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2화
#62화
‘주먹이라.’
고대현은 전지수와 함께 이동하면서 그녀의 스킬을 탐구했다.
1단계에서 진화된 2단계.
그냥 간단하게 설명하자면 파괴력이 늘고, 몸에 실드까지 생기는 효과가 추가되었다.
대현은 전지수를 보면서 말했다.
“사실상 세토 아니냐 그거?”
“그런 것 같아.”
레오히에 세토라는 주먹을 쓰는 챔피언이 있다.
지금 부여된 특수 스킬 효과대로라면 그 챔피언과 전지수는 크게 다르지 않았다.
‘물론, 레오히는 동작을 맞춰야 하고 여기는 아니지만.’
자유도는 여기가 더 높았기에 컨트롤 상 다른 점은 존재했다.
지금은 그저 무기에 특수 효과가 붙을 뿐이었다.
‘주먹이 무기인 게 신기하긴 하네.’
고대현은 왜인지 모르게 못마땅한 표정을 짓는 전지수를 뒤로하고 지도를 펼쳤다.
“이제 슬슬 성으로 가야 할 것 같은데.”
범위가 점점 줄어들고 있었다. 남은 생존자 수도 그리 많지 않고 말이다.
“그래, 오늘은 일찍 끝내고 싶네.”
전지수가 그리 말하며 대현의 뒤를 따랐다.
건너편 언덕만 넘으면 성이었다.
그렇게 전지수와 말없이 눈 위를 걷고 있을 때였다.
촤악!
나뭇가지에 이불처럼 덮인 눈이 떨어지면서.
익숙한 실루엣이 모습을 드러냈다.
“이하린?”
철퇴 같은 무기를 들고 있는 이하린이 있었다.
옆에는 유금옥까지 껴 있었다.
‘둘이 같은 팀이었구나.’
고대현은 무기를 전환했다. 반은 같은 반이지만, 현재는 적이었기에 전투를 준비해야 했다.
“이렇게 된 이상 붙어야겠네.”
이하린과 유금옥도 전투를 준비하면서 가까이 왔다.
둘 다 활은 가지고 있지만, 근접으로 승부를 볼 생각인지, 롱소드와 방패를 들고 접근했다.
“지수, 되겠어?”
“어, 응…….”
전지수는 특수 효과가 주먹에 있고, 나머지 냉병기에는 없는 상태였다.
즉, 주먹으로 칼을 상대해야 한다는 건데.
아까 임상배 때는 한쪽에서 시선을 끌어서 성공한 거지 지금 같은 상황에서는 미지수였다.
“일반 활도 잘 먹히니까 각 보다가 들어갈게.”
“알았다.”
전지수가 활을 들면서 각을 보겠다고 하니, 고대현은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저격 실력은 좋으니까 알아서 하겠다는 믿음이 있었다.
바스락.
옆에 있던 눈이 부서져서 소리를 낸다.
탓!
그것을 신호로 양 팀이 분주하게 움직였다.
유금옥은 서포트, 전지수도 일단은 뒤로 빠져서 쏘는 형태였으니.
근접으로 붙어서 힘을 겨루는 이는 이하린과 고대현밖에 없었다.
카칵!!
곧이어 서로의 칼이 마찰을 내면서 충돌한다.
이하린은 살짝 놀란 어투로 입을 열었다.
“밀어낼 생각으로 쳤는데 받아내? 대단하네.”
“그런 깊은 생각이 있었을 줄이야.”
평타를 사용해서 이하린의 칼을 밀어낸 고대현은, 이어서 스태프로 전환했다. 단발 매직 미사일은 계속된 클릭질로 연사하듯 사용이 가능했으니까.
파파파팍!
다량의 매직미사일이 이하린의 시야를 가린다.
“읏-?”
이하린은 당황한 표정으로 칼을 휘둘렀다.
대현은 오랜만에 ‘미숙함’이라는 것을 느꼈다.
야나 이바노프에 비하면 한없이 약했다.
‘무기를 빠르게 전환해서 정신 못 차리게 해줘야지.’
고대현은 친구에게 장난치는 느낌으로 무기를 전환했다.
채챙!
롱소드로 사선 베기를 날렸다. 그리고 이어서 방패로 전환한 다음에 방패 치기. 그리고 또 전환해서 도끼로 수직 베기를 했다.
콰과각!
“웃!”
이하린의 자세가 흐트러진다. 그런 중간중간. 전지수의 서포트가 들어왔다. 화살이 갑옷의 틈새 사이사이로 정확하게 적중한 것이었다.
“천상계랑 같이 팀 하니까 좋냐?”
이하린이 화가 났는지 검을 이리저리 붕붕 흔든다.
이에 고대현이 도끼를 꺼내려 할 찰나였다.
띠링.
[최다 무기 전환 업적을 달성하셨습니다.]
[신념의 축복이 내려옵니다.]
[무기에 특수 스킬이 부여됩니다.]
드디어 업적이 나타났다.
* * *
한편, 범단월은 정태룡과 시체 파밍을 하고 있었다.
“너, 고대현한테 관심도 없더니 엄청 신경 쓰네. 내가 안 본 사이에 무슨 일이라도 있었냐?”
“있었으니까 이러지.”
범단월은 성을 내면서 그간 있었던 일을 설명했다.
고대현이 보조교사와 대결하던 중 자신을 로그아웃시킨 것부터, 동작이 생각보다 좋다는 것까지.
“흠.”
범단월의 말을 들은 정태룡은 활을 가다듬으며 비음을 흘렸다.
“신경 지구력에만 재능이 있는 줄 알았는데, 이제 보니까 다른 쪽에도 생각보다 훌륭하다, 이건가?”
정태룡은 범단월이 따라 할 수 없는 동작이 있다는 것에 놀랐다. 그리고 그를 미리 포섭했다는 사실을 떠올리고 안심했다.
‘역시 난 촉이 좋아.’
신영범 선생님의 눈빛이 심상치 않은 걸 보고, 끌어들였더니 바로 상승해버린다.
“나중이 기대되네.”
정태룡이 웃으면서 화살을 통에 넣자, 범단월이 입을 열었다.
“너무 신뢰하진 않는 게 좋아.”
“왜지?”
“눈빛이 사람의 눈이 아니었어, 그놈.”
“눈빛?”
범단월은 목을 긋는 시늉을 하던 고대현의 표정을 떠올렸다.
그의 표정에는 생기가 없고, 눈동자마저도 살아있는 게 아닌 것 같았다.
“아무튼, 조심해. 보통 녀석이 아니니까.”
“알았어. 일단 네 말이니까 주의하긴 할게.”
그래봤자 아이언 2인데 무슨 일을 하겠냐마는.
정태룡은 범단월의 말에 알겠다고 답했다.
안 된다고 해봤자 길길이 날뛸 게 뻔했기 때문이었다.
‘고대현은 이미 어머니의 총애를 받고 있어서 어쩔 수 없다.’
정태룡은 자신의 어머니를 떠올렸다.
A급 대행증을 줄 때의 반응을 보아하니.
고대현이 꽤 마음에 드신 모양이었다.
‘첫인상 좋다는 게 거짓말은 아닌가……?’
그는 고대현의 표정을 다시 떠올리고 얼굴을 양쪽으로 흔들었다. 거기까지는 좀 아닌 것 같았기에.
“이동하자.”
“그래.”
다시 게임에 집중했다. 현재 있는 위치는 훈련 대륙 옆의 조그마한 섬. 그중에서도 좁혀드는 유사 전기장 옆이었다.
‘남은 생존자 수는 이제 80명대.’
정태룡은 활시위를 당긴 채 뒤를 돌아봤다.
어차피 좁혀드는 범위라면, 집에서 대기한 다음 설녀의 저주를 피해서 오는 사람들을 처치하는 편이 좋았다.
일종의 수문장 역할을 하는 것이었다.
정태룡이 범단월에게 말했다.
“우리는 여기서 처리하다가 마지막에 성으로 가자.”
“성이면…… 또 그 사람을 보는 거겠네.”
범단월은 보조교사의 움직임을 떠올렸다.
‘따라 하는 건 불가능.’
그 행동은 신경 지구력을 견뎌야만 할 수 있는 것이었기에 범단월이 따라 할 수 없었다. 그나마 공략 한다면 잘 피해서 약점을 찌르는 건데…….
“그럼 지금 가볼까.”
기본적으로 각각 배틀로얄 방식이었지만, 마음의 준비가 되면 성으로 전투를 하러 가서 피드백을 받는 방식이었다. 이번에는 신영범 학년 담임도 있어서, 더 자세한 피드백이 있겠지.
“그래 가자. 계속 기다렸다가 처치하는 것도 질렸는데.”
정태룡과 범단월은 중앙에 있는 성을 향해서 이동했다.
뽀드득, 뽀득.
눈을 밟으며 이동한다. 숲은 이동하기가 힘들기에 중간에 나와서 평지로 나왔다. 그러자 저 멀리에 성이 있는 게 보인다. 이대로 10분 정도 더 걸어가면 도착할 만한 거리였다.
‘걸어 다니려니까 불편하네.’
무기의 부하값이 줄어든 대신 기후도 바뀌었다.
더위보다야 좋지만, 추위도 만만치 않았다. 일정 수치를 넘기면, 이것도 몸 전체를 무겁게 만들었다.
‘탈 게 있으면 좋은데.’
범단월이 생각할 찰나였다.
발에서 진동이 느껴진다. 단순한 걸음걸이에 의한 게 아니었다.
쒜엑!
긴장된 공기를 잡아 뜯는 듯한 소리에 신경이 곤두선다.
범단월이 뒤를 돌아보자 목에 화살을 맞은 정태룡이 앞으로 쓰러진다.
‘이건.’
범단월은 상반신을 비틀었다. 그리고, 그대로 회전하면서 회피했다.
두그닥.
그가 있던 자리에 거대한 무언가가 지나갔다.
기억하기론 거대한 순록의 한 종류였다.
바닥에 착지한 범단월의 앞에 발굽이 놓인다.
푸르르.
흔히 무스라고 불리는 말코 손바닥 사슴 위에, 무기를 들고 있는 태해란과 조지아가 있었다.
“이렇게 붙는 건 오랜만이네.”
현재 있는 4명은 어지간하면 같은 팀으로 4인 게임을 돌렸다. 이렇게 맞상대로 만나는 것은 오랜만이었다.
‘저 두 명이 같은 팀이었나?’
범단월은 자세를 잡았다.
정태룡은 벌써 로그아웃됐지만, 같은 팀으로써 살았으니까. 그 임무를 다해야 했다. 그가 등 뒤의 활을 잡으며 기다리고 있자니, 곧 전투가 시작되었다.
훅!
거대한 사슴이 돌진하면서 그 위에 있던 조지아가 장창을 날린다. 회피력이 높은 범단월은 단번에 피했지만, 피하는 위치로 태해란의 화살이 날아왔다.
챙!
그가 찰나의 순간에 화살을 튕겨냈다. 업적이 어쩌고 하는 메시지가 나타났지만, 눈에 담을 시간이 없었다. 즉시 방향을 돌려서 장검을 뽑았다. 그리고 몸을 회전시키면서 사슴의 다리를 베었다.
히히힝!
사슴이 꼬꾸라진다. 범단월은 상대의 자세가 흐트러진 걸 틈타서 움직였다. 바로 땅을 박차며 목을 노린다. 그러나 태해란, 조지아 둘 다 상위 티어임을 증명하듯. 가볍게 피해서 넘겨버린다.
쾅!
방패로 전환해서 흘려넘긴 조지아가 스태프로 전환해서 마법을 날렸다. 간단한 주문인 록스의 빛의 주박이었다. 투사체 속도가 빠른 편이 아닌지라 범단월이 피한다. 스킬을 날린 조지아는 곧바로 도끼로 전환해서 공격했다.
‘이건 못 피하겠는데?’
콰직!
범단월은 신체의 신경 부하 강도가 급상승함을 느끼고 뒤로 물러났다. 조지아의 도끼 한 방에 빈사까지 간 것이었다.
‘조지아가 원래 저 정도 실력이 아닌데…… 신경 부하 레벨이 낮아졌다고 저 정도까지 오르다니.’
조지아는 저번 시간에 무기를 여러 개 다루는 게 악수로 작용해서 광탈 했다. 그러나 이번 모드에서는 각각의 무기로 업적을 쌓아서 꽤 강해진 듯했다.
“마지막으로 남길 말은?”
조지아의 말에 범단월이 입꼬리를 올렸다.
“무기 좀 적당히 들고 다녀라. 잡상인도 아니고.”
“왜, 어때서.”
조지아는 코웃음을 친 다음, 창을 들이밀었다.
그녀는 무기를 전환할 때마다 추가 대미지를 먹일 수 있는 효과가 있었다.
그런데, 다음 순간.
[기록 갱신자가 나왔습니다.]
[업적 순위 변동]
[특수 효과가 이전됩니다.]
“어?”
이상한 일이 일어났다.
* * *
탱!
야나 이바노프는 성에서 신영범과 1대1을 치르고 있었다.
대검과 레이피어가 맞닿는다. 서로의 힘을 비슷하게 제한한지라 쉽사리 승부가 나지 않았다.
“힘들어 보이는데 아이템이라도 끼고 오는 게 어때?”
“힘들기는 무슨!”
챙!
뱀처럼 휘어진 검이 야나의 빈틈을 파고 들어간다.
이번만큼은 동작이 굼떴기에, 야나 이바노프는 자신의 목전에 당도한 검 끝을 마주하고 항복을 선언해야 했다.
“항복.”
“좋은 승부였다.”
“좋긴 무슨.”
그녀가 자리에 주저앉았다. 제한된 상태로 했기에 오래 하니까 역시 무리가 갔다.
“오늘은 오겠지?”
야나가 신영범에게 말했다. 안 봐도 전지수에 관한 이야기였다.
“한 번 확인해 보마.”
신영범은 홀로그램 창을 띄워서 생존자 목록을 훑었다.
다행히도 전지수는 살아있었다. 만날 가능성이 있기에 그녀가 불평할 확률이 낮아졌다.
“아직 살아있다.”
“진짜?”
그녀가 일어난 뒤 상반신을 홀로그램 창쪽으로 기울였다.
그러자 전지수의 전투 영상이 보인다.
“어……?”
야나 이바노프의 눈이 커졌다. 그녀의 시선이 멈춘 곳. 전지수가 주먹으로 사람을 패대기치고 있었다.
“무기 강화가 저런 식으로도 적용이 되는군.”
신영범은 태연하게 반응했다. 반면 야나 이바노프는 화면에서 눈길을 못 떼고 있었다. 그녀가 신영범에게 말했다.
“나 잠깐만 나갔다 올게.”
“설마, 직접 보러 가게?”
원래라면 안된다.
하지만 오늘이 아니면 다음 주로 미뤄지기에.
그녀는 뜻을 굽힐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래, 여기는 내가 볼 테니 가봐.”
결국 신영범은 항복했다.
지역 제한이 풀린 야나는 전지수가 있는 방향으로 냅다 돌진했다.