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7화
#67화
환상적인 한타 장면은 사람으로 하여금 동기를 불러일으키게 한다.
나도 저런 컨트롤 한번 해보고 싶다.
같은 욕구 말이다.
그런 이유로 게임 교육자들이 좋은 영상을 찾아다니는 건 꽤 자주 있는 일이었다.
“오늘도 뭐 좀 있나 봐볼까.”
강호재는 커뮤니티를 돌면서 스크롤을 넘겼다.
3대 종목 중에서 제일 어려운 LOH에 대한 이야기만을 하는 커뮤니티.
그는 그곳에서 한타 명장면을 찾아서 뒤졌다.
‘애들이 한타를 잘못하니까 그쪽 위주로 봐야지.’
LOH는 라인전도 중요하지만, 중후반에 있는 한타도 중요했다.
이때 각을 보는 것과 아군 조합, 상대 스킬 상성을 찰나의 순간에 읽어내야 한다.
‘이게 제일 힘든 부분이지.’
라인전까지는 억지로 한다 쳐도 한타 때가 되면 얼어붙어서 실수하는 아이들이 많았다.
그래서 모범적인 한타 영상이 항상 인기 순위에 있었다. 학부모들이 제일 많이 찾는 종류의 영상이니 당연했다.
강호재는 눈에 띄는 게시글을 눌렀다.
[오늘 비정규 돌리다가 지리는 한타 봄.]
‘비정규에서 얼마나 할지는 모르겠지만, 봐볼까.’
사설방에서 사용자들끼리 합을 맞춘 다음 가짜 한타를 벌이는 영상이 많았다.
때문에, 오히려 비정규에서 자연스러운 한타 장면이 나올 확률이 높았다.
띠링.
영상이 재생된다.
바텀에 사일라스와 케힌이 오면서 원딜이 1대 4를 하는 구도가 나온다.
‘호오, 원딜이 캐리 하는 건가?’
강호재는 좌야가 어떤 식으로 컨트롤을 할지 기대하면서 영상을 응시했다.
그러자 얼마 안 지나서 좌야가 죽고 뤼신이 모습을 드러낸다.
‘뤼신이?’
뤼신을 너무 오랜만에 본 걸까.
이질적인 존재의 등장에 강호재는 눈을 비볐다.
그래도 뤼신이 사라지는 일은 없었다.
오히려 와드 방어막을 타면서 전장의 중앙으로 당당하게 들어온다.
그리고, 다음 순간.
팟!
돌려차기를 날리면서 점멸을 쓴다.
점멸로 바뀐 위치에서 돌려차기가 진행된다.
모든 동작이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뻥!
사일라스가 뒤로 날아가면서 잔느와 이주리얼, 케힌을 띄운다.
그 위에 오륜의 궁극기가 적중.
이어서 레온아의 플레어 폭발이 떨어진다.
‘뤼신의 점멸 돌려차기로 이주리얼의 궁극기를 캔슬시켰다라…….’
강호재는 일전의 장면을 곱씹었다.
처음부터 이주리얼을 공격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사일라스를 쳐서 공격을 끊고, 전체적으로 상황을 유리하게 만들었다.
‘시야가 넓군.’
그는 뤼신의 닉네임을 유심히 살폈다.
게스트 1111.
어디서 본 듯한 닉네임이었다.
‘배치 기간이 아니라서 전부 서브 계정으로 돌리고 있을 텐데…… 내가 저런 서브 계정을 만난 적이 있었나.’
강호재는 자신의 전적 기록을 뒤졌다.
별안간 전적에서 익숙한 존재가 모습을 드러냈다.
“쉐앤…… 그때 그 쉐앤이었구나.”
설마 뤼신에도 재능이 있을 줄은 몰랐다.
‘위에서 내려온 사람인가.’
그는 영상의 댓글을 살폈다.
ㄴ 저거 합 맞춰서 짠 거 아님?
ㄴ 전적 보니까 상대랑은 처음 만난 거던데.
ㄴ 난 다른 거보다 뤼신 동작이 사기 같음.
댓글에는 뤼신이 저런 움직임을 보이는 게 가능하냐는 의견이 분분했다.
ㄴ두 눈이 빤히 보이는 챔피언으로 해도 실수하는데 전투 중에 저게 가능함?
ㄴ아무리 봐도 조작.
ㄴㅇㅈ
영상을 믿는 이는 거의 없었다.
하지만 게스트 1111의 쉐앤을 본 적 있던 강호재는, 저 사람이라면 가능하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했다.
“흠, 일단 이건 너무 논외라서 빼고 다른 거 찾아야겠다.”
그는 이 영상을 옆으로 킵해 두고 다른 걸 찾기 시작했다.
애들이 저 뤼신을 보고, 나도 저렇게 하고 싶다- 라는 생각은 전혀 못 할 테니까.
* * *
짹짹.
캡슐실에서 연습을 하고, 다음 날이 되었다.
반별 평가전 바로 전날이었지만 자습 시간을 주거나 하진 않았다.
바로 40반에서 39반까지 소집되었다.
“오늘은 비해고를 연습할 거란다.”
“비해고요?”
“비해고면 그 챔피언 말하는 거네.”
“아, 그 다 알아야 유리한 챔피언.”
학생들이 저마다 소곤거린다.
LOH에는 비해고라는 챔피언이 있는데.
이 챔피언은 적이 죽으면 그 영혼을 흡수해서 상대 스킬을 쓸 수 있었다.
게임고는 상대 대륙의 스킬 다양성을 고려해서, 챔피언을 하나를 골라서 집중하여 훈련하는 달이 있었다.
이번 달은 비해고가 그 대상인 모양이었다.
‘비해고는 상대 스킬을 전부 알아야 하니까. 확실히 난이도가 높긴 하지.’
순간 무적이 있지만.
영혼을 흡수하고 지배권을 가진 순간, 그에 합당한 컨트롤을 해야 하는 챔피언이 비해고였다.
“일단 내가 너희들에게 시범을 보이마.”
김원 선생님이 비해고를 픽했다. 고대현은 김원 선생님의 비해고를 바라본다.
“자, 평타 모션은 이렇고…… 스킬은 이렇게…….”
평타 모션부터 시작해서 자잘한 사실들을 나열한다. 고대현은 그 장면을 심드렁해지게 보다가 내면의 PC 업그레이드 사항을 봤다. UI 시스템이 4단계, 시설이 3단계였다.
‘현재 있는 골드는 30골드. 조금만 더 모아서 시설이나 업글해야지.’
UI 시스템을 4단계로 올리고 일어난 제일 큰 변화는 감정 표현이었다.
그 이외의 다른 건 변화가 있었는지조차 알기 어려웠다.
그래서 이번에는 시설 테크트리를 올리기로 했다.
‘이 장소도 갈수록 질리니까. 슬슬 인테리어 좀 바꿔야지.’
대현은 김원 선생님의 설명이 끝나갈 동안 턱을 괴고 발을 까딱였다.
그러고 보니, 남들이 제대로 듣고 있을 때 혼자서 딴짓이 가능한 게 최고의 장점이었다.
“설명은 끝났고. 이제 각자 해보는 시간이다.”
그렇게 기다리고 있자니, 별안간 수업이 시작되었다.
* * *
LOH의 실력은 상대의 강점을 인식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상대 챔피언이 어떤 콤보에서 강한지.
혹은 어떤 동작을 취하는지 알게 되면, 맞라인으로 섰을 때 더 수월하게 상대할 수 있다.
이를 위해서 게임고 학생들은 5대5 검바람 나락 맵으로 이동되었다.
한 팀은 비해고만 5명.
반면 상대 팀은 랜덤 챔피언이었다.
이렇게 전반 후반으로 나뉘어서 체크를 하는 게 오늘의 수업이었다.
“흐음…….”
고대현은 다리를 떨면서 화면을 응시했다.
화면 위에 [비해고 팀]이라는 문구가 떠 있었다.
대현은 40반 아이들의 픽을 보았다.
고를 새도 없이, 전부 비해고였다.
“비해고 스킬 설명하실 때 딴생각 했는데…… 혹시 비해고 잘하는 사람 있어?”
이하린이 당당하게 질문한다. 모르는 게 있을 때 빨리 질문하는 게 좋다. 몰라도 아는척하면서 넘기면 난처해질 때가 많으니까.
“비해고는 정글 돌 때 좋아. 안개를 생성해서 은신 상태로 돌아다닐 수도 있어. 그리고 상대 영혼 가져올 때 잠깐 무적이야.”
허건섭이 핵심만 짤막하게 설명해준다. 이하린은 고개를 위아래로 흔들면서 말했다.
“안개로 들어가서 대충 처리하고 영혼 바꾸면서 살아남는 식이겠네.”
“응, 거의 그렇게 하지.”
저마다의 회의가 끝나간다.
대현은 뤼신을 컨트롤 했던 것 때문인지, 비해고도 할 줄 안다고 하니까 고개를 끄덕이는 게 전부였다.
‘상대 팀, 조합 좀 볼까.’
대현은 대진표를 봤다.
비해고
Vs
루울루
마스터 우
가르마
미들스틱
사미러
랜덤으로 나온 것치고는 정석적인 조합이었다.
딸깍.
딸깍.
선템 고래 학살자의 하위 아이템을 산 고대현.
그는 앞으로 길쭉하게 놓인 길을 따라갔다.
그러자 상대 팀 학생들이 눈에 들어온다.
대현은 그들을 훑어보고 말했다
“루울루의 변화 조심하고, 미들스틱 공포도 조심하세요.”
예의 2개를 제외하면 이렇게 할 CC기가 없었다.
조심하면서 마스터 우가 크는 경우만 방지하면 질 일은 없을 것 같았다.
[미니언이 생성되었습니다.]
그때, 미니언이 생성되었다.
검바람 나락의 중앙을 타고 미니언들이 걸어온다.
상대와 비교해서 비해고의 리치가 짧은 편이었기에.
초반에는 몸을 사리기로 했다.
-싸엘라싸티리히!
가르마의 포킹과 미들스틱의 나뭇가지 후리기 스킬, 루울루의 짤짤이 공격이 지속되었다.
대치가 이어지던 중 이하린이 입을 열었다.
“들어가도 돼?”
그녀의 말에 다들 고개를 저었다.
“할 거면 다 같이 가는 게 좋을 것 같아.”
“그럼 지금 갈까?”
“아직 궁극기가 없긴 한데…….”
비해고는 맵에 안개를 생성하고, 그 안에서 숨은 듯 지낼 수 있으며 돌진 스턴기 하나가 있었다.
스킬 구성이 좋은 편인지라 5명이 달려들면 승산이 없진 않았다.
결국 1분 정도 지나서 총력전이 시작되었다.
검바람 나락 맵의 양쪽으로 안개를 길쭉하게 형성한 비해고들이 은신 상태로 접근한다.
그리고 안개 돌진으로 적에게 돌진하면서 찌르기를 날린다.
다만 실드를 줄 수 있는 챔피언으로. 루울루, 가르마가 포함되어 있어서 비해고들이 달라붙어도 쉽게 없어지지 않았다.
“아, 진짜! 실드 양이 너무 많잖아!”
이하린이 짜증을 내는 한편.
고대현은 각을 보면서 마스터 우를 주시했다.
마스터 우는 킬을 먹기 시작한 순간부터 다른 챔피언이니까 조심해야 한다.
콰쾅-! 쿵!
전투하면서 보고 있자니 이하린의 HP가 점점 낮아진다.
하나, 둘, 점점…….
그때 마스터 우가 이하린을 향해 감마 스트라이크를 썼다.
삑.
[감마 스트라이크 : 30%]
구현도가 낮은 감마 스트라이크였다.
허공에서 움직이는 칼질 사이로, 마스터 우의 모습이 비교적 선명하게 보인다.
대미지도 약하고, 속도가 빠르지도 않았다.
별안간, 이하린의 비해고 앞에 어정쩡하게 나타난 마스터 우.
안개 돌진을 차징하고 있던 고대현이 그대로 마스터 우를 공격했다.
마스터 우는 겨우 점멸로 살아나가서 루울루와 가르마의 실드를 받았다.
“딜이 아쉽네.”
“아직, 아이템이 없어서 그래.”
“처형의 총은 꼭 가야겠다.”
“독사의 엄니부터 사. 실드 깨는 용이니까.”
“그럼 고래 학살자랑 처형의 총, 독사의 엄니로 가야겠다.”
그렇게 말한 이하린은 적 루울루부터 죽이겠다고 구시렁거렸다.
‘그래도 전 보단 잘하는 것 같네.’
고대현은 이하린이 아트락스를 했던 때를 떠올렸다.
그때는 평타 동작도 틀려서 자꾸 딜레이가 있었는데.
지금은 비해고를 원만하게 컨트롤하고 있었다.
‘그사이에 성장한 건가?’
대현의 손가락이 움직인다.
끼익. 칵!
대현은 안개 돌진을 사용했다. 부쉬에 있던 미들스틱이 안개 돌진에 맞아서 스턴에 걸린다. 미들스틱의 궁극기를 시전하기 전에 캔슬 시켰다.
“이런…….”
스킬이 캔슬된 미들스틱이 뒤로 물러난다. 루울루가 실드를 주기 위해서 움직인다.
루울루가 미들스틱에게 실드를 낭비했을 때, 이하린의 몸이 움직였다. 안개 돌진으로 루울루에게 붙어서 사정없이 때린다.
퍽퍽!
“우리도 가자!”
이하린이 들어갔기에 내뺄 수도 없다. 허건섭과 유금옥 이태원도 들어갔다.
쿵!
비해고의 궁극기, 영혼 파괴자가 시전되었다.
맵 곳곳에 원형으로 딜이 들어간다.
삑.
[동작 구현 : 40%…….]
사미러를 죽인 유금옥이 조심스레 몸 바꾸기를 써본다.
몸이 공중으로 떠오르면서 비해고의 몸이 사미러가 된다.
손에 총과 등에 총칼이 생긴 유금옥은 곧바로 사미러의 스킬을 사용했다.
탕탕!
미니언을 타고 이동하고, 총을 쏘며, 적을 처치한다.
할줄 아는 챔피언이 많아야 쓸 수 있는 챔피언 콘셉트였다.
다들 챔피언 하나씩은 없애서 변신해본다.
그리고.
고대현도 상대방의 영혼 하나를 골라서 모습을 바꿨다.
띠링.
[마스터 우]
그의 비해고가 잠시 마스터 우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