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3화
#73화
핸조의 궁은 의외로 속도가 느려서 피하기가 쉬웠다.
그래서 킬보단 진형 붕괴용으로 많이 쓰이는데, 사각지대나 회피할 때 오래 걸릴 만한 장소에서 써야 킬이 잘 나왔다.
당시 39반이 있던 자리는 갑작스레 이동하기 애매한 자리였다.
결국 연사 모드로 있던 부스터 온과 그 옆을 지키고 있던 로시우, 그리고 솔쟈보이 76이 허우적거리다가 죽었다.
“그쪽으로 아무도 못 오게 방어해 달라고 했더니, 핸조 하나 못 막으면 어떡하냐?”
B지점에서 다시 살아난 부스터 온은 메위에게 불평했다.
오른쪽으로 건물을 타고 오면, 부스터 온의 머리맡에 접근할 수 있기에 메위한테 보호 요청을 걸어놓았다. 그런데 핸조 하나 못 막을 줄은 몰랐다. 핸조는 스턴기도 없는 원딜 챔피언인데 말이다.
“미안…… 상대 핸조가 생각보다 날쌔서…….”
메위가 말하자 솔쟈보이도 동의했다.
“빠르긴 빠르더라 아까 회전 로켓 피하는 것도 그렇고, 화살 장전하는 속도도 그렇고…… 20반 구간에서나 볼 수 있는 컨트롤이었어.”
“20반 구간? 진심이냐?”
상대의 독수리 여왕과 켄지 컨트롤이 뛰어나긴 했어도, 활 컨트롤까지 좋은 건 예상외였다.
‘아. 그러고 보니.’
부스터 온은 검바람 나락에서 갱그플랑크를 했을 때를 떠올렸다.
그때 상대 앳쉬가 평타 동작에는 흔들림이 없었다. 팀원이 다 죽어가는 상황에서도 침착하게 활시위를 당겼었다.
“핸조를 잘한다, 라……. 핸조 말고 다른 눈에 띄는 애들은 없어?”
“음, 로드 피그가 생각보다 잘한다는 거 정도?”
이번 판은 중간에 픽을 바꾸는 게 불가능했다.
해서, 39반은 최대한 핸조와 로드 피그를 마크하는 것으로 전략을 전환했다.
띠링.
그때 B지점 정복 영역이 활성화되었다. 이제 슬슬 상대방이 올 것이다. 팔라가 하늘로 날아올라서 적들을 체크한다. 그리고 미사일과 충격 파동을 날려서 적들을 밀어냈다.
‘이번에는 연료 조절을 잘해서 핸조만 마크해야지.’
옆에 있는 건물에 착륙하면서 침착하게 미사일을 날린다. 핸조는 활시위를 당기는 텀이 있는지라 그전에 넉백을 시키면 화살을 날리지 못한다.
철컥-!
팔라가 그렇게 생각할 때였다. 돌연 갈고리가 몸통을 잡았다.
아래를 내려다보니 로드피그가 있었다.
촤라락.
이를 인식하자마자 아래로 빠르게 끌려 내려간다.
‘공중에 있는 대상을 완벽하게 그렙한다고?’
팔라는 날카로운 그렙각에 바로 사망했다.
39반은 최대한 수비에 맞춰진 챔피언 구성이었고, 비행 기능이 있는 팔라가 적진을 정찰하는 임무를 맡고 있었다.
‘바깥 상황을 유일하게 알려줄 수 있는 사람이 죽었네.’
리스폰 시간은 짧지만, 그만큼 상대방도 짧았다.
39반은 옆으로 들어올 수 있는 샛길을 방어했다.
B지점의 석상 뒤에 부스터 온을 감춰둔 채로 말이다.
‘사각지대에 부스터 온이 있으니까 잘 모를 거다. 붐볼의 밀치기 거리에도 안 닿는 곳이고.’
혹여나 핸조가 샛길로 들어오더라도 부스터 온의 사정거리였다.
39반은 팔라가 살아날 때까지 기다렸다. 그 사이에 붐볼이 벽에 로봇팔을 걸고 날아와서 진형 파괴를 시도했다.
촥! 차르르.
벽에 쇠사슬을 걸고 철퇴처럼 이리저리 쏘다닌다.
타타타탕-!!
그러나 대기하고 있던 부스터 온에 의해 얼마 가지 못하고 녹아서 없어졌다.
‘이제 부스터 온의 위치가 적들에게 알려졌겠네.’
솔쟈보이가 부스터 온에게 말했다.
“아직 과열 안 됐지?”
“슬슬 한계야.”
“조금만 버텨봐. 나도 궁 있으니까.”
현재 궁극기가 있는 사람은 각각 부스터 온, 메위, 솔쟈보이였다.
“나중에 메위가 궁 날리고 내가 그 위에서 자동 사격 모드로 쏘면 끝이야.”
팔라도 궁극기가 거의 다 찼으니 정복 구역 방어대책은 완벽했다.
하지만 샛길로 들어온 핸조에 의해서 예의 계획은 불투명해졌다.
퓻-!
“뭐야, 어디서 화살이 날아오는 거지?”
핸조의 화살은 약해 보이지만 생각보다 대미지가 강하다.
어? 하다가 죽는 일이 부지기수였다. 막 리스폰해서 하늘을 날아오르려던 팔라가 그대로 헤드샷을 맞아서 땅으로 떨어졌다.
“저기다!”
위치를 확인해 보니 핸조가 왼쪽 길에 있는 기둥을 타면서 화살을 날리고 있었다.
‘뭐지?’
솔쟈보이는 눈살을 찌푸렸다. 상대가 뭘 하는지 정확하게 보기 위함이었다. 그러자 돌기둥을 양손으로 오르면서 점프하고 쏘고, 다시 중간에 벽을 타면서 화살을 쏘는 핸조의 행동이 포착되었다.
“저건 팔라가 처리해야 될 것 같은데.”
“아니, 팔라는 나오자마자 죽었잖아.”
“아, 이거 픽을 못 바꾸는게 불편하네.”
마음 같아서는 자신이 팔라를 하고 싶었지만, 그게 불가능했다.
‘일단 내가 최대한 마크하는 거로 가야겠네.’
솔쟈보이는 회전 로켓으로 핸조를 떼어내기로 했다.
핏-!
하지만, 회전 로켓을 쏘려고 총구를 들던 찰나에 머리에 헤드샷을 맞아서 죽어버렸다.
“뭐야 이번에는 왜 솔쟈가 삭제되냐?”
솔쟈 보이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벽면에 기대고 있다가 빠르게 쏜 다음 다시 모습을 감추려고 했는데.
‘고개를 내밀자마자 당했다…….’
화살의 재장전 속도가 얼마나 빠른지 모르겠다.
거의 틈을 찔렀다고 여겼는데 말이지.
그의 사고가 빠르게 회전했다. 이대로 가면 어차피 진다. 인정하기 싫지만 수준 차이가 나서 이기기 힘들었다. 결국 선 공격을 감행하기로 했다.
“내가 뒤로 돌아가서 목표 포착 쓸게. 메위는 중간에 들어가서 아이스 에이지 날려줘. 부스터 온은 상황 됐다 싶으면 전차 모드로 바꾸고.”
“어렵긴 한데, 일단 해볼게.”
솔쟈 보이를 컨트롤하는 강대협은 바로 샛길을 통해서 적들의 뒤로 돌아갔다.
상대가 적진 점령에 눈에 팔린 사이 뒤에서 궁극기로 처리할 생각이었다.
우잉웅웅.
푸쉬이이익.
때마침 귓가에서 부스터 온의 궁극기 소리와 메위의 궁극기, 아이스 에이지 소리가 들린다.
“이제 저기에 한눈이 팔린 사이에 내가 뒤치기를 하면 끝이다.”
솔쟈보이의 계획은 머지않아 실행되었다.
적들이 눈앞의 적을 차치하는데 정신이 없는 사이 목표 포착을 사용했다.
시야에 있는 모든 적에게 자동으로 에임이 고정되면서 모든 탄환이 적중된다.
타타타탕!
뒤에서 올줄 몰랐던 걸까.
다들 당황하면서 죽어 나간다.
다시 거점을 밟은 솔쟈보이의 눈에 남은 적들은 없었다.
‘핸조만 빼고 말이지.’
그는 목표 포착에서 핸조가 보였던 지점을 떠올렸다.
이어서 눈을 깜빡인다. 일순간의 직감을 잡아내서 몸을 뒤로 회피시킨다.
푹!
있던 자리에 화살이 박혔다. 누가 봐도 핸조의 화살이었다.
펑!
솔쟈보이는 핸조가 있는 기둥에 회전 로켓포를 날렸다. 그대로 벽에 붙어 있던 핸조가 추락한다.
‘지금이 틈이야. 처리해야 된다.’
솔쟈보이가 달려가면서 접근한다.
활을 잡기도 전에, 총으로 쏴서 없앨 생각이었다.
끼이익.
그러나.
핸조는 떨어지는 와중에도 활시위를 잡아당겼다.
한차의 떨림도 없는 동작이었다.
‘어떻게 공중에서.’
푹-!
거기까지가 솔쟈보이의 마지막 시야였다.
[-패배-]
별안간 귓가에 패전 소식이 들려왔다.
* * *
평가전의 첫 번째 시간인 언더 워치가 끝났다.
캡슐 밖으로 나온 대현은 자신의 손을 쥐락펴락했다.
그는 일전의 핸조 컨트롤을 상기하고 있었다.
‘옛 실력을 어느 정도 되찾았다.’
마우스로 차징해서 날리는 핸조의 화살.
처음에는 미숙했지만 하다 보니까 금세 적응했다.
오히려 후반에는 장전하는 속도가 빨라서 연속으로 빠르게 화살을 쏠 수 있었다.
‘단발성으로 클릭하면, 거의 1초에 2번도 날릴 수 있던 것 같은데…….’
고대현이 생각하고 있을 때였다.
“대현 아까 활 컨트롤 뭐냐? 켄지 말고 핸조도 잘했던 거야?”
반 아이들의 질문이 들려왔다.
대현은 여느 때처럼 천재 콘셉트를 잡기로 했다.
“아, 그냥 뭐, 하다 보니까 됐어.”
“너, 맨날 다른 거도 다 하다 보니까 됐다면서. 이번엔 핸조까지 이러기야?”
허건섭이 장난스럽게 말한다.
고대현의 실력이야 어찌 되었든 간에, 1차 평가전에서 이겼으니 기분이 좋은 것이었다.
대현은 시계를 보면서 입을 열었다.
“다음 평가전까지는 1시간 좀 넘게 남았나?”
“애들 하는 거에 따라서 다르겠지. 우리는 좀 빨리 끝났으니까.”
시간을 보니 20분 정도 지났다. 30분도 넘기지 않은 시간에 게임이 끝난 것이었다.
“다음 평가전은 LOH라서 시간이 좀 걸릴 것 같긴 한데. 그래도 우리가 첫 턴이라서 나름 할 만할걸?”
김원 선생님이 담당 구간의 반을 전부 관전하고, 다시 아래로 돌아와서 관전하고의 연속이었다. 앞선 반이 얼마나 게임을 오래 끌지 미지수니, LOH를 평가전을 제일 먼저 보는 게 시간적으로 이득이 많았다.
띠링.
그때 화면에 김원 선생님의 공지가 나타났다.
[끝난 학생들은 다음 턴까지 쉬거나 자습하시면 되겠습니다.]
여기서 자습이라는 건 게임을 의미한다.
즉, 레전드 오브 히어로를 미리 해보자는 건데…….
“할 거냐?”
“글쎄다……. 1시간이면 해볼 만도 한데.”
1시간 동안 가만히 기다리고 있는 것도 심심하고.
결국 하는 게 좋을 것 같다는 결론이 나올 때였다.
“자, 잠깐…… 나는 몸이 안 좋은 것 같아서…… 잠깐 쉴게.”
이하린이 손을 들고 말했다. 그녀의 안색이 창백했다.
그걸 본 유금옥이 식겁해서 말했다.
“설마 그로기 상태 온 거야?”
“그런 건 아니고…….”
이하린이 눈알을 이리저리 굴리다가 유금옥과 함께 복도로 나갔다. 문 너머로 들려오는 소리에 의하면 잠시 기숙사에 들린다고 한다.
“첫판에 너무 무리했나? 그건 아닌 것 같은데.”
“그러게…….”
이태원과 허건섭이 기묘한 표정을 지었다.
본디 몸 상태에 이상이 있으면 캡슐에서 체크하고 잡아주는데, 저렇게 될 때까지 아무 말이 없었다는 걸까.
허건섭은 턱 끝을 만지면서 생각하다가 고대현에게 시선이 멈췄다.
“너는 괜찮지?”
“나야 괜찮지. 아무 이상도 없어.”
고대현도 조퇴한 전적이 있기에, 허건섭은 묘하게 불안해졌다.
“설마, 한 명 빼고 시작해야 하는 건 아니겠지?”
허건섭이 무심코 중얼거린 말에 고대현이 반응했다.
“아프면 한 명 뺀 상태로 해? 그냥 기권이 아니라?”
“기권할 수도 있는데, 원하면 4대 5도 가능해. 물론 엄청 불리하고 질 확률이 높지만.”
40반은 이하린과 유금옥이 빠진 탓에 연습을 한다는 선택지도 잊은 채 교실에서 조용하게 있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드르륵.
문이 열리고 유금옥이 들어왔다.
그리고 이하린과 선생님 등에게서 종합하여 들은 사실을 말했다.
“LOH 평가전은 4대 5로 하거나 기권. 그리고 이하린은 그라운드 제로 때 참여할 수 있을 거라고 하네.”
“그라운드 제로 할 때만?”
“응, 지금 기숙사에서 자는 중이라서.”
“하아. 이를 어쩌냐.”
5대 5 게임을 4대 5로 하느냐.
아니면 기권을 하느냐.
선택의 기로에 섰다.
평가전으로 받는 학교 코인은 성의 증축에 쓰이니, 쉽게 기권할 수도 없었다.
게다가 학교 정산 비율에서 LOH를 1위로 한 사람도 꽤 있고 말이다.
그때 고대현이 입을 열었다.
“LOH. 저번에 블러디 있고 갤리오 있던 팀이랑 하는 거 맞지?”
“어? 응, 뭐 그렇게 되겠지.”
“그럼, 4대 5. 가능할 것 같은데?”
고대현의 말에 나머지 아이들이 눈을 깜빡였다.
라인 하나가 비는데 뭘 어떻게 한다는 걸까.
대현은 유금옥을 가리키면서 말했다.
“나 혼자 솔로로 바텀 갈게. 네가 정글 가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