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겜공역전 세계의 게임천재가 되었다-64화 (64/200)

제64화

#64화

가상현실 내부에서 신체가 어느 정도 파괴되면 그 부분의 신경 부하값이 올라간다. 특히 애매하게 자르지 않고 골절시킬 때는 자극이 더 강하다.

빙의체가 없는 순수 풀 다이브 모드에서 골절 상태가 되면.

붕대나 약물 같은 회복 툴을 쓰기 전까지는 움직일 수 없다는 게 기정사실이었다.

그래서일까.

야나 이바노프는 상대가 어떻게 움직이는지 의문이었다.

다른 곳도 아니고 무려 발목을 꺾었는데 달려오다니.

화르륵!

불에 휩싸인 주먹이 스쳐 지나간다.

야나 이바노프는 이하린의 공격을 받아넘기면서 그녀의 신체를 살폈다. 지금 보니까 방어력도 높다. 설녀의 저주가 50 미터까지 가까워졌지만, 야나는 관찰을 멈출 생각이 없었다.

오늘이 지나면 또 언제 볼지 모르니까.

조금만 더. 눈앞의 흥미로운 일에 집중하고 싶었다.

퍽! 퍽!

야나는 오른쪽 뺨을 스치는 팔을 옆으로 밀었다.

그리고 발을 안쪽으로 이동시키면서 상대의 가슴팍으로 파고들었다.

꾸욱.

이어서 이하린의 허리를 잡은 야나 이바노프.

그녀는 다리를 걸고 이하린을 바닥에 내동댕이쳤다.

그리고, 그 위에 올라가서 기술을 걸려고 했다.

찌릿.

뭔가가 느껴진다.

뭐지.

야나 이바노프가 눈을 가늘게 뜨고 이하린을 내려다볼 때였다.

픽.

야나의 눈앞에 메시지가 떠올랐다.

[1킬 : 이하린]

“아.”

HP가 낮아진 상태였나보다. 땅에 냅다 때려 박았더니 죽어버렸다. 아차 싶은 야나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자신도 HP가 절반 가까이 떨어져 있었다.

아이템을 다 빼서 HP가 비슷했지만.

그래도 이 정도까지 밀어붙인 것은 대단했다.

‘하길 잘했네. 이 수업.’

한때 적이었던 사람의 제안을 수락하는 것인지라 계속 뒤가 구린 느낌이 있었다. 하지만 다양한 학생들을 만나면서 점점 재미가 붙고 있었다.

손바닥을 쥐락펴락하던 야나는 고대현과 전지수에게 시선을 돌렸다. 둘은 도망가거나 하지 않고 제자리에 가만히 서 있었다.

그 장면을 보니 문득 떠오른다.

‘음, 생각해보니. 고대현 학생은 나인 걸 알고, 전지수는 어차피 벗어서 보여주려 했으니까…….’

사실상 지금 벗어도 상관이 없었다.

결론을 내린 야나의 손이 투구로 이동한다.

스륵.

투구를 벗자 인식 저해 모드가 풀리면서 본 모습이 드러난다.

체격이 약간 더 작아지면서 어깨까지 오는 금발 머리카락이 찰랑거린다.

“어…….”

고대현은 그대로 서 있고.

전지수는 살짝 숨을 들이마시며 미동했다.

전지수는 야나가 갑자기 정체를 밝히는 것을 보고 놀랐다.

저벅. 저벅.

야나 이바노프가 가까이 온다. 그녀는 전지수의 손에 들린 활을 보고 미간을 좁혔다.

“너는 활보단 검이나 도끼가 어울려.”

“저, 저는…….”

“너, 요즘 갈수록 실력 떨어지는 중이지?”

“──!!”

“그게 다 맞지 않는 신발을 신어서 그런 거다. 이대로 가면 계속 떨어질걸?”

전지수의 눈빛이 흔들린다.

쩌저저적.

그때였다.

야나가 뭐라 부연하기도 전.

얼음이 폭풍이 일대를 뒤덮었다. 주변이 전부 얼어간다.

거의 마지막이라서 그런지 줄어드는 속도와 대미지가 강했다.

그런데도 3명은 그 자리에서 가만히 서 있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꾸욱.

야나 이바노프의 손아귀가 전지수의 목덜미를 잡는다.

그리고 힘을 준다. 이대로 있으면 죽는다. 하지만 전지수는 초점이 나간 눈동자로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어딘가 넋이 나간 듯한 표정이었다.

쳇.

야나 이바노프는 속으로 혀를 찼다.

이미 반응을 끌어내기에는 늦은 듯했다.

그녀는 손을 떼고 뒤를 돌아보았다.

‘잡몹 좀 처리해달라고 요청한 걸, 다 얼어버리는 방식으로 해결했네.’

그녀는 입술을 잘근잘근 깨물었다.

만약 여기서 죽으면 다시 접속해서 감옥으로 가야 한다.

[돌아와라…….]

때마침 신영범도 말한다.

하는 수 없이 중앙에 있는 성을 향해서 발걸음을 옮긴다.

거기는 마지막까지 안 줄어드는 영역이라서 살 수 있었다.

야나는 마지막으로 전지수를 보면서 말했다.

“잘 생각해봐.”

“…….”

그러나 전지수는 굳은 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분위기가 경직된다. 아니, 실제로도 계속 얼어붙고 있었다.

야나가 멀어지고.

그제야 듣고 있던 고대현이 입을 열었다.

“그만하고 싶어?”

이대로 계속 있으면 로그아웃이었다.

빨리 이동해야지 살 수 있을 것 같았다.

할 거면 가야 한다.

끄덕끄덕.

전지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대로 GG치고 싶은 모양이었다.

대현은 고민하다가 그녀의 옆에 있기로 했다.

“넌 어떤 게 좋은 것 같아?”

로그아웃되기 직전에 전지수가 질문했다.

고대현은 흐음, 소리를 내다가 말했다.

“둘 다?”

심플한 대답이었다.

* * *

[게임이 종료되었습니다.]

치이익.

로그아웃되면서 가상현실 캡슐의 해치가 열린다.

캡슐에서 나온 범단월이 정태룡에게 말했다.

“넌 수석이면서 맨날 먼저 퇴장하더라.”

뜨끔했기에 커피를 마시고 있던 그의 어깨가 흔들렸다.

그는 입가를 닦으며 범단월을 흘겨봤다.

“새로운 모드니까 어쩔 수 없지. 눈 밟는 소리 때문에 잘 안 들렸다고.”

“이제 퇴물이 다 됐네.”

“…….”

정태룡은 할 말이 없었다. 사실 엄청나게 큰 사슴에 정신이 팔려서 뇌가 정지한 것이었지만.

‘그런 거에 태연하게 대처하는 것도 실력이지…….’

그는 라운지에 있는 협탁 위에 잔을 내려놓고 고개를 돌렸다.

“끄응.”

조지아가 뭔가를 고민하는 듯한 표정으로 앉아있다.

그녀는 특수 부여 효과를 빼앗긴 것에 대해 생각하고 있었다.

“순위가 바뀌다니…… 나보다 손이 빠른 사람이 있다는 건가?”

조지아가 중얼거리듯 말한 걸 범단월이 들었다.

“아, 마지막에 갑자기 멈칫한 게 그런 거 때문이었냐?”

“응.”

일전의 전투에서.

범단월은 조지아가 머뭇거리는 틈을 놓치지 않았다.

곧바로 허리춤에 있던 단검으로 두 명을 처리했다.

업적으로 공속 강화 효과를 받아서 겨우 이길 수 있었다.

그때를 상기한 범단월은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글쎄다. 누가 심심해서 저글링이라도 한 거겠지.”

“그런……가?”

덜컥.

그때, 옆을 지나가던 전지수가 탁자에 부딪혔다.

“아, 미안.”

부자연스러운 얼굴로 사과한 뒤 멀어진다.

전지수는 빠른 걸음으로 자동문을 향해 걸어갔다.

뒤에서 무슨 일이냐고 물어도 들려오는 답은 없었다.

* * *

탕-!

삑.

총구에서 홀로그램 총알이 나간다. 모조 총에 내장된 탭틱 엔진이 진동하면서 반동을 구현한다. 어깨가 흔들린다. 스코프에서 눈을 떼기도 전에 총알이 표적에 닿았다.

[81]

‘흠, 집중력이 떨어져서 그런가, 낮게 나오네.’

고대현은 총을 어깨 아래로 내리며 머리를 긁적였다.

긁적이던 손바닥의 너머로 이하린의 옆모습이 보인다.

삑.

[80]

“아.”

아깝다는 표정을 지은 그녀가 고개를 돌린다.

“한 판 더해.”

“조금 전이 마지막이었어.”

그 말을 들은 이하린이 쳇, 하고 총을 거치대에 내려놓는다.

의외로 포기가 빨랐다. 고대현은 이마의 땀을 닦으며 몇 시간 전의 일을 떠올렸다.

-잠깐 나랑 이야기 좀 해.

-????

막 가상현실 캡슐에서 나왔는데, 어쩐 일로 몸이 쌩쌩한 이하린이 실력에 관한 질문을 해댄다.

결국 홀로그램 사격 내기에서 이기면 말해준다면서 둘러댔는데…….

‘이하린, 얘 거의 반타작 아니었나? 언제 이렇게 올랐지?’

사격이라는 게 조금만 삐끗해도 크게 어긋나서, 하마터면 질 뻔했다. 뭐, 이기나 지나 대답할 말이 똑같다는 게 아이러니하지만.

“진짜 말 안 해?”

“이미 말했잖아. 내 재능이 개화해서─.”

“재능 개화? 누가 그런 멍청한 소리를 해?”

“내 동생이.”

“아…….”

설녀의 저주도 없건만 분위기가 싸해졌다.

대현과 하린은 말없이 있다가 학생 식당으로 진입했다.

주황색으로 물들어가는 햇빛이 비스듬하게 들어오고 있었다.

남은 학생들은 거의 없었다. 이하린과 사격전을 하느라 늦게 들어왔기 때문이었다.

‘원래 반 애들이랑 같이 먹으려고 했는데, 유금옥이 괜찮다면서 나머지 애들을 끌고 갔었지…….’

이하린이 매달리는 걸 보더니, 이해했다는 듯 고개를 주억거리며 이태원과 허건섭까지 끌고 갔다. 의도적으로 자리를 만들어 준 것이었다. 때문에 고대현은 이하린과 단둘이 식사해야 했다.

대현은 유금옥이 쓸데없는 이해심을 발휘하지 않았기를 바라며 메뉴를 골랐다.

‘오늘은 파스타류나 먹을까.’

메뉴가 사실상 거의 다 있는 구조였기에 고르는 재미가 있었다. 그렇게 빠네 파스타를 고르고 옆을 보는데, 이하린이 난처한 표정으로 무인 주문기를 보고 있었다.

“코인 없냐?”

“응…….”

이하린의 얼굴에 그림자가 드리웠다.

고대현은 그녀가 간단한 메뉴만 시켰던 과거를 떠올렸다.

“내가 살게.”

“진짜?”

게슴츠레했던 눈동자가 초롱초롱해진다.

이하린은 아무거나 사준다는 고대현의 말에 메뉴를 골랐다.

‘엄청나게 좋아하네.’

고대현은 매드무비 수익 덕분에 지갑 사정이 좋았다.

이 정도 사주는 것 정도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자리는 어디에 앉지.’

식판을 받은 대현은, 한산한 식당 내부를 보다가 문득 전지수를 발견했다.

전지수는 혼자서 밥을 먹고 있었다.

고대현은 전지수가 있는 방향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전지수에겐 질문할 게 나름 많았기 때문이었다.

‘아까 전 판에 했던 대화가 무슨 의미일까.’

고대현은 야나가 어째서 훈련 대륙에 있는지도 몰랐다.

전지수는 이 세계에서 고위급 자제니까 아는 게 많을 것이다.

‘실제로 야나랑 아는 사이인 것 같았고.’

드르륵.

고대현이 의자를 끌어서 옆에 앉자 전지수가 화들짝 놀란다.

“느, 늦게 먹네?”

“친구랑 사격 좀 하다가 늦었지.”

고대현이 손가락으로 막 앞에 앉는 이하린을 가리켰다.

이하린은 제 3자와 겸상하는 구도에 고개를 갸웃거렸지만.

얻어먹는 입장이었기에 별말 없이 자리에 앉았다.

달그락.

접시에 식기가 닿는 소리가 조용하게 울려 퍼진다.

고대현은 파스타에 바게트 조각을 하나를 담갔다.

딱딱한 빵이 까르보나라 소스에 버무려져서 눅진해질 때까지 잠시 기다린다.

대현은 턱을 괴고 느릿하게 입을 열었다.

“혼자서 자주 먹나 보네.”

“응, 거의 혼자 먹어.”

혼자 먹을 바에는 밥을 굶는 사람도 가끔 있다.

전지수는 자연스럽게 밥을 먹고 있으니, 이런 식의 생활이 익숙한 모양이었다.

으직.

고대현은 적당히 젖은 바게트를 우물거리고, 포크로 면을 돌렸다. 쇠 포크 끝자락에 면발과 흰색 소스, 버섯이 엉켜 돌아간다.

그리고 면을 적당히 말다가 입에 넣었다.

느끼한 소스와 함께 면발이 씹힌다. 첫맛은 연하면서 부드럽고 끝맛은 고소하다.

옆에 있는 분홍색 무절임을 포크로 찍어서 같이 먹자 느끼한 느낌이 씻어져 내려간다.

양이 많아서 먹다가 남길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앞에서는 이하린이 슈바인학센을 먹고 있었다.

처음에는 어색하게 깨작거리더니. 지금은 고기에 정신이 팔려서 잘만 먹고 있다.

먹다가 옷에 흘릴 정도였다.

고대현은 이하린이 냅킨을 가지러 자리에서 일어나자 조용하게 말했다.

“아까 그 사람이랑은 무슨 사이야?”

“음…….”

전지수는 접시를 내려다보면서 고민하다가 입을 열었다.

“예전에 필드 스와핑 때 만나서 친해진 사람.”

“필드 스와핑?”

“동맹 대륙끼리 일정 필드를 교환해서 가지는 거야.”

대현의 질문에 그녀가 조목조목 설명해준다.

고대현이 바로 옆에서 봤으니, 전지수는 크게 숨기지 않았다.

“꽤 오래됐네.”

요약하자면 러시아대륙과의 영토 교환에서 만난 사람이라는 것이었다.

“그러게.”

미성년자는 허가를 받아야 본 대륙 진입이 가능한데, 성주와 연줄이 있는 사람들은 사실상 프리패스였다.

따라서 어린 나이인 전지수도 당시 그 자리에 있었다고 한다.

‘수업에 대한 거는, 나중에 정태룡한테 물어봐야지.’

이제 의문이 거의 풀렸다.

마지막 하나 빼면.

“너한테 활 버리라는 건 뭐야?”

“내가 예전에, 음, 그런 걸 좀 잘 썼거든.”

‘뭐야, 설마 둘 다 잘한다는 건가?’

그렇게 대화하는 사이 이하린이 돌아왔다.

그리고 자리에 앉자마자 또 허겁지겁 먹기 시작한다.

“으움, 맛있다.”

고대현은 이하린의 모습을 보고 LOH의 챔피언 중 하나인 템켄치를 떠올렸다.

‘템켄치는 아군을 먹은 다음에 이동할 수 있는 스킬이 있지.’

아군, 하니까 팀전, 금요일에 있을 반별 평가전이 생각난다.

이를 대비해서 5인 팀으로 연습하기로 했었지…….

“갈까?”

“그래.”

드르륵.

밥을 다 먹고 식탁에서 일어났다.

창문을 보니 해가 거의 기울었다. 불그스름한 동전이 산 아래로 가라앉고 있었다.

‘응? 이건…….’

고대현은 식당에서 기숙사로 가던 중.

곁눈질로 전지수를 내려다봤다.

그녀의 어깨 위.

골든 리트리버의 털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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