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2화
#72화
평가전은 선생님 1명의 관전하에 실시된다.
40반이 실행될 동안 다른 반은 잠시 쉬는 시간이라는 의미였다.
얼핏 보면 쉬는 시간이 너무 긴 것 같지만. 10반씩 끊어서 4명의 선생님이 있기에 대기 시간은 그리 길지 않았다. 4번의 턴만 기다리면 된다.
특히 언더 워치는 한판에 소모되는 시간이 짧기에, 다음 평가 게임인 레전드 오브 히어로까지 도달하는 속도가 빨랐다.
‘어디 보자……. 40반 39반은 어떻게 할까.’
김원은 게임 내부의 관전석에서 양 팀의 빙의체 선택 스테이지를 바라봤다.
공지를 안 했지만 있는 밴픽이 추가되었다.
‘아마 당황하고 있겠지.’
김원은 각 반에서 어떤 밴픽이 나올지 궁금해졌다.
‘저번 역량평가 주간에서 서로 붙었으니까 뭐를 밴할지는 윤곽이 나왔을 거다.’
역량평가 주간은 어색한 학생들이 친목을 다지는 무대임과 동시에 적에게 장점을 보이는 자리였다. 그러나 이때 너무 두각을 드러냈던 챔피언은, 상대 팀의 밴픽으로 확정되는 경향이 강했다.
[켄지]
그리고 올해도 어김없이 이런 일이 생겼다.
“아이고, 이거 어쩌냐.”
김원은 안타까운 눈길로 40반을 응시했다.
고대현의 강점인 켄지가 밴당했다.
‘고대현이 켄지 말고 잘하는 게 있나?’
현재 진행되는 시험은 각 학생들의 퍼스널 계정으로 이루어진다.
이외에 서브 계정이 있지만, 학교에서 따로 서브 계정까지 뒤져보진 않았다.
해서, 김원은 고대현이 아주 벌레 같았을 시기의 과거 기록만 열람했었다.
‘흠, 아무래도 못하다가 갑자기 잘해졌는데 그게 켄지고…… 결국 켄지 원 툴일 것 같다만.’
가끔 평범하던 사람이 특정 챔피언에 대해 포텐셜이 훅 오르는 경우가 있다. 이런 사람은 해당 챔피언이 밴되기만 해도 타격이 컸다.
띠링.
그때 40반에서도 밴픽이 나왔다.
[매트리]
일출의 시간을 쓰던 매트리가 밴되었다. 39반의 매트리 유저, 강대협을 봉인시키겠다는 것이었다.
‘고대현과 강대협……. 초성이 비슷한 애들끼리 사이좋게 밴이군.’
김원이 실없는 생각을 하고 있을 때였다.
슈슈슉.
각 학생들이 챔피언 선택을 실시한다.
먼저 39반 측에서 미리 짜놓은 조합대로 챔피언을 고른다.
‘무난한 조합이네. 그럼 40반은 뭘 골랐을지…….’
느릿하게 돌아가던 김원의 덜컥 멈춰 섰다.
그의 시선이 멈춘 곳.
고대현이 핸조를 픽 하고 있었다.
* * *
“핸조를 하겠다고?”
이하린이 물었다.
다른 아이들도 마찬가지였다.
다 ‘그거 맞아?’ 같은 뉘앙스로 핸조라는 픽에 대해 의문을 보내고 있었다.
‘노골적이네.’
고대현은 오랜만에 병원 시절의 기분을 느꼈다.
사람들이 뭘 해도 다 의문을 가지고, 이게 가능하냐고 물어보던 시기…….
‘이럴 때는 또 이런 걸 해 줘야 제맛이지.’
“어, 나 핸조도 어느 정도 자신 있거든.”
고대현은 자신 있게 말했다.
물론 마우스로 하는 에임이 완벽하게 적응되지 않았고, 핸조는 여러 가지 변수가 많은 챔피언이지만.
‘충분해.’
그는 핸조 정도면 충분하리라 여겼다.
애초에 장전하는 속도도 빨라서 남들보다 우위를 가져갈 수 있고 말이다.
“핸조에 자신 있다고?”
“못 믿겠는데…….”
40반 중에서 고대현이 활을 쏘는 걸 본 사람은 없었다.
그라운드 제로에서 저격을 잘하긴 했다만.
총으로 하는 저격과 활은 다르다.
차라리 위도 테이커를 하는 게 나을지도 몰랐기에.
허건섭은 고대현에게 위도 테이커는 어떠냐고 물어봤다.
“위도 테이터?”
“저격수도 좋잖아. 어제 보니까 잘하던데.”
핸조는 스코프가 없어서 힘들다. 허건섭은 그런 뉘앙스로 말했다. 그러나 고대현은 괜한 걱정이라면서 일축했다.
“핸조는 쏠 때 소리나 흔적이 없어서 적들이 느리게 알아차려. 그 점이 좋은 거지. 2단 점프도 가능하고.”
“으음.”
허건섭은 고대현이 독수리 여왕을 픽했을 당시의 기분을 느꼈다.
그때도 어려운 챔피언인 독수리 여왕을 하겠다고 하면서 픽을 고정했다.
‘어쩔 수 없네. 이번에도 믿어보는 수밖에.’
허건섭은 고민하다가 대현의 핸조 픽에 수긍했다.
그때도 결과가 잘 나왔으니, 이번에도 될 대로 되라는 마인드였다.
그는 나머지 반 인원들에게 말했다.
“우리도 빨리 픽하자.”
고대현에게 물어보느라 픽이 늦었다.
모두 서둘러서 챔피언을 픽했다.
최종적으로 선택된 챔피언은 핸조(고대현), 붐볼(이태원), 로드피그(이하린), 에나(유금옥), 해쉬(허건섭)였다.
[게임에 진입합니다.]
[호루스 신전으로 이동됩니다.]
영웅 대기실 컨테이너에 5명의 챔피언이 나타나고.
그 장소가 움직이면서 각 챔피언들을 호루스 신전으로 배송시킨다.
대현은 그 안에서 대진표로 상대 조합을 보았다.
핸조
붐볼
로드피그
에나
해쉬
Vs
부스터 온
메위
로시우
솔쟈보이 76
팔라
‘지난번에 픽했던 걸 고른 사람이 꽤 있네.’
메위와 팔라가 그랬다.
허건섭이 39반에 메위를 좋아하는 사람이 있다더니, 그 말이 맞았다.
‘메위는 그렇다 치고, 매트리를 했던 애는 이번에 솔쟈보이를 픽했네.’
둘 다 비슷한 공격 라인 챔피언이니 그러려니 한다.
고대현이 대진표를 보면서 앞일 상상하는 사이.
영웅 대기실이 호루스 신전 앞에 도착했다.
창문 너머로 황금빛 모래가 가득했다.
“다들 잘해보자. 너무 긴장하지 말고.”
“나가면 적 위치부터 체크해서 알려줘.”
“알았어.”
현재 포지션은 호루스 신전을 공격하면서 정복하는 위치였다.
초반에 보이는 거대한 문을 넘어서 적들을 처치하는 게 중요했다.
덜컹-
그때, 대기실의 문이 열리면서 게임이 시작되었다.
“이제 나가보자…….”
먼저 발을 디딘 유금옥이 말끝을 흐렸다.
퍼석!!
바닥에서 얼음이 솟아났기 때문이었다.
순간 영웅 대기실의 문이 막혔다. 밖으로 나간 이는 유금옥뿐이었다.
전음으로 유금옥의 말이 간간이 들려온다.
“으앗, 사, 사 살려줘!!”
치이이익.
촥!
무언가에 의해서 얼어붙는 소리.
마지막에 무언가에 꿰뚫리는 소리가 난다.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메위의 짓임을 모두가 알 수 있었다.
“메위 이 자식!”
“역량 평가 기간에는 안 하더니…… 설마 고도의 전략이었나?”
파슥!
추측이 오가는 사이 메위의 얼음 장벽이 녹아내린다.
이에 붐볼과 로드피그가 앞으로 돌진한다.
투타타타타타-!!!
그러자 미리 대기하고 있던 부스터 온의 총알 세례가 날아왔다.
제아무리 탱커라도 연사 모드의 부스터 온을 감당할 수는 없었다.
그나마 로드 피그가 죽기 전에 갈고리로 부스터 온을 끌어당겼다.
촤라락.
연사 모드인지라 움직일 수가 없었던 부스터 온이 끌려온다.
그 위로 로드피그의 시체가 쓰려졌다.
위웅잉잉.
부스터 온이 연사 모드를 풀고 도망가려고 한다.
이틈을 핸조는 놓치지 않았다.
머리 부분을 향해서 2발 정도를 날려주자 크리티컬이 뜨면서 부스터 온이 죽었다.
촤락- 쿵쿵-
메위는 붐볼이 상대하고 있었다.
붐볼은 보호막이 있는지라 메위가 바로 죽일 수 없는 챔피언이었다.
이태원이 시간을 벌자 이어지는 핸조의 보조 사격이 메위를 처치한다.
“역시, 천연주의 메위…… 매섭네.”
허건섭은 혀를 내두르면서 앞으로 향했다.
상대는 정복 지점에서 방어해야 하는지라 선발대는 메위와 부스터 온, 둘 뿐이었다.
“이대로 계속 가자.”
“응.”
어차피 리스폰 타임은 짧기에, 40반은 재빠르게 이동했다.
호루스 신전의 1차 정복 지역으로 진입하니 적들이 반긴다.
탕탕.
촤라락, 탕-!!
솔쟈보이의 회전 로켓이 날아오고, 팔라의 유탄 발사가 공중에서 내려온다.
고대현은 뒤로 몸을 숨겼다. 팔라의 공격은 넉백 효과가 있어서 활시위를 당겨야 하는 핸조에게 불리했다.
‘그래도 최대한 벽을 타면서…….’
끼익.
퓻-!
하늘을 향해서 화살을 쐈다.
팃.
공격이 상대방에게 닿자 맞았다는 표식이 뜬다. 덕분에 고대현은 자신의 공격을 빠르게 수정할 수 있었다.
‘조금만 더 아래로 내려서…….’
퓻!
[핸조 -> 팔라]
다행히도 에임을 조정한 끝에 팔라를 처치할 수 있었다.
대현은 떨어지는 팔라를 확인하면서 내부로 진입했다.
이단 점프를 하면서 벽을 탄다.
오른쪽에 있는 길목으로 빠져서 감지 화살을 날렸다.
그러자 벽 너머의 적들이 빨간색으로 감지된다.
따지고 보면 위도 테이커의 궁극기나 다름없는데, 핸조는 이런 것이 일반 스킬인 게 장점이었다.
‘왼쪽에 부스터 온이 있군.’
고대현은 화살을 당긴 채 부스터 온에게 일격을 날릴 수 있는 장소로 이동했다.
그러던 중 솔쟈보이와 마주쳤다. 솔쟈보이는 곧바로 회전 로켓을 날렸다.
딸깍.
대현은 순간적으로 이단 점프를 해서 살았다. HP가 조금 닳긴 했다만, 이런 건 아무것도 아니었다.
‘유금옥은 이하린을 힐 하기 바빠서 여기에 없다. 그렇다면 혼자서 솔쟈보이를 처치해야 한다는 건데…….’
핸조의 몸이 벽을 타고 올라간다. 솔쟈보이는 집요하게 총구를 움직였다. 여기서 핸조를 완벽하게 컷하고 갈 생각인 듯했다. 결국 대현은 집속 화살 스킬을 사용하기로 마음먹었다. 키보드를 누르니 화면 속 핸조가 화살 5개를 하나로 합친다. 그 화살이 손에 들렸다.
그리고 신중하게 끊어치기 하면서 솔쟈보이에게 화살을 날렸다.
풋퓻퓻퓻퓻!!
화살 5발이 연속으로 활시위를 떠난다.
“-!?”
상대 솔쟈보이의 당황한 기색이 느껴진다. 솔쟈보이가 순간 멈칫하더니…….
푹!
그대로 핸조의 화살을 맞았다. 5개나 나타나는 화살인지라 피하기가 쉽지 않았다.
[핸조 -> 솔쟈보이]
솔쟈보이가 처치되었다.
대현은 막 점령을 시도하고 있는 팀원들에게 말했다.
“솔쟈보이 컷.”
“오 잘됐네. 그럼 이제 부스터 온만 없애면 되겠다.”
다른 챔피언은 다 커버가 가능한데, 유독 부스터 온을 처리하기 힘들었다.
아마 켄지가 없는 걸 알고 픽한 것이리라.
‘생각해보니까 부스터 온은 추천서를 받을 때도 봤었지. 분명…….’
문득 부스터 온에 대한 사실이 떠올랐다.
분명 연사를 하는데, 연사하는 것도 오래 하면 힘들다고 그랬다.
아무리 빙의체라도, 저렇게 연속으로 쏘는 거 자체가 지구력 소모가 심하다는 것이었다.
‘한 번에 죽진 않을 것 같다.’
대현은 상대 부스터 온에게 접근하기 위해 건물 사이사이로 이동했다.
활에는 집속 화살을 장전한 상태였다.
‘부스터 온에게 날릴 용도는 아니다.’
이단 점프와 벽타기를 연달아 쓰면서 접근하고 있자니, 별안간 입질이 온다.
푸쉬이이이!!
메위가 나타나서 얼음 스프레이를 날린다. 부스터 온으로 향하는 길목에 잠복하고 있던 것이다.
‘생각이 뻔해.’
공중에서 이단 점프를 한 상태로 메위의 미간을 조준하고 집속 화살을 날렸다.
연속으로 날아간 5개의 화살이 메위의 미간을 뚫는다. 메위는 스스로 얼리지도 못한 채 죽었다.
그만큼 속도가 빨랐다는 것이겠다.
띠링.
[궁극기 : 100%]
이쯤 되자 핸조의 궁극기가 100%에 도달했다.
핸조의 궁극기는 상대 진형 파괴용으로 좋았다.
대현은 쏘기 전에 말했다.
“곧 용활 날릴 거야. 다들 동시에 진입할 준비해.”
용활은 벽을 통과하는 거대한 차크라 발사 스킬이었다.
대현은 감지 화살을 벽에 날려서 적의 위치를 체크한 다음 용활을 날렸다.
다음 순간.
[핸조 -> 부스터 온]
[핸조 -> 로시우]
[핸조 -> 솔쟈보이 76]
상대의 수비 지점이 완벽하게 무너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