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1화
#71화
가상현실로 이루어지는 게임답게 대부분의 교육은 원격으로 이루어졌다.
어차피 내부에서 만나는 건데 굳이 대면으로 만날 필요가 없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런 상황에서도 오프라인 만남을 추구하는 이가 있었으니.
“다들 미니언 웨이브 온다! 준비해!”
게이밍 플러그라는 채널이 그러했다.
여타 학교나 린이지 성이 산하 캡슐 스테이지를 만드는 것처럼.
게이밍 플러그는 그들만의 캡슐 스테이지를 만들었다.
그리고 6개월 캡슐 이용 맴버십과 더불어 피드백 강의 비용으로 돈을 벌었다.
“자, 다들 CS 먹는 거에 집중해! 눈앞에 미니언이 지나가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서 CS 먹어야지.”
미니언 막타 정신에 관해서 설명하던 주나무가 개인 피드백을 해준다.
게임이 끝나고 캡슐 밖에서 진행되는 피드백인지라 분위기가 무겁다.
“분당 CS 6은 넘겨야 한단다. 자꾸 다 흘리는 데 집으로 복귀하지 말고.”
“네에…….”
각 라인으로 오는 미니언.
이 미니언의 HP가 바닥이 되었을 때 즈음, 스킬이나 평타로 마무리하면 골드가 들어온다.
이런걸 CS라고 하는데, 상대와 대치하면서 CS를 챙기는 게 레오히의 기본이자 제일 어려운 부분 중 하나였다. 주나무는 마지막으로 티어가 제일 낮은 학생을 보면서 입을 열었다.
“학생은 기본적으로 라인전 실력이 떨어져서 그런지 견제를 많이 당하네? 아무래도 검바람 나락에서 스킬 피하는 연습부터 하고 와야겠어.”
신랄한 비판에 학생의 고개가 저절로 수그러든다.
‘이런 게 오프라인 피드백의 장점이지.’
가상현실에서는 뭔가 서먹서먹하게 피하는 부분이 있다.
이렇게 눈앞에서 직구로 날려줘야 알아듣는 부분이 많았다.
특히 레오히는 특유의 일그러진 자존심을 가진 학생이 많기에, 이렇게 면박을 주는 게 필수적이었다.
‘일반 학교는 이런 걸 못 해준다. 그래서 게이밍 플러그가 잘 되는 거고.’
일반 학교의 선생님들은 매너리즘에 빠졌다.
학생들이 어떻게 되든지 큰 신경을 쓰지 않는다.
‘결국 학생들을 구원할 건 나뿐이다.’
주나무는 그간 위의 생각을 하면서 게이밍 플러그를 운영해왔다.
덕분에 과거 저 티어였던 학생을 고 티어로 올려서 좋은 길드에 보낸 적도 많았다.
그럴 때마다 학부모와 학생이 연신 고개를 숙였다. 고맙다면서 말이다. 그렇기에 그는 이 일에 자부심을 느끼고 있었다.
‘이제 다른 반도 봐볼까.’
주나무가 그라운드 제로 방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런데 상위권 아이들이 전부 로그아웃 되어있었다.
“음? 오늘은 다들 빨리 죽었네?”
아까 워밍업을 한다고 들어갔던 학생들이었다. 그런데 거의 시작하자마자 퇴장하다니. 설마 일반 비정규에서 강자라도 만날 건가? 주나무는 기록을 보았다. 그러자 상위권 반의 컨트롤 영상이 나타난다.
“흠, 처음에 하강할 때부터 타격을 당했군.”
주나무가 슥슥, 넘기고 있자니 상위권 반 학생 한 명이 말한다.
“보니까 전투에 능숙해 보이던데…… 잘하는 사람 부계정인가 봐요.”
“확실히, 그럴지도 모르겠네.”
그라운드 제로 비정규는 한 게임에서의 실력 차이가 크게 나타나곤 한다. 랜덤으로 파밍하는 아이템도 이유지만, 결정적으로는 한 판에 들어가는 인원이 너무 많았기 때문이었다.
‘섬 하나에 100명을 집어넣으니까 심심치 않게 나오는 일이지.’
주나무는 전투 기록을 접고 말했다.
“다들 수고했네. 뭐, 이번 일은 너무 신경 쓰지 말고.”
“네에~.”
학생들의 대답을 뒤로하고 반에서 나왔다.
그런 주나무를 맞이한 건 영상 편집자였다.
그가 얼마 전 의뢰했던 영상의 진척도에 관해 설명한다.
“[실4 다이아에 도전하다.] 동기부여 영상이 거의 완성됐습니다.”
“좋네요.”
주나무는 영상을 재생시켰다. 그러자 영상 내용이 눈에 들어온다.
실버 4티어였던 학생이 다이아가 된 경험을 담아서 게이밍 플러그를 홍보하는 영상이었다.
그는 영상을 찬찬히 훑다가 입을 열었다.
“괜찮네요.”
“정말입니까?”
“네, 이대로 진행하세요.”
봇으로 만드니까 느낌이 안 살아서 사람한테 시켰다. 한마디로 수작업 영상이라는 건데, 시간은 많이 걸렸지만, 원하는 감성이 제대로 표현됐기에 마음에 들었다.
“아, 그런데 다음 후보는 누구로 하죠?”
“흠, 글쎄요.”
주나무가 고민하고 있으니 영상 편집자가 입을 열었다.
“얼마 전에 게임고 붙었다는 아이언 2를 섭외해서 만드는 건 어떻습니까. 나름 알려져 있고 파급력도 있을 것 같은데.”
“아니요. 아이언 2는 오히려 역효과에요.”
“역효과요?”
그가 고개를 갸웃거리자 주나무가 생각한 바를 말했다.
“실버4에서 다이아면, 힘들긴 해도 아주 불가능하진 않습니다. 사람마다 저건 노력하면 가능하겠다 싶은 레벨이 있는데, 실버4 다이아면 충분히 이 범주에 걸칩니다. 왜냐하면 실버들은 의외로 자신감이 넘치거든요.”
“아, 하긴…….”
실버들의 묘한 자신감은 편집자도 잘 알고 있는 것이었다.
그가 이해한 듯 고개를 끄덕이자, 주나무가 말을 잇는다.
“아이언 2는 특별전형으로 들어갔어요. 사람들 반응은 적폐다. 꿀 빤다. 거의 그런 식이죠. 솔직히 상대적 박탈감을 느낄 확률이 높아요. 만약 인터뷰라도 할 거면, 나중에 그 학생이 게임고에서도 성적이 잘 나온다든가…… 뭐, 그런 경우가 되어야겠지요.”
“그렇군요.”
“네, 그리고 아직 부계정 정보도 모르니까. 이 건은 나중에 천천히 보다가 진행하도록 합시다.”
“넵.”
둘은 이야기를 마무리하고 각자의 자리로 흩어졌다.
학생들이 게임을 하는 이상, 자신들이 멈추면 안 됐으므로.
* * *
드디어 평가전의 날이 밝았다.
40반은 아침 구보를 끝마친 다음 학생 식당에서 모였다.
“오늘 있을 평가전 잘해보자.”
“그동안 연습했던 것만큼 하면 되는 거지?”
“으음…… 일단 언더 워치랑 레전드 오브 히어로는 평소보다 오버페이스하는 거로 하자. 어차피 빙의체 방식이라서 지구력 소모가 덜하니까.”
각자 의견을 내면서 전략 회의를 한다.
레오히와 언더 워치는 역량 평가전에서 했던 수준보다 높게 가자는 의견이 나온다. 40반의 상대인 39반이 이미 어느 정도 컨트롤을 보았기 때문이었다.
“우리도 상대가 했던 픽이나 컨트롤은 아는데, 상대방도 우리 반이 뭘 잘했었는지 알고 있으니까. 대비는 하고 있어야겠지.”
“그렇군.”
고대현은 짧게 대답하면서 밥을 우물거렸다.
오늘 고대현이 픽한 메뉴는 평범한 한국식 백반이었다.
구성은 흰쌀밥에 계란옷이 입혀진 햄구이, 김, 된장국, 나물 무침.
젓가락으로 흰쌀밥을 퍼서 입에 넣고 햄구이를 한 입 씹는다.
평소에 먹던 햄보다 색이 연하면서 분홍색이었는데, 기대했던 것보다 맛이 좋았다.
뭔가, 일반적인 햄보다 좀 더 유아적인 맛이라고 해야 할까.
후르륵.
된장국을 넘긴 고대현이 속으로 ‘아, 이건 라면 국물이랑 먹는 게 더 좋을 것 같은데.’라고 생각하고 있을 때였다.
“오늘 픽 뭐할지는 생각했어?”
픽을 말하는 시간이 되었다. 서로 스킬이 연계가 되는 편이 승률이 높으니, 미리 조율하는 게 좋았다. 고대현은 소금 알갱이가 희미하게 보이는 김으로 밥을 감싸면서 말했다.
“켄지, 뤼신, 마스터 우, 비해고 정도 하려고.”
전부 난이도가 어느 정도 있는 챔피언이었다.
하지만 이에 토를 다는 사람은 없었다.
그도 그럴 게 고대현이 말한 챔프는 다들 옆에서 직관했으니까.
마스터 우도 비해고가 변신한 상태에서 컨트롤 하는 걸 봤는데.
감마 스트라이크 수준이 상상 이상이었다.
‘역시 정글을 해야 했을 애네.’
마스터 우와 비해고를 들은 이태원의 고개가 절로 끄덕여진다.
정글에서 탑으로 전환된 그도 자신의 픽을 말했다.
“나는 오륜, 템켄치, 메오카이하려고. 언더워치에서는 레일하라트나 붐볼 정도?”
이태원은 예상외로 탱커 챔피언을 좋아하는 스타일이었다.
그의 말이 끝나자, 이번에는 고등어 정식을 먹던 이하린이 입을 열었다.
“난 세토 할래.”
“세토?”
이하린의 말에 40반 아이들의 눈이 커졌다. 세토는 보통 탑에 쓰이는 딜탱 전사 챔피언이었다. 그런데 그걸 서포터로 쓴다니.
“세토 서폿이라……. 나쁘지는 않을 것 같은데, 좀 불안하네.”
“상대 서포터가 뭐 나올지 모르긴 하지. 그리고 서포터로 가면 아이템도 늦게 떠서 몸도 약할 거고.”
말들이 오가는 가운데, 무언가 떠오른 유금옥이 손가락을 튕기며 말했다.
“내가 칼리로 원딜 하면, 궁극기로 살려주거나 진입시킬 수 있지 않아? 그럼 세토가 기술 쓰면서 들어가기도 편할 것 같은데?”
칼리는 연결된 아군을 아공간으로 끌어오는 게 가능하다.
아공간으로 온 연결자는 본인의 의지대로 원하는 방향에 쏘아질 수 있었다.
“나중에 세토가 칼리 궁극기타고 이니시 걸면 되겠네.”
세토도 상대를 잡아당기는 CC기 하나는 있었다.
“흠, 나는 트위스터 페이트, 비크토르, 예니 정도?”
마지막으로 허건섭이 말하면서 픽 대화는 종료되었다.
이제 직접 가서 써보기만 하면 되는 일이었다.
“슬슬 갈까?”
“응.”
다들 자리에서 일어난 다음 교실로 향했다.
같이 가는 뒷모습이, 이제 서로에게 꽤 익숙해 보였다.
* * *
[오전 경기 1차는 언더 워치로 진행하겠다.]
각 반 앞의 있던 스크린에 문구가 떠올랐다.
평가전 안내에 대한 글이었다.
[40, 39반 접속 시작.]
[언더 워치]
저번 주가 서로 붙여놓고 방임하는 식이었다면, 각 라인 별 관리 선생님이 한판, 한판 관전하고 그다음 반 매치로 넘어가는 식이었다.
그래서일까. 아이들의 긴장감이 고조되었다.
저번 주는 역량평가 주간이라서 제대로 안 보고 넘긴 부분이 많지만, 오늘은 진짜 평가였기 때문이다.
“후우, 접속할까?”
“잘해보자.”
“너무 긴장하지 말고.”
짧게 이야기를 나누고 접속을 시작한다.
곧바로 게임 챔피언 선택 스테이지가 나타난다.
저번에 했던 선택과는 시스템이 약간 달랐다.
고대현은 미간을 좁히면서 화면을 바라보았다.
‘밴픽?’
게임을 시작하기에 앞서, 사기적인 캐릭터를 밴할 수 있는 기능이 있었다.
[각 팀은 밴할 챔피언을 1개 고르세요.]
안내음이 들린다.
밴픽이 나올 줄 몰랐던 아이들은 당황하다가 이내 정신을 차렸다.
“뭐 밴할까?”
“글쎄.”
사기적인 챔피언이나 상대가 잘하는 챔피언을 밴해야 된다.
40반은 저번 매치 때 39반에서 눈에 띈 챔피언을 떠올렸다.
“자랴?”
“자랴 성가시긴 하더라.”
“매트리는 어때? 저번에 매트리 보니까 궁각 잘 보던데.”
약간의 토의 끝에 40반의 밴픽은 매트리로 결정되었다.
빙의체 선택 스테이지.
매트리를 밴픽에 올리자 매트리에 자물쇠가 걸린다.
띠링.
40반에서 밴픽을 올리자, 별안간 39반 쪽에서 밴픽이 올라온다.
39반이 밴하는 챔피언은 당연하게도…….
[켄지]
켄지였다.
“제길.”
최종적으로 켄지와 매트리가 밴되었다.
예상은 했건만.
허건섭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그가 고대현을 보면서 말한다.
“대현, 켄지 밴됐는데 괜찮아? 다른 챔피언 할 줄 아는 거 있어?”
과연 켄지를 잃은 고대현이 무엇을 고를지…….
모두의 시선이 고대현에게 집중되었다.
그만큼 고대현의 켄지는 강렬했었다.
‘다들 너무 걱정하네. 하긴, 켄지만 봐서 그렇겠지.’
고대현은 챔피언 하나를 고르면서 그들의 걱정에 답해주기로 했다.
“할 줄 아는 거 많지.”
“뭔데?”
켄지 못지않게 컨트롤 잘하면 강한 챔피언.
궁극기가 인상적인 녀석.
띠링.
[핸조]
고대현은 핸조를 픽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