 번에 돌격하자. 머릿수는 우리가 우세해!”
허건섭의 말에 이하린과 유금옥이 돌진한다.
‘갑자기 닥돌하네.’
고대현은 뒤늦게 그 뒤를 따랐다. 나무를 박차는 발소리 사이를 총성이 메꾸면서 이어진다. 이하린이 신속하게 발로 적의 총구를 위로 차고, 나머지 애들이 소총으로 처리한다. 복잡한 난전이었다. 고대현은 실수로 아군의 등을 쏘지 않게 조심해야 했다.
털썩.
그래도 전투의 시간은 짧았다.
죽은 상대 팀이 상자로 변하고, 옆에 있던 아군도 별안간 상자로 변했다.
격렬한 전투 결과, 허건섭과 유금옥이 로그아웃되었다.
40반의 살아남은 인원은 이하린과 고대현이 전부였다.
죽은 사람은 이후의 결과에 관여할 수 없게 바로 로그아웃되는 시스템인지라 주변이 갑자기 조용해졌다.
이하린이 어깨에 총을 메고 구급 키트를 사용하는 사이.
대현은 시체를 파밍하면서 지도를 살폈다. 생존자 수를 보아하니 아직 1명이 남아 있었다.
“게임 안 끝난 거 보니까 아직 한 명 남았네.”
“안에 숨어 있을걸? 찾아보자.”
게임은 적팀이 완전하게 없어져야 비로소 끝이 난다.
이를 위해서 내부 수색이 시작되었다. 문 하나하나를 신중하게 열면서 총구를 움직인다.
그때였다.
부르릉.
어디선가 들려오는 시동 소리…….
대현은 창밖을 살폈다. 밖에 세워둔 자동차가 굴러가고 있었다. 차를 빼앗긴 것이었다.
뒤늦게 총을 들어서 쐈지만. 상대를 죽이는 것까지는 불가능했다.
“저놈, 언제 저기로 갔지.”
생각보다 명줄이 질기다.
“창문으로 뛰어내려서 간 것 같아.”
혀를 차고 있자니, 이하린이 상반신을 숙이면서 지면을 내려다본다. 고대현은 지도를 살폈다. 가는 방향을 보아하니 섬의 오른쪽 지역이었다.
“전기장 범위를 보면 3시 방향으로 갔겠네.”
전기장은 중앙으로 좁혀들다가, 어느 순간 오른쪽에 편중되어서 줄어들고 있었다.
3시 방향에는 작은 민가가 몰려있는 캠프장이 있으니 숨기도 편하겠지.
고대현은 상자에서 얻은 짐을 종합한 뒤 건물 밖으로 나왔다.
애애애앵.
땅을 밟음과 동시에 자기장의 축소 경보가 귓전을 침범했다.
“새로운 차나 찾자.”
고대현은 최대한 넓은 시야로 주변을 살폈다. 화면이 넓어진 덕분에 살피기가 더 용이해졌다.
다행히도 얼마 지나지 않아서 3인승 오토바이를 발견했다.
‘3인용 오토바이면 적당하겠지.’
고대현이 상호작용 F 키를 눌러서 운전석에 탑승하려 할 때였다.
“나 오토바이 운전 잘하는데.”
“네가?”
이하린이 뜬금없이 운전하겠다고 한다.
“넌 혹시 모르니까 옆자리에 앉아. 저격해야 하는 상황이 올지도 모르잖아.”
3인용 오토바이의 옆에는 편하게 앉을 수 있는 의자가 구비되어 있다.
그녀의 말대로 자신이 옆자리에 앉는 게 나을 확률이 높았다.
“아, 그런 이유로…….”
하지만 대현은 말끝을 흐렸다. 이하린의 운전 실력이 뇌리를 스쳤기 때문이었다.
“저번에 임상배랑 타던 걸 보니까 별로였던 걸로 기억하는데…… 막, 벽에 박고 그러지 않았어?”
“그때는…… 사정이 있어서 그런 거야.”
투다다닥.
이하린이 핸들 잡고 시동을 건다. 투덕거리는 엔진소리가 퍼져나간다.
‘괜찮겠지?’
고대현은 하는 수 없이 그 옆자리에 앉았다.
부우웅.
오토바이가 앞으로 향한다. 목적지는 3시 방향이었다.
“좀 흔들릴 거야.”
이하린이 핸들을 확 꺾는다. 바퀴가 땅을 박차고, 몸이 앞으로 움직이면서 주변의 나무가 빠르게 뒤로 밀려 나간다.
오토바이의 속도는 꽤 빨랐다. 아까 빼앗긴 픽업트럭의 뒷모습이 보이니 말이다.
“자, 빨리 저격해!”
덜컹대는 와중에 이하린이 입을 열었다. 이렇게 흔들리는 상황에서 저격하라고 한다. 바퀴가 조금만 들려도 조준점이 크게 엇나가서 쉽지 않을 텐데…….
‘일단 해봐야지.’
AWM을 들고 마우스 오른쪽 버튼을 누른다. 그러자 고배율 스코프가 확대된다.
스코프의 십자선이 흔들린다.
그런데도, 고대현은 불가능할 거란 생각이 들지 않았다.
가끔 킬이 뜨기도 전에 ‘맞았다’라는 느낌이 들 때가 있지 않은가. 굳이 따지자면 지금이 그때였다.
‘하나, 둘, 셋…….’
팔을 조심스레 움직여서 차의 유리 너머로 보이는 뒤통수를 조준한다.
총알의 진행 방향과 흔들리는 각도 등, 모든 것을 계산한 채 숨을 내쉰다.
그리고 일순 잡힌 찰나의 순간. 손가락에 힘을 줬다.
‘지금!’
타앙-!
스코프의 십자선이 위로 튕기면서 탄알이 발사된다. 대현은 침을 꿀꺽 삼켰다. 맥이 풀리는 감각이 온몸에 퍼지기를 잠시…….
띠링.
[3킬 : 강대협]
흡.
앞에 나타난 문구를 보고 호흡을 집어삼킨 고대현.
별안간 그의 입꼬리가 실실 올라간다.
“야야, 됐다! 됐다고!”
이런 난이도의 저격은 원래 세상에서도 그다지 성공시킨 적이 없었다. 한데, 그런 걸 마우스로 해내다니…… 기분이 좋지 않을 수 없었다.
“어, 진짜? 진짜네……?”
이하린도 딱히 기대하지는 않았던 걸까.
눈앞에 뜬 킬 문구를 보고 눈이 동그랗게 커졌다.
그녀가 옆을 보면서 말을 이었다.
“표정이 그대로라서 장난치는 줄 알았는데…….”
아, 표정이 그랬던 건가.
고대현은 [감정표현] 목록을 살폈다. 부정적인 표현을 제외하고, ‘인사하기’나 ‘웃기’가 있었다.
‘웃기를 써보자.’
보통 사람, 혹은 보통의 경우에서 웃는 모습을 떠올린 고대현은 곧장 웃기를 사용했다.
딸깍.
그러자, 다음 순간.
“푸하하하하.”
화면 속의 자신이 상반신을 뒤로 젖혀가면서 깔깔 웃는다.
이건…… 평범한 웃음보다는 비웃음에 가까웠다.
‘아니, 이거도 말이 [웃기]지 그냥 도발용이나 다름없잖아??’
고대현이 예상외의 모션 때문에 혀를 찰 때였다.
“읏…… 왜 갑자기 그렇게 웃는 거야? 팔에 소름 돋았잖아.”
“소름 돋았다고? 이게 그럴 만한 일이었냐?”
“응, 깜짝 놀랐다고.”
“흐음…….”
고대현은 자신에 대한 이미지가 너무 과묵한 타입으로 굳어졌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간 계속 무표정하게 돌아다녀서 그런 듯했다.
‘앞으로 자주 [웃기]를 사용해야겠다.’
그렇게 생각한 그는 웃기를 한 번 더 눌렀다.
그나마 사람이 적을 때 한 번 더 써보자는 생각에서였다.
“푸하하하하.”
아까와 같은 웃음이 터지면서 화면 속 자신이 움직인다.
“아니, 미친 사람처럼 웃지 말라니까.”
이하린이 질색하는 표정을 짓는다. 그녀는 뭔가를 말하려고 입가를 달싹이다가…… 앞으로 튕겨 나갔다.
오토바이가 돌부리에 걸려서 전복되었기 때문이다.
“앗…….”
우당탕.
탑승하고 있던 2명이 지면을 구른다.
띠링.
[게임을 종료합니다.]
[평가전이 마무리되었습니다.]
때마침 끝났다는 글귀와 함께 시야가 암전된다.
“푸하하.”
눈앞이 어두워지는 와중인데도, 귓가에 대현의 웃음소리가 맴돈다.
‘갑자기 왜 저런데…….’
이하린은 어이없어서 웃긴 한편, 드디어 끝났다- 라는 생각과 함께 눈을 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